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올해 Why?의 주인공, 그들을 성공으로 이끈 건 'S·L·O·W'

해암도 2013. 12. 28. 15:03

인터뷰 50여명 분석해보니
Why?는 2013년 한 해 동안 커버스토리를 통해 50여명의 사람을 만났다. 지난여름 LPGA(미국여자프로골프) 메이저대회 3연승을 달성한 골프 여제(女帝) 박인비(25)처럼 생애 최고의 순간을 지나는 이들도 있었고, '생전 처음 꼴찌를 해봤다'는 한화 이글스 김응용(73) 감독같이 삶의 바닥에서 헤매던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들에게 Why?는 거듭 물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올해 Why?에 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다시 꺼냈다. 그리고 다음 한 해를 사는 데 힘이 되는, 마음에 깊이 새길 만한 이야기를 되짚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S·L·O·W라는 키워드로 모였다. 즉 멈춰 서 생각하고(Stop and think), 꿈을 동경하고(Long for dream), 한 발 한 발 몸으로 밀고 나가고(Just dO it), 헤매는 걸 두려워 말라(Wander around)는 메시지였다.

S(stop and think)

'구도의 작가' 이우환 "생각 잘 안 풀리면 홀로 찻집에 가 잠깐 쉬며 생각합니다" 문신용 교수도 '知止'의 중요성 강조


◇"천천히, 멈춰 서서, 한숨 쉬고"

'구도(求道)하는 작가'라 불리는 이우환(77)은 지난 11월 서울을 찾았을 때 자신의 일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나의 하루는 오전 8시 전후, 한 시간가량의 산책으로 시작된다. 오전에 몇 시간 작업을 한다. 작업을 안 하는 날은 뜰의 풀을 뜯거나 소요(逍遙)한다. 생각이 잘 풀리지 않으면 틈을 내어 홀로 찻집에 간다. 찻집에 앉아 잠깐 쉬며 생각하는 시간이 나에겐 정말 소중하다." 스마트폰도, 컴퓨터도 쓰지 않는 그는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말했다. "천천히, 멈춰 서서, 한숨 쉬고…. 요새 젊은이들, 잠시 걸어가며 숨 쉬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조금 더 한다면은 자기의 손짓 발짓으로 공기를 느껴보는 그런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고요."

Why?에 나온 많은 명사는 전진(前進)도 좋지만, 틈틈이 멈추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험관아기의 아버지'인 문신용(65) 전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엠여성의원 교수)는 "지지(知止·멈출 때를 앎)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2006년 '황우석 사태' 때 과학기술부 세포응용연구사업단 단장으로 황우석팀과 공동연구를 했다가 도의적 책임을 피하지 못했던 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제 스승인 하워드 존스 교수님은 '멈춰라. 그리고 생각하라'고 늘 말씀하셨어요. 스스로 이런 질책을 많이 해요. '너도 그때 좀 생각을 하고 브레이크를 걸었어야지!'"

노장(老將) 야구 선수 이병규(39·LG트윈스)는 너무 올라가는 것이 두렵고, 그래서 어느 정도 올라갔다고 생각하면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른다고 했다. "한 해는 잘했다가 한 해는 떨어졌다가…. 이렇게 되는 게 싫었다. 나 자신이 정상이라고 생각되면, 그때부터는 일(一)자로 쭉 가고 싶다. 물론 좀 무리하면 어느 정도 더 치고 올라갈 수는 있을 거다. 근데 그렇게 되면 떨어지는 것밖에 남지 않는다."



	[Why] 올해 Why?의 주인공, 그들을 성공으로 이끈 건 'S·L·O·W'
L(Long for dream)

'빙속女帝' 이상화 "최선의 노력도 좋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간절하게 바라는 것" 어릴적 결핍과 동경, 삶의 에너지로 연결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싶다'…동경과 결핍이 힘이다

Why?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 완벽하지 않다고 했다. 하고 싶고, 되고 싶고, 가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것 때문에 늘 결핍을 느끼고 있었다. 그 결핍은 동경으로, 그리고 삶을 밀어붙일 에너지로 이어졌다. 2013년 한 해 동안 Why?에 등장한 인물들이 사용한 주요 단어 7만9000여개를 분석해 보니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170여차례가 나온 '…싶다'였다.

24년째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로 활동하는 임헌정(60) 서울대 작곡과 교수는 마음속 '동경'이 자신의 음악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6·25전쟁 직후 태어난 그는 늘 먹을 것과 놀 것이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그는 '저 산 너머엔 누가 살까'부터 시작해 언제나, 무언가를 동경했다. 그는 지난 1월 인터뷰에서 "그때의 동경은 훗날 나의 음악에 영감과 상상력, 환상을 불어넣었다. 동경이란 것은 굉장한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것"이라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감독 정수웅(70)은 30대 때 중앙아시아에서 우연히 만난, 신라의 반가사유상과 닮은 불상의 미소 하나에 반해 삶을 담보로 세계 곳곳을 찾아다녔다. '이 미소는 어떤 루트로 전파된 것일까.' 그는 이 화두에 대한 동경심 하나로 60대 후반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파키스탄 격전지로 들어가 다큐멘터리 '스마일 로드'를 찍었다고 했다.

1998년 11월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오승은(하버드대 의대 박사 후 연구원)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답이 없는 문제를 푼다는 게 참 어려워요. 하지만 어려운 건 도전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죠."

O(Just Do it)

'대한민국 마지막 개룡남' 장승수 변호사" 안하면 뭐할겁니까, 밑져야 본전인데…"뭐든 하고 보자는 마음으로 난관 뚫어

◇"안 하면 뭐할 겁니까"…몸으로 '벽'을 뚫어라

지난 6월 Why?는 장승수(42)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막노동 일꾼으로 일하다 1996년 서울대 인문계에 수석 합격해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란 책으로 유명해졌다. 대한민국의 마지막 '개룡남(개천에서 난 용)' 장 변호사는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갔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이런 말을 날렸다. "밑져야 본전이지요. 안 하면 뭐할 겁니까." 서울대 입학 전까지 포크레인 조수 등 일곱 개 직업을 거쳤던 그는 '하고 보자'라는 마음으로 가난이라는 벽을 돌파했다. 입시 준비 땐 교과서를 글자 하나까지 다 암기했고 변호사가 되고선 사건 기록을 모조리 외운다고 했다. "선택은 두 가지다. 한번 열심히 해보느냐, 아니면 '나는 운도 없고 잘난 것도 없으니 안 된다'고 포기할 것이냐. 나는 확신한다. 몸과 머리는 쓰면 쓸수록 좋아진다."

'하고 보자' 정신은 올해 Why?가 만난 많은 스포츠 선수와 연예계 스타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었다.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이상화(24)는 "뭘 그만두느냐. 그냥 하자"라는 생각으로 슬럼프를 이겼다고 했다. 그는 지난 4월 Why?와 만났다. "(성적이 안 좋을 땐) 계속 도전했어요. 끊임없이. 혼자 야간 운동을 한 적도 많았어요. 그래도 다음 경기에서 성적이 또 안 좋아요. 그래도 주저하지 않고 또 달렸어요. 또 안 좋아요. 그런데 아주 조금씩 조금씩 좋아지는 게 보여요. 아주 미세하게. 그 미세한 작은 발전을 토대로 달렸어요. 계속…."

대마초·표절·음주운전 등 숱한 위기를 겪고도 여전히 최고의 위치에 있는 가수 이승철(47)은 지난달 말 위기관리법을 묻자 '노래하기일 뿐'이라고 했다. "가수는 결국 모든 변명을 노래로 하는 겁니다. 저는 노래를 통해 슬럼프에서 벗어났어요." 1990년대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된 직후 방송이 그를 외면했을 때, 그는 한 해 평균 100번씩 콘서트를 열었다.

W(Wander around)

'알 수 없는 게 인생, 헤매는 게 인간이다' 김황식 前 총리 "일희일비할 필요 없어" 정경화 "후회되는 일, 모두 안 한 것들뿐"

◇알 수 없는 인생, 헤매는 게 인간이다

올해 Why?가 만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소설은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였다. 지난 9월 6년 만에 한국을 찾은 중국의 인기 소설가 위화(余華·53), 손가락 부상을 극복하고 아시아투어를 한 바이올린 거장 정경화(65), 장편 애니메이션 '사이비'를 만든 연상호(35) 감독이 '여러 인간 군상에 대한 다양한 통찰력을 주는 책'이라며 '안나 카레니나'를 최고의 소설로 꼽았다. 귀족 부인이 젊은 장교와 금지된 사랑에 빠져 파멸하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에 나온 인물들의 공통점은 '어쩔 수 없어 계속 헤맨다'는 것이다.

Why?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도 '삶엔 정답이 없다, 그러니 헤맴을 받아들여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왔다. '직선제 이후 최장수 총리'를 지낸 김황식(65) 전 총리는 2월 "젊을 때는 내 뜻대로, 계획대로 되는 것 같지만 인생의 중후반으로 가면 모든 것이 내 뜻대로 안 된다. 그러니 일희일비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 유일의 4할 타자 백인천(71)은 야구에 중독됐던 지난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옛날처럼 돌진하는 스타일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드러운 중독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치를 일찌감치 알 수 없다는 게 인생인 것을 어쩌겠나."

헤매서 후회된다는 사람은 없었다. 젊은 시절 완벽주의자로 이름을 날렸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지난가을 인터뷰에서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나는 '헤매더라도 그냥 해야 했는데' 하는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뒤돌아 생각해보니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일들이 모조리 안 한 것들이더라 이겁니다."

 

 김신영·곽창렬 기자 조선 : 2013.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