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한옥狂' 안영환씨]

해암도 2014. 2. 6. 06:09

왜 한옥에 미쳤냐고? 할 사람 없으니 나라도 해야

 컴퓨터 전공하고 음식업 사장 하다가 지금은 한옥 짓는 매력에 푹 빠져…
2017년엔 하회마을 '한옥 호텔' 완공… 창덕궁 4대 亭子 모습 그대로 복원

돈 생각했다면 한옥에 그리 못 매달려


창덕궁 뒤뜰 연못에 열십(十)자 모양 정자가 서 있다. 왕은 과거시험 급제자를 여기로 불러 주연(酒宴)을 베풀었다. '부용정(芙蓉亭)', 연꽃 모양이란 뜻인데 제왕의 눈에 신진 기예들이 연꽃 같아 보였을 것이다. 더 안쪽으로 가면 애련정(愛蓮亭)이다. 네 기둥에 이런 글귀가 붙어 있다. '화애칭군자 구령헌성인(花愛稱君子 龜齡獻聖人)'…. 사랑스러운 연꽃은 꽃 중 군자요, 거북이 장수함을 임금이 누릴 수 있도록 바친다는 뜻이다. 한반도 모양을 닮았다는 반도지(半島池)에 선 관람정(觀纜亭),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자그마한 논바닥에 초가지붕을 얹은 청의정(淸漪亭)을 합해 사람들은 조선 건축미의 극한을 보여주는 창덕궁 4대 정자라 부른다.

이 아름다운 건축물이 경상북도 안동시 하회마을 입구 옛 주차장 터에 복원되고 있다. 부용정은 얼마 전 완공됐다. 올해엔 애련정이, 내년에는 관람정과 청의정이 들어서고 뒤이어 낙선재와 연경당이 차례로 건축된다. 이렇게 기와집 10동, 초가집 10동 300칸으로 이뤄진 '한옥 호텔'이 2017년 완성된다. 그때가 되면 이곳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은 일본이 자랑하는 료칸(旅館)을 능가하는 한국적 미와 조선의 왕만이 누릴 수 있던 호사에 흠뻑 빠질 것이다. 이 한옥들은 보고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군불 때워 뜨끈뜨끈한 구들장 위에 양식 화장실과 TV, 냉장고 같은 편의 시설이 있다. 한옥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공간이라는 누마루는 순식간에 목욕탕 겸 찜질방으로 바뀐다.

100억원이 들어가는 역사(役事)를 일으킨 이는 안영환(安永桓·57)이다. 그는 여기에 생을 걸었다. 한옥 학교를 만들어 대목(大木)을 양성하고 문화재청을 돌며 옛 설계도를 찾았으며 강원도를 돌며 목재를 구했다. 그런가 하면 소나무 관상(觀賞)에 일가견이 있어 전국을 돌며 최상품만을 찾아내 한옥 주변을 조경(造景)하고 있다.

"한옥 짓는 게 쉽진 않습니다. 하회마을 밖이어도 문화재 보존 지역 근처라 규제가 많아요. 왜 이리 규모가 큰가, 왜 하필 왕궁의 정자를 복원하느냐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그냥 건물이 아니라 문화재를 짓는 거지요." 이런 일도 있었다. 손님이 비를 맞을 순 없어 한옥 호텔은 회랑(回廊)으로 연결해야 하는데 '왜 회랑이 그렇게 긴가'라는 지적을 받은 것이다. 이런 사소한 문제에 부닥치면 몇 천만원 들인 설계비가 그냥 날아간다.

그의 호는 몽중(夢中)이다. '꿈속을 헤맨다'는 말처럼 특이한 삶을 살아왔다. 컴퓨터공학도에서 음식 업체 CEO로 돈을 벌더니 이제는 한옥에 미친 사나이가 된 것이다. 그의 한옥 건축론은 그냥 목수들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제가 한우 가격을 1인분에 1만원대로 낮췄어요. 4~5만원씩 받는 곳은 말이 안 되는 거지요. 보리굴비, 참 맛있는데 집에서 구워 먹긴 힘들잖아요. 공정을 바꿔 전자레인지에서 몇 분만 데우면 먹을 수 있게 했습니다. 한옥도 마찬가지입니다. 디자이너들에게 맡겨봤는데 고정관념 같은 게 있어요. 그러니 직접 아이디어를 짜내는 거죠. 부용정은 아홉 달 만에 완성했습니다."


	안영환 대표가 사학자 이병도의 집이자 진단학회 건물이었던 락고재에서 뭔가를 생각하고 있다. 그는“50대 이상은 아파트를 버리고 한옥으로 오라. 거기서 삶의 여유를 찾고 돈도 벌 수 있다”고 했다.
안영환 대표가 사학자 이병도의 집이자 진단학회 건물이었던 락고재에서 뭔가를 생각하고 있다. 그는“50대 이상은 아파트를 버리고 한옥으로 오라. 거기서 삶의 여유를 찾고 돈도 벌 수 있다”고 했다. /이서현 사진작가
안영환의 자취를 살피면 운명의 신(神)이라는 게 정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가 한옥과 만나게 된 것도 우연이다. 마포구 대흥동에 한옥 가진 이가 대뜸 "당신이 고쳐보쇼!"라며 맡긴 것도 그렇다. 천장을 뜯는 순간 숨 막힐 듯한 한옥의 선(線)을 보게 된 것이며 그때부터 한옥의 미에 개안(開眼)하게 된 것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에게 맡겨진 집이 하필 마포 황 부자가 살던 곳이었다는 게 우연일까. 마포 황 부자 집을 한때 장안의 명사들이 모였던 진사댁(進士宅)으로 만든 그는 명동파출소 옆 좁은 골목에 한옥 처마를 올리더니 안동시 하회리 해발 64m 부용정 맞은편에 초가 네 채로 된 한옥 호텔을 세우게 된다.

종로구 계동 뒷골목에 있는 한옥 한 채도 그의 작품이다. '옛것을 즐긴다'는 '락고재(樂古齋)'라는 옥호를 지닌 이 터의 주인은 원래 사학자 이병도(李丙燾)였다. 거기서 문일평, 최현배 같은 선비들이 '한국학'을 지켜왔는데 그것이 바로 1934년 발족한 진단학회(震檀學會)다.

이것이 그의 지갑을 두둑하게 만들어주는 것일까? 안영환이 말했다. "오히려 지갑이 홀쭉해지죠. 절 아는 사람들은 속으로 '미쳤구먼'이라고 할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요, 저 아니면 할 사람이 없는 거 같은데." '돈키호테' 같은 사나이의 가슴에 붙은 불은 언제 꺼질까. "모르죠, 4대 정자와 낙선재-연경당까지 끝내면 어떤 욕심이 생길지. 아마 돈 생각했으면 이렇게 처마와 들보에 매달리지는 못했을 겁니다."  문갑식이 간다 조선 : 2014.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