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29일 서울 서대문구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뭘 먹어야 100세까지 건강할 수 있을까?
105세 김형석 연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를 만나기 전 제일 궁금한 점이었다. 행복한 100세의 첫 번째 조건은 건강한 몸이요,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남들과 다른 ‘특별한’ 음식을 먹지 않을까란 생각에서였다.
지금도 전국으로 강연을 다니는 그의 건강 장수 비결을 낱낱이 알기 위해 냉장고를 털었다. 그동안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공간이다. 메인 냉장고뿐만 아니라 보조 김치냉장고까지 엿봤다.
초장수 위인이 무엇을 즐겨 드시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만약 다소 뻔한 푸른 야채만 잔뜩 나온다 할지라도 ‘정말 채식이 중요하구나’ 몸소 느낄 수 있는 동기 부여가 되리라.

김형석 교수의 냉장고 안. 실제 채소가 많기는 했다. 정세희 기자
그의 손길이 닿은 자택 곳곳에 비밀이 숨겨 있지 않을까. 김 교수에겐 설명할 것도 없는 당연한 일상이 일반 사람들에겐 새로운 통찰을 줄 수도 있을 거라 확신했다.
여러 번 거절하는 그를 어렵게 설득한 끝에 서울 서대문구 자택을 방문했다. 가장 먼저 따사한 햇살이 비추고 있는 거실 맞은편 주방을 향했다.

김형석 교수 자택 내부 모습. 정세희 기자

김 교수는 서재가 있는 2층 계단을 지팡이도 없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오르락내리락 한다. 서지원 기자
그의 식사를 10여 년간 챙기고 있다는 가사도우미에게 평소 김 교수가 어떻게 식사하는지 물었다.
“별거 없는데….” 민망한 듯 열어 보인 냉장고엔 양파·파·당근 등 가지런히 썬 야채가 제일 먼저 보였다. 그 옆에는 시금치·깻잎무침·훈제오리 등 반찬이 잘 정돈돼 있었다.
다소 평범해 보였던 냉장실엔 의외의 애착 반찬이 발견됐다. “이걸 365일 매 끼니 때마다 드세요. 마지막에 밥을 꼭 여기에 말아 드신다니까요.”
〈100세의 행복〉 1화는 김형석 교수 자신도 모르는 장수비결도 털겠다는 각오로 임했다. 준비한 A4용지 3장짜리 질문에 대한 해답을 모두 찾았다.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그의 애착 음식도 담았다. 더중앙플러스 독자들만을 위해 행복 철학의 정수도 뽑아줬다.
목차
📌 삼시 세끼 챙겨 먹는 반찬
📌 백 년을 살아보니 늙는다는 건
📌 105세 철학자 인생의 고민
📌 60세 넘어 고독한 자, 이기주의자
📌 장수비법? 질문의 방향을 바꿔라
※〈100세의 행복〉 다른 이야기를 보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①티라미수 한조각, 점심이었다…97세 서울대 前총장 ‘초절식’
②“폐암입니다” 1년 뒤 되레 팔팔했다…101세 대주교의 비밀
삼시 세끼 챙겨 먹는 반찬

김형석 교수 냉장고 안 반찬들. 정세희 기자
105세 노인의 식사를 준비하는 건 신경 쓸 게 많을 것 같지만 도우미 아주머니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김 교수도 “아마 우리 아주머니가 세상 편할 것”이라고 옆에서 거들었다.
일단 아침 식사 식단이 평생 똑같다. 우유 반 잔, 호박죽 반 접시, 계란 반숙, 찐 감자, 드레싱 없는 야채 샐러드, 그리고 제철 과일. 늘 같은 메뉴를 먹으면 질릴 법도 한데 여전히 맛있다고 한다. 이미 영양적으로 좋은 구성이라 변동을 줄 필요가 없고, 아침 식사에 많은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대신 점심과 저녁은 단백질 반찬을 골고루 먹으려고 노력한다. 만약 점심에 고기를 먹었다면 저녁엔 생선을 먹는 식이다.
20대 땐 맨날 똑같은 거 먹으면 무슨 맛일까 했어요. 그런데 습관이 참 무서워요. 내것이 돼버리면 지루하지도 질리지도 않고, 그 이상의 것이 생각나지 않아요. 그러니 불만이 없죠.

김형석 교수가 식사 때 챙겨 먹는다는 나박김치. 정세희 기자
김 교수가 끼니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먹는다는 최애 음식은 바로 ‘나박김치’다. 냉장고엔 야채나 반찬들이 모두 작은 통에 담겨 있었는데, 나박김치만 유일하게 큰 통에 보관돼 있다. 아주머니는 “가장 빨리 떨어지는 거라 항상 채워놓을 준비를 한다”고 했다.
원래 그는 젊었을 때 김치 종류를 안 먹었다고 한다. 나이가 드니 입맛도 변한다. 꼭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한국적인 것을 찾게 된다고 했다. 그게 음식이든, 음악이든, 문학이든.
가사도우미도 말 못 할 작은 걱정이 있다. 김 교수의 적은 식사량이다. 아주머니는 “정말 쬐금 드신다. 밥주걱 한 숟갈 정도 쌀밥을 드시고, 고기도 손바닥만 한 접시의 반밖에 안 드신다”고 했다.
알고 보니 철저한 전략이었다. 과하면 머리가 둔해지고 적으면 쉽게 방전되니 찾은 게 지금의 식사법이다. 지금도 강연, 원고 작업 등 활발히 활동 중인 그는 하루의 에너지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에 집중한다.

김형석 교수의 냉장고 안 채소와 사과들. 정세희 기자

김형석 교수 냉장고 안 반찬들. 롤케이크가 눈에 띈다. 그가 자주 먹는 간식이다. 정세희 기자

김형석 교수 식탁에 놓인 간식들. 정세희 기자
김 교수는 아침과 점심을 간단히 먹는 대신 하루 두 번 (오전 10시·오후 4시) 꼭 간식 타임을 갖는다. 실제 식탁엔 호두·캐슈넛 등 견과류와 시리얼·꿀이 가득 놓여 있었다. 그의 간식이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은 보조 냉장고에 있었다. 롤케이크 두 개.
그는 항상 롤케이크 한 조각을 따뜻한 커피 반 잔과 함께 먹는다고 했다. 원래 커피 한 잔을 다 마셨지만 일부러 줄였다.
최근 위가 약해졌는지 옛날 맛이 안 나서다. 평생 습관도 몸에 무리가 가는 것 같으면 바꾼다고 한다. “몸에 좋은 것 같지 않은데 굳이 할 이유가 있나요. 나쁜 것만 안 해도 건강해요.”
하루 일과 중 빠짐없이 챙기는 게 또 있다. 바로 낮잠이다. 보통 아침·점심·저녁 식사 후 30분가량 눈을 붙인다. 피곤할 때는 그 사이 더 잠을 자기도 한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도 낮잠은 밤만큼 푹 잔다. 에너지 보충의 일환이다. ①아침과 낮엔 소식으로 가볍게 ② 기력 보충은 하루 두 번 이상 간식과 낮잠으로. 시행착오 끝에 영리하게 만든 습관이다.
마지막 습관이 있다. ③저녁을 최대한 늦게 7시 반 이후에 먹는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9시 반인 것을 감안하면 늦은 시간이다. 공복 시간을 길게 갖는 게 좋다는 요즘 유행과는 다르다. 김 교수는 “나이가 들고 위 기능이 더 약해졌는데, 공백이 길면 칼로리가 모자라 자꾸 지친다”며 “저녁은 가급적 늦게, 아침은 일찍 먹으려고 한다”고 했다.
백 년을 살아보니 늙는다는 건
그의 인생 건강 시계는 거꾸로 흘러갔다. 어렸을 때 건강이 가장 나빴다. 중학교도 못 갈 것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할 수 있는 게 기도뿐이었다.
제게 건강만 허락해 주신다면, 나를 위해서 일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하겠습니다.
반대로 남들 은퇴하는 60, 70대에 가장 건강했다. ‘신체와 정신 모두, 아니 삶 전체가 꽃 피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넘쳤다. 그런데 은퇴라니.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29일 서울 서대문구 자택에서 글을 쓰고 있다. 김종호 기자
연세대 교수직을 내려놓던 날, 후배 교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늦둥이로 학교를 졸업하는데, 졸업은 곧 사회생활 시작입니다. 앞으로 또 다른 시작을 도와주세요.”
100년을 살아보니, 노인이 된다는 건 스스로 늙어서가 아니라 주변사람들이 먼저 만들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는 90세 이후에도 20권의 책을 펴냈고 지금도 1년에 150번 강연을 다닌다.
“몸이야 늙었다면 늙었겠죠. 그런데 ‘인간적으로 늙었는가’ 물으면 달라져요.” 안경 너머 그의 주름 사이로 눈망울이 반짝거렸다. 말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건강에 가장 나쁜 음식은 무엇인가요, 살면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요…. 질문지를 슬쩍 넘겨보고선 그는 다 알겠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선 윤동주 시인과 함께 학교 다니던 학창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1930년대 연희전문학교(연세대의 전신)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05세 철학자 인생의 고민

숭실중학교 시절 김형석 교수의 모습. 김형석 제공
윤동주 시인은 어릴 때부터 눈에 띄었다. 글재주가 남달랐다. 문장 하나하나 사람을 휘어잡는 힘이 있었다. 한 살 많은 황순원 선배도 글을 참 잘 썼다.
‘나는 뭐하지?’ 그의 미래는 당장 보이지 않았다. 동주는 시인이 되고 순원이 형은 소설가가 될 건데, 난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지? 김 교수의 질문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일제시대, 해방, 6·25전쟁 등 굵직한 시대적 고난 앞에서 작아져 무력함을 느꼈을 법도 한데 멈추지 않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직장을 갖고 안주할 법한 30대 중반 김 교수는 생각했다. 20대까진 내가 나를 키웠다면, 이제 사회 속에서 나를 키울 방법을 고민해야겠다.
그가 꼽은 전성기인 60, 70대가 지나고, 친구들이 다 세상을 떠나는 90세가 돼서도 스스로 물었다. ‘비로소 내가 혼자구나. 이제 어떻게 살까.’
그동안 나를 위해 하고 싶었던 일을 찾기로 했다고 한다. 음악도 듣고 그림도 보고 문화 예술 책을 읽기 시작했다.
95세. 몇년 사이 몸이 약해짐을 느꼈다. 다시 시작된 질문. ‘이제 신체도 늙나보구나. 자, 이제 무엇을 해야할까.’
펜을 들었다. 독자들과 소통하며 그동안 공부한 사상을 알려야겠다 싶었던 것이다. 99세에 신문사 칼럼 기고를 시작했다. 그 이후로 방송·강연 등을 통해 백세 철학을 전파했다.
105세 노인의 삶의 의미 찾기는 여전히 계속된다. 세상을 떠났을 때 ‘사회를 위해 심부름하다 간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한다.

김형석 교수의 습작 원고지. 서지원 기자
60세 넘어 고독한 자, 이기주의자

김 교수가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40대 시절. 김형석 제공
사실 인생의 답을 찾았다 한들 막막함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못하면 어떡하지….
그도 마찬가지였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건 도산 같은 지도자가 되는 건데 그런 인격을 내가 키울 수 있을까. 사람은 자기 인격만큼 살게 돼 있는데 나는 힘들 것 같다.’
롤모델을 떠올렸다. 학창시절 꿈과 희망을 줬던 도산 안창호 선생, 그리고 중학교 교사 시절 연을 맺은 인촌 김성수 선생. 그분들의 공통점을 찾았다.
첫째, 이기적인 사람은 불행해진다
이기적인 사람은 성공은커녕 불행해져요. 회사에서 왜 나를 인정해주지 않느냐, 왜 나를 소외시키느냐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보면 대부분 이기주의자가 많아요. 가정도 마찬가지예요. 갈등이 성격 차이라고 하지만, 둘 중 하나는 이기주의자일 겁니다. 그래서 60세 넘어서 고독하게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이기주의자죠.
둘째, 경쟁에도 품격이 있다
경쟁을 두려워 마세요. 분명 당신을 성장시킬 것입니다. 대신 나보다 유능한 사람은 인정하고 본받고, 또 내가 올라갔다고 해서 교만하지 않은 선의(善意)의 경쟁을 하세요. 우리는 종종 경쟁에 매몰돼 남을 끌어내리고 망하게 합니다. 사회를 파괴하고 개인을 망가뜨리는 거죠. 높은 곳에 올라가도 사람들이 존경하는 사람은 못 되죠.
김 교수 최측근이 생각하는 장수 비결은?
김형석 교수를 15년간 모시는 이종옥 아가페복지 이사장에게 김 교수의 건강 비결을 물었다. 이 이사장은 “교수님은 늘 웃으신다”며 “그동안 화내시는 것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화날 일이 있으면 오히려 웃으신다”고 했다.
장수 비법? 질문의 방향을 바꿔라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29일 서울 서대문구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답을 찾는 과정에서 성장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자신과 주변을 살피고 도전거리를 찾고, 삶의 의미를 확인하는 과정이 삶의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이 활력은 그가 늙지 않는 제 1의 원천이었다.
그는 여러 번 강조했다. “성장하는 동안은 절대 늙지 않아요. 이제는 늦은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게 늙은 것이죠. 육체는 늙겠지만 정신은 학습이 쌓여서 오히려 젊어질 수 있어요.”
취재진이 준비했던 수십 가지 질문에 대한 단 한 가지의 답이 여기에 있다. 매 순간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그는 지금도 서재에서 매일 한두 시간씩 글 쓰는 작업을 한다. 책상엔 언론사 기고 글이 적힌 원고지가 놓여 있다.
그러니까 100세의 행복을 위해선 질문의 방향을 바꿔라.
내일 뭘 먹을지, 어떤 영양제가 몸에 좋은지 말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김 교수의 냉장고 안에서 나박김치를 발견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깨달음이다.
실제 그가 건강한 노년을 위해 한 건 ‘몸에 안 좋은 건 피하라’는 원칙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다만 꿈을 찾다 보니 천천히 늙었다.
김 교수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을 구체화하다 보니 훌륭한 지도자가 돼야겠다 생각했고, 그 덕목을 채우다 보니 배움과 성장이 일어났다”며 “덕분에 천천히 늙었고, 사회에서도 존경 받는 어른이 돼 있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지금이라도 나만의 인생관을 만들어보라고 조언했다.
저는 지금 평생 만든 열매를 나누기 위해 살아요. 이런 인생관을 하나 세워놓으면 다른 건 그 안에서 해결돼요. ‘아 이제 내가 늙었구나’ 생각도 할 필요 없어요. 늙을수록 사회에 기여할 게 많으니 늙은 게 축복이죠.

차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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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업데이트 2026.08.20 정세희 기자 김서원 기자 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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