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5만원 때문에 생긴 일

해암도 2014. 6. 1.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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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이들과 나들이겸 아웃렛에 간 게 한 달 전이었습니다. 발단은 거기였습니다. ‘텐트(사실상 그늘막) 50% 할인’ 광고를 본 것이었죠. 이게 웬 떡이냐, 싶어 1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덜컥 그 텐트를 사버렸습니다. 단돈 5만원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는 흐뭇한 마음을 가누지 못했습니다.
 
저희 가족은 주말이면 한강시민공원에서 바람을 쐬곤 했습니다. 김밥 몇 줄만 준비하면 한나절 평화롭게 쉴 수 있어, 더없이 좋았지요. 돗자리야 집에 있는 걸 들고가면 되고, 물 한통과 김밥 두어줄만 준비하면 됐으니까, 아무런 부담이 없었습니다. 공원에 자리를 깔고 누워서, 아이들 웃는 소리를 들으며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바람을 느끼고 강물 내음을 맡고 있으면, 정말 ‘신선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더없이 평화로왔던 제게 유혹이 찾아온 건 한달 전이었습니다. 햇볕이 조금씩 강해지면서 ‘뭔가 그늘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슬금슬금 들기 시작한 거죠. 그러던 차에 텐트 할인 광고를, 그것도 50% 할인 광고를 보게 된 거였습니다.
 
저와 가족은 주말이 되길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과일이며 과자를 한가득 짊어지고 한강공원으로 달려갔지요. 물론 ‘득템’인 텐트를 가장 먼저 챙겼습니다. 저와 아내는 신이 나서 텐트를 쳤지요. 처음 쳐보는 텐트였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텐트 치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일 줄이야….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행복했습니다. 정말 남부럽지 않았었지요.
 
그런데 막상 텐트를 치고 났더니, 한가지 아쉬운 게 있었습니다. 바닥이었죠. 좀 울퉁불퉁한 건 풀밭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텐트 바닥이 얇은 비닐 한 장으로 돼 있어서 뭔가 깔개가 필요하다는 걸 느낀 겁니다. 텐트도 샀는데, 깔개 정도야 뭐 기본이지. 저는 주저없이 깔개를 사러 갔습니다.
매장 직원은 깔개 뿐 아니라 매트리스도 함께 권했습니다. 푹신푹신할 뿐 아니라 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차단할 수 있어, 항상 뽀송뽀송하고 쾌적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거였죠. 아닌게 아니라 강변이라 그런지, 한강공원에서 좀 놀다보면 축축한 기운이 올라오는 걸 느끼곤 했었거든요. 제 배꼽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습니다.
 
깔개 6만원, 매트리스 6만원. 5만원짜리 텐트를 샀는데 12만원의 부대비용이 든 것입니다. 그래도 여기까진 뭐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눈길이 옆으로 살살 돌아가기 시작하더군요. 우리 가족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음식을 먹는데, 옆 텐트는 근사하게 테이블 펴놓고는 그 위에 김밥이며 치킨이며 준비해온 과일을 차려놓고 우아하게 차까지 마시면서 ‘만찬’을 즐기고 있었거든요. 순간 아빠의 체면에 삐걱, 금이 가는 걸 느꼈습니다. 내가 저 놈의 테이블을 사고야 말리라.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뒤졌습니다.
 
별거 아니리라 생각했던 테이블은 그냥 테이블이 아니었습니다. 의자가 있어야 했고, 아이스박스가 있어야 했고, 보온병이 있어야 했고, 앞접시와 찻잔이 있어야 했으며,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음악용 스피커가 있어야 했습니다. 물론 가격은 천차만별이었죠. 의자 하나만 해도 싼 것은 2만원 정도, 비싼 것은 10만원을 오르내립니다. “싼게 비지떡 맞아요. 제 몸무게는 80kg 밖에 안되는데 의자가 부러졌어요.” 이런 사용기를 보고 있노라면, 손가락은 자연스럽게 더 비싼 의자를 클릭하느라 바빠지는 겁니다. 
 
의자 4개에 40만원, 아이스박스 9만원, 스피커 3만원, 보온병은 집에 있던 것으로 대체하고, 앞접시와 찻잔은 일회용으로 해결했습니다. 여기까지가 대략 50만원. 텐트는 5만원을 주고 샀는데, 부대 비용이 10배나 든 셈이죠.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쓸만한 나무 그늘 밑에는 항상 누군가가 텐트를 치고 있었고, 그래서 조금 한적한 곳을 찾다 보면 예외없이 햇볕이 강하게 내려쬐고 있었거든요. 요즘같은 날씨에 땡볕 밑에 텐트를 치면, 이게 또 장난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타프(햇빝 가림막)가 있어야겠어.’ 제 손가락은 또 다시 검색창으로 향했습니다. 타프요? 크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15만~20만원은 기본입니다.
 
한강공원에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주변 사람들의 위용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좋다는 텐트는 침실 뿐 아니라 거실까지 갖추고 있거든요. 여기에 텐트 한 동을 덧붙이면 ‘안방+건넌방+거실’ 구조로 변신이 가능하죠. 말만 텐트일 뿐, 사실은 근사한 ‘우리집’이 됩니다. 이런 텐트는 200만원을 훌쩍 넘기 일쑤입니다. 여기에 또 한가지 럭셔리 아이템이 추가됩니다. 강아지죠.
 
이쯤 되면 한강으로는 성이 안찹니다. 코펠과 버너를 준비해 본격적인 야영 시스템으로 접어들게 되는 거죠. 아시죠? 야영의 하이라이트는 바비큐라는 거. 서울 황학동에 가면 크고 작은 갖가지 형태의 바비큐 그릴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만만치 않습니다. 불렀다 하면 기십만원을 오르내립니다. 큰 맘 먹고 질러서 간만에 바비큐 야영을 결심하면, 불행하게도 그게 또 다른 시작이 됩니다. 정체불명의 중국산 숯으로 가족을 푸대접할 수 있나요. 공들여 장만한 야영 장비 체면이 있지. 전통 참 숯 사고, 고기 사고… 버섯 사고, 석쇠 사고, 집게 사고, 가위 사고, 야채 사고, 야채 담을 소쿠리 사고, 후식용 소시지 사고…. 이거야 원.
 
그런데 '유단자'들의 세계는 따로 있었습니다. 진정한 고수는 자동차를 바꾸더군요. 승용차에는 캠핑 장비가 다 들어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 제 처남의 친구 중 하나는 승합차를 새로 장만했습니다. 9인승 승합차에 텐트 싣고, 깔판 싣고, 매트리스 싣고, 테이블 싣고, 의자 싣고, 타프 싣고, 코펠 싣고, 버너 싣고, 바비큐 그릴 싣고, 고기 싣고, 야채 싣고, 석쇠 싣고, 집게 싣고, 가위 싣고, 숟가락 싣고, 젓가락 싣고. 죄다 싣고 나서는 남는 공간에 침낭 싣고, 스피커 싣고, 강아지 싣고. 그리고 기름 넣고 출발하는 거죠.
 
밤에 분위기 살려주시느라 이동식 조명을 싣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이들 만화영화 보여준다고 소형 빔 프로젝터를 장만하는 사람도 있고요. 온화한 밤바람을 맞으며 한 로맨스 해주려면 와인이라도 한 병 준비해야 됩니다. 이렇게 해서 ‘유단자’ 반열에 오르는데 필요한 투자비용은 최소 기백만원. 세게 꽃힌 경우엔 천만원이 훌쩍 넘어간다는 게, 고수들의 전언입니다. 물론 자동차 값은 빼놓고 하는 얘기지요.
 
저는 요즘 고민 중에 있습니다. 유단자들의 위용이 부럽기도 하지만, 저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낚인 것 같아 사실 좀 어리둥절 하거든요. 배꼽이 너무 커져서 배 밖으로 튀어나올 지경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래도 질러야 하는 건가요?  처음엔 그냥 5만원 뿐이었는데. 그땐 참 행복했었는데 말이죠.


글 | 이범진 조선pub 차장대우  : 2014-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