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도시에 지쳐갔다. 날이 채 밝기 전에 집을 나서고, 온 세상이
짙은 어둠에 휩싸인 뒤에야 집으로 돌아오는 도시 생활이 버거웠다. 덜 풍족하고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조금만 내려놓으면 훨씬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30대 초반, 어린 나이에 남쪽 끝 지리산 자락으로 터를 옮겨와 감나무밭 사이에 뾰족지붕 나무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경남 하동, 섬진강변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국도를 자동차로 한참 달리다 지리산 자락 쪽으로 갈라지는 좁은 길을 만났다.
그 좁은 길이 이끄는 대로 얼마쯤 따라가다 방향을 바꿔 산 위쪽을 향해 난 길로 들어섰다. 위를 향해 올라가길 잠시, 산을 온통 뒤덮은 감나무밭이 나오고, 밭 사이를 뚫고 꼬불꼬불한 작은 길이 시작됐다.
감나무마다 주렁주렁 열린 대봉감을 눈에 담으며 올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 삼각형의 뾰족한 흑녹색 지붕이 한눈에 들어왔다. 볕 좋은 악양에 일찌감치 터를 닦은 목조주택이다.
발품 팔고 눈품 팔아 얻은 터
김씨 부부가 하동으로 옮겨온 것은 5년 전. 언젠가는 시골에 가서 농사짓고 살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남편과, 남편의 꿈같은 소리를 귀에 박히도록 들어 어느새 귀농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 아내였다. 그래서였을까?
지척을 돌아볼 잠시의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서울의 직장 생활에 회의가 깊어질 즈음“ 갈 거면 하루라도 빨리 가자”는 생각에 부부가 뜻을 같이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먹고살 일이 변변찮은 시골로 가겠다니,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적지 않았지만 부부의 생각은 굳건했다.
귀농하고 2년은 빈 농가주택을 빌려서 살았다. 아궁이도 있고, 처마도 깊고, 툇마루도 있는, 사진 속에서나 나올 법한 운치 있는 집이었다. 하지만 프레임 밖 현실은 사진과 많이 달랐다.
“120년 된 집이었는데 외풍도 엄청 세고 쥐도 많아서 살기 불편했어요. 그래서 예정보다 일찍 새집을 지어서 나가기로 했죠.”
부부는 시간만 나면 집터를 보러 다녔다. 동네 어르신이 좋다고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집 짓는 공사 현장에도 수시로 들렀다. 그곳에서 집 짓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집은 어떻게 완성되는지도 배웠다. 그러면서 부부는‘ 언제까지’라고 시간을 못 박지 않고 마음에 딱 드는 터를 만날 때까지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찾은 곳이 산 아래 감나무밭 사이에 있는 지금의 집터였다.
“감나무밭 사이에 있는 매실밭이었어요. 마을에서 약간 벗어나 있으면서도 외지지 않는, 우리 마음에 딱 드는 곳이었죠. 원래 팔려고 내놓은 땅이 아니었는데 동네 어르신을 통해 샀어요.”
효율성을 우선으로 지은 집
터를 정하자 이번에는 어떤 집을 지을지 결정해야 했다. 마음속에 꿈꾸던 집은 많았지만 예쁜 집보다는 살기 좋은 집이 우선이었다.
“일단 건축비가 적게 들어야 했어요. 넉넉하지 않은 살림인데 집 짓느라 돈을 너무 많이 쓸 수는 없었거든요. 그리고 살면서 유지비가 적게 드는 집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고민하던 중에 마침 하동에서 펜션을 짓고 있던 건축업자를 만났다. 믿을 만했고 부부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이었다. 의논 끝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짓기에 가장 효율적인 경량 목조주택으로 결정했다. 면적도 최소화해서 사는 데 필요한 만큼만 짓기로 했다.
“필요 없는 공간을 만드느라 비용을 더 지출할 이유가 없었죠. 게다가 집이 넓어지면 난방비 등 유지비도 늘어나잖아요. 당연히 면적을 최소화해야 했죠.”
1층은 거실과 부엌, 2층은 침실 두 개와 욕실, 3층은 다락방 하나가 부부가 원하는 전부였다. 그래서 1층과 2층 면적이 비슷한 일반 주택에 비해 이 집의 2층은 1층의 절반을 약간 넘는 수준이고, 3층은 훨씬 더 좁다. 그러다 보니 가파른 경사의 지붕이 1층 벽까지 내려오는, 뾰족지붕집이 만들어졌다.
내부 마감은 핸디코트로 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격이 저렴한 데다, 문제가 생기면 부부가 직접 보수 작업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종이로 도배하면 시간이 흐른 뒤 도배를 다시 해야 하는데, 이 시골에서 도배해주러 올 사람을 구하기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돈도 적지 않이 들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1층 내부 구조는 이 집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대부분의 집이 현관에 들어서면 거실에서 시작해 주방, 안방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가지는 데 비해, 이 집은 문을 열자마자 바로 주방과 마주하게 되고 주방을 지나고서야 거실을 만날 수 있다.
아내는 따뜻하고 밝은 빛이 가득 들어오는, 큰 창을 가진 주방을 원했고, 남편은 거실이 집 안의 다른 공간을 연결하는 곳이 아닌 독립된 공간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주방을 이 집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앞쪽에 큰 창과 함께 배치했고 거실은 뒤쪽에, 주방보다 계단 두 개 정도 바닥을 낮춰서 별도의 공간처럼 만들었다.
생각보다 적은 비용으로 마음에 드는 집을 얻었지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다. 불필요한 창을 너무 많이 낸 것이 그 중 하나. 예쁜 모양만 생각하느라 벽마다 창을 냈는데 그 때문에 난방 효율이 나빠졌다. 채광이나 환기와 관계없는 창은 내지 않는 것이 나을 뻔했다는 뒤늦은 후회도 살짝 하는 중이다.
창문 통해 쏟아지는 햇빛과 달빛
이사 온 뒤로 아내 윤씨는 주방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그 앞에 서서 설거지하는 시간을 좋아하게 됐다.볕이 좋은 날에는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산속의 고요함을 즐기면서 주방 일을 만끽한다. 종종 감 따러 산에 올라오는 동네 어르신의 경운기 소리가 창틀을 타고 넘어오면 다섯 살배기 아들 준효가 어느새 달려나와 큰 소리로 인사를 하는, 이곳의 평화로움이 사무치게 좋단다.
햇빛을 좋아하는 아내와 달리 남편은 달빛에 반했다. 온 세상이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면 침대 머리 위 천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달빛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단다. 도시에서 살 때는 인공 불빛에 가려서, 혹은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던 것이다. 남들이 뭐라 하든 부부는 이 집이, 이 삶이 정말 좋다.
사진 설명
1. 아내 윤씨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주방. 직접 만든 퀼트 소품과 말린 꽃 등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몄다.
2. 부부의 침실. 오래된 느낌의 나무와 파스텔 톤의 침구,윤씨가 직접 만든 소박한 커튼이 정겹게 어우러진다.
3. 창틀에 놓여 있는 화분들이 거실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다.
4. 3층에 있는 다락방. 아내 윤씨가 바느질을 하는 공간이다.
5. 가지런히 정돈된 접시와 와인 잔들이 퀼트 장식품과 어우러진 모습에서 주인의 센스가 엿보인다.
6. 거실과 주방을 연결하는 짧은 계단과 2층으로 올라가는 긴 계단이 끊어질 듯 이어진 모습이 멋스럽다.
7. 아내 윤씨가 직접 만든 퀼트 소품. 알을 품은 닭이다.
8 남편 김씨가 좋아하는 공간의 거실. 한쪽 벽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책장은 집을 짓고 남은 목재로 만들었다.
9. 1층 주방과 거실 모습. 거실을 독립적인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거실바닥을 주방보다 낮게 만들고 계단을 뒀다.
10. 옆에서 본 뾰족지붕집
조인스 랜드· 월간 전원속의 내집 (글 이상희, 사진 최수연) [중앙일보] 입력 2014.10.08
조금만 내려놓으면 훨씬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30대 초반, 어린 나이에 남쪽 끝 지리산 자락으로 터를 옮겨와 감나무밭 사이에 뾰족지붕 나무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경남 하동, 섬진강변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국도를 자동차로 한참 달리다 지리산 자락 쪽으로 갈라지는 좁은 길을 만났다.
그 좁은 길이 이끄는 대로 얼마쯤 따라가다 방향을 바꿔 산 위쪽을 향해 난 길로 들어섰다. 위를 향해 올라가길 잠시, 산을 온통 뒤덮은 감나무밭이 나오고, 밭 사이를 뚫고 꼬불꼬불한 작은 길이 시작됐다.
감나무마다 주렁주렁 열린 대봉감을 눈에 담으며 올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 삼각형의 뾰족한 흑녹색 지붕이 한눈에 들어왔다. 볕 좋은 악양에 일찌감치 터를 닦은 목조주택이다.
발품 팔고 눈품 팔아 얻은 터
김씨 부부가 하동으로 옮겨온 것은 5년 전. 언젠가는 시골에 가서 농사짓고 살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남편과, 남편의 꿈같은 소리를 귀에 박히도록 들어 어느새 귀농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 아내였다. 그래서였을까?
지척을 돌아볼 잠시의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서울의 직장 생활에 회의가 깊어질 즈음“ 갈 거면 하루라도 빨리 가자”는 생각에 부부가 뜻을 같이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먹고살 일이 변변찮은 시골로 가겠다니,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적지 않았지만 부부의 생각은 굳건했다.
귀농하고 2년은 빈 농가주택을 빌려서 살았다. 아궁이도 있고, 처마도 깊고, 툇마루도 있는, 사진 속에서나 나올 법한 운치 있는 집이었다. 하지만 프레임 밖 현실은 사진과 많이 달랐다.
“120년 된 집이었는데 외풍도 엄청 세고 쥐도 많아서 살기 불편했어요. 그래서 예정보다 일찍 새집을 지어서 나가기로 했죠.”
부부는 시간만 나면 집터를 보러 다녔다. 동네 어르신이 좋다고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집 짓는 공사 현장에도 수시로 들렀다. 그곳에서 집 짓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집은 어떻게 완성되는지도 배웠다. 그러면서 부부는‘ 언제까지’라고 시간을 못 박지 않고 마음에 딱 드는 터를 만날 때까지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찾은 곳이 산 아래 감나무밭 사이에 있는 지금의 집터였다.
“감나무밭 사이에 있는 매실밭이었어요. 마을에서 약간 벗어나 있으면서도 외지지 않는, 우리 마음에 딱 드는 곳이었죠. 원래 팔려고 내놓은 땅이 아니었는데 동네 어르신을 통해 샀어요.”
효율성을 우선으로 지은 집
터를 정하자 이번에는 어떤 집을 지을지 결정해야 했다. 마음속에 꿈꾸던 집은 많았지만 예쁜 집보다는 살기 좋은 집이 우선이었다.
“일단 건축비가 적게 들어야 했어요. 넉넉하지 않은 살림인데 집 짓느라 돈을 너무 많이 쓸 수는 없었거든요. 그리고 살면서 유지비가 적게 드는 집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고민하던 중에 마침 하동에서 펜션을 짓고 있던 건축업자를 만났다. 믿을 만했고 부부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이었다. 의논 끝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짓기에 가장 효율적인 경량 목조주택으로 결정했다. 면적도 최소화해서 사는 데 필요한 만큼만 짓기로 했다.
“필요 없는 공간을 만드느라 비용을 더 지출할 이유가 없었죠. 게다가 집이 넓어지면 난방비 등 유지비도 늘어나잖아요. 당연히 면적을 최소화해야 했죠.”
1층은 거실과 부엌, 2층은 침실 두 개와 욕실, 3층은 다락방 하나가 부부가 원하는 전부였다. 그래서 1층과 2층 면적이 비슷한 일반 주택에 비해 이 집의 2층은 1층의 절반을 약간 넘는 수준이고, 3층은 훨씬 더 좁다. 그러다 보니 가파른 경사의 지붕이 1층 벽까지 내려오는, 뾰족지붕집이 만들어졌다.
내부 마감은 핸디코트로 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격이 저렴한 데다, 문제가 생기면 부부가 직접 보수 작업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종이로 도배하면 시간이 흐른 뒤 도배를 다시 해야 하는데, 이 시골에서 도배해주러 올 사람을 구하기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돈도 적지 않이 들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1층 내부 구조는 이 집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대부분의 집이 현관에 들어서면 거실에서 시작해 주방, 안방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가지는 데 비해, 이 집은 문을 열자마자 바로 주방과 마주하게 되고 주방을 지나고서야 거실을 만날 수 있다.
아내는 따뜻하고 밝은 빛이 가득 들어오는, 큰 창을 가진 주방을 원했고, 남편은 거실이 집 안의 다른 공간을 연결하는 곳이 아닌 독립된 공간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주방을 이 집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앞쪽에 큰 창과 함께 배치했고 거실은 뒤쪽에, 주방보다 계단 두 개 정도 바닥을 낮춰서 별도의 공간처럼 만들었다.
생각보다 적은 비용으로 마음에 드는 집을 얻었지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다. 불필요한 창을 너무 많이 낸 것이 그 중 하나. 예쁜 모양만 생각하느라 벽마다 창을 냈는데 그 때문에 난방 효율이 나빠졌다. 채광이나 환기와 관계없는 창은 내지 않는 것이 나을 뻔했다는 뒤늦은 후회도 살짝 하는 중이다.
창문 통해 쏟아지는 햇빛과 달빛
이사 온 뒤로 아내 윤씨는 주방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그 앞에 서서 설거지하는 시간을 좋아하게 됐다.볕이 좋은 날에는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산속의 고요함을 즐기면서 주방 일을 만끽한다. 종종 감 따러 산에 올라오는 동네 어르신의 경운기 소리가 창틀을 타고 넘어오면 다섯 살배기 아들 준효가 어느새 달려나와 큰 소리로 인사를 하는, 이곳의 평화로움이 사무치게 좋단다.
햇빛을 좋아하는 아내와 달리 남편은 달빛에 반했다. 온 세상이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면 침대 머리 위 천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달빛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단다. 도시에서 살 때는 인공 불빛에 가려서, 혹은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던 것이다. 남들이 뭐라 하든 부부는 이 집이, 이 삶이 정말 좋다.
사진 설명
1. 아내 윤씨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주방. 직접 만든 퀼트 소품과 말린 꽃 등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몄다.
2. 부부의 침실. 오래된 느낌의 나무와 파스텔 톤의 침구,윤씨가 직접 만든 소박한 커튼이 정겹게 어우러진다.
3. 창틀에 놓여 있는 화분들이 거실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다.
4. 3층에 있는 다락방. 아내 윤씨가 바느질을 하는 공간이다.
5. 가지런히 정돈된 접시와 와인 잔들이 퀼트 장식품과 어우러진 모습에서 주인의 센스가 엿보인다.
6. 거실과 주방을 연결하는 짧은 계단과 2층으로 올라가는 긴 계단이 끊어질 듯 이어진 모습이 멋스럽다.
7. 아내 윤씨가 직접 만든 퀼트 소품. 알을 품은 닭이다.
8 남편 김씨가 좋아하는 공간의 거실. 한쪽 벽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책장은 집을 짓고 남은 목재로 만들었다.
9. 1층 주방과 거실 모습. 거실을 독립적인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거실바닥을 주방보다 낮게 만들고 계단을 뒀다.
10. 옆에서 본 뾰족지붕집
조인스 랜드· 월간 전원속의 내집 (글 이상희, 사진 최수연) [중앙일보] 입력 2014.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