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여 년 이어온 우리 술, 세계적 명주로 만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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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청길 금정산성토산주 대표가 갈대를 깐 황토방 선반에서 발효 중인 피자 도우 모양의 누룩 덩어리를 들어보이고 있다. 유 대표는 누룩을 제대로 발효시키기 위해 황토방에 사시사철 연탄불을 때 내부 온도를 35~40도에 맞추고 있다. 강원태 기자 wkang@ |
부산 금정산 해발 400m지점에 자리한 산성마을. 마을 중간에는 막걸리를 만드는 자그마한 술 공장이 자리하고 있다.
술 공장 내부로 들어서면 은은한 막걸리 내음이 방문객을 반긴다. 한편의 발효실에는 730ℓ들이 스테인리스 술통이 가득 들어차 있다. 술통에서는 '보글보글' 막걸리가 발효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그 안에서 막대기로 술통을 휘젓는 사람을 만난다.
고조부 때 전통방식 고수
대량생산으로 술맛 잃을까
대기업 동업 제의 모두 거절
내년엔 제2공장 만들고
관광객 체험타운도 계획
"겨울에는 누룩과 고두밥, 물을 배합해 술통에 넣어 일주일가량 발효시키면 막걸리가 만들어집니다. 사흘 정도 발효된 술통의 술 익는 소리가 가장 큽니다. 그 뒤부터는 소리가 점점 줄어듭니다. 닷새가량 지나면 표면의 부유물들이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이때 술통을 만져보면 따뜻한 온기가 느껴집니다. 제대로 발효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열기가 식으면 비로소 제대로 된 막걸리가 완성됩니다."
유 대표는 국내 최고의 막걸리 전문가. 최근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국내 최초의 막걸리 분야 식품명인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누룩을 띄워 전통적인 기법으로 막걸리를 만드는 그의 고집을 인정한 것이다. 특히 유 대표가 보유한 누룩 제조 비법이 산성마을에서 최소한 500년 이상 계승된 것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지금도 술공장에서 400여m 떨어진 50년가량 된 낡은 옛집에서 그의 여동생들과 함께 통밀을 거칠게 갈아 직접 반죽해 만든 누룩을 갈대로 만든 발 위에 널어 황토방에서 발효시킨다. 그의 어머니인 전남선(84) 씨와 조모(안귀연), 증조고모(유도순), 고조부(유성주) 때부터 이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옛날부터 산성마을은 술을 잘 만드는 마을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저도 어머니가 누룩을 만들어 장에 내다 판 돈으로 공부도 하고 밥도 먹었죠. 항상 집에서는 누룩이 발효되는 콤콤한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술 빚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금정산성막걸리는 현재 하루 평균 750㎖들이 병을 기준으로 6천 병가량 생산돼 전량 판매된다. 전통 방식으로 막걸리를 제조하는 만큼 주문이 아무리 쇄도해도 더 이상 생산할 수도 없다. 명절 앞이면 차례상에 올리기 위해 전국에서 선주문이 몰려들고 있다. 유 대표는 내년쯤 250평 규모의 제2공장을 만들어 하루 평균 생산량을 최대 2만 병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그동안 동업을 제안하는 큰 기업체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모두 거절했습니다. 국내 전통 술도가들이 대기업과 손잡고 대량 생산했다가 술맛도 잃고, 소비자들의 신뢰도 잃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모습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비록 생산량이 적어 큰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맛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금정산성막걸리가 처음부터 소비자들의 호평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지난 1979년 산성마을에 거주하던 150여 가구가 5만 원씩을 갹출, 금정산성토산주라는 유한회사를 설립해 막걸리를 공동 생산했지만 판매량은 미미했다. 결국 유한회사도 유야무야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유 대표는 지난 1997년 이 회사의 대표로 취임, 금정산성막걸리의 재기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았다.
"지금과 같은 술 맛을 내기 위해 옛날 책도 보고, 전문가들의 조언도 구하는 등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때려치우자는 마음이 들었는데 오기로 버텼습니다. 4~5년 동안 실험한다고 쏟아버린 술이 200여 항아리는 될 겁니다. 거부감이 없이 술술 넘어가고, 다음날 숙취 걱정도 없는 그런 막걸리를 만들면 소비자들이 알아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10여 년이 지나고 2008년께부터 현재와 같은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유 대표는 "새로 짓는 공장에는 관광객들이 막걸리를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산성마을을 전통주 체험타운으로 자리매김시키고 싶다"며 "산성막걸리를 세계적인 명주로 발돋움시키는 것이 저의 마지막 남은 소망"이라고 말했다.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 2013-12-16
술 공장 내부로 들어서면 은은한 막걸리 내음이 방문객을 반긴다. 한편의 발효실에는 730ℓ들이 스테인리스 술통이 가득 들어차 있다. 술통에서는 '보글보글' 막걸리가 발효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그 안에서 막대기로 술통을 휘젓는 사람을 만난다.
애주가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는 금정산성막걸리를 만드는 (유)금정산성토산주의 유청길(57) 대표.
고조부 때 전통방식 고수
대량생산으로 술맛 잃을까
대기업 동업 제의 모두 거절
내년엔 제2공장 만들고
관광객 체험타운도 계획
"겨울에는 누룩과 고두밥, 물을 배합해 술통에 넣어 일주일가량 발효시키면 막걸리가 만들어집니다. 사흘 정도 발효된 술통의 술 익는 소리가 가장 큽니다. 그 뒤부터는 소리가 점점 줄어듭니다. 닷새가량 지나면 표면의 부유물들이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이때 술통을 만져보면 따뜻한 온기가 느껴집니다. 제대로 발효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열기가 식으면 비로소 제대로 된 막걸리가 완성됩니다."
유 대표는 국내 최고의 막걸리 전문가. 최근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국내 최초의 막걸리 분야 식품명인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누룩을 띄워 전통적인 기법으로 막걸리를 만드는 그의 고집을 인정한 것이다. 특히 유 대표가 보유한 누룩 제조 비법이 산성마을에서 최소한 500년 이상 계승된 것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지금도 술공장에서 400여m 떨어진 50년가량 된 낡은 옛집에서 그의 여동생들과 함께 통밀을 거칠게 갈아 직접 반죽해 만든 누룩을 갈대로 만든 발 위에 널어 황토방에서 발효시킨다. 그의 어머니인 전남선(84) 씨와 조모(안귀연), 증조고모(유도순), 고조부(유성주) 때부터 이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옛날부터 산성마을은 술을 잘 만드는 마을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저도 어머니가 누룩을 만들어 장에 내다 판 돈으로 공부도 하고 밥도 먹었죠. 항상 집에서는 누룩이 발효되는 콤콤한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술 빚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금정산성막걸리는 현재 하루 평균 750㎖들이 병을 기준으로 6천 병가량 생산돼 전량 판매된다. 전통 방식으로 막걸리를 제조하는 만큼 주문이 아무리 쇄도해도 더 이상 생산할 수도 없다. 명절 앞이면 차례상에 올리기 위해 전국에서 선주문이 몰려들고 있다. 유 대표는 내년쯤 250평 규모의 제2공장을 만들어 하루 평균 생산량을 최대 2만 병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그동안 동업을 제안하는 큰 기업체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모두 거절했습니다. 국내 전통 술도가들이 대기업과 손잡고 대량 생산했다가 술맛도 잃고, 소비자들의 신뢰도 잃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모습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비록 생산량이 적어 큰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맛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금정산성막걸리가 처음부터 소비자들의 호평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지난 1979년 산성마을에 거주하던 150여 가구가 5만 원씩을 갹출, 금정산성토산주라는 유한회사를 설립해 막걸리를 공동 생산했지만 판매량은 미미했다. 결국 유한회사도 유야무야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유 대표는 지난 1997년 이 회사의 대표로 취임, 금정산성막걸리의 재기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았다.
"지금과 같은 술 맛을 내기 위해 옛날 책도 보고, 전문가들의 조언도 구하는 등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때려치우자는 마음이 들었는데 오기로 버텼습니다. 4~5년 동안 실험한다고 쏟아버린 술이 200여 항아리는 될 겁니다. 거부감이 없이 술술 넘어가고, 다음날 숙취 걱정도 없는 그런 막걸리를 만들면 소비자들이 알아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10여 년이 지나고 2008년께부터 현재와 같은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유 대표는 "새로 짓는 공장에는 관광객들이 막걸리를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산성마을을 전통주 체험타운으로 자리매김시키고 싶다"며 "산성막걸리를 세계적인 명주로 발돋움시키는 것이 저의 마지막 남은 소망"이라고 말했다.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 201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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