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20년 전, 여성 500명 만났던 킹카… 요즘 어떻게 지낼까? 이웅진

해암도 2015. 6. 26. 06:33

대학 때 킹카였던 남자, 여자 500명 소개받고도…

  • [이웅진의 중매이야기]
    이웅진 결혼정보회사 선우 대표, 한국 결혼문화연구소 소장.
    “선생님은 결혼을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판타지. 결혼을 안 해서 그런지 로망 같은 게 있어?”
    그의 말이 신선하게 와 닿았다. 그 나이에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니. 결혼을 한 우리는 이해가 안되지만, 그분에게 결혼은 미지의 세계일 수도 있다.

    오늘 인상적인 미팅중이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한번은 꼭 만나야 할 사람을 다시 만난 것이다. 그는 60대 중반의 방송인으로 서울에 있는 모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아버지는 방송사 최고위 간부, 어머니는 당시 시대에 전문직으로 윤택한 환경에서 자랐다. 뭐 하나 부족함 없는, 아니 탁월함을 갖춘 그가 아직 결혼을 안 했다는 것은 나로서는 전혀 의외였고, 아무리 따져 봐도 결혼 못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그를 만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워낙 인기가 있으셨던 분이라, 주변에서 소개 많이 받으셨을 것 같아요”
    “그렇지. 500명은 족히 될걸. 한 400명쯤 만났을 땐가, 내가 아는 언론사 간부가 내 얘기를 한번 다루고 싶다는 말까지 했으니. 물론 거절했지만.”
    내가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이 1994년경이었다. 그러니 20년이 넘었다. 내가 주선한 몇 번의 맞선, 그리고 단체미팅에서 그는 쾌활한 성격으로 분위기를 주도하는 인기남이었다.

    “20년 만이네요. 선생님은 제가 꼭 만나고 싶었던 분 중 한 분이세요. 세월이 지나도 기억 속에 각인이 되어 있으세요.”
    “그랬나요? 지금은 독거노인이 되어 만났네. 지하철도 공짜로 타고.”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그가 최근에 결혼 결심을 다시 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화려한 시절에도 하지 않았던 결혼을 60대 중반이 되어서야 하겠다는 그 마음이 궁금했다.
    “만나는 분은 어떤 분이세요?”
    “외모로만 따지면 내가 만났던 500명 중 밑에서 10위 안에 들걸?”

    “그럼 어떤 면이 좋으신 거예요?”
    “편안하게 해준다고 할까? 나나 그 사람이나 경제적으로 독립적이에요. 돈을 따져서가 아니라 우리 나이가 되면 서로 부담을 안 주는 것, 의존하지 않는 것, 기대를 많이 안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
    “너무 따로따로 아닌가요?”
    “아니지..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건 오래갈 수가 없지 않겠어? 우리는 그래요. 둘이 합치면 더 행복해지겠다…. 그래서 결혼을 하는 거지.”

    결혼결심을 80% 정도 굳힌 상태이고, “사는 집을 내놓을까?”하는 여성의 질문에 지금 확답을 하려고 하는 중이라고 했다. 6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그는 건강해보였고, 목소리는 물론이거니와 눈빛도 살아있었다. 나는 커피를 시켰는데, 단팥죽을 주문하는 그를 보면서 건강에 신경을 쓰는 것이 느껴졌다.

    “선생님이 건강하신 이유를 알겠네요….”
    “혼자 산다는 건…. 스스로 일어나고, 자신을 챙겨야 하는 거예요. 운동하고, 관리하고, 신경을 쓸 수밖에….”

    그의 얘기는 40대 노총각들의 미래이기도 하고, 그 연령대 분들의 삶에 대한 소회이기도 하다. 60대 노총각의 진귀한 경험담에 귀를 기울였다.
    “500명 이상 만나셨다는데, 승률은 얼마나 되셨어요?”
    “60-20-20 정도. 내가 퇴짜를 놓은 게 60%, 퇴짜를 맞는 게 20%, 서로 좋았던 게 20% 정도….”

    이 말은 단지 허풍이 아니라 자신감으로 느껴졌다.
    “선생님이 독신주의도 아니고, 그렇게 많은 분을 만나셨는데, 결혼을 생각하신 분은 없으셨어요?”

    “왜 없어. 3명쯤 되나…. 나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서 주변에서 10만명 중 1명 정도 누리는 혜택을 입었다고들 했어. 대학 다닐 때 학교에서 가장 인기있는 두 사람 중 한명이 바로 나였어. 나머지 한명은 나중에 유명한 배우가 되었고.”

    대학 다닐 때 그가 호감을 가진 여성이 있었다고 한다. 고백하고 싶었는데, 그의 마음을 알았는지 한 친구가 뒤통수를 때리면서 “그 여자는 내 애인”이라고 했다. 그는 훗날 대통령의 아들이 되었고, 그녀는 며느리가 되었다. 그러다가 30대 초반쯤,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다. 결혼하고 싶었는데, 그녀가 혼외자라는 사실로 인해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고, 결국 헤어졌다고 한다.

    한 여성은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학벌 때문에 헤어졌다. 그러다가 또 마음에 드는 여성을 만났는데, 세련되고, 부모님과도 잘 지내던 그녀는 생각과 행동이 너무 거리낌이 없고 솔직해서 부담되었다. 차라리 ‘외국 남자와 결혼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세월이 지나서 그녀의 오빠를 우연히 만났는데, 그의 예상대로 미국 남성과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십년이 흘렀어도 분명히 가슴 짠한 기억이었을 것이다. “결혼운이 없었지….”라고 혼잣말처럼 하면서 창밖을 보는 그의 얼굴에는 잠시 회한의 미소가 스쳤다.


    그렇게 결혼 얘기가 오가던 몇 번의 연애는 끝이 났지만, 결혼 생각을 접은 것은 아니었고, 그래서 꾸준히 여성들을 만나 왔다고 한다. 최근에 만난 여성은 경제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았는데, 자신 소유의 땅 얘기를 듣고는 직접 가서 확인까지 하더라는 것이다. 자신이 생각한 정도보다 그의 경제력이 못 미쳤는지, 더는 만나자는 얘기가 없었고, 결국 퇴짜를 맞은 격이 되었다고 한다.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돈, 돈 하는 게….”
    “노~~ 본인이 생각하는 기준이란 게 있었을 텐데, 내가 거기에 못 미친 거지. 난 그렇게 생각해. 젊었을 때는 열정이 어떻고 했는데, 나이가 드니까 경제력도 보게 되더라. 젊고 좋은 시절에 못 만난 것도 안타까운데, 늙어서 서로에게 짐이 되면 안 되잖아. 경제적으로 기대지 않고, 함께 사는 거, 그게 좋은 거 같아.”


    “선생님. 혼자 사시니까 뭐가 제일 힘드세요?”
    “며칠, 몇 달이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혼자 살아 봤어요? 아침, 점심, 저녁을 계속 혼자 먹는 지옥이 어떤 건지, 경험 안 해본 사람은 절대 모를 거야. 어느 해인가는, 추석 연휴 5일 동안 김치찌개를 한 냄비 끓여서 계속 그것만 먹은 적도 있고, 밥하기가 싫어서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사다 먹은 적도 있어요. 그건 참담하다는 표현이 맞을 거야.”

    “듣고 보니까 참 쓸쓸하게 느껴지네요. 왜 선생님이 결혼하시려고 하는지 이해도 되고요.”
    “혼자 밥 먹는 것도 그렇고…. 아침에 나를 깨워줄 사람이 없다는 것, 혼자 일어나야 하는 것도 힘들지. 불행하다는 생각마저 든다니까.”


    “지금까지 사시면서 후회는 없으세요?”

    “후회 없는 인생이 어딨나. 최선을 다하는 거지. 난 정말 열심히 살았어. 처음에 어머니가 도와주시려고 같이 살자고 하셨는데, 독립해서 혼자 살았어요. 내가 번 돈으로 20평 아파트 사고, 조금 더 모아서 34평 사고, 그렇게 해서 지금 52평 아파트가 되었고. 큰 집에 살겠다는 목표도 이뤘고, 내 기준에서는 고급 승용차도 타고 다니고, 혼자 살고는 있지만, 청승맞지 않고, 품격을 유지하면서 산다고 생각해. 젊을 때 열심히 일하면서 부은 국민연금 덕도 톡톡히 보고 있지.”

    화려한 방송 경력, 그런 연륜에서 풍기는 스타일과 품격. 그런 인간적인 존경심과는 별도로 그는 65세의 노총각이다.


    “그렇게 많은 분을 만났는데, 왜 잘 안되셨을까요?”
    “기회가 많았던 것이 오히려 함정이었던 것 같아요. 한창때야 자신만만했지. 실력 있고, 경제력도 되고, 선택의 기회가 많았지. 언제든 내가 마음먹으면 잘될 줄 알았어요. 그런 오만함이 지금 이렇게 나를 외롭게 만든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오랫동안 혼자 사신 분들은 누가 옆에 있으면 불편하다던데. 그런 부분이 결혼에 장애가 되지는 않을까요? 선생님은 어떠세요?”
    “그런 면도 없지는 않아요. 가끔 함께 지낼 때가 있잖아요. 아시겠지만…. 그럴 때는 여성분 양해를 구하고, 다른 방에서 따로 잔다니까. 몸에 밴 삶의 방식을 바꾸기가 쉽지는 않죠. 그래서 나는 하루라도 빨리 결혼을 하려는 거고.”

    그는 노총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은 선택을 할 가능성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결혼을 하려거든 빨리 결정하고 행동하라고 했다.


    “여성 국회의원 중에 젊었을 때 만난 사람이 있어요. 예전에 나는 그만한 사람에게 충분히 어울렸어요. 하지만, 지금은 내 가치가 떨어져서 아마 미팅 주선 자체가 안될 거야. 그게 현실인 거지.”
    “그럼…. 500명을 다시 만난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아마 초반에 만난 50명 중에 누군가와 결혼을 했겠지. 이제 난 알거든. 나와 상대가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음식 먹는 것이 다르고, 이런 게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거든.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것은 당연하고, 이것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되는 거지. 예전에는 내 입장에서만 봤거든.”

    “데이트 비용으로 집 한 채 값은 들어갔을 것 같은데요? 500명이나 만나셨으니….”
    “난 여자한테 선물은 안 해요. 낭만이 없고, 분위기를 몰라서가 아니라, 선물을 주고받으면 헤어진 후 아픈 기억으로 오래 남더라고. 흔적이 있으니까. 대신에 만나면 맛있는 거 먹고, 좋은 데 놀러 가요. 집값까지는 아니고, 전세금 정도?”

    그의 솔직한 얘기에 집중하다 보니 2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많은 만남, 헤어짐, 실연을 극복하고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그를 보면서 문득 이카로스의 날개가 떠올랐다. 결혼을 향해 날아갔다가 다시 내려오고, 다시 비상하고, 그런 그의 삶은 어떻다고 평가할 수 없다. 그 누구도. 그는 결혼하고 싶은 상대를 찾았지만, 아직 그 결과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행복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근처 지하철역까지 태워주겠다고 해서 그의 차에 올랐다. 내리면서 고개를 돌리니 결혼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한 젊은 마음을 가진 60대 신사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웅진   조선  입력 : 2015.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