계단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생각해보자. 분명 아무 층도 없는 상태가 0층이다. 한 개의 층을 쌓아 올라서면 그곳은 1층, 두 개의 층을 쌓고 올라서면 그곳은 2층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층을 쌓지 않은 맨바닥을 놓고 1층이라 부른다. 왜일까. 죽을 사(死)가 연상된다고 4층을 5층이라고 명기한 한자 세대의 불안감처럼 분명 우리만의 전통적인 이유가 있을 거라 추리해보지만 쉬이 찾을 길 없다. 수천 년간 1층 말고는 복층 생활을 해온 적 없던 역사적 조건 속에서 근대 일본을 통해 이식된 미국식 층수 개념이 그대로 정착한 게 아닐까 싶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거나 형상화되지 않은 것을 인정해주는 0이라는 공백의 개념을 발견하기 이전 시대의 배타적인 셈법에 머물고 있는지도 모른다. 딸의 그 질문은 센강 유람선의 산들바람보다 나를 상쾌하게 해주었다. 빨리 커서 우리나라에도 0층을 만들어보라고 귀띔해줬다. 식민지 유산이라 그토록 불편했던 번지 주소가 때늦게 합리적인 도로명 주소로 바뀐 후의 엇갈린 반응처럼 환영받을지, 지탄받을지 자못 궁금하다.
어쩌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거나 형상화되지 않은 것을 인정해주는 0이라는 공백의 개념을 발견하기 이전 시대의 배타적인 셈법에 머물고 있는지도 모른다. 딸의 그 질문은 센강 유람선의 산들바람보다 나를 상쾌하게 해주었다. 빨리 커서 우리나라에도 0층을 만들어보라고 귀띔해줬다. 식민지 유산이라 그토록 불편했던 번지 주소가 때늦게 합리적인 도로명 주소로 바뀐 후의 엇갈린 반응처럼 환영받을지, 지탄받을지 자못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