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건축

[남자의 집짓기] [5] 내손으로 지을 것인가, 전문가에게 맡길 것인가

해암도 2014. 6. 2. 14:30

 

좋은 사람을 일컬어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세상사 중에는 법의 테두리를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일이 많다. 건축이 바로 그렇다. 건축의 조형미는 그런 치밀한 법 테두리 안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더욱 존재감이 있다. 화가가 화폭에 그림을 그리듯이 지을 수 없는 것이 건축이다.

이런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내 손으로 집을 지으면 안 된다. 평생을 쌓아 온 덕망도 잃고, 사람 버리고, 돈 잃고, 고생은 고생대로 할 것이다. 건축은 엄격한 법과 규칙의 현재화 과정이다. 그냥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갈 수도 없고, 넘어가서도 안 된다. 그래서 최소한 건축에 관한 기본적인 법규와 상식은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이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대형서점에 가서 건축법 해설서를 한번 보라. 아마도 대한민국 법 중에서 단일 법령으로는 가장 두꺼운 해설집을 보게 될 것이다. 그걸 전부 알 필요는 없지만, 기본적인 규칙은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할 이유가 있다.

소형 건축에 따른 복잡한 인허가 과정을 간소화하기 위하여 우리나라 건축법은 200㎡ 미만의 소형 건축물에 대하여 신고만으로 건축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일반적인 전원주택은 99.9%가 이 범주 안에 든다. 허가 과정이 단순하기 때문에 별도의 감리절차도 없다. 그저 목수를 잘 만나야 한다. 건축도면도 10장 이내로 매우 간단하다.

건축주가 건축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 못하면 부실시공이 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법에서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서 돈을 더 주고서라도 설계도면은 충실히 만들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법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도면 제작비도 아까워하는 건축주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495㎡ 미만의 주택은 건설업 면허가 없어도 아무나 지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지으려고 하는 대부분의 전원주택은 신고만으로 지을 수 있으며 그것도 아무나 지을 수 있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그렇기 때문에 집은 절대로 아무나 지을 수 없다. 규제가 없는 만큼 책임도 건축주가 져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지은 집에서 발 뻗고 자려면 스스로 건축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이게 가능한 일인지를 스스로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건축주들은 주택을 구성하는 공학적 지식에는 관심이 없고 인테리어와 마감재에 대해서만 파고든다. 특히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 좋은 자재를 쓰는데 거부감이 심하다.

앞서 지적한 ‘J-Grade’의 사례를 기억해 주기 바란다. 우리의 건축문화 수준은 아직 그 정도에 머물러 있다. 하드웨어는 목수에게 맡기고 소프트웨어만 알면 된다는 위험천만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집의 기능성은 하드웨어와 절대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고, 더구나 구조와 마감공정은 분리될 수가 없다.

아주 단순한 예를 한번 들어보자. 거실의 마감을 벽지 도배로 할 것인가, 도장으로 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건축주의 취향에 따른다. 그런데 도배로 할 경우, 도장으로 할 경우, 그 바탕이 되는 하드웨어가 바뀐다는 사실은 전혀 모른다. 도배를 할 경우는 석고보드 1장을 대고 초배지를 바른 다음 원하는 벽지를 바르면 된다.

그러나 도장을 하려면 석고보드를 엇갈리게 겹쳐서 2장을 대야 한다. 석고보드의 미세한 수축 팽창이 페인트의 균열을 초래하여 벽에 실금이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도배로 마감하는 것보다 비용도 훨씬 많이 들어간다. 이런 이치를 모르면 건축예산을 짤 때 도배나, 도장이나 그게 그거라고 넘어갔다가 시공업자와 마찰을 빚게 된다.

고급 목조주택을 건축하면서 실크벽지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보기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목조주택에는 사망선고와 다를 바 없다. 목 구조는 물성 그 자체가 숨 쉬는 집이다. 실크벽지는 숨구멍이 없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재의 조합이다.

합지벽지라고 하는 종이벽지도 시공성을 좋게 하기 위해서 화학성분이 들어간다. 완벽하게 숨 쉬는 집은 화학성분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천연벽지를 써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최고급벽지라고 하는 실크벽지보다 더 비싸다. 아토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은 요즈음에는 비용을 불문하고 이런 벽지를 사용해야 하지만, 비용문제는 넘어야 할 산이다.

벽지를 천연벽지로 바른다고 다 해결되는 건 아니다. 붙박이장이나 부엌가구 제작에 들어가는 접착제도 다량의 유해물질을 배출한다. 친환경 접착제를 사용하게 되면 그만큼 비용이 올라간다. 결국은 어떤 선에서 절충이 필요하다. 이런 세세한 건축 상식을 하나씩 깨쳐 가면서 집을 짓는다는 것은 지난한 고행길이다.

내 손으로 집을 짓는 것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바탕을 모르면서 마감재에 대한 어설픈 지식과 고집, 경우에 따라서는 아집으로 덤벼들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 모든 일에는 전문가의 영역이 있다. 그 전문성을 돈으로 사려면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든다. 그게 아까워서 시공팀을 직접 데리고 직영으로 공사를 해보겠다고 덤벼드는 우를 범하지 말기 바란다.

이 분야에서 20여 년간 몸을 담았던 필자는 직영공사도 해보았고, 도급공사도 해보았지만 가능하면 전문가를 제대로 찾으려고 노력할 뿐이지 어떻게든 직영으로 공사비를 아껴 보려고 시도하지는 않는다. 그 노력과 열정을 더 좋은 집에 대한 아이디어 발굴에 쏟는다.

시공 전문가들은 그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다. 가능하면 내 아이디어에 플러스알파를 더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건축비 아끼는 것보다 더 큰 복이다. 그렇게 하려면 그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그 첫째 관문이 그들의 전문성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전문가의 영역을 인정해 주는 것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그 업체가 전문가로 인정해 줄 만한 능력이 있는 곳이냐 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과거의 실적이다. 어느 정도 실적이 있는 업체들은 각자의 홈페이지에 시공실적을 대부분 공개한다. 그런 현장을 몇 군데만 찾아가서 평판을 들어보면 답이 나온다.

정말로 발품을 팔아야 할 부분은 바로 이런 것이다. 건축주의 말을 일방적으로 귀담아듣지 말고 실제 시공현장을 눈으로 확인하고 확신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건축주와 시공사는 마감 과정에서 이해관계의 충돌로 틀어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 끝에 가면 시공사를 좋게 얘기하는 건축주가 별로 없다. 시공사가 잘못해서 그런 경우도 많지만, 건축주의 막무가내식 요구로 틀어지는 경우도 그 못지않게 많다. 그런 얘기를 가려서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일을 맡길 때는 계약서를 준수하겠다는 각오가 서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계약서대로 일이 진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부문에서는 대부분 건축주의 일방적 요구로 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쉽게도 우리는 아직 문서로 된 약정서에 대한 철저한 준수 의식이 미약하다.

계약서는 계약서일 뿐이고, 공사 과정에서 수시로 변경과 추가 사항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추가 공사비는 지불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시공사는 손을 들게 된다.

설계도면을 제대로 만들고 견적서를 철저하게 따져서 처음에 제대로 계약을 하고, 변경되거나 추가되는 부분은 추가 공사비를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전제로 시공사를 상대해야 진정한 ‘갑’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필자가 제기하는 부분에 대해서 너무 건축주를 일방적으로 몰아세우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는 분들이 있다. 사실이다. 우리 건축업계의 풍토에서는 시공업체의 부실과 잘못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건축주의 자세에 대해서 먼저 지적하는 이유는 좋은 건축주가 좋은 집을 만들기 때문이다.

건축주가 바른 의식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각오를 갖고 있다면 좋은 시공업체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좋은 건축주만이 나쁜 시공업체를 시장에서 도태시킬 수 있다.

 

이광훈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1기   : 2014.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