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랭킹 198위 남수단 이끌고 62위 적도기니 꺾어…
건국 이래 첫
승리

(서울=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오늘 운동장에서 죽고 이 민족을 살리자."
지난 6일(한국시간) 아프리카 축구계는 발칵 뒤집혔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98위인 남수단이 2017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예선에서 아프리카의 강호 적도기니(62위)를 1-0으로 꺾은 것.
남수단은 건국된 지 4년밖에 되지 않은 나라다. 수단에서 분리돼 독립국가가 된 게 2011년 2월이다.
남수단의 FIFA 가입은 2012년 5월이 돼서야 승인됐다. 남수단 축구가 태동하고서 3년 4개월만에 A매치 첫 승리를 거둔 것이다.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한 선수들과 한국인 지도자가 똘똘 뭉쳐 북수단과의 분쟁, 내전으로 신음하던 남수단 국민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겼다.
지난해부터 임흥세 총감독과 함께 남수단을 이끄는 이성제(46) 감독은 20년 가까이 저개발국에서만 지도자 생활을 이어온 사람이다.
실업축구 선수 출신인 그는 1997년 케냐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03년부터는 아프가니스탄에서 U-17, U-19, U-23, 올림픽 대표팀을 차례로 10년간 지도했다. 그가 키운 선수들이 성장해 2013년 남아시아선수권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첫 국제대회 우승을 일궜다.
미국과 전쟁중이던 아프가니스탄에서 축구라는 씨앗을 심고 나무로 길러낸 그의 도전은 축구 환경이 전무하다시피 한 남수단에서도 이어졌다.
연합뉴스는 음지에서 고행을 이어가는 이 감독의 얘기를 들어봤다. 현지 전화 사정이 좋지 않아 인터뷰는 이메일로 이뤄졌다.
이 감독은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나 '양지'"라면서 "나는 지금 행복하다. 가슴이 방망이질 하는 한 이 길을 계속 가겠다"고 했다.
다음은 이 감독과의 일문일답.
-- 2003년부터 10년 넘게 아프가니스탄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는데 남수단 감독을 맡게 된 계기는.
▲ 남수단 감독직을 제안받은 것은 2013년이었다. 지난해부터 임흥세 총감독님과 함께 팀을 이끌고 있다. 남수단축구협회의 의지와 열정이 느껴져 미래를 생각하고 남수단에 왔다. 남수단은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빈민한 축에 속한다. 축구 인프라 역시 최악의 상태다. 아프가니스탄 생활을 시작했을 때처럼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정도로 심각한 상황인줄 미리 알았더라면 남수단에 오는 것을 두고 크게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 처음 갔을 때 남수단 대표팀 수준은 어땠나.
▲ 남수단에 도착하자마자 모잠비크와의 2015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1차 예선 원정 경기를 준비해야 했다. 운동장은 잔디가 아닌 풀밭에 가까웠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운동장은 진흙탕으로 변했다. 선수들은 국제경기 경험이 전무했다. 기본적인 워밍업도 줄 맞춰 못하더라. 축구협회의 행정은 '제로'에 가까워서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다 챙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너무 무리한 도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매일 들었다.

-- 데뷔전에서 0-5로 완패했다.
▲ 행정이 미숙해서인지 경기가 열리는 모잠비크 마푸트에 경기 전날이 돼서야 도착했다. 부랴부랴 훈련을 하는데 선수들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집중을 못하더라. 그들의 눈에는 모잠비크의 경기장과 잔디 상태가 매우 좋아 놀란 것이다.
경기가 시작되고 90분이 9시간처럼 느껴졌다. 손 한 번 쓰지 못하고 참패를 당했다. 골을 허용 할 때면 5개의 창이 차례로 내 가슴에 박히는 기분이었다. 경기 결과는 둘째치고 우리 선수들 경기력이 모잠비크에 비하면 중학생 수준도 안 된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 경기가 끝나고 버스를 타고 경기장을 빠져나오는데 모잠비크 관중이 우리를 향해 손가락 다섯 개를 들어보이며 혀를 내밀더라. 나와 선수들은 죄인도 아닌데 고개를 숙이고 숙소로 가야 했다.
모잠비크와의 2차전 홈 경기에서는 0-0 무승부를 거뒀으나 이대로 간다면 계속 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먼저 대표 선수 발굴에 직접 나서기로 했다. 남수단 국내에서 뛰는 선수들 뿐 아니라 해외파 선수들의 인적사항을 파악하고 물색하기 시작했다. 먼저 협회 직원들을 설득해 남수단의 지방 곳곳을 돌아보고 가장 가까운 나라인 북수단을 수차례 방문하면서 재목을 발굴했다.

-- 현재 진행되고 있는 2017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예선에서는 말리(60위), 베냉(115위), 적도기니와 같은 조가 됐다. FIFA 랭킹에서 격차가 크다.
▲ 첫 상대가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말리였다. 말리 원정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소집훈련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매일같이 협회를 찾아가 설득했다. 훈련 프로그램과 예상 성과 등을 매일 설명해야 했다. 협회에서는 너무 강한 팀들과 한 조로 엮여 전패를 당할 것으로 예상하고 훈련도 소용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어렵게 2주간의 소집훈련을 치를 수 있었다. 그러나 변변치 않은 숙소에서 선수들이 밥도 못 먹는 일도 벌어졌다. 훈련을 마치면 에너지를 채워줄 음식도 없이 물만 마시기 일수였다.
말리에는 18명의 선수만을 데리고 가게 됐는데 결국 도중에 합류하기로 한 2명이 사정상 출국하지 못하는 바람에 16명의 선수만 가지고 경기에 임해야 했다. 그 2명에는 주전 골키퍼도 포함돼 있었다.
-- 많이 당황했겠다.
▲ 너무 많은 어려움을 겪은 팀이어서인지 그런 상황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지난해 모잠비크에서 당한 수치만 떠올리며 당당하게 경기장에 들어갔다. 5만 관중이 들어앉아 우리 선수들이 기가 죽을 법도 했는데 분전하며 경기를 대등하게 끌어갔다. 말리 선수들은 우리를 우습게 봤는지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비록 작은 실수 두 번이 골로 연결돼 0-2로 졌지만 몸을 사리지 않고 뛴 선수들 모두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예뻐보였다.
버스를 타고 운동장을 빠져나갈 때 조롱하는 관중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희망이 보였다.
-- 그리고 적도기니와의 2차전에서 남수단 사상 첫 A매치 승리를 거뒀다. 어떻게 준비했나.
▲ 선수들 장점을 하나하나 끌어내고 개인 기술이 부족한 점을 메우기 위해 조직력과 선수들 사이의 융화를 이뤄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우리가 그동한 치른 모든 경기를 비디오로 분석해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 1대 1 상담으로 공감대를 만들었다. 경기를 시작한 뒤 언제쯤 각 선수의 체력이 바닥나는지를 확인해 체력 훈련을 맞춤형으로 실시했다. 무엇보다도 실수를 줄이고 찬스를 살리는 훈련에 집중했다.
-- 정신적으로는 어떤 부분을 강조했나.
▲ 경기 전 미팅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만큼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자. 오늘 하루만 나를 잊고 이 민족을 생각하자. 우리를 지켜보는 힘들고 어려운 이 나라를 생각하자. 가족, 친지와 친구들, 거리의 사람들을 생각하자. 웃음을 잃은 사람들. 평화를 잃은 사람들. 오늘 운동장에서 죽고 이 민족을 살리자.
-- 적도기니전은 남수단 건국 이래 첫 A매치 홈경기였다. 분위기는 어땠나.
▲ 작년까지만 해도 불안한 치안 때문에 남수단은 A매치 홈경기를 북수단 등지에서 치러야 했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 경기장에 발전기를 돌려 생중계를 하더라. 남수단 고위직 공무원과 유명인사들이 다 모였다. 관중은 자리가 없어서 운동장 담벼락이나 주위 건물 옥상에 자리를 마련했다.
경기가 끝나자 관중이 너나할 것 없이 경기장으로 뛰어들어 광란의 파티를 벌였다. 나는 선수들, 협회 직원들, 관중과 얼싸안고 그 광란을 즐겼다. 방송국 인터뷰를 하는데 관중이 몰려들어 나를 목마 태우고 환호하더라. 꿈인지 현실인지 실감이 안났다. 라오스가 월드컵 예선에서 한국 대표팀을 이겼다고 생각해보라. 그게 현실이 된 거다.

-- 빈곤한 지역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왔다. 어려운 일을 견디게 한 원동력은 뭔가.
▲ 사람 사는 곳은 다 양지다. 모두가 똑같이 하나님이 주신 햇빛을 받고 공평하게 공기를 마시며 사는 날 동안은 똑같은 땅을 밟는다. 음지는 사람들이 스스로 나눠 놓은 가상의 세계일 뿐이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피부색이나 문화, 종교에 상관없이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그러나 빈곤한 지역의 사람들은 내전과 전쟁, 가난으로 소외되고 굶주리면서 인간이 누려야 할 축복과 희망을 누리지 못한다. 숨만 쉬고 있다고 생명이 아니다. 살면서 만나는 작은 희망들…그게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힘이다. 나는 축구를 통해 이 사람들의 희망을 봤다. 사람을 살리는 생명과 같은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축구는 그저 취미이거나 체력증진, 혹은 성공이나 명예, 돈이지만… 사실 축구는 그 이상의 무언가다. 명예나 돈으로 살 수 없는, 살아가는 생명력 같은 것이다. 찢어진 헌 공 하나로 웃음을 줄 수 있고 같이 흘리는 땀방울로 피부색을 넘은 사제지간이 될 수 있다. 친구를 넘어 가족도 될 수 있다. 작은 희망 하나가 생명력을 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내가 사는 원동력이다.
-- 임흥세 총감독은 어떤 인연으로 함께 일하게 됐나.
▲ 2013년에 지인을 통해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그 때 남수단 축구에 대해 처음 들었다. 늘 묵묵히 뒤를 지켜주시는 든든한 버팀목 같은 분이다. 누구보다도 아프리카를 사랑하고 남을 돕는데 가장 먼저 솔선수범하신다.
-- 남수단 감독을 하며 어떤 부분이 제일 힘들었나.
▲ 축구 인프라가 부족하다. 경기나 훈련에 필요한 제대로 된 운동장과 운동기구를 찾아보기 힘들다. 수도인 주바에도 경기장이 하나밖에 없어서 하루에 리그 두 경기씩을 치른다.
협회의 행정력이 약해서 대표팀을 전적으로 지원해주지 못하다 보니 선수들의 불만이 많이 쌓여있다. 감독으로서 사기가 저하되지 않도록 늘 동기부여를 해야하는 게 가장 큰 숙제다. 첫승을 거두기 전까지는 아무도 환영하지 않고 관심도 받지 못하는 게 우리 대표팀이었다. 북수단 소속팀으로 돌아가야 하는 선수들은 협회에서 항공권을 제공해주지 않아 자비로 돌아가는 해프닝도 흔하다. 하루도 마음 편할 날 없이 선수들과 시간을 보낸다. 더 잘해주지 못해 선수들에게 항상 미안하고 부끄럽다.
-- 남수단과 인연이 끝날 때가 되면 또 다른 어려운 상황의 나라를 찾아 떠날 생각인가.
▲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는 일 아닌가. 나도 사람인데 좀 더 좋은 곳에서 지도자 생활을 할 마음이 왜 없겠나. 사실 지금은 좀 쉬고 싶은 생각도 든다. 이번 승리로 남수단 국민에게 작은 희망을 안겨준 것… 여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여전히 심장이 뛴다. 나는 애초에 감독으로 유명해지고 성공하기 위해 이 길을 간 것이 아니다. 10년이 넘게 사람들이 '음지'라고 말하는 곳에서 살았으나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성공이나 명예가 아니더라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은 많다. 실패와 좌절이 더 많았으나 지금 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다. 내 육체가 내 의지 대로 움직이고 내 가슴이 계속 방망이질 한다면 이 길을 계속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겠다.
-- 인생의 좌우명이 뭔가.
▲ 진심을 이길 힘은 없다. 진심은 상처입을 수 있으나 없어지지는 않는다. 나를 따르는 사람들을 위한 진심. 이것이 나의 유일한 지도력이다.

ahs@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2015/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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