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도둑도 안 가져간다" … 눈물의 무안 '양파 산성'

해암도 2014. 7. 7. 08:25

추운 겨울 예보에 재배 늘려
따뜻한 겨울, 재해 없어 풍년
양파 42% 무·배추 33% 하락
세월호 여파로 소비도 위축
가락동 채소 매출량 28% 줄어


“200t 재배해 10t 팔아” 농민들이 도로변에 양파로 성을 쌓았다. 6일 전남 무안군 해제면 농민 장유철씨가 양파 더미를 바라보고 있다. 장씨는 올해 200t의 양파를 수확해 10t만 팔았다. [프리랜서 오종찬]

#6일 오전 전남 무안군 무안읍 매곡리 양림마을. 마을을 지나는 60번 지방도 곳곳에 양파 자루가 쌓여 있다. 농민들이 팔리지 않는 양파를 자루에 담아 1m 높이로 도로변에 둔 것이다. 저장할 만한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하자 50∼100m씩 ‘양파 성(城)’을 만들었다. 전국 최대 양파 주산지인 무안군 일대에서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양파 재배 농민 장유철(47·무안군 해제면 유월리)씨는 “올해 200t을 생산했는데 팔린 것은 10t뿐이다”라며 “도로에 쌓아 놓고 방치하다시피 하지만 헐값이어서 도둑도 가져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충북 청주시 미원면 용곡리에서 만난 배추 재배 농민 이병환(62)씨는 한숨을 쉬었다. 이씨는 지난 3월 6600㎡에 배추를 심었다. 하지만 단 한 포기도 팔지 못했다. 지난달 중순 이씨를 찾아 온 유통업자는 “밭떼기로 990㎡당 3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지난해(105만~110만원)의 30% 수준이다. 이씨는 배추밭의 절반을 트랙터로 갈아엎었다. 나머지는 수확하다가 포기했다. 밭에 남아 있는 배추는 전부 누렇게 말랐다. 이씨는 “올해는 기상여건이 좋아 배추를 제대로 키웠는데 이렇게까지 폭락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채소·과일 등 농산물 값이 줄줄이 하락하고 있다. 품목별로 등락을 거듭하는 종전과 달리 지속적인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생산량은 늘었는데 소비가 위축된 탓이다. 농민들은 수확을 포기하고 있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조사한 전국 30여 개 소매시장(전통시장 등)의 올 6월 농산물 가격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양파(1㎏)는 2414원에서 1408원으로 무(1㎏)는 2149원에서 1438원, 각각 41.7%와 33.1%하락했다. 봄배추(1포기) 역시 1827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33.1% 떨어졌다.

 올 들어 농산물 생산량은 크게 늘었다. 봄배추는 28만2000t으로 지난해보다 2만t 더 생산됐다. 무안 지역 양파 생산량은 지난해 17만t에서 올해 21만t으로 23.5% 늘었다. 풍년 농사가 역설적으로 가격 하락을 가져온 것이다. 생산량이 증가한 것은 지난겨울부터 최근까지 이렇다 할 자연재해가 없었던 게 요인으로 꼽힌다. 큰 추위나 폭설이 적었고, 올봄 가뭄 피해도 경기·강원 일부 지역에 제한됐다. 장맛비는 주로 남부지방에 내렸지만 이렇다 할 비 피해는 없었다.

 농촌경제연구원 최병욱(42) 박사는 “지난해 기상청이 ‘춥고 눈 많은 겨울’이라는 예보를 내놨다고 농민들은 채소값이 뛸 것으로 보고 재배면적을 늘렸다”고 했다.

 반면 농산물 소비는 줄고 있다. 서울 가락동 도매시장에서 팔린 채소류 양은 지난해 하루 평균 766t에서 올 6월 548t으로 28% 줄었다. 수입 농산물 가공식품이 증가하고 건강식품 소비 패턴이 바뀐 게 원인이다. 건강음료 생산업체인 옥반식품 정욱 전무는 “블루베리 등을 찾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양파즙 등 국산 농산물 가공식품이 안 팔리고 있다”며 “연간 70억원이던 양파즙 매출이 지난해 50억원대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고 이후 경기 침체도 영향을 미쳤다. 음식점 등의 고객 감소가 농산물 소비 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최근 전국 453개 음식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세월호 사고 후 매출이 하루 평균 2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전 서구 갈마동에서 고깃집을 하는 연세흠(43)씨는 “세월호 사고 이후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는데 회복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농민들의 마음고생은 이만저만 한 게 아니다. 전북 완주군에서 마늘을 기르는 임석기(69)씨는 “수확한 500㎏ 정도의 마늘을 집에서 썩히고 있다”고 했다. 이경수(49·충북 청주시)씨는 “기르는 비용도 못 건질 것 같아 지난달 심은 오이를 다 뽑아버렸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민 피해를 줄이기 위해 농산물을 사들여 비축하고 소비촉진 운동을 하고 있다. 올 들어 배추 4000t, 무 2000t을 매입했다. 농협 등 각 기관과 함께 농산물 팔아주기 행사를 하고 학교급식·구내식당 등을 대상으로 우리 농산물을 이용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농식품부 최정록 원예산업과장은 “양파는 수출하거나 농협 등을 통해 수매해 가공식품으로 만들어 파는 등 작물마다 특성에 맞는 수급 조절 대책을 펴겠다”고 말했다.

장대석·권철암·최종권 기자  [중앙일보] 입력 2014.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