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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국지에서 냉면까지… 겨울 바다와 들판의 맛을 찾아 떠나는 내포 여행

해암도 2025. 12. 13. 06:45

서산·태안·당진·예산·홍성… 시장과 향토음식 기행

 
 

태안 '원풍식당' 데친 낙지 /사진=조상제

 

충청남도의 서북부 지역 서산·예산·홍성·태안·당진을 내포(內浦)라 한다. 내포는 크게 두 권역으로 나뉜다. 서해안권인 서산·태안·홍성과 예당평야권인 예산·당진이다.

 

이곳은 예로부터 ‘서울의 세력 있는 집안치고 여기에 농토와 집을 두고 근거지로 삼지 않은 집안이 없다.… 충청도는 내포를 제일로 친다’ 할 정도로 들이 넓고 비옥하다. 또한 너른 개펄과 바다를 끼고 있어 해산물도 풍부하다.

 

비산비야(非山非野)라 했던가. 너른 들에 산이라야 나지막한 구릉 같은 것이 문득문득 솟아 있는 것이 고작이니 경상도 사람의 눈에는 산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내포 땅 여행은 지금이 좋다. 우선 뭍과 바다의 먹을거리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서산 동부전통시장에 가보면 이 고장의 풍요를 체감할 수 있다. 시장이 크기도 하거니와 나온 물건들이 싱싱하고 물이 좋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알타리무, 배추, 대파, 인삼 같은 농산물부터 미역, 파래, 물김 등속의 해조류, 어리굴젓, 새우젓, 황석어젓, 조개젓 같은 젓갈류, 우럭, 망둑어, 민어 같은 건어물, 손가락 마디 크기의 강굴, 물메기, 홍어, 꽃게, 낙지 같은 생물 해산물까지 계절의 풍요를 실감할 수 있다. 싱싱한 채소와 살아 펄떡이는 물고기들을 보면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없다.

 

너른 들과 갯벌에서 나온 농산물과 해산물로 서산만의 독특한 향토 음식들이 다양하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게국지, 간장게장, 박속밀국낙지탕이다. 게국지는 김장 때 나오는 시래기를 염장해 두었다가 겨우내 호박과 간장게장 국물로 끓여 먹는 찌개다. 지금은 상품화돼 꽃게를 넣고 큰 냄비에 끓여낸다.

 

 

서산 '진국집' 게국지 수육 정식 /사진=조상제
 

여러 식당에서 주력 메뉴로 내지만, 전통적인 게국지 맛을 보고 싶다면 서산시청 1호광장교차로 인근 골목에 자리한 ‘진국집’을 찾으면 된다.

 

박속밀국낙지탕은 박 속으로 낸 국물에 양파, 대파, 땡초, 다진 마늘을 넣고 끓여 낙지를 토렴해 먹은 후 밀국(칼국수, 수제비)을 넣고 끓여 먹는 음식. 5~6월 보릿고개를 넘길 때 어린 낙지를 토렴해 먹고 밀국으로 풍성하게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었다.

 

이 음식을 하는 식당이 여럿 있지만, 태안의 ‘원풍식당’과 ‘이원식당’을 추천한다. 두 식당의 조리 방식은 엇비슷하다.

 

원풍식당은 박속밀국낙지탕, 낙지볶음, 꼬물꼬물산낙지, 우럭젓국이 메뉴의 전부다. 그날그날 동네 할아버지가 갯벌에서 잡아온 낙지를 써 활성도가 좋다.

 

먼저 꼬물꼬물산낙지를 주문해 서해안 낙지를 맛봐야 한다. “가을 낙지는 쓰러진 소도 벌떡 일어나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크기도 하거니와 맛도 초겨울 낙지가 제철이다. 탕탕이로 자른 산낙지에 참기름 소금장과 다진 마늘, 깨소금을 뿌려 내온다. 꼬숩고 달다.

 

박속밀국낙지탕은 주방에서 끓여 온 전골 냄비에 산낙지를 가져와 넣어 주는데 먹는 요령이 있다. 낙지를 딱 10초 정도만 익힌 후 앞접시에 다리를 자르고 몸통은 국물에 다시 넣어 끓인다. 한입 크기로 자른 낙지 다리는 소스에 찍어 먹으면 야들야들한 식감과 낙지 특유의 감칠맛을 즐길 수 있다. 오래 익히면 살이 질겨진다.

 

밀국을 넣기 전에 국물을 따로 들어 마시면 박 속과 낙지의 베타인(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이 내는 시원한 감칠맛에 또 한 번 감동할 것이다. 밀국을 주는 대로 다 넣으면 양이 너무 많다. 양을 적게 달라 해서 색깔이 투명해질 때까지 끓여야 깔끔하다.

 

우럭젓국도 꼭 맛을 봐야 한다. 쌀뜨물을 쓰는 다른 식당과는 달리 맹물에 반건조한 우럭, 무, 파, 고추를 넣고 끓여 소금간만 해낸다. 국물은 군내가 없고 깔끔하다. 생선살도 부드럽고 담백하다.

 

서산과 태안에 왔으면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 해미읍성, 마애여래삼존불, 보원사지, 개심사와 태안의 마애삼존불, 천리포수목원, 신두리사구 등이다. 내포 땅의 보석 같은 풍경과 한국 불교 예술의 시원(始原)을 볼 수 있다.

 

길을 옮겨 당진으로 향한다. 당진은 천주교 박해 성지가 산재해 있다. 한국 최초의 사제 서품을 받은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에 세워진 솔뫼성지, 황무실성지, 신리성지, 원머리성지, 여사울성지 등이다. 거목과 어울린 성당 건물과 서구식 건축 양식을 더한 한옥 성지박물관이 아름다운 공세리성당과 고딕 양식의 합덕성당도 꼭 가봐야 할 성지다.

 

당진에도 여러 맛집이 있지만 ‘미당면옥’은 꼭 들러 볼 만한 식당이다. 요리 연구가 윤혜신 씨가 운영하는 순메밀 평양 물냉면, 순메밀 들기름 냉면, 비빔냉면, 명태회 냉면, 어북쟁반, 평양식 만두 등 이북 음식 전문 식당이다. 육향이 넘치는 한우 육수에 저속 맷돌로 제분한 면을 사용해 면발만으로도 냉면의 진미라 할 만하다. 상차림에도 격을 갖췄다. 실내 장식에서도 가드너이기도 한 주인의 안목이 돋보인다.

 

야트막한 야산의 너른 부지에는 정원을 가꾸고, 언덕밭에는 보리와 메밀을 심어 독특한 경관을 다듬었다. 식당 곁에는 ‘카페피어라’도 운영해 여유로운 휴식과 산책도 할 수 있다.

 

발길을 돌려 예산으로 향한다. 예산도 들이 널어 물산이 넘쳐나는 고장이다. 특히 이름난 한우 전문식당이 여럿 있다. 그 중 ‘소복갈비’는 전국적 명성을 얻은 식당이다. 예당저수지 인근에는 붕어찜, 민물새우탕과 어죽, 우렁쌈밥 등 민물 식재로 조리한 음식을 내는 식당들이 있다.

 

수덕사 아래 상가에는 관록의 산채 전문점들이 많다. 어느 식당이든 나물 반찬이 한상 가득이다. 거기에 더해 생선도 곁들여진다. 수덕사와 추사고택, 예당호는 꼭 들러봐야 할 여행지다.

 

이웃한 홍성도 너른 들과 천수만 바다를 끼고 있어 뭍과 바다의 식재들이 넘쳐나는 고장이다. 익히 알고 있는 광천전통시장은 새우젓을 비롯해 어리굴젓, 꼴뚜기젓 등 젓갈 시장의 으뜸으로 꼽는다. 특히 토굴에서 숙성한 새우젓과 어리굴젓은 꼭 사야 할 물목(物目)이다.

 

홍성전통시장도 규모가 크고 농산물과 해산물이 넘쳐나는 시장이다. 1일과 6일 열리는 오일장날 가면 골목골목 좌판에 내놓은 농산물이 푸릇푸릇 싱싱하고, 해산물도 선도가 좋고 다양하다.

 

시장에 들르면 꼭 가봐야 할 소머리국밥집이 있다.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식당이다. 홍흥집(041-633-0024)이다.

 

메뉴는 한우곰탕(소머리고기에 거부감을 가진 고객들이 있어 국물은 소머리로 내고, 사태살을 더한 메뉴로 바꿨다), 소머리수육, 돼지내장탕, 돼지내장수육이다. 오일장이 서는 날은 줄을 서야 한다. 일주일에 4~5일만 문을 열고, 영업시간은 11시부터(장날은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다. 재료가 소진되면 일찍 문을 닫는다. 가기 전에 꼭 전화를 해 영업하는지를 묻고 가야 한다.

 

외할머니가 하던 가게를 어머니가 이어 하다 잠시 문을 닫았다. 외손녀가 식당을 그만두기에는 너무 아까워 외할머니에게 직접 소머리 고르는 법과 삶는 법을 배워 자기 방식을 더했다.

 

곰탕 국물은 믿기지 않을 만큼 맑고 깔끔하다. 국에 들어있는 고기도 쫄깃쫄깃 식감이 좋다.

 

소머리수육은 썰어낸 모양조차 반듯반듯하다. 주인의 성정이 읽힌다. 살과 적당한 지방, 껍질이 붙어있는 삼겹살 같은 모양새다. 삶아낸 정도가 절묘해 식감과 맛이 입댈 게 없다.

 

가능한 어린 소의 머리를 골라 쓴다. 삶는 시간과 불 조절이 맛의 관건이란다.

 

내포땅 여행을 온전히 즐기려면 최소 3박 4일을 잡아야 한다. 한 고장을 콕 찍어 간다면 서해안고속도로로 수도권에서는 당일 시장 구경과 미식 여행도 가능하다. 소슬한 초겨울의 풍치와 내포땅의 풍요를 즐기려면 지금이 제철이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조상제 출판에디터, 여행플래너     조선일보    입력 2025.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