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스트라이다' 디자인한 英 마크 샌더스 방한

해암도 2013. 3. 28. 21:59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전거, 내가 만들었죠"

['스트라이다' 디자인한 英 마크 샌더스 방한]
기름 묻지 않고 휴대하기 편한 자전거 구상… 스트라이다 탄생
한국은 제조업 기반 탄탄해 디자인 구현에 좋은 환경
韓國지형에 맞는 전기자전거… 만도와 손잡고 출시
1983년 봄 어느 날, 늦깎이 디자인 학도 마크 샌더스는 런던 중심가 학교에서 32㎞나 떨어진 외곽에서 자전거와 지하철을 이용해 통학을 하고 있었다. 막 출시되기 시작한 접이식 자전거로 지하철역까지 간 뒤 자전거를 접어서 지하철을 탔다. 무거운 자전거를 둘러업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고 나면 도착하기도 전에 진이 다 빠졌고, 자전거 체인의 기름 때문에 옷을 버리기 일쑤였다. 그는 대학생활 내내 휴대하기 편한 새로운 자전거 디자인을 궁리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삼각형' 스트라이다(STRIDA·작은 사진)는 이렇게 탄생했다. 정삼각 형태의 몸체를 절반으로 접어 두 바퀴를 나란히 모으면 자전거를 들지 않고 바퀴로 굴리며 이동할 수 있다. 기름이 묻지 않게 체인 대신 벨트를 이용했다. 전 세계는 물론 한국 '자출족(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에게도 인기다. 스트라이다를 만든 자전거 디자인의 거장(巨匠) 마크 샌더스(Sanders·55)가 '2013 서울모터쇼' 참석을 위해 방한했다. 그는 지난해 한국기업 만도와 함께 전기자전거 '만도풋루스'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거장의 첫 출발은 디자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1977년 고교 졸업 후 자동차회사 롤스로이스에 근무하며 산학협동과정으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그는 "기술자는 제품 자체에 신경 쓰느라, 제품이 사람을 통해 어떻게 작동되는지, 편안한지 여부는 간과하기 십상"이라고 했다. '인간을 위한' 제품을 만들고 싶었던 샌더스는 퇴사 후 1983년 영국왕립예술학교(RCA)에 입학했다.

27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한 자전거 카페. 마크 샌더스가 자신이 디자인한 만도풋루스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이태경 기자
샌더스는 대학 재학 중인 1984년 스트라이다를 내놓았다. 하지만 자전거의 전형(典型)을 벗어난 스트라이다는 영국 디자인계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았다. 스트라이다는 1987년에야 제품화된다. 일본 회사와 거래하는 기업가가 스트라이다의 가능성을 알아본 것. 처음 생산된 2만5000대는 일본을 비롯 프랑스·독일·미국 등에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그는 "정작 영국에선 2000년대 들어서야 인기를 누렸다"며 멋쩍게 웃었다.

샌더스는 스트라이다에 이어 자전거 디자인 걸작을 계속 내놓는다. 2008년 선보인 'IF-모드' 자전거는 그의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이 절충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2012년 내놓은 전기자전거 '만도풋루스'는 체인 없이 내장된 모터로 바퀴를 굴리는 방식을 취했다. 어린 시절 바닷가 마을에서 자란 샌더스는 몸에 딱 포개지는 갈매기의 날개에서 풋루스의 디자인을 따왔다. 갈매기 날개뼈가 접히는 방식으로 자전거를 접는 디자인이다.

샌더스는 자전거 말고도 접이식 도마, 통조림 따개도 디자인했다. "런던·파리·뉴욕 등 세계적인 도시들이 대체로 평지인 것과 달리 서울은 언덕이 많습니다. 풋루스는 언덕지형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의 삶에 기여하기 위한 디자인이죠."

그는 한국의 자전거 열풍에 주목했다. 샌더스는 "스트라이다가 출시됐던 1980년대엔 일본 소비자들이 시장 변화에 가장 민감했지만, 2010년대는 한국 소비자들이 최고의 얼리 어답터"라고 했다. 샌더스는 제조업 기반이 탄탄한 한국이 감각적인 디자인을 현실에 구현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강조했다.

 김충령 기자  조선 : 2013.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