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풍의 근원지는 어디일까.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12월 극장가에 충격을 안기고 있다. 흥행이 예상되지 않았던, 순제작비 1억2000만원으로 만든 영세한 독립 다큐 영화가 할리우드 대작들을 누르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일일 관객 4만9325명(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을 동원하며 일일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다. '인터스텔라'(4만8005명)를 3위까지 끌어내리는 이변을 일으켰다. 한 달 넘게 충무로 상업영화들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추운 날씨 속 훈훈한 이야기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다. 진모영 감독이 1년 3개월(2012년 9월~2013년 11월) 동안 강원도 횡성에 사는 고(故) 조병만 할아버지와 강계열 할머니의 모습을 여과 없이 담아낸 게 전부다. 그들이 하는 대화와 평상시의 행동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찍혔다. 특별한 편집도 없다. 86분의 러닝타임이 그만큼 담백하다.
눈에 띄는 건 영화를 보는 관객층이다. 노부부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20~30대 관객이 몰리고 있다. 보통 화려한 액션과 스케일이 있는 상업영화에 주로 지갑을 여는 층이지만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예외적이다. 11일 오후 2시 20대 예매율이 29%(이하 맥스무비 기준)다. 할리우드 대작 '인터스텔라'(20%)와 '엑소더스:신들과 왕들'(16%)과 격차가 꽤 있다.
98세 할아버지와 89세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아 평소에 잊고 살았던 '부모님'을 생각하게 만든다. 추워진 날씨와 훈훈한 이야기가 기대 이상의 화학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 평론가 민병선은 "지난해 이 시기에도 가족과 부성애에 대한 영화가 많았다. 겨울이라는 시점과 가족의 이야기가 잘 맞물리는 거 같다"며 "기성세대에 대한 향수가 모두에게 있지 않나. 이런 소재의 영화가 나오면 부모님을 모시고 영화를 보러가거나 하는 소비층이 생겨나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그린라이트가 켜진 롱런 신호
관심을 모으는 건 흥행 지속 여부다. 불꽃처럼 타올랐다 자칫 바로 꺼질 수 있다. 하지만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점차 '무기'를 늘려가고 있다. 바로 스크린이다. 지난 10일 일일 박스오피스 2위까지 오른 뒷배경에는 400개에 육박하는 스크린(387개)을 확보한 게 컸다. 개봉 당일 186개로 시작해 5일 만에 200개를 넘겼고, 지난 9일 300개를 돌파했다. 상영횟수도 개봉일 509번에서 최다 1417번으로 늘어났다. 스크린1000개를 넘나드는 상업영화와 비교했을 때 다소 초라해 보일 수 있지만 다큐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인 상황이다. 독립영화로 290만 명을 동원한 '워낭소리'(2008)도 개봉 당일 스크린은 불과 10개였다(최대 274개).
◇진원지는 관객들의 '입'
관객들의 입소문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꿨다. 다큐 독립영화인만큼 당초 아트나인과 CGV아트하우스를 비롯한 예술영화관에서 주로 상영됐다. 다큐영화의 어쩔 수 없는 한계였다. 하지만 이제는 대형 멀티플렉스에서도 상영횟수를 늘려가고 있다.
이번 영화의 공동배급을 맡은 CGV 아트하우스 측 관계자는 "처음에는 CGV와 메가박스에서 주로 틀었는데 이제는 롯데시네마에서도 관을 열고 있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지난 10일 기준으로 CGV는 전국에서 두 곳(부산대·인천공항)을 제외한 전 상영관에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티켓 창구가 오픈돼 있다. 서울 주요 극장에서만 상영하던 롯데시네마는 이번 주 내에 전국 극장 상영으로 돌아선다. 영화 평론가 윤성은은 "500개까지는 확답을 할 수 없지만 400개까지는 스크린 확보가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며 "지금까지의 성적도 놀라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현재 전국 스크린 400개 이상을 잡고 있는 영화는 '엑소더스:신들과 왕들'과 '인터스텔라' 단 두 개 뿐이다.
한 영화 관계자는 "오는 17일 개봉하는 12월 최고 기대작 '국제시장'만 잘 피해가면 충분히 롱런이 가능한 상황"이라며 "'인터스텔라'도 이제 하락세에 접어들었고, 무엇보다 영화의 입소문이 무척 좋아 장기 흥행에 파란불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배중현 기자 bjh1025@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14.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