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비트코인으로 24시간 살아보기

해암도 2014. 1. 12. 06:38

이용업소 4곳뿐 … 세 끼 다 같은 카페서 빵으로 해결

서울서 비트코인으로 24시간 살아보니





“‘비트코인 다이어트’로 2.26㎏이 빠졌다.” 지난해 5월 비트코인(bitcoin)만 가지고 일주일을 산 미국 경제주간지 포브스 여기자 카시미르 힐의 후기다. 일반 화폐처럼 비트코인만으로도 생계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최근에는 “평양에서 미국에 위치한 시민단체로 비트코인을 송금했다”는 네티즌도 나타났다. 북한에서 이뤄진 첫 비트코인 송금이었다. 국경도, 통제도 없는 비트코인의 특성을 보여 준 대표적 사례다.

비트코인은 쉽게 말하면 디지털 금화다. 2100만 개로 한정된 재화이고 전 세계적으로 통용된다. 중앙은행 없이 e메일로 파일을 주고받듯 사람들끼리 비트코인을 주고받는 형태(P2P:Peer to Peer)다. 송금 수수료는 1% 미만. 2009년에 시작된 이 가상화폐는 복잡한 수학 연산 프로그램을 해결해야 코인이 얻어지는 일명 ‘채굴’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생성된다. 하지만 현재 개인이 비트코인을 캐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부분 거래소를 통해 비트코인을 구입하는데, 지난해 초 1비트코인에 30만원 정도 하던 것이 지금은 90만원 선까지 치솟았다. 가치 변동이 커 투기 위험성이 높다는 각국 중앙은행들의 경고도 연일 계속되고 있다.

현재 비트코인의 전체 시장 규모는 1조원에 달한다. 비트코인을 쓸 수 있는 온·오프라인 상점은 세계적으로 2만여 곳. 북미·유럽지역에서는 도시락 배달업체, 럭셔리 여행사, 숙박업소 등 다양한 업체가 비트코인을 받고 있다. 한국에도 최근 들어 비트코인을 받는 업체가 하나 둘 생겨났다. 박성의 인턴기자가 8일 오후 6시부터 24시간을 비트코인을 사용하며 지내 봤다.

8일 오전 11시 비트코인을 구입했다. 먼저 한화 비트코인 거래소 코빗(www.korbit.co.kr)에 계정을 만들고 10만원을 입금했다. 3시간 뒤 거래소 계정에 10만원이 들어왔고, 이 돈으로 0.11비트코인을 충전했다. 수수료는 0.6%. 정확히 한 시간 뒤 스마트폰 지갑(블록체인, blockchain.info)에 비트코인을 모두 담았다. 코인맵(www.Coinmap.org)에 따르면 8일 현재 비트코인을 쓸 수 있는 업체는 국내에 9곳이 있다. 이 중 서울에만 7곳이 있다. 실제 유형의 서비스가 없는 두 업체를 제외한 5곳을 이용키로 했다. 하지만 한 곳은 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업체 간 거리가 10㎞를 넘을 경우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오후 6시30분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있는 카페에 도착했다. 아메리카노 한 잔과 머핀을 구입하는 데 0.0079비트코인을 썼다. 기자의 스마트폰 지갑 출금란에 상대방 계정 주소를 입력했다. 스마트폰으로 은행 거래하는 것과 같은 시스템이다. 상대 계좌에 비트코인이 제대로 들어갔는지를 확인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5분. 영수증은 따로 없었다. 지난해 12월부터 비트코인 거래를 연 운영자 박준형(43)씨는 “처음 0.001비트코인을 받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0.12비트코인이나 모였다”고 말했다. 비트코인 유저 단골 10여 명이 팔아 준 ‘비트코인 매출’이다. 단골손님을 자처하는 이미란씨는 “신용카드만큼 쉽고 편리하다”며 비트코인을 계속 쓰겠다고 말했다.

오후 8시30분 한 시간을 걸어 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I바에 도착했다. 문제가 생겼다. 방문 당일 바에서는 비트코인 서비스를 하지 않았다. 붐이 일 때 호기심으로 시작했는데, 비트코인을 쓰는 사람이 드물어 잠시 이 서비스를 중단했다고 한다. 운영자 이주형(32)씨는 “9일 저녁부터는 서비스를 재개할 예정이지만 실제 활용한다기보단 마케팅 측면에서 홍보 효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후 10시 숙소가 있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으로 이동했다. 코인맵에 나와 있는 서울시내 유일한 숙박업소다. 도착해 집주인과 연락이 닿았을 땐 이미 방 예약이 끝난 상황이었다. 집주인 조아영(28)씨는 “지난해 8월부터 비트코인 거래를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비트코인을 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조씨가 비트코인에 입문한 건 지난여름. 북유럽 출신의 외국인 친구가 서울에 놀러 왔다가 밥값 대신 우리 돈 2만원어치 비트코인을 조씨에게 주고 갔는데 이 가치가 지금은 17만원으로 뛰었다. 조씨는 “호기심만 가져도 쏠쏠한 금전적 혜택을 볼 수 있다”며 비트코인을 추천했다. 하지만 기자가 그 방에서 8일 밤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은 내주지 못했다. 결국 가락동에 위치한 선배의 자취방에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 대가로 1만5000원에 달하는 0.015비트코인을 치렀다.

9일 오전 9시30분 주린 배를 부여잡고 첫 끼니를 때우러 길을 나섰다. 전날 들른 석촌동 카페까지 30분이 걸렸다. 9일은 서울 최저기온이 영하 10.4도까지 떨어지는 등 맹추위가 기승을 부린 날이다. 전날처럼 아메리카노와 머핀을 먹었다. 밤사이 시세가 달라져 0.0073비트코인을 썼다. 남은 비트코인은 0.07.

낮 12시30분 수강료를 비트코인으로 받는다는 강남구 삼성동의 한 내신학원에 도착했다. 실제로는 교재비만 비트코인으로 받고 있었다. 학원장 김민호씨는 “실험적으로 학원생들이 바로 구매하기 쉬운 교재를 비트코인으로 받아 보려 한다”고 말했다. 실제 비트코인을 쓴 학생은 단 한 명이었다. 학원에 부탁해 특별히 한 시간 동안 학업 상담을 해 주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시급으로 0.006비트코인을 받았다. 점심을 먹으러 갈 힘이 남아나지 않았다.

오후 2시 마지막 관문인 청담동 W미용실에 도착했다. 꼬르륵거리는 소리도 감추고 칼바람도 피하느라 오전 내내 몸을 오그렸더니 온몸이 욱신거렸다. 미용실에서 내어 준 차 한 잔에 눈물이 났다. 머리를 다듬고 드라이까지 하는 가격으로 0.044비트코인을 지불했다. W미용실 홍보실장 이경원씨는 “유행에 민감한 미용업계 특성상 비트코인을 써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도입한 지 일주일. 지금까지 2명이 이용했는데 아마 더 늘 것이라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오후 4시 해가 저물기 전 석촌동 카페에 다시 들어가 마지막 끼니를 해결했다. 이제 이 집 머핀은 눈 감고 냄새만 맡아도 무슨 맛인지 알 것 같다. 비트코인 지갑을 열어 봤다. 조금 사치를 부려 치즈케이크와 캐러멜 시럽이 듬뿍 들어간 음료를 골랐다. 남은 비트코인은 0.012, 거래소 환율을 보니 9일 오후 6시 현재 우리 돈 1만600원 정도다.

포브스 여기자 카시미르 힐이 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비트코인이 가장 활발하게 쓰이는 지역이다. 그럼에도 2.26㎏이 빠졌다. 국내에서는 일주일은 고사하고 하루 살기도 아직은 힘들다. 도입 초기다 보니 원료 값 부담이 있는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종에서 비트코인 활용도가 높다. 한화 거래소 코빗 김진화 이사는 “미국은 비트코인 결제서비스인 비트페이(Bitpay)와 같은 애플리케이션이 개발되는 등 인프라가 마련되고 있다”며 “환경이 조성되면 업체들도 활발하게 비트코인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비트코인이 기존 화폐를 대체한다기보다 컬트(Cult)문화처럼 매니어들을 중심으로 서브 화폐처럼 쓰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밝혔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업체 관계자들도 “사업용으로 큰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 모두 당장은 비트코인을 홍보 수단처럼 쓰고 있지만 언젠가는 비트코인이 ‘화폐계의 인디문화’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카페 운영자 박준형씨는 요즘 비트코인 유저만을 위한 신메뉴를 개발하고 있다. 새로운 문화를 창조한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유재연 기자·박성의 인턴기자 queen@joongang.co.kr   중앙 2014.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