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북한 인권 조사한 유엔의 마이클 커비 위원장

해암도 2014. 3. 26. 05:14


全 세계가 보고서에 관심, 한국 정부와 정치인만 연락 없었다!




⊙ 북한의 반인륜 범죄, 북한 최고 권력에 의한 조직적 범죄
⊙ 수령(김정은) 국제형사재판 회부 안 되면 특별재판소 설치해 처벌할 수도 있어
⊙ 보고서 비난했던 북한, 반박 자료 요청해도 답 없었다

  “하루는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재봉틀을 떨어뜨렸습니다. 교도관이 오더니 벌로 내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소리 질렀습니다. 나는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나는 규정대로 오른손을 다 자르는 줄 알았습니다. 손이 잘리면 일을 하지 못하고 밥도 먹지 못합니다. 수용소에선 팔이 없으면 죽어야 합니다. 나는 내 오른손 중지가 잘리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교도관에게 감사했습니다. 내 손목을 자르지 않고 손가락만 잘라준 것이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신동혁씨가 작년 8월 20일 유엔(UN) 북한인권 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 공청회에서 증언한 내용이다. 그는 1981년 평남 개천의 14호 관리소 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삼촌이 한국으로 탈북했다는 이유만으로 부모를 비롯해 온 가족이 수용소에 수감됐다. 그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수용소에서 사는 줄 알았다고 했다.
 
  조사위원회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5개국에서 22회의 공청회를 개최했다. 신씨를 비롯해 80명의 피해자가 공청회에서 북한의 인권유린 실태를 고발했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를 비롯한 각계 전문가들도 공청회에 참가해 북한의 인권유린 실태에 대해 논의했다. 이를 바탕으로 조사위는 지난 2월 17일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를 발표했다. 2013년 5월 7일에 위원회가 구성되고 287일 만이다. 3월 17일 유엔 인권위원회 총회는 보고서를 최종 발표했다.
 
  약 8개월간의 조사를 직접 진두지휘한 인물은 조사위원장인 마이클 커비(Michael Kirby·75)다. 그는 1993년 캄보디아 인권침해에 대한 유엔 특별 조사를 맡는 등 국제 인권 문제에 조예가 깊다. 호주에서 30년간 판사 생활을 했으며 지난 2009년 대법관으로 은퇴했다. 그는 조사기간 내내 전 세계를 돌며 모든 공청회를 직접 주관했다. 청문회 도중 탈북자들의 증언에 눈물을 보여 해외 언론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조사를 마치고 최종 발표를 준비하고 있는 그에게 조사 결과에 관한 인터뷰를 요청했다. 메일을 보낸 지 30분이 채 안 돼 장문의 답장이 왔다. 우리나라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고 했다. 인터뷰는 사흘간 인터넷을 통해 이뤄졌다. 가벼운 질문부터 물었다.
 
  —조사위의 마지막 일정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지난달에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조사는 모두 마친 상태입니다. 하지만 조사위 활동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최종 임무는 보고서를 25차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하는 것입니다. 세계 각국의 문의가 많아 조사위는 3월 말까지 남은 업무를 처리하고 최종 해산합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유엔 인권이사회 사무국을 통해 우리에게 의견을 전할 수 있습니다.”
 
 
  “한국만 북한 인권에 무관심해”
 
지난 8월 20일, 서울 공청회에서 신동혁씨가 공개 증언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는데요.
 
  “한국 국민들은 특히 이번 조사 결과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같은 민족인 북한 주민들이 학대받고 있는 지금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해결책 마련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대다수 북한 주민은 여러분의 친척입니다. 한국에서 납치된 국민들이 지금 북한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북한의 인권 문제는 곧 한국의 문제입니다. 사실 이번 조사를 진행하면서 한국 국민들에게 많이 실망했습니다. 특히 한국의 젊은 사람들은 북한 문제에 점점 더 무관심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점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치인부터 나서서 현재 북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국이 북한 인권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느낌을 언제 받았나요.
 
  “최종 보고서가 온라인을 통해 처음 공개된 게 2월 17일입니다. 저는 그날 한국 언론이 어떤 보도를 하는지 유심히 살펴봤습니다. 한국 언론에서는 건물 붕괴 소식(경주 리조트 붕괴 사건)과 자국민 3명이 이집트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가장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조사위 발표를 비중 있게 다룬 언론은 없었습니다. 그날 한국의 신문과 방송에서 북한 인권에 관한 내용을 찾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저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당시 큰 사건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국의 무관심은 공청회를 진행하면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공청회를 참관한 사람들은 극히 소수였습니다. 서울에서도 가장 큰 대학(연세대)에서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참석자는 매우 저조했습니다. 물론 해외 언론들이 서울의 공청회를 비중 있게 다뤘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보고서가 발표되자 영국 BBC는 보고서 내용을 가장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중동의 알자지라 방송과 미국의 CNN도 같은 날 장문의 기사를 인터넷판에 올렸습니다. 

               취재지도 : 崔秉默 月刊朝鮮 편집장   글 : 劉旿相 月刊朝鮮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