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파독 광부' 성사의 숨은 역할자 JP

해암도 2014. 3. 29. 08:55


“그때 내가 지하 1000미터 탄광에 직접 들어갔다와서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한테 전화를 걸었어. ‘광부들을 (독일로) 보냅시다… 경제건설에 크게 도움이 될 겁니다’라고 말이야.” (김종필 전 총리)

독일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독일로 파견됐던 광부·간호사 출신 교민들과 만나면서 그 당시 상황과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이 낯선 외국 땅에서 벌어들인 외화(外貨)는 우리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특히 우리 광부들이 독일로 파견되는 과정에는 김종필(JP) 전 총리의 ‘숨은 역할’이 있었다고 한다.

1963년 독일 갔다가 ‘광부 지원’ 요청 얘기 접해

김 전 총리가 직접 밝힌 일화다. 지난 2008년말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칩거해온 김 전 총리가 작년 12월 10일 모처럼 가졌던 국회 나들이에서였다. 김 전 총리는 자신의 기념사업회인 ‘운정회(雲庭會)’ 창립총회에 참석, 40분 동안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013년 12월 10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운정회' 창립식에 참석하기 전 기념관에 마련된 본인의 부조상을 보고 있다. 조선일보DB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013년 12월 10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운정회' 창립식에 참석하기 전 기념관에 마련된 본인의 부조상을 보고 있다. 조선일보DB
그 가운데 파독(派獨) 광부와 간호사들에 대한 부분이 있었다. 1963년 초까지 초대 중앙정보부 부장으로 활동했던 김 전 총리가 그해 국내를 떠나 있었을 때였다고 했다. 김 전 총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상하게 국내 있을 때는 별 게 없는데, (박 전 대통령이) 여기에 있지 말고 나가라고 해서 자의반 타의반 반반씩 가지고 외국으로 나가게 됐어. 그 때 독일에도 가게 됐는데, 당시 주 서독 대사였던 신응균 (전) 장군이 이런 얘기를 하더라구. 몇일 전 서독 정부가 루르 지방 탄광에서 일할 인력을 우리 한국이 제공할 수 없느냐고 했다는 거야.”

김 전 총리는 이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고 했다.

“내가 신 대사한테 본국에 보고했냐고 물어보니까, 보고했는데 계속 ‘함흥차사(咸興差使)’라고 하더라구. 그래서 내가 ‘그럼 당장 (서독에서 말하는 그) 광산에 한번 가봅시다’라고 했지. 우리 광부들이 일하게 될 수 있는 곳이니까….”

탄광 지하까지 가본 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직보(直報)

결국 김 전 총리는 그 다음날 독일 정부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아 루르 지방으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1000미터 지하 광산이었다.

“수직 700미터, 사선 300미터, 그러니까 1000미터 지하였어. 내가 우리나라 강원도 광산 막장까지 들어가봤지만 우리는 곡괭이로 파니까 기계가 못들어 가는데, 독일 광산에는 콘베이어벨트가 쭉 훑으면서 내려오더라구. 그런데 계속 지하로 내려가니까, 안내하는 관리가 위험하다고 그만 나가자고 했어. 우리 대사관 관계자들도 독촉하고… 그런데 우리 광부들이 와서 일하게 될 수 있는 곳인데, 또 돈 벌어서 본국에 보낼 곳인데, 내가 위험하다고 그냥 어떻게 나가? 결국 한 시간 남짓 그 안에서 땀 흘리면서 다 둘러봤어.”
박정희 전 대통령(오른쪽)과 김종필 전 총리의 지난 1966년 6월 때 모습. 두 사람이 웃으면서 대화를 하고 있다. /조선일보DB
박정희 전 대통령(오른쪽)과 김종필 전 총리의 지난 1966년 6월 때 모습. 두 사람이 웃으면서 대화를 하고 있다. /조선일보DB
김 전 총리는 광산에 나온 뒤 한국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이미 광부들의 급여와 복지 관련 내용까지 다 파악한 상태였다. 그런데 아직 박 전 대통령은 서독에서 광부 지원요청을 한 사실에 대해 제대로 보고 받지 못한 듯 했다고 한다. 김 전 총리는 전화로 광부 파견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내가 박 (전) 대통령한테 ‘대사가 (본국에) 보고했다는 데 못들으셨어요?’라고 물었는데, ‘아직 못들었다’고 하셨어. 그래서 내가 ‘탄광 막장까지 들어갔다가 조금 아까 나왔는데, (우리 광부들을 독일로) 보냅시다. (서독에서도) 정식으로 요청을 한다니까, (결국 우리) 경제건설 크게 도움될 겁니다’라고 했지.”

그 뒤로 서독에선 우리 간호사들에 대한 파견 요청도 했다. 김 전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또 있다가 (서독에서) 간호사를 보내달라더라구. 그래서 결과적으로 광부 8000여 명, 간호사 1만여 명이 독일에 가게 됐어. 그리고 이들이 가서 엄청 칭찬을 받아. 원래 우리 사람들 가기 전에 일본 사람들이 한 3000명 가량 왔었대. 그런데 2차대전 전운이 가시게 되니까 전부 본국으로 돌아갔다고 그러더라구.”

김 전 총리는 원래 서독이 파키스탄 등에서 인력을 지원받으려다 잘 되지 않아 우리나라에 요청을 하게 된 것이라는 설명도 했다.

그러면서 김 전 총리는 “결국 우리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결국 그곳에 가서 모국(母國) 경제발전에 기여를 한 것”이라며 “이 때문에 박 전 대통령도 1964년 12월) 독일 방문에서 이들을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한 게 아니냐”고 했다.


  • 김봉기
    프리미엄뉴스부
    E-mail : knight@chosun.com
    2005년 4월부터 정치부 기자로 활동 중이다. 총리실(..
  • 입력 : 2014.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