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물에 메주·소금 넣고
독은 볕·바람 잘 드는 곳에…
"40일만 기다려요, 어렵지 않죠"
독은 볕·바람 잘 드는 곳에…
"40일만 기다려요, 어렵지 않죠"
한국 음식의 맛을 내는 기본은 장(醬)이다. 전엔 어느 집 할 것 없이 장을 담갔고, 그래서 집집마다 음식 맛도 달랐다. 그 장을 요즘은 대부분 사다 먹는다. 달걀 스크램블 하나 만들 시간, 브로콜리 한 송이 데칠 시간도 부족한 도시인의 생활에서 장 담그기는 언감생심, 무모한 도전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정말 어려울까? 지난달 23일 경북 포항시의 전통 장류 생산업체 죽장연(竹長然)에서 진행된 장 담그기 체험 행사에 참여했다. 결론부터. 장 담그기, 과히 복잡하지 않았다. 메주 쑤기 과정을 제외한다면, 조금 과장해서 라면 끓이기만큼 간단했다. 비교해 요약하면 이렇다.
'끓는 물에 면과 스프 넣고 4분' 대신 '맑은 물에 메주와 소금 넣고 40일'.
본래 장은 음력 정월에 담근 것을 최고로 친다. 장독에 성에가 낄 만큼 날이 차면 소금을 덜 써도 장이 상하지 않는다. 그래서 맛이 삼삼하다. <동국세시기>는 침장(沈藏ㆍ김장)과 침장(沈醬ㆍ장 담그기)을 '인가일년지대계(人家一年之大計)'라 하여, 여염에서 겨울을 나며 치르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일로 기록하고 있다. 찾아간 날은 음력으로 이월 열이틀. 조금 늦었지만 올해는 겨울이 긴 편이라 정월장 맛이 날 거라 했다. 장독대에서 죽장연 제작반장 김옥자(58)씨에게 맛있는 장을 담그는 법을 물었다. 김씨는 손가락으로 장독 대신 허공을 한 바퀴 쭉 둘러 가리켰다.
"보이소. 공기 좋고, 물 좋고, 볕 잘 들고, 바람도 잘 통하고… 이라믄 됨니더. 방법은 따로 없어예."
죽장연이 위치한 포항시 죽장면 상사리는 고려가 건국된 9세기 말, 세상을 등진 신라의 귀족들이 숨어든 땅으로 전해진다. 깊숙한 오지였다는 뜻일 게다. 지금도 무척 외졌다. 그래서 공기가 맑고 물이 깨끗하다. 해발 450m의 깊숙한 곳이지만 산세는 누긋하다.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장독대를 덮는 그늘이 한 조각도 없을 만큼 탁 트였다. 모름지기 장은 이런 곳에서 담가야 한단다. 하지만 도시에서 어디 이런 환경을 기대할까. 그런데 김 반장은 "아파트라도 베란다가 있다면 충분히 장을 숙성시킬 수 있다"고 했다. 장은 볕과 바람만 있다면 어디서든 스스로 숨을 쉬기 때문이다.
장을 담그는 첫째 단계는 콩을 삶아 메주를 쑤는 것이다. 하지만 도시에서 메주를 만드는 건 무리다. 콩을 불리고 삶고 빻아서 모양을 잡는 것, 그리고 말리고 발효시키는 것 모두 만만찮은 과정이다. 더 큰 문제는 냄새다. 전통 방식으로 쑨 메주는 균이 번식하는 과정에서 특유의 냄새를 낸다.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서 메주를 띄운다면 아마 층간소음의 몇 배쯤 되는 갈등을 겪을 수도 있다. 전통을 충실히 따르려면 두어 달 안방을 메주에게 내줘야 하는데, 요새 그게 가능한 집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좋은 메주 고르기를 장 담그기의 첫 번째 순서로 삼는 게 현실적이다.
메주를 고를 땐 먼저 때깔을 살펴야 한다. 온도와 습도를 잘 맞춰 발효시킨 메주의 표면엔 하얀색 또는 노르스름한 곰팡이가 피어 있다. 거무튀튀한 것은 내부에서 잡균이 끓어 부패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크다. 표면의 색깔은 갈색이나 붉은 색 기운이 도는 짙은 황색의 메주가 좋다. 콩을 삶을 때의 밝은 황색이 남아 있으면 숙성이 덜 된 것이다. 손으로 만졌을 땐 겉이 딱딱하게 잘 마른 것을 고른다. 하지만 속은 3분의 2 정도 말라 있는 것이 좋다. 칼로 잘라 속을 손가락으로 눌러봤을 때 약간 물렁한 정도라야 소금물에 담근 뒤 발효균이 잘 생장한다. 잘 띄운 메주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장 담그기 재료는 단출하다. 주재료는 메주와 소금, 물이 다다. 선택사항으로 고추, 대추, 숯 등이 들어간다. 별 다른 기술도 없다. 체험 행사에서 직접 해본 장 담그기 절차는 다음과 같다. 먼저 깨끗한 물에 메주를 넣어 박박 문지른다. 그리고 씻은 메주를 소금물이 담긴 독에 넣는다. 발효 과정에서 메주가 소금물 위로 떠오를 수 있기 때문에 대나무 가지를 가늘게 쪼개 메주를 수면 아래 고정시킨다. 그리고 고추, 대추, 숯을 넣는다. 이 재료들을 넣는 데는 주술적 이유가 크다. 옛 사람들은 숯 구멍에 귀신이 들어가면 갇혀버리고, 붉은 색과 매운 맛은 삿된 기운을 쫓는다고 생각했다.
이상이 끝. 다음엔 독의 뚜껑을 닫아 볕과 바람이 잘 드는 곳에 두면 된다. 이 과정에서 유일하게 까다로운 것은 소금물의 염도를 맞추는 것이다. 죽장연에선 18보메(baume)의 소금물을 쓴다. 김 반장은 "기온이 선선한 북부 지방은 염도가 낮고, 더운 남쪽 지방일수록 염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전통 된장의 염도는 18~25보메 정도. 18보메는 대개 강원도에서 쓰는 염도다. 죽장연은 고지대여서 짠맛이 덜한 장을 생산할 수 있다. 집에 염도계가 없다면 달걀을 이용해 염도를 가늠해도 된다. 달걀을 물에 띄웠을 때, 500원짜리 동전 크기 정도로 떠오르면 염도가 알맞게 맞춰진 것이다.
장을 담그고 나면 기다려야 한다. 그냥 기다리는 게 아니다. 김 반장은 "날이면 날마다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 색깔을 봐서 조금 뿌옇다고 느끼면 염도가 낮은 것. 이럴 경우는 장물을 떠 내 소금을 녹여 넣어 염도를 다시 맞춰줘야 한다. 그렇게 40~50일 정도 지나면 '장 가르기'를 한다. 용수를 박아 메주가 부숴지지 않게 장국을 떠 내 독에 담고 건더기는 따로 독에 담는다. 앞의 것이 간장, 뒤의 것이 된장이다. 드디어 우리가 먹는 장의 완성이다. 하지만 깊은 맛을 내려면 최소 반년, 길게는 2~3년씩 묵혀야 한다. 전통 장의 감칠맛을 내는 마지막 재료는 뭉근한 세월인 셈이다.
◆집에서 장 담그기
▲준비물(20리터 장독 기준): 메주 3장, 붉은 고추 2개, 대추 3개, 참숯 1덩어리, 물 9리터, 소금 2.5㎏
1. 메주를 깨끗이 씻어 햇볕에 이틀 간 말린다.
2. 양동이에 준비한 물과 소금을 붓고 하루쯤 둔다.
3. 장독에 메주를 한 장씩 차곡차곡 쌓는다.
4. 침전물을 걸러낸 소금물을 붓고 고추 등을 띄운다.
5. 장독에 망사를 씌워 양지바른 곳에 두고 햇볕을 자주 쬔다.
- 간장 만들기
1. 장을 담그고 40일 뒤 메주를 건져내고 장물만 냄비에 넣고 끓인다.
2. 거품이 생기지 않으면 불을 끄고 식혀서 독에 붓고 망사를 씌운다.
3. 맑은 날은 뚜껑을 열어 볕을 쬐면서 1년 이상 숙성시킨다.
- 된장 만들기
1. 건져 낸 메주를 곱게 치댄다. 간장을 부어 점도를 조절한다.
2. 치댄 메주를 독에 넣고 덮개를 씌운다. 위에 소금을 약간 뿌린다.
3. 맑은 날은 뚜껑을 여러 볕을 쬐면서 1년 이상 숙성시킨다.
포항=글ㆍ사진 유상호기자 : 2013.04.03
'끓는 물에 면과 스프 넣고 4분' 대신 '맑은 물에 메주와 소금 넣고 40일'.
본래 장은 음력 정월에 담근 것을 최고로 친다. 장독에 성에가 낄 만큼 날이 차면 소금을 덜 써도 장이 상하지 않는다. 그래서 맛이 삼삼하다. <동국세시기>는 침장(沈藏ㆍ김장)과 침장(沈醬ㆍ장 담그기)을 '인가일년지대계(人家一年之大計)'라 하여, 여염에서 겨울을 나며 치르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일로 기록하고 있다. 찾아간 날은 음력으로 이월 열이틀. 조금 늦었지만 올해는 겨울이 긴 편이라 정월장 맛이 날 거라 했다. 장독대에서 죽장연 제작반장 김옥자(58)씨에게 맛있는 장을 담그는 법을 물었다. 김씨는 손가락으로 장독 대신 허공을 한 바퀴 쭉 둘러 가리켰다.
"보이소. 공기 좋고, 물 좋고, 볕 잘 들고, 바람도 잘 통하고… 이라믄 됨니더. 방법은 따로 없어예."
죽장연이 위치한 포항시 죽장면 상사리는 고려가 건국된 9세기 말, 세상을 등진 신라의 귀족들이 숨어든 땅으로 전해진다. 깊숙한 오지였다는 뜻일 게다. 지금도 무척 외졌다. 그래서 공기가 맑고 물이 깨끗하다. 해발 450m의 깊숙한 곳이지만 산세는 누긋하다.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장독대를 덮는 그늘이 한 조각도 없을 만큼 탁 트였다. 모름지기 장은 이런 곳에서 담가야 한단다. 하지만 도시에서 어디 이런 환경을 기대할까. 그런데 김 반장은 "아파트라도 베란다가 있다면 충분히 장을 숙성시킬 수 있다"고 했다. 장은 볕과 바람만 있다면 어디서든 스스로 숨을 쉬기 때문이다.
장을 담그는 첫째 단계는 콩을 삶아 메주를 쑤는 것이다. 하지만 도시에서 메주를 만드는 건 무리다. 콩을 불리고 삶고 빻아서 모양을 잡는 것, 그리고 말리고 발효시키는 것 모두 만만찮은 과정이다. 더 큰 문제는 냄새다. 전통 방식으로 쑨 메주는 균이 번식하는 과정에서 특유의 냄새를 낸다.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서 메주를 띄운다면 아마 층간소음의 몇 배쯤 되는 갈등을 겪을 수도 있다. 전통을 충실히 따르려면 두어 달 안방을 메주에게 내줘야 하는데, 요새 그게 가능한 집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좋은 메주 고르기를 장 담그기의 첫 번째 순서로 삼는 게 현실적이다.
메주를 고를 땐 먼저 때깔을 살펴야 한다. 온도와 습도를 잘 맞춰 발효시킨 메주의 표면엔 하얀색 또는 노르스름한 곰팡이가 피어 있다. 거무튀튀한 것은 내부에서 잡균이 끓어 부패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크다. 표면의 색깔은 갈색이나 붉은 색 기운이 도는 짙은 황색의 메주가 좋다. 콩을 삶을 때의 밝은 황색이 남아 있으면 숙성이 덜 된 것이다. 손으로 만졌을 땐 겉이 딱딱하게 잘 마른 것을 고른다. 하지만 속은 3분의 2 정도 말라 있는 것이 좋다. 칼로 잘라 속을 손가락으로 눌러봤을 때 약간 물렁한 정도라야 소금물에 담근 뒤 발효균이 잘 생장한다. 잘 띄운 메주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장 담그기 재료는 단출하다. 주재료는 메주와 소금, 물이 다다. 선택사항으로 고추, 대추, 숯 등이 들어간다. 별 다른 기술도 없다. 체험 행사에서 직접 해본 장 담그기 절차는 다음과 같다. 먼저 깨끗한 물에 메주를 넣어 박박 문지른다. 그리고 씻은 메주를 소금물이 담긴 독에 넣는다. 발효 과정에서 메주가 소금물 위로 떠오를 수 있기 때문에 대나무 가지를 가늘게 쪼개 메주를 수면 아래 고정시킨다. 그리고 고추, 대추, 숯을 넣는다. 이 재료들을 넣는 데는 주술적 이유가 크다. 옛 사람들은 숯 구멍에 귀신이 들어가면 갇혀버리고, 붉은 색과 매운 맛은 삿된 기운을 쫓는다고 생각했다.
이상이 끝. 다음엔 독의 뚜껑을 닫아 볕과 바람이 잘 드는 곳에 두면 된다. 이 과정에서 유일하게 까다로운 것은 소금물의 염도를 맞추는 것이다. 죽장연에선 18보메(baume)의 소금물을 쓴다. 김 반장은 "기온이 선선한 북부 지방은 염도가 낮고, 더운 남쪽 지방일수록 염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전통 된장의 염도는 18~25보메 정도. 18보메는 대개 강원도에서 쓰는 염도다. 죽장연은 고지대여서 짠맛이 덜한 장을 생산할 수 있다. 집에 염도계가 없다면 달걀을 이용해 염도를 가늠해도 된다. 달걀을 물에 띄웠을 때, 500원짜리 동전 크기 정도로 떠오르면 염도가 알맞게 맞춰진 것이다.
장을 담그고 나면 기다려야 한다. 그냥 기다리는 게 아니다. 김 반장은 "날이면 날마다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 색깔을 봐서 조금 뿌옇다고 느끼면 염도가 낮은 것. 이럴 경우는 장물을 떠 내 소금을 녹여 넣어 염도를 다시 맞춰줘야 한다. 그렇게 40~50일 정도 지나면 '장 가르기'를 한다. 용수를 박아 메주가 부숴지지 않게 장국을 떠 내 독에 담고 건더기는 따로 독에 담는다. 앞의 것이 간장, 뒤의 것이 된장이다. 드디어 우리가 먹는 장의 완성이다. 하지만 깊은 맛을 내려면 최소 반년, 길게는 2~3년씩 묵혀야 한다. 전통 장의 감칠맛을 내는 마지막 재료는 뭉근한 세월인 셈이다.
◆집에서 장 담그기
▲준비물(20리터 장독 기준): 메주 3장, 붉은 고추 2개, 대추 3개, 참숯 1덩어리, 물 9리터, 소금 2.5㎏
1. 메주를 깨끗이 씻어 햇볕에 이틀 간 말린다.
2. 양동이에 준비한 물과 소금을 붓고 하루쯤 둔다.
3. 장독에 메주를 한 장씩 차곡차곡 쌓는다.
4. 침전물을 걸러낸 소금물을 붓고 고추 등을 띄운다.
5. 장독에 망사를 씌워 양지바른 곳에 두고 햇볕을 자주 쬔다.
- 간장 만들기
1. 장을 담그고 40일 뒤 메주를 건져내고 장물만 냄비에 넣고 끓인다.
2. 거품이 생기지 않으면 불을 끄고 식혀서 독에 붓고 망사를 씌운다.
3. 맑은 날은 뚜껑을 열어 볕을 쬐면서 1년 이상 숙성시킨다.
- 된장 만들기
1. 건져 낸 메주를 곱게 치댄다. 간장을 부어 점도를 조절한다.
2. 치댄 메주를 독에 넣고 덮개를 씌운다. 위에 소금을 약간 뿌린다.
3. 맑은 날은 뚜껑을 여러 볕을 쬐면서 1년 이상 숙성시킨다.
◆죽장연은 포스코 협력업체인 영일기업이 '1사 1촌' 운동으로 포항시 죽장면 상사리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주민들이 답례품으로 선물한 장맛에 반해 2008년 세운 전통 장류 생산업체다. 100% 이 지역 농민들이 생산한 콩으로 메주를 띄우며 참나무 장작 무쇠가마솥, 3년 동안 간수를 뺀 신안 천일염, 무형문화재 이무남 옹기장의 장독 등을 사용해 고집스레 장을 담근다. 정연태 대표는 "자연과 세월 외에는 아무 것도 넣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와인 생산에 쓰는 빈티지(vintage) 개념을 도입, 정월에 장을 담근 날짜를 기준으로 된장에 빈티지를 부여한다. 미슐랭 별(1스타)을 받은 뉴욕의 '단지' 등 국내외 유명 레스토랑의 셰프들이 이곳의 된장과 간장을 쓴다. 전통 장을 테마로 한 투어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다. 1899-3420 |
포항=글ㆍ사진 유상호기자 : 201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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