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막걸리 3代 신평양조 김동교씨 - '삼성 만찬酒' 대박…

해암도 2014. 1. 29. 06:24

'삼성 만찬酒' 대박… 젊은 취향 더했더니 먹히네요


삼성전자 박차고 家業 잇기로 결심
'막걸리바' 안주는 파스타와 순대… 당진 양조장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지난 9일 이건희 회장이 주재한 삼성 사장단 신년만찬에 처음으로 전통주 두 가지가 올랐다. 그간 와인 일색이던 잔칫상에 처음으로 전통주가 오른 것. 그중 하나인 '백련맑은술'은 4년 전 삼성전자를 박차고 나가 3대째 가업(家業)을 잇고 있는 김동교(40) 신평양조장 부사장의 작품이다. 가업 전수자가 없어 폐업 위기에 처했던 부친의 양조장을 물려받은 그의 화려한 복귀인 셈이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막걸리바 '셰막'에서 만난 그는 "삼성 만찬장에 우리 술이 쓰인 것은 나도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고 했다. "미리 알았으면 저도 술을 잔뜩 만들었겠죠(웃음). 행사 며칠 전 도매상에서 대량 주문하면서 '높은 데 쓰일 것'이라는 말만 하더라고요." 삼성 행사 이후, 백련맑은술은 '이건희 전통주'란 별칭이 붙으며 양조장이 바닥날 만큼 매진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김 부사장이 술빚기에 뛰어든 것은 2010년.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팀 3년차 과장 때였다. 세계 시장에서 TV·반도체 등 첨단 IT 제품을 세일즈하던 그가 막걸리 익어가는 향으로 가득한 양조장에 들어선 것이다.

삼성전자를 그만두고 가업(家業)인 전통주 양조(釀造)에 나선 김동교 신평양조장 부사장이 자신의 막걸리바‘셰막’에서 백련맑은술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삼성 사장단 신년만찬에 쓰이고서‘이건희 전통주’란 별칭과 함께 인기를 끄는 술이다.
삼성전자를 그만두고 가업(家業)인 전통주 양조(釀造)에 나선 김동교 신평양조장 부사장이 자신의 막걸리바‘셰막’에서 백련맑은술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삼성 사장단 신년만찬에 쓰이고서‘이건희 전통주’란 별칭과 함께 인기를 끄는 술이다. /김연정 객원기자
그는 "처음부터 가업을 이어받을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충남 당진에 신평양조장을 열고, 아버지가 2대째 막걸리를 빚었지만 '막걸리는 시장도 크지 않고 나이 든 분들이나 먹는 술'이라 생각하고 큰 관심이 없었다.

생각을 바꾼 것은 2009년 '막걸리 열풍'이 불면서였다. 곳곳에 막걸리바가 생기고, 전국에서 막걸리 전시회가 열렸다. "아버지와 함께 막걸리 시음회에 여러 번 갔는데, 매번 우리 부스 앞에 사람들이 몰리고 줄도 길게 서는 거예요. 저의 마케팅 경험과 아버지의 제품력이 합쳐지면 승산이 있을 거라 봤죠."

가업에 도전하기로 했다. "1년 정도 경력 단절을 각오하고 도전해봤다가 잘 안 되면 다른 회사로 이직(移職)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응은 단호했다. "양조장 문 닫아도 좋으니 제대로 할 거면 하고 아니면 관둬라." 수입쌀 대신 굳이 4배나 비싼 당진 쌀과 연잎으로 고급 술을 빚어온 부친 김용세(71) 대표의 고집이었다. 결국 삼성전자를 그만두고, 전통주에 전력투구하기로 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삼성이란 거대 조직에 있을 땐 누구도 함부로 못했죠. 그런데 직함을 떼고 영업을 나가니 반말은 예사에, 박대도 숱하게 당했습니다."

직함은 부사장이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영업팀장' 명함을 따로 파서 들고 다녔다. 신평양조장의 '백련막걸리'는 2009년 청와대 만찬주로 선정된 고급주(酒)였지만, 영업을 나가면 일단 값부터 후려치려고들 했다. 그래서 새 시장을 개척하기로 했다. 막걸리를 마시는 시간과 장소, 상황을 완전히 바꿔보자는 시도였다. "막걸리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농민, 근로자, 등산, 체육대회, 비 오는 날 정도? 이 상태로는 젊은이한테 다가설 수 없다고 봤어요."

2010년 서울 강남 복판인 신사동 가로수길에 막걸리 양조장이 직영하는 국내 최초 막걸리바 '셰막'을 열었다. 깔끔한 레스토랑 같은 분위기다. 전(煎)부터 순대볶음·파스타·스테이크까지 퓨전 요리에 고급 막걸리를 함께 낸다. 반응이 좋아 1년 만에 강남역 부근에 분점을 냈다. 손님의 60~ 70%는 20~30대 여성이다. '막걸리를 마시는 새로운 문화를 열겠다'는 시도가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다. 올해엔 당진 양조장에 술빚기 체험과 시음, 그리고 연꽃정원도 산책하는 '복합문화공간'도 만들 계획이다. "이것이 우리 전통주가 살 수 있는 방법"이란 생각에서다.

"와인은 2만원이면 싸다고 하는데 전통주는 1만원도 비싸다고 해요. '삼성 만찬주'로 화제는 됐지만 반짝 인기로 끝나면 안 되잖아요. 전통주에 대한 소비자 인식부터 바꿔 나가야죠. 매출을 크게 키우기보다는 재미있게 남들 안 하는 길을 찾아서 계속 꿈틀거려 볼 거예요."

박순찬 | 기자  : 2014.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