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웃어밥' 팝니다, 당당하게 깔끔하게 즐겁게

해암도 2014. 7. 12. 07:06

[주먹밥 전문점 최성호·최종은·금태경씨]

아침 거른 직장인 대상 노점·배달, 조리복 입고 웃으며 우렁찬 인사
넉달만에 점포 내고 최근 2호점도… "취업 너무 힘들어 발상전환했죠"

   
하얀색 주방장 모자를 쓴 세 청년이 대낮에 수시로 서울 남대문시장 액세서리 상가를 돈다. 점포마다 몸을 들이밀고 힘차게 인사하며 주먹밥을 나눠준다. "사장님·이모님·누님·형님, 아침 드시고 나오십니까? 못 드시고 나오면 말씀하세요. 새벽마다 금방 만든 주먹밥을 배달해 드립니다."

이들은 주먹밥 전문점 '웃어밥' 창업자 최성호(30)·최종은(30)·금태경(28)씨다. 지방대 다니다가 2011년 11월 벤처사업 하려고 다 함께 올라왔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3년 뒤, 스마트폰과 아무 상관없는 주먹밥 장사로 월 2500만원씩 벌게 될 줄은 본인들도 몰랐다.

1000원이라도 벌자

학기 초에 청주대 근처에 가면, 동네 할머니들이 골목에 드문드문 서 있다가 길 가는 학생들을 불러 세운다. "학생, 자취방 안 필요해?" 소일 삼아 동네 빈방을 소개해주고 2만~3만원씩 용돈을 버는, 일명 '할머니 부동산'이다.

서울 을지로2가 외환은행 앞의 아침. ‘웃어밥’대표 최성호씨가 주문 배달 중인 주먹밥과 김밥들을 보여주고 있다. 최씨는 이 ‘웃어밥’들을 팔아 번 돈으로 결혼도 했다. 동업자 최종은, 금태경씨는 아침 ‘영업 루트’가 달라 한자리에 모이지 못했다
서울 을지로2가 외환은행 앞의 아침. ‘웃어밥’대표 최성호씨가 주문 배달 중인 주먹밥과 김밥들을 보여주고 있다. 최씨는 이 ‘웃어밥’들을 팔아 번 돈으로 결혼도 했다. 동업자 최종은, 금태경씨는 아침 ‘영업 루트’가 달라 한자리에 모이지 못했다. /윤동진 기자
할머니들이 동네에서 입(口)으로 하는 일을 이들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해보면 어떨까 했다. 셋 다 취업 경쟁에 질려서 차라리 창업할 궁리를 하던 차였다. "근데 서울 올라와 보니, 대형 업체들이 이미 10년 이상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놨더라고요."

대신 뭘 해야 하나 다시 머리를 맞댔다. "IT같이 그럴싸한 아이템만 생각하지 말고, 당장 1000원이라도 벌 수 있는 장사를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답은 역시 먹는 장사였다. 창업 준비하러 돌아다니는 동안, 아침 못 먹고 길에 나온 직장인·대학생을 숱하게 본 터였다. 그들에게 주먹밥을 팔기로 했다.

자취방 세미나

함부로 뛰어들었다가 망할까 봐, 일부터 배웠다. 낮 동안 각자 떡볶이 체인점, 타코 맛집, 일본식 카레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했다. 밤마다 그날 보고 듣고 느낀 걸 토론했다. 그때 세 사람은 마포구 염리동에 있는 월세 40만원짜리 자취방에 합숙했다. '자취방 심야 세미나'였다.

"시청 앞에서 김밥 파는 아주머니들을 보고 '저분들은 왜 다들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계실까' 생각했어요. 다른 일이 잘 안돼서 어쩔 수 없이 나오신 것 같았어요. 그러면 사 먹는 사람도 신이 안 나죠. 저희는 정반대로 가보기로 했어요."

2012년 5월 27일 아침 7시, 세 사람은 호텔 주방장들이 입는 흰 조리복을 차려 입고 이대역 3번 출구에 섰다.

노점에서 배운 것

바로 대박 날 줄 알았다. 근데 2시간 동안 '달랑' 40개 팔렸다. 셋이 머리를 맞댔다. 멀리서도 보이게 대형 깃발을 만들어 등 뒤에 세워놓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족자에 뭐라고 쓸지 문제였다. 처음엔 '대박 주먹밥'이라고 쓰려고 했다. 광화문 교보문고 외벽에 시구가 적혀있는 걸 보고 생각을 바꿨다. "저희 귀에 기분 좋은 얘기 말고, 사먹는 사람이 즐거워지는 문구를 적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족자에 이렇게 썼다. "식사하셨어요? 오늘도 '웃어밥'." 그 깃발을 세워놓고 셋이서 우렁차게 행인에게 인사했다. 시험 기간 이대생들에겐 "시험 잘 보세요!", 인상 쓴 직장인에겐 "긍정의 힘으로 오늘 하루 즐겁게!", 마주 보고 웃어주는 손님에겐 "파이팅!" 했다. 하루에 200~250개씩 팔리기 시작했다.

반복을 견디는 힘

노점 넉 달 만에 여덟 평 가게를 얻었다. 작년 5월엔 을지로에 두 평짜리 2호점도 열었다. 두 곳 모두 주방과 카운터만 있다. 앉아서 먹고 가는 식당이 아니라, 오가면서 집어가는 식당이다.

하루에 10개 팔면 2개는 이대 앞 노점에서, 3개는 출근 시간대 을지로 2호점에서 나간다. 나머지 5개는 배달이다. 주먹밥 사가는 손님들이 "회사에 아침 못 먹고 나오는 사람이 나 말고도 많다"고 하길래, "단체로 시키면 아침마다 가져다 드리겠다"고 했다.

이달부터 남대문시장 액세서리 상가도 돈다. 새벽부터 수백명이 북적대는 건물이 12개나 된다. 낮 동안 "내일 아침 주먹밥 드실 분!" 하고 예약을 받은 뒤, 다음 날 새벽 가져다주는 시스템이다.

간단한 메뉴 같지만, 취급하는 식재료가 80가지쯤 된다. "닭고기는 경동시장, 돼지고기는 마장동, 김은 중앙시장…." 새벽 4시에 일어나 다 같이 주먹밥을 만들어 아침·점심 장사를 한 뒤, 오후 6시까지 장 보고, 영업 나가고, 재료를 다듬는다. 반복되는 고된 일이 지루하지 않을까. "근데 그걸 견뎌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것 같아요." (02)713-5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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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정책부 기자
    E-mail : goodluck@chosun.com
    깊이 취재해 간결하게 쓰는 게 목표다. 1997년 입사해, 20..
  • 입력 : 2014.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