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THIS MAN - 변호사 신용락

해암도 2013. 4. 2. 05:40

 

‘딴짓’ 하는 남자가 즐겁다

 

이 남자의 ‘딴짓’은 마흔이 넘어 시작됐다. 밀레니엄을 앞둔 세상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지 않고는 도무지 배길 수 없었다는 그. 철이 없었던 걸까? 그렇다면 그는 철을 버린 대신 꿈을 얻은 셈이다. 대체 어떤 꿈을?

새벽골프 저는 스물일곱 살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서른 살부터 곧장 판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과로로 건강을 해쳤어요. 1991년 마산지방법원(현 창원지방법원) 민사항소부에서 근무할 때였는데, 당시 전국에서 가장 사건이 많은 재판부였죠. 급기야 간 질환을 얻게 되었고 몸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요양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무렵 마침 대전지방법원으로 발령이 났어요. 다행스럽게 대학교수로 있는 형 친구가 소개한 수련원에서 불교식 기 수련을 하면서 몸 상태가 호전되었는데, 수원지방법원으로 올라온 후 수련을 게을리하니 다시 일이 힘에 부쳤어요.

1997년 즈음 단독판사를 하면서 제가 진행하는 재판을 녹음해 들어본 적이 있어요. 한숨과 짜증이 잔뜩 묻은 목소리에 스스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건강하지 않은 몸으로는 재판을 망칠 것 같고 ‘내가 쓰러지면 어쩌나’ 가족 걱정도 됐죠. 그래서 1998년 수원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게 됐습니다. 집도 사무실 근처로 옮겼고요.

당시는 하루에 10시간씩 잠을 자도 피곤이 풀리지 않을 정도로 건강 상태가 엉망이었습니다. 식전에 동네 한 바퀴 도는 일도 쉽지 않았죠. 그런데 건강을 회복하게 된 계기가 골프입니다. 제 건강을 염려한 친구 따라 새벽골프를 나가게 된 것이죠. 마침 집 근처에 골프장이 있어서 일주일에 한 번 새벽 5시에 모여 골프를 쳐 보았는데, 의외로 할 만하더라고요. 그렇게 한 달 정도 해보니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쉬워지고 전과는 달리 누워 있는 것이 갑갑해졌죠. 그래서 연습장에도 다니게 되고…. 그러면서 저는 골프의 묘미를 알게 됐습니다.

워낙 운동신경이 부족한 데다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지만, 골프는 달랐어요. 순수한 집중력을 요하는 일종의 멘털 스포츠죠. 대전 시절 기 수련한 것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고(웃음)…. 여러모로 제게 딱 맞았습니다.

하버드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 수원에서 변호사 개업할 때는 그저 ‘건강관리 하면서 조용히 살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차츰 건강을 회복하면서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새 천년을 앞둔 당시 기류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도 모르죠. 밀레니엄 시대가 되면 세상이 확 바뀐다고 온통 떠들썩했잖아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바라본 선배 변호사들의 모습은 왠지 따분해 보였어요.

당시는 변호사라는 직업을 ‘남의 이익 위해 돈 받고 대리 전쟁하는 것’으로 삐딱하게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늙기 전에 넓은 세상을 경험하면서 뭔가 인생의 목표를 찾아보자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고, 또한 변호사 시장도 전문화 추세로 가기 마련이니 저 나름대로 전문화하고 내세울 수 있는 것을 찾고 싶은 마음이 생겼죠.

당시 선배가 마크 매코맥의 <하버드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이라는 책을 추천했는데, 이 책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습니다. 변호사 출신의 마크 매코맥은 전설의 골프왕 아놀드 파머의 법률 자문을 시작으로 스포츠마케팅이라는 새 장르를 개척하고 IMG를 설립하여 세계 제1의 스포츠·엔터테인먼트 회사로 키운 사람입니다.

이 책에서 매코맥이 말하는 핵심은 결국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해야 성공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많이 하는 뻔한 말이지만, 이것만 한 진리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게 뭔가? 바로 골프더군요.

마흔에 떠난 유학 경희대학교 골프레저산업 최고위과정을 수료한 다음 2000년 7월에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골프 명문 샌디에이고 골프 아카데미에 입학했죠. 미국 골프산업계 전반에 이 학교 출신이 2만 명 이상 포진해 있을 정도로 역사가 있는 전문대학교입니다.

그곳에서 티칭과 매니지먼트 과정을 복수 전공했어요. 골프 실력이 늘었고 골프에 대한 전반적 지식을 공부할 수 있었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진학한 미국 학생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갖가지 직업을 거쳐 레슨 프로를 꿈꾸는 전업자, 은퇴자들도 많아요. 그래서 다양한 학생과 친분을 나누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습니다.

변호사 생활을 접고 골프유학을 떠날 용기가 어디서 났느냐고요? 그냥 철이 없었던 거죠(웃음). 집사람도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평소 물렁한 것 같아도 한 번 몰입하면 아무도 못 말리는 제 성격을 아는지라 결국 손을 들어주었죠.

한창 돈을 버는 변호사 3년 차에 떠나서 경제적으로는 손실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 다녀오기를 잘했어요. 가족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추억을 남기고 아이들도 영어를 배우고, 저는 막연했던 희망을 꿈으로 구체화하고 실행할 능력을 키웠다고나 할까요. 무언가 목표가 있다는 것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었죠.

새벽골프를 함께 치던 멤버들이요? 그 친구들은 워낙 고수들이라 줄곧 제가 경기에서 지곤 했는데, 미국에서 돌아와서는 멋진 설욕전을 치를 수 있었죠. 뭐, 제가 딱히 골프를 잘 치는 건 아녜요. 어느 날은 ‘신들린 듯 잘 맞는다’ 싶어도 프로에 비하면 영 못 미치는 실력이죠. 베스트 스코어는 1오버파 73타입니다.

‘법’과 골프사업 2년 과정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오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변호사로 복귀할 것인가, 골프전문가의 길로 들어설 것인가. 지인들의 조언에 따라 다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긴 했지만 마음은 골프, 스포츠산업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그래서 유명 선수에게 골프 자문을 하고 골프장 관련 법률 개정 작업에도 참여했습니다.

틈틈이 골프 레슨도 했고요. 운이 좋게도 2004년 즈음에는 잠시 골프장 대표이사를 맡아 실무를 경험하기도 했죠. 당시 그 골프장은 9홀을 증설하면서 클럽하우스를 옮기고 거기에 맞춰 운영시스템을 정비해야 했는데, 미국에서 배우고 본 것이 도움이 됐습니다. 새로운 코스 개장 준비와 운영시스템 점검, 클럽하우스 인테리어, 캐디 서비스 교육과 스코어카드 디자인까지 모두 제가 지휘했어요. 그 시기엔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일에만 몰두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니 신이 나서 힘든 줄도 몰랐죠. 하지만 그 일을 오래 하진 못했어요. 그때껏 ‘법’만을 다뤄온 제게는 사업가로서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다시 변호사 사무실로 돌아온 후에도 6개월 동안은 여러 구상이 머릿속에 가득했죠. 그러다 돈이 떨어지자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변호사 일에 매진하게 됐어요. 돈 때문에 꿈을 접고 다시 변호사 생활을 한다는 생각에 한동안 자존감을 잃고 우울하게 지내기도 했죠.

2008년부터는 현재 몸담고 있는 ‘법무법인 원’의 대표변호사인 친구가 저를 서울로 이끌어 로펌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는데, 젊은 후배들과 어울리며 생기를 되찾게 된 것 같아요. 골프장 관련 자문과 소송을 본격적으로 맡아 처리한 것도 이 시기부터예요.

법조계 내에서도 저의 특이한 이력이 화제가 된 터라 여러 곳에서 의뢰가 왔습니다. 골프 대중화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열심히 뛰었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고요. 아마 5년 내에는 10만 원 정도로 골프를 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할 일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요.

꿈을 좇아가는 삶 지금 생각해보면 골프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제 삶이 더 풍요로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꿈’이라는 말…. 사실 중년 나이엔 조금 어색한 말이잖아요. ‘이 나이에 무슨 꿈이야?’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거든요. 꿈을 계속 꾼다는 것, 그것이 인생에 굉장히 중요해요. 성경에도 이런 말이 있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나이든 이들은 꿈을 꾸리라.’ 꿈은 감사한 마음과 활력을 줍니다. 안타까운 건 사람들이 현재 상황에 짓눌려 꿈을 꾸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먹고살 일과 노후대책도 막막한데, 꿈은 먼 얘기일 뿐이죠. 늘 책임과 경쟁 때문에 쫓기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지요.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말입니다. 그렇지만, 같은 환경 속에서도 꿈을 가진 사람은 다릅니다. 꿈을 좇아가는 삶을 살죠. 저만치 목표를 향해 달려갑니다. 숨이 가빠도 골인 지점을 생각하면 힘이 나죠. 처음에는 조금 막연한 희망을 품지만 희망을 이루기 위해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다 보면 구체적인 꿈을 꾸게 됩니다. 꿈은 희망보다도 훨씬 영(靈)적이죠. 그래서 사람을 덜 지치게 만들어요. 그러니 성공할 수밖에요.

미국에서 만난 가수 인순이 씨가 그러더군요. 성공하는 비결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요. 하지만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니 그럴 수 없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제가 물었죠. 그랬더니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라”고 답하더군요. 그 말이 참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같은 법인에 있는 강금실 변호사님 말씀대로 누구나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거예요. 이 세 가지를 하나로 모아가는 과정이 중요하겠죠. 제게는 가족의 가장, 변호사라는 직업과 골프라는 꿈이 그랬어요. 그것들을 모아낸 것이 바로 제 인생입니다. 지금의 제 꿈은 한 10년 안에 좋은 골프장 하나를 인수해서 운영하는 것이에요. 아마도 그곳에서 인생의 제3막을 보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여러 사정으로 필드에 나가지 못했는데, 이제 날도 풀렸으니 나가봐야죠. 올봄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길지 않은 인생! 현실에 짓눌리거나 안주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좋아하는 것, 꿈을 좇아 간다면 누구나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을 거예요.


☞ 신용락(54)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9년부터 판사 생활을 하다 1998년 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00년 미국으로 ‘골프유학’을 떠났다. 샌디에이고 골프 아카데미를 수료한 후 귀국해 골프 티칭 프로, 골프장 대표 등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법조계에서 골프 전문 변호사로 알려진 그는 현재 ‘법무법인 원’의 변호사로서 각종 민·형사 소송, 중재 사건은 물론 골프 관련 소송과 자문을 도맡고 있다.

                                 

조선 : 2013.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