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일 대표/ 사진출처= 김선아
‘뽀통령’ 뽀로로에 이어 ‘타요버스’가 애니메이션 열풍을 몰고 왔다. 여태껏 유아용 애니메이션에 이렇게 어른들이 관심을 가진 적이 있을까. 국내산 애니메이션을 연속으로 히트 친 두 작품을 만든 곳은 바로 애니메이션 기획사 ‘아이코닉스’. 아이코닉스는 애니메이션 기획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현재까지 120여 개국에 수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최근에는 그간 성공을 거뒀던 유아용이 아닌 슬랩스틱 가족용 애니메이션 ‘붐바와 툼바’를 기획 중이다. ‘뽀로로 아빠’ 최종일 대표는 꾸준히 진화하고 있었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각종 상장과 캐릭터 인형, 애니메이션 책들이 즐비하다. CEO로서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기획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창업할 때부터 애니메이션 기획에 참여해왔다.
“한 야구 구단에서 <뽀롱뽀롱 뽀로로>의 크롱 캐릭터를 사용하는 걸 봤어요. 최근엔 타요버스 운행으로 <꼬마버스 타요>의 인기도 더 많아졌죠. 무엇보다 타요가 대중교통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돼 보람 있습니다.”
그는 얼마 전 <꼬마버스 타요> 디자인을 일반버스에 무상으로 제공했다. 애니메이션 제작의 목적이 수익 창출만은 아니란 생각에서였다.
‘탁월한 기획자’로서 그의 성공비결이 궁금했다. 그는 뜻밖에도 “성공의 원동력은 8할이 실패”라고 답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큰 고민 없이 ‘좋은 직장’이라 여겨지는 금강기획에 입사해 자동차 광고기획자로 일했다. 그런데 광고기획은 그가 ‘잘하는 일’이었지만 ‘좋아하는 일’은 아니었다. 입사한 지 4년 반이 흘렀을 무렵, 한때 꿈꿨던 기자나 PD가 되고 싶어 모 케이블TV의 PD 부문에 지원했다.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면접을 남겨두고 있을 때 인사팀장이 이직을 만류하며 신규 사업팀을 제안했다. 신규 사업은 그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을 기획하는 일이었다.
그는 어릴 적 존재감이 없을 정도로 조용했고,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던 아이였다. “애니메이션 <독수리 오형제>를 비롯해 <꺼벙이> <주먹대장> <대야망> 등의 만화를 정말 재밌게 봤어요. 이 작품들에 빠져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죠. 생각해보면 애니메이션 기획은 제가 원하던 일이었어요.”
애니메이션 사업팀은 애니메이션 몇 편을 기획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해모수> <레스톨 특수구조대> <짱이와 깨모> <깨모의 모험>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IMF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애니메이션 사업팀은 자연스레 해체됐다. 회사 구조조정으로 그를 제외한 팀원 모두 명예퇴직했다. 이때 그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회사에 사표를 냈다. 기존 팀원들과 함께 애니메이션 기획사를 창업하기 위해서였다. 잘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애니메이션 일을 하지 않았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찾아 회사를 떠났을 것 같아요. 사업에 실패했을 경우 중고 트럭이라도 마련해 채소 장사라도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죠. 그러면 한 달에 한 번 삼겹살 정도는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배급사업과 사업 대행을 통해 애니메이션 기획이 실패했을 때를 대비하는 등 준비도 철저히 했고요.”
2001년 창업 후 그가 처음 기획한 애니메이션은 7~11세 아동을 겨냥한 <미셸>이었다. 그런데 <미셸>은 당시 인기였던 <포켓몬스터>와 동시에 방영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막대한 손실을 보며 초기 자본금의 80%가 사라졌다. 그럼에도 그는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미셸>을 꼽는다. 창업 후 첫 작품이었고, 실패했지만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는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제작 단계에서 기획자로서 소신을 지키지 못했고, 애니메이션으로서의 재미가 부족했다.
사진출처= 김선아
이후 그는 전략적으로 일본이나 미국에서 상대적으로 적게 제작하는 유아용 애니메이션을 선택했다.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뽀롱뽀롱 뽀로로>와 <꼬마버스 타요>의 기획이 잇따라 성공을 거뒀다. “실패는 하나의 과정일 뿐 포기하지 말자는 자세” 덕분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노력해요. 처세술 등으로 성공하는 경우는 소수고요. 정공법으로 승부하면 언젠가는 빛을 발하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한국 애니메이션계에서 전무후무한 성공을 거뒀다. 2011년 10월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했고, 2012년 7월 《집요한 상상》(샘앤파커스)을 펴냈다. 2009년부터 4년간 한국애니메이션제작자협회장을 맡기도 했다.
“약 20년간 애니메이션 기획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건 ‘국산 창작 애니메이션은 안 된다’는 패배주의와 부정적 인식을 바꿔놓는 것이었어요.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그런 인식이 많이 사라져서 기쁩니다.”
하지만 그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다.
“2020년까지 아시아 TOP 3, 2030년까지 세계 TOP 5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충분히 실현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최근 새로운 작품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슬랩스틱 가족용 애니메이션인 <붐바와 툼바>다. “부담감은 언제나 있죠. 가족용 슬랩스틱 애니메이션을 기획해봐야겠다는 생각은 계속해왔어요. 아주 유쾌하고 즐겁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게 목표예요. 가족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이니까 굳이 교육적 메시지를 담을 필요는 없고요. 주인공이 곰과 호랑이인, 코믹한 로드무비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이외에도 그는 영화 <스파이더맨>처럼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경계에 있는 작품을 비롯해 더 많은 도전을 하고 싶다고 했다.
“뭔가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도전하세요. 도전하지 않고 성취할 수는 없어요. 많은 분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주저하지요. 실패는 도전했을 때 경험할 수 있는, 매우 가능성 높은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당연히 실패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면서 꾸준히 노력하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
2003년 <뽀롱뽀롱 뽀로로>를 만들던 당시, 기획에 영감을 주었던 자녀들은 어느새 훌쩍 커서 애니메이션 기획에 조언을 한다. 20년간 직업으로 애니메이션 기획을 했으면 지칠 법도 한데
최 대표는 “아직도 일이 재밌다”고 했다. 그는 “운명은 누군가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고 내가 창조하는 것”이라는 신조를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글 이경후 인턴기자(연세대 4)
입력 : 2014.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