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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김지하 읊고 곁에 선배는 울었던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해암도 2014. 3. 21. 07:03


김지하가 한 주점 벽에 낙서한 월북 시인 이용악의 '그리움', 벽지 그대로 경매에 나와
김 시인 "내 글씨 말고 詩 봐달라"

이용악 시인, 김지하 시인 사진
이용악 시인, 김지하 시인
취흥(醉興)이 가슴을 타고 손끝으로 흘렀다. 통음(痛飮)하는 와중에 시인은 까만 매직을 뽑아들었다. 그러고는 선배가 취기 오르면 늘 읊어달라 하던 시(詩), 그래서 읊어주면 눈물 줄줄 흘리던 시, 그 시를 휘갈겼다.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 철길 우에/ …/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 월북 시인 이용악의 '그리움'이었다.

20여년 전 시인 김지하는 이렇게 서울 인사동의 주점 '평화만들기' 벽에 낙서를 남겼다. 빈속에 깡소주 몇 병 들이켜고 한달음에 외워 토해낸 시다. 1990년대 평화만들기는 당대 문사(文士)와 좌우를 넘어선 언론인들이 주로 찾던 문화 살롱 같은 곳이었다. 김지하의 낙서는 "이름은 평화만들기였지만 좀처럼 평화는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모 단골 문인의 증언대로 밤마다 날 선 논쟁이 오가던 그곳을 늘 지켰다.

이 낙서시가 돌고 돌아 경매에 나왔다. 고미술 전문 경매 회사 옥션단이 26일 서울 수송동 전시장에서 여는 제17회 메이저 경매에서다. 평화만들기는 인사동 내에서 두 번 더 자리를 옮겼다가 얼마 전 문을 닫았고, 그 사이 주인도 바뀌었지만 낙서는 살아남았다. 첫 번째 주인이 가게를 옮기며 김지하의 낙서가 쓰인 벽을 아예 떼 가지고 갔다. 주인이 바뀐 다음 또 한 차례 이사를 갔지만 새 주인도 낙서를 걸어놨다가 이번에 경매에 내놨다. 마침 경매를 맡게 된 옥션단 김영복 대표는 시인과 오랜 친분을 쌓아온 사이였다. 김 대표는 강원도 원주에 사는 시인을 찾아가 이 사실을 알리고 발문(跋文)을 받았다.

시인은 기억하지 못한다 하나 시인이 휘갈긴 낙서는 세월을 견뎠다. 김지하가 20여년 전 서울 인사동 주점 평화만들기에서 술 취해 벽지에 휘갈겨 쓴 이용악의 시 ‘그리움’(가로 119cm, 세로 103cm). 이용악 시의 원문과는 약간 다르다. 김지하는 “내 글씨가 아니라 이용악의 글을 봐달라”고 했다
시인은 기억하지 못한다 하나 시인이 휘갈긴 낙서는 세월을 견뎠다. 김지하가 20여년 전 서울 인사동 주점 평화만들기에서 술 취해 벽지에 휘갈겨 쓴 이용악의 시 ‘그리움’(가로 119cm, 세로 103cm). 이용악 시의 원문과는 약간 다르다. 김지하는 “내 글씨가 아니라 이용악의 글을 봐달라”고 했다. /김미리 기자

'언제였던가/ 술 취했던가/ 용악의 詩行(시행)을 벽에 갈겨쓰고 지금 기억도 못 한다/ …/ 이 詩(시)가 어떻게 이렇게 나타나는가?/ 중요한 사건이다/ …/ 허허허/ 한 번 더 웃자/ 허허허허허/ 왜?/ 난 요즘 술을 못하니 웃음밖에 허!'

놀라움과 반가움과 그리움이 해학 속에 뭉그러진 시 한 편이었다. 알코올 빠진 시인의 필체는 20년 전 매직으로 거침없이 써내려갔던 낙서와는 달리 차분하다.

지난주 시인의 원주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내가 쓴 시도 아니고, 술 취해 쓴 건데 경매 부친다니 웃기는구먼. 아니, 뭐 종로에 김지하가 오줌 누는 거 누가 찍으면 그것도 팔겠네그려. 허허. 분명히 해둡시다. 이 시는 이용악 거요." 이 사건의 주인공은 이용악이란 점을 수화기 건너편 시인은 몇 차례 말했다.

껄껄 웃던 김지하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낙서를) 파는 건 파는 거고, 이 일을 계기로 두 가지가 확실히 알려졌으면 좋겠소. 하나는 이용악이라는 훌륭한 시인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민족 통일을 생각해야 할 때라는 것이오." '그리움'은 광복이 되자 함경도 무산 처가에 가족을 남겨두고 홀로 상경한 이용악이 1945년 겨울 어느 눈 내리는 밤 가족을 그리워하며 쓴 시다. "이용악은 진짜 위대한 시인이오. 예세닌, 미당과 맞먹소. 우리 민족의 서러움을 이토록 우아하게 담다니. 그런데 반세기가 흘렀는데 우리 민족은 여전히 갈라져 있소. 이제 이런 슬픔 털어낼 때 아니겠소?"

☞이용악(1914~1971)

함북 경성 출생. 일본 조치(上智)대 신문학과를 졸업했고, ‘인문평론’ 기자로 근무했다. 일제 치하 민중의 고뇌를 서정적으로 그린 시를 썼다. 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 회원으로 활약하다가 군정 당국에 의해 수감됐고, 6·25 때 월북했다. 대표작 ‘북국의 가을’ ‘오랑캐꽃’ 등.

김미리 | 기자   : 2014.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