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뗄 수 없는 車 질주·추격신… 속편 암시한 뻔한 엔딩은 아쉬워
SF 액션영화 '매드맥스' 시리즈를 연출한 조지 밀러가 속편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내놨다. 3편이 나온 지 30년 만에 뜬금없이 선보인 작품이다. 일흔 살. 노망인가 싶은데, 재미있다. 그것도 끝내주게, 미치도록 재미있다.
핵전쟁 후 폐허가 된 22세기 지구. 영화 시작부터 주인공 맥스(톰 하디)가 도마뱀을 씹어 먹으며 등장한다. 그 주인공이 난데없이 스킨헤드 괴한들에게 잡혀가 두들겨 맞고 생살에 인두 지짐까지 당하는 장면은 끔찍하다. '어벤져스'처럼 2시간 내내 치고받고 싸우다 허무하게 끝나는 남성 전용 오락 영화가 틀림없단 생각에 영화관을 박차고 나가는 여자도 있다. 하지만 초반 10분만 버티면 된다.
제목부터 일종의 속임수다. 맥스가 주인공 같지만, 초반 10분이 지난 뒤 등장하는 여전사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가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다(포스터에도 그녀의 얼굴이 더 크게 나온다). 물을 독점한 교주이자 지배자인 임모탄을 배신한 사령관 퓨리오사는 다섯 명의 여인들과 함께 시타델을 탈출, 녹색의 땅, 어머니의 땅으로 향한다. 이를 알아챈 임모탄이 부하들을 이끌고 뒤를 쫓을 때, 관객들은 이 영화가 폭력이 아닌 모성(母性), 생명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퓨리오사는, 마초들만 열광할 것 같은 이 액션 영화 위에 끼얹어진 크림소스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 모래폭풍 속 질주와 추격, 불꽃과 핏방울로 연주하는 2시간짜리 오케스트라다. 애니메이션인가 싶을 만큼 기괴한 외양의 차량들이 우습지만, 아프리카 나미비아 사막에서 찍었다는 황량한 들판, 문명이 남긴 온갖 찌꺼기 속에서 광기와 욕망에 몸을 맡긴 괴상한 인물들이 뒤엉켜 펼치는 추격전은 매드맥스 마니아들로부터 '2시간 내내 클라이맥스'라는 찬사를 얻었다. 오케스트라 연주마저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드는 시대에 감독은 대부분의 액션 장면을 사막에서 진짜 자동차와 스턴트 배우들을 이용해 직접 찍었다. 전차 위에서 워보이들을 선동하며 미친 듯이 기타를 치는 '빨간 내복 기타맨'의 불 뿜는 더블넥 기타마저 진짜다. '태양의 서커스' 팀의 도움을 받아 촬영한 장대 액션 장면처럼 순도 높은 아날로그 액션을 만들어낸 거장의 노고에 탄성이 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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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매드맥스’는 근육질 남성의 에너지로 가득한 액션 영화지만, 이야기의 중심에는 모성과 사랑을 상징하는 여성 캐릭터들이 있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어머니의 땅. 그러나 그곳마저
황폐화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퓨리오사가 무릎 꿇고 절규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다.
옥에 티가 없는 건 아니다. 마침내
악당을 물리친 뒤 서부 영화 속 주인공처럼 유유히 떠나는 맥스의 뒷모습은 속편을 암시하는 닳고 닳은 수법. 마지막 한 컷도 사족이다. '희망
없이 떠돌고 있는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묻는 감독은 그에 대한 답도 함께 제시해 맥 빠지게 한다. 노파심이었을까. 어쨌든 나이 칠십에
제대로 미친 이 노장은 앞으로 이런 영화 열 편쯤은 거뜬히 만들 수 있을 듯하다.
★아줌마 기자(김윤덕)의
포인트!
액션 영화 보다 운 건 처음이다. 맥스가 죽어가는 퓨리오사에게 자기 피를 나눠주며 "내 이름은 맥스야"라고 읊조릴
때. 사랑에 눈떠 광기에서 벗어난 워보이 눅스(니콜라스 홀트)가 최후의 추격전에서 여전사들을 살리고 대신 죽어가며 "나를 기억해줘"라고 외칠
때. 480시간 분량의 촬영분을 2시간으로 편집한 건 조지 밀러 감독의 아내였다고 한다. 사랑도, 평화도, 흥행도 남녀가 협공해야 이룰 수
있다.
권승준 기자 조선 입력 : 2015.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