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자서전 발간 당시 본지 인터뷰 기사. / 조선일보 DB
2008년 그는 장애를 딛고 마케팅 전문가로 성공하기까지의 경험을 담은 책 '모티베이터'를 펴내 15만부를 팔았다. 아침 방송에도 출연해 시청자들을 울렸다. 강연 요청이 쏟아졌다. 그러나 잠깐이었다. 2009년 KTF가 KT에 합병됐을 때 회사에 그의 자리는 없었다. 사람들은 곧 그를 잊었다.
6년 후 조서환(57)은 새 명함과 새 책을 들고 나타났다. 명함엔 '세라젬 헬스&뷰티 대표이사/사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책 제목은 '근성: 같은 운명, 다른 태도'(쌤앤파커스)다.
◇"삶을 긍정하지 않으면 어떡할 건데?"
장군을 꿈꾸며 육군3사관학교에 진학했던 조서환은 소위로 임관한 1978년 훈련 중 수류탄을 집어던지려다 폭발 사고로 오른손을 잃었다. 스물두 살 청년의 인생이 오른손과 함께 산산조각났다.
―이번 책에 "어릴 때 동네에 살던 '갈고리 아저씨'처럼 되기 싫었다"고 썼다.
"옛날엔 손 없는 사람들이 의수 대신 갈고리를 찼다. 우리 동네 그분은 부아가 나면 그 갈고리로 사람들을 위협했다. 나도 갈고리로 행패 부릴 수 있지만 그렇게 살긴 싫었다. '양손 있는 사람이랑 내가 뭐가 달라?' 생각했다. 한 손으로도 골프 87타 친다."
- 조서환의 손. 오른손이 의수(義手)다. / 이덕훈 기자
"어쩌면. 그런데 그렇게 안 하면 어떡할 건가? 설령 불행을 이기기 위해 어거지로 삶을 긍정한다고 해도 그게 정답이다. 살아보니 꿈꾸는 대로,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더라."
그의 왼손이 허공을 휘저으며 웅변하는 동안 오른손은 침묵했다. 손등의 핏줄까지 표현된 의수는 실리콘에 솜을 채워 만들었다고 했다. 무게는 0.5㎏. 그는 와이셔츠를 어깨까지 걷어올려 의수를 보여줬다. "옛날엔 부끄러워 목욕탕도 못 갔다. 그런데 지금은 내 트레이드 마크다."
―무덤덤해지기 쉽지 않았을 텐데.
"처음엔 힘들었다. 군인 되는 거 접고 다시 경희대 영문과 졸업하고 애경그룹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오른손이 의수라고 했더니 그 순간 면접이 중단됐다. 지하철역서 뛰어내릴까 고민하다가 다시 면접장으로 돌아가 '한 손 없는 게 대수냐'고 몰아붙였다. 한 여성 면접관이 그 얘길 영어로 해 보라고 했다. 무작정 했더니 다음날 합격 통지서가 왔다. 그 면접관이 바로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이다."
◇"맨땅에 헤딩? 당신 아직 이마에 '기스'도 안 났어!"
그가 2010년부터 몸담고 있는 '세라젬'은 의료 기기 전문 회사. 이곳에서 조서환은 화장품 중국 판매를 지휘하고 있다.
―2007년 12월 KTF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진급했고, 2009년 1월에 KT에선 '대기발령'이 났다. 낙차(落差)가 커서 충격도 컸겠다.
"'큰일 났다' 싶었다. 하하하. 민간 기업에선 공기업 고위직들이 복지부동(伏地不動)한다고 생각해 안 데려간다. 특별한 연(緣)이 없으면 재기가 힘들다."
―2010년 느닷없이 세라젬으로 옮겼다.
"1992년 미국 다이알사(社) 마케팅 이사로 시작해 KTF 부사장까지 자그마치 22년간 중역을 했더라. 적어도 CEO는 한번 해보고 싶었다."
―대한민국 굴지의 공기업에 있다가 다른 곳에서 일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맞다. KT는 직원 3만명에 연매출 21조원이니까. 여긴 직원 1580명에 연매출 3000억원이다. 여기 와서 중국에 가니까 KT와는 극과 극이었다. 광고비 없고, 사람 없고, 언어도 모르고…."
―이 회사 그만둔다고 굶어 죽는 것도 아닌데, 포기하고 싶지 않았나.
"아내한테 '여보, 나 힘들어서 도저히 못 견디겠어' 했다. 집사람이 날 보더니 '당신 툭하면 맨땅에 헤딩하러 간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더라. 내가 '지금 맨땅에 헤딩 중'이라고 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니. 당신 이마엔 지금 기스도 안 났어. 해보지도 않고 지레 아프다고 하고 있는 거 아냐?' 그 말이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려 마음 고쳐먹었다."
초등학교 동기인 부인 김경옥(56)씨는 조서환 인생의 '구원자'다. 오른손을 잃고 절망에 빠져 병원에 누워 있는데 여자 친구가 문병을 왔다. 몸도, 마음도, 꿈도 산산조각난 청년이 물었다. "아직도 나를 사랑해?" 눈물 글썽한 처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용기백배한 청년은 그날로 링거 바늘 꽂은 왼손으로 글씨 연습을 했다. 이듬해인 1979년 이들은 결혼했다. 슬하에 1남1녀를 뒀다.
- 조서환은 “오른손 없어서 불편했던 건 차(車) 없던 시절 비 내리는 날뿐이었다. 한 손으로 우산과 가방을 모두 들어야 했으니까”라고 했다. 한 손으로도 골프 87타를 친다는 그는 골프장에선 실리콘 안에 철사를 채워 골프채에 찢기지 않도록 특수 제작한 의수(무게 1.5㎏)를 낀다. / 이덕훈 기자
이번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긍정의 힘'이다. 그는 "젊어서 고통을 겪었기에 웬만한 고통은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어, 나한테 즐거운 일이 오려나 보다' 하고 생각한다"고 썼다.
―요즘 젊은이들은 핸디캡 있는 사람의 자기 긍정을 '정신 승리'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다른 사람 생각까지 신경 쓰진 않는다. 그건 '전략'이 아니다. 남 이전에 자신부터 이겨야 한다."
마침내 그가 '전략'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연극의 한 막(幕)이 끝났을 때처럼 '인간 승리의 화신' 조서환이 스르르 사라졌다. 대신 '마케팅계의 큰손' 조서환이 눈앞에 앉아 있었다.
―몇 년 만에 연락해서 '책 나왔다'고 알려온 것도 전략인가. 언론을 이용하려고?
"'이용'은 나쁜 의미고…. 사업가라면서 좋은 인맥 '활용' 못 하면 등신이다. 그래도 관계의 기본은 진심과 신뢰다."
그는 약간 당황한 듯 너스레를 떨었다. 좌천·대기발령 등을 견뎌낸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그는 책에 썼다. "작은 치욕에 연연하지 마라."
―무슨 뜻인가.
"KT에서 대기발령 상태였던 2009년 1년간 회사에서는 한가했지만 내 인생에선 가장 바빴다. 강연이 엄청나게 쏟아져서 연봉 포함, 8억원 정도 벌었다. 고수(高手)는 그 정도의 '치욕'은 초월하고 더 중요한 다른 가치를 찾아 나서는 거다."
멸시와 편견 그리고 동정…. '큰 치욕'으로 얼룩진 인생을 감내해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