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경영 교과서' 뒤흔든 경영 사상가 맥그래스 교수
산업 경계 무너지고 경쟁 의미 바뀌어
카메라
경쟁업체, 과거엔 카메라회사뿐···지금은 스마트폰·아이패드도 라이벌
적과 아군 구별 힘들어진 세상···동일 업종 내 경쟁우위 전략에 종말
알려
- ▲ Getty Images 멀티비츠
그런데 최근 포터 교수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는 인물이 나타났다.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리타 맥그래스(McGrath) 교수다. 그녀는 지난해 출간한 '경쟁 우위의 종말(The End of Competitive Advantage·국내 미출간)'에서 책 제목부터 도발적으로 포터 교수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공교롭게 '최고의 경영 사상가 50(Thinkers 50)' 2013년 순위에서도 맥그래스 교수는 포터(7위) 교수를 간발의 차이로 누르고 6위에 선정됐다.
포터 교수 주장의 핵심은 다섯 가지 요인이 특정 산업의 경쟁 강도와 수익성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산업 내 기존 경쟁자의 위협, 잠재적 진입자의 위협, 대체재와 경쟁, 구매자의 교섭력, 공급자의 교섭력이 그것이다. 이런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은 원가를 낮춰 비용 우위 전략을 세우거나, 차별화를 하거나, 특정 서비스나 상품에 자원을 집중하는 집중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포터 교수는 주장했다.
- ▲ 맥그래스 교수
이 때문에 동일 업종 내 경쟁 상대를 누르고 경쟁 우위에 서기 위해 생산 원가를 낮추거나, 특정 상품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대응 방법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업은 생존을 위해 어떤 전략과 관점을 취해야 할까. 위클리비즈는 맥그래스 교수에게서 그 대답을 듣기 위해 컬럼비아대를 찾았다.
3M, 노키아, 듀폰, 도이치텔레콤 등 수많은 기업 컨설팅을 맡으며 수시로 비즈니스맨을 상대해서인지 그는 상아탑에 갇힌 학자 같은 타입이라기보다는 어딘지 여성 경영인 같은 느낌이 강했다. 걸음걸이엔 자신감이 넘쳤고, 말투도 마치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양 또박또박하고 또렷했다.
"기업은 종종 자신들의 가장 큰 경쟁자가 같은 산업 영역에 있는 다른 회사들이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고 '경쟁'의 의미가 바뀐 오늘날엔 그것이 가장 위험한 사고방식입니다."
오늘날 기업이 택해야 할 전략에 대해 맥그래스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 경영의 게임 방식은 적과 아군이 명확하고, 왕을 잡기만 하면 게임이 끝나 버리는 체스 같은 것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게임 규칙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지요. 오늘날 기업의 게임 방식은 좀 더 많은 영역에 진출해서 더 많은 집을 짓는 쪽이 이기는 바둑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게임의 세계에선 과거의 경쟁 우위 전략으로 승리할 수 없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요?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경쟁 우위를 계속 바꾸어 가면서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며 옮겨가야 합니다. 그런 기업만이 오늘날 게임에서 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맥그래스 교수가 변화의 리듬을 잘 타는 기업으로 꼽은 곳 가운데 하나는 미국 기업 밀리켄(Milliken & Company)이다. 위키피디아에서 밀리켄을 검색하면 사업 분야는 이렇게 나온다. '혁신, 리서치, 화학, 바닥 마감재, 특수 직물 제조'.
1865년 설립된 밀리켄은 원래 전형적인 직물·섬유업체였다. 하지만 아시아 등 인건비가 싼 곳에서 섬유산업을 육성하면서 미국 섬유산업이 급격히 쇠락하자 특수 직물, 바닥 깔개, 특수 화학품 등 자신이 갖고 있던 핵심 역량을 기반으로 해서 관련 영역으로 사업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맥그래스 교수는 오늘날 게임의 규칙이 바뀐 근본적 이유 중 하나로 인터넷을 꼽았다. "과거엔 한 영역이 다른 영역들과 서로 물리적으로 분리돼 있어 한 영역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다른 영역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으로 인해 각 영역이 상호 연계, 상호 의존하게 되면서 한 영역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다른 영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게끔 됐습니다."
맥그래스 교수는 이처럼 역동적인 시대엔 '안정성'이란 개념이 아주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안정성에 안주하는 이유로 그는 포터 교수가 말한 '경쟁 우위'를 지목했다.
"기업은 그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이미 구축해 놓은 현재의 경쟁 우위를 지키도록 대내외적으로 많은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주식시장의 압력, 투자자들의 압력 그리고 때로는 그 업계에 종사하는 종사자들로부터 받는 압력…. 기업은 이런 다양한 압력 때문에 자신이 고수해온 것을 쉽사리 바꾸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해온 방식을 계속 유지만 하려는 잘못에 빠지기 쉽지요."
그는 MBA 교육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우리는 지금도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 분석과 마이클 포터 교수의 '다섯 가지 힘(five forces)' 이론을 가르칩니다. 물론 이것들은 지금도 유용한 기능을 해요. 하지만 딜레마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과거와 같지 않다는 거지요. 과거엔 혁신과 전략을 함께 묶어서 생각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이제는 전략 커리큘럼을 혁신과 연관지어서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 ▲ 신은진 기자·블룸버그·게티이미지·토픽
그렇다고 맥그래스 교수가 무작정 수많은 영역에 진출해 문어발식 경영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 주장의 골자는 "경쟁력이 있는 영역을 전략적으로 선별해 확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은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거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시가총액이 10억달러가 넘는 상장 기업 4793개 중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순이익이 매년 5% 이상 늘어난 기업은 딱 10개였는데, 이들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모두 자신들이 가진 기술 경쟁력이 시대의 요구에 맞지 않을 경우 계속 그것에 집착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사업으로 정체성을 바꾸는 대신 자신의 정체성과 기술을 잘 살릴 수 있는 별개의 사업 부문에 활용한 곳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얼라이언스 부츠(Alliance Boots)라는 기업은 제약 도매업으로 시작한 회사지만 기존 사업의 노하우를 적용해 화장품 소매업에 진출했고, 현재는 다시 의료 서비스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한 케이스다.
또 다른 사례로 그는 GDCA(혹은 GD캘리포니아)라고 하는 컴퓨터 장비업체를 들었다. 컴퓨터 기술이 날로 발전하면서 경쟁사들은 기존에 생산하던 장비를 포기하고 완전히 새로운 장비를 개발하는 데 열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많은 고객사는 여전히 머더보드와 같은 기존 장비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만약 기존 장비를 사용하다가 문제가 발생하거나 개선하려고 해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GDCA는 이런 업체들의 새로운 수요를 겨냥해 기존 머더보드에 자신들이 만든 새로운 업그레이드 제품을 입혀서 고객사에 제공하기 시작했다.
맥그래스 교수의 주장은 오랫동안 한 분야, 한우물을 파 온 '스몰 챔피언'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에 대해 맥그래스 교수는 "내 주장과 스몰 챔피언은 공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몰 챔피언은 대개 아주 작은 틈새시장을 찾아서 성공한 기업입니다. 예를 들자면 곰 모양의 말랑말랑한 젤리를 만드는 회사나 금붕어 사료를 만드는 회사처럼 말이죠. 이런 업종은 그 자체가 특수해서 업체 간 경쟁이 일어날 수 있는 큰 시장은 아니에요. 스몰 챔피언들은 매우 독특하고 전문적인 자신만의 영역에 전문적 고객 수요를 갖고 있기 때문에 굳이 다른 영역으로 이동하지 않고서도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지킬 수 있었던 거죠."
정확한 결정보다 빠른 결정
그렇다면 기업이 리듬을 타면서 다른 영역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맥그래스 교수는 두 가지를 조언했다.
"오늘날 시장에선 경쟁 속도가 빨라지고 있기 때문에 빠르고 '대략 옳은(roughly right)' 결정이 정교하지만 느린 의사 결정을 이깁니다. 빨리 결정을 내리되 나중에 잘못된 것으로 판명됐다면 이를 발 빠르게 수정해서 정확한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 심사숙고형 결정보다 더 낫다는 겁니다."
대부분 기업의 의사 결정 과정은 자신들의 사업상 판단이 정확하다고 암시해 주는 정보를 수집한 뒤 그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해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맥그래스 교수는 그런 전략은 지금과 같이 급변하고 경쟁 우위가 일시적인 시장 환경에선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기업이 지속 가능하다고 믿는 자신들 전략이 사실은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우선 나쁜 뉴스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경쟁 우위가 점점 힘을 잃어가는 초기 단계에서 기업은 자주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보를 유리한 방향으로 곡해하곤 하지요. 여기에 해당하는 사례로는 노키아와 블랙베리를 들 수 있습니다. 아이폰이 처음 출시됐을 때 그 회사들은 '그래 봤자 우리한테 영향을 미치진 못할 거야'라고 낙관했어요. 기업 고객 위주로 성장한 블랙베리 역시 일반 소비재인 아이폰이 자신들의 사업에 위협이 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어요. 노키아도 개발도상국에서 자신들이 경쟁 우위를 확고하게 지킬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죠. 이들은 아이폰이라는 신기술이 기술 시장에서 어떤 영향을 끼칠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거나 혹은 보고서도 부정하려고 했던 겁니다."
그러나 맥그래스 교수는 "발 빠르게 변화하는 기업에서도 어떤 부분에선 변하지 않는 지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속적인 성장을 이룬 기업은 안정적인 가치, 안정적인 리더십, 매우 안정적인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인도 최대 IT 기업인 인포시스는 고객의 97%가 기존 고객입니다.
그런 반면 그들은 대단히 빨리 변화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어요. 시장에 참여하는 방식은 신속했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데도 실험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현상을 유지하는 데 치중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무조건 신속하게 변화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처럼 변화와 지속성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도 눈이 팽팽 돌아가는 변화 속에만 있을 경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잖아요?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뉴욕=오윤희 기자 조선 : 201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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