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익은 갈비구이는 오래전부터 한국인이 누려 온 호사다. 송원섭 기자
‘갈비 먹는 날’은 한때 한국인에게 각별한 의미를 갖는 날이었습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이 온 나라의 자긍심을 일깨우던 시절, 가장들은 새로 뽑은 자가용 승용차에 가족을 태우고 교외로 나가 ‘OO가든’이라는 이름의 숯불갈비 집에서 나들이 겸 외식을 즐겼습니다. 해방과 전쟁의 참화 속에 유년기나 소년기를 보낸 가장들에게 이 외식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죠. 이 나라와 국민의 삶이 어느 정도 안정된 기반 위에 놓였음을 스스로 확인하는 행동이었던 겁니다.
물론 오래전부터 한국인은 갈비구이를 즐겨 먹었습니다. 협적(脅炙) 혹은 ‘가리구이’라는 말로 갈비구이 풍습이 다양한 문헌에 등장합니다만 야외가 아닌 방 안에서 불 앞에 모여 앉아 고기를 굽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불편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김홍도의 '설후야연'. 고기 굽는 풍경을 그린 풍속화들은 대부분 야외를 무대로 하고 있다. 아무래도 고기 굽는 냄새와 열기는 그 시절에도 부담스러웠기 때문일 듯.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연암 박지원의 만휴당기(晩休堂記)에는 ‘눈 내리는 날 고기를 화로에 구워 먹었는데, 연기와 열기가 방안에 가득하고 파·마늘 냄새와 고기 누린내가 온몸에 배었다(室中燻烘, 葷臊襲人)’며 투덜대는 구절이 나옵니다. 현대의 우리에게도 익숙한 풍경이죠. 그래서 박지원도 벗과 함께 창가로 가서 부채를 부치며 땀을 식혔다고 합니다.
그러니 귀인에게 갈비구이를 대접하려면 마당이나 부엌에서 불을 피워 고기를 구운 다음 그릇에 담아 방으로 나르는 것이 올바른 순서였을 것입니다. 요즘은 더더욱 구경하기 힘든 호사죠.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남이 구워다 주는 갈비’를 먹으러 갔습니다.

을지로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89년 전통의 조선옥. 1937년에 지금 위치의 바로 앞집에서 개업했다. 송원섭 기자
세계에서 가장 빨리 변화하는 도시라면 열 손가락 안에 들 서울. 그중에서도 을지로 2가에서 4가 사이는 하루가 다르게 풍경이 바뀝니다. 을지로 큰길 남쪽의 좁은 골목 안은 ‘힙지로’라 불리는 젊음의 거리로 거듭나고 있지만, 청계천 방향인 북쪽은 오래된 건물들이 철거되고 새 빌딩이 들어서는 ‘공사 중’ 표지판이 곳곳에 걸려 있습니다.
그 공사장 간판 사이에 위치한 조선옥은 1937년부터 89년째 문을 열고 있는 서울 도심의 산증인입니다. 이 식당에 처음 오신 분들은 1층 매장에 아직도 남아 있는 장지문의 흔적에 놀라고, 이 식당의 특징인 ‘구워다 주는 갈비’에 또 한 번 놀라곤 합니다.

주방에서 구운 다음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내오는 조선옥의 갈비. 송원섭 기자
주방에서 구워 나오는 갈비
“할아버지가 장사하실 때만 해도 이 주변의 점잖은 식당들은 대개 우리처럼 갈비를 구워서 내놓았다고 해요. 하나하나 사라지고 지금은 우리만 남다 보니 오히려 우리가 특이하게 보이는 거죠.”
3대째 대를 이어 조선옥을 운영하는 김진영(61) 대표의 증언입니다. 얼마 전에는 하던 대로 갈비를 구워서 내갔는데 “누굴 바보로 아느냐”고 항의하는 손님이 있었다고 합니다. ‘고기 상태도 보여주지 않고 다짜고짜 구워 오는 건 손님을 무시하는 행동’이라는 주장이었죠.
“대부분 ‘이 집은 갈비를 구워서 준다면서요?’ 하면서 오시는데, 그분은 너무 모르고 오셨던 거죠. 저희가 손님 속이고 장사를 했으면 이 자리에서 80년 넘게 버틸 수가 있었겠어요? 헛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조선옥 1층에서는 아직도 개방형 주방 안에서 연탄불에 갈비를 굽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송원섭 기자
옷에 냄새가 배지 않는 갈비집
‘구워져 나오는 갈비’는 장단점이 선명합니다. 일단 장점이라면 굳이 뜨거운 불 앞에서 땀을 흘리는 수고를 덜 수 있고, 옷에 고기 냄새가 배지 않아 깔끔합니다. 반대로 단점은 고기가 쉽게 식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숙련된 손님들은 처음부터 많은 양을 주문하지 않고, 조금씩 나눠 여러 번 주문하기도 합니다.
현재 조선옥의 1층과 2층은 사뭇 다른 분위기입니다. 1층은 오래된 점포 느낌이 거의 그대로 남았지만, 2층 ‘더 옥(Oak)’은 꽤 현대적으로 꾸며져 있죠. 1층에서는 양념갈비(250g 4만3000원)만 주문할 수 있지만 2층에선 전통 양념갈비(1층의 양념갈비와 동일) 외에 한우 특 양념갈비(250g, 5만3000원)도 주문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갈비탕·냉면 등 식사 메뉴는 같습니다. 가장 특이한 것은 대구탕(代狗湯). 생선 대구탕이 아닌 전통 육개장을 말합니다.
‘전통 양념갈비’와 ‘한우 특 양념갈비’는 어떻게 다를까요. 전통 양념갈비는 국내산 육우를 사용하고, 1층에서 연탄불로 굽습니다. 반면 한우 특 양념갈비는 한우를 사용하고, 2층에서 가스 불로 굽죠. 모두 구워 나오는 갈비라는 점은 같습니다.
“개업 때부터 한우 암소 갈비만 사용했어요. 그런데 1990년대 이후에는 점점 한우 갈비가 지방이 너무 많아지고, 기름을 빼면 살이 너무 적어지더라고요. 그래서 국내산 육우로 바꿨습니다.”

위쪽이 '한우 특 갈비', 아래쪽이 '전통 갈비'. 보기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맛은 사뭇 다르다. 송원섭 기자
전통 갈비와 한우 갈비? 맛은 어떻게 다를까
그래서 두 가지를 같이 주문해서 맛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잘 구워진 갈비가 올라간 철판을 아래쪽에서 파라핀 불꽃으로 덥혀 고기가 식는 것을 방지하는 배려가 눈길을 끕니다. 맨눈으로 선명하게 구별되지는 않지만, 전통 갈비(육우)는 다소 두툼하게, 한우 갈비는 상대적으로 얇게 정형되어 있습니다.
먹어 보면 느낌이 확실히 다릅니다. 전통 갈비는 육질이 단단하고 씹히는 맛이 분명하지만 한우 갈비는 부드러워 저절로 녹는 느낌. 그리고 연탄불로 연기에 그을려 가며 구운 전통 갈비 쪽이 보다 선명한 ‘불맛’을 냅니다.
“당연히 한우가 더 비싸고 고급이라고 생각하시는데, 둘 다 맛을 보고 ‘그래도 전통 갈비가 맛있다’고 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아요. 아마 옛날식 불맛이 그리운 분들이겠죠? ‘양념이 다르냐’고 묻는 분들도 있는데, 양념은 똑같습니다.”

한 사발씩 나오는 동치미. 고기 먹은 뒤의 입가심에 그만이다. 송원섭 기자
갈비 재는 양념, 딱 세 가지만 들어간다
많은 갈비집의 비결은 갈비 재는 양념에 있다고 하는데, 조선옥의 ‘비결’은 선명했습니다. “간장, 설탕, 마늘 세 가지 외에 다른 것은 넣지 않아요. 실험은 많이 해 봤죠. 배즙·양파즙을 비롯한 여러 가지 과일이나 채소, 다양한 재료들을 넣어 봤는데 전부 원래 우리 양념만 못 하더라고요.”
결국 조선옥이 말하는 비법은 좋은 재료를 어떻게 양념에 잘 숙성시켜서 정성 들여 굽느냐로 요약됩니다. 주방의 일과는 도살장에서 소갈비를 통째로 받아 오면서 시작되는데, 소갈비 한 짝(그러니까 소 한 마리에서는 좌·우의 두 짝이 나오죠)은 손질하면 대략 30~40인분의 갈비가 나옵니다. 앞쪽과 뒤쪽 갈비는 탕용으로 쓰이고, 가운데 ‘본갈비’라고 불리는 부분이 구이로 사용됩니다.
토막 내고 정형된 고기는 앞서 말한 양념장에서 짧게는 3일, 길게는 5일 정도 냉장고에서 숙성해야 속살 깊숙이 맛이 배죠. 앉아서 먹기엔 2층이 좀 더 쾌적하지만, 1층에서는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화덕에서 고기가 구워지는 모습을 열린 창 틈으로 볼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습니다. 소리만 들어도 식욕을 자극하는 광경이죠.

연탄불에서 익어가는 전통 갈비. 송원섭 기자
딱 한 번 손님에게 사진을 찍자고 했건만
워낙 오랜 기간 도심 맛집으로 자리하다 보니 유명한 손님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김 대표의 기억에 남는 단골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갈비를 맛있게 드시고 간 송해씨. 그리고 방문했던 수많은 국내외 스타 중 유일하게 홍콩 배우 양조위에게 사진을 찍자고 요청했는데, 거절당해 더 기억에 남는다고 합니다.
갈비는 밥반찬으로 먹어도 좋지만, 지글지글 구운 갈비를 먹은 뒤엔 냉면이 제격이죠. 냉면 전문점이 아니라 크게 소문은 나 있지 않지만 사실 조선옥은 개인적으로 꼽는 서울 도심의 냉면 맛집 중 하나입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냉면 맛집 조선옥. 육수의 풍미가 전통적인 평양냉면 노포들과는 살짝 다르다. 송원섭 기자
“갈비는 뼈 하나 버릴 데가 없어요. 다른 냉면집들은 보통 양지·설도·사태 같은 부위로 육수를 낸다고 하잖아요. 우리는 갈비뼈를 오래 우려서 양지 국물과 섞어 육수를 내요. 그래서 육수 맛이 좀 다르죠.” 예전에는 동치미도 육수에 섞었지만,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김 대표가 맡은 뒤로 동치미는 더는 육수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렇게 늘 변함이 없는 것 같은 조선옥도 그때그때 작은 변화들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요즘 김 대표의 가장 큰 고민은 도심 재개발. 2022년 결국 을지면옥이 철거되었을 때도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지만 3대가 평생을 바친 오랜 점포 자리를 포기해야 한다는 건 큰 걱정입니다.

조선옥 바로 앞까지 밀어닥친 도심 재개발 현장. 조선옥 식구들의 가장 큰 걱정이다. 송원섭 기자
“보상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이 가게를 어디로 어떻게 옮겨야 할지 상상이 안 됩니다. 냉동고도 있어야지, 밖에서 연탄불도 피워야지, 언제 나가야 할지 아직 모르겠지만, 속이 타죠.” 부디 어떻게든 현명한 대책이 마련되어 이 갈비와 냉면 맛이 끊기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P.S.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동안 [송원섭의 식판]에서 소개된 식당들을 모두 지도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지도로 들어가 좌측 상단의 [문 그림]을 누르시면, 전체 식당 리스트가 보입니다.
중앙일보 발행 일시2026.07.18 송원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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