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전기톱을 든 91세 조각가...그의 삶 자체가 예술이고 감동[BOOK]

해암도 2026. 6. 26. 19:49

구순이 넘은 나이에 전기톱을 들고 나무를 깎아 작품을 만드는 '체인쏘 레이디'. 올해 91세인 김윤신은 몇 해 전까진 한국 미술계에선 낯선 이름이었다. 2023년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전시를 계기로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초청됐고, 2026년 한국 여성 작가 최초로 호암미술관 대규모 회고전 주인공이 됐다. 과거의 영광을 파는 게 아니라, 현역 작가라는 점이 더 센세이셔널했다. 이 책은 그가 어떻게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었는지, 한국에선 왜 이다지 늦게 알려졌는지 그 삶과 예술의 궤적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조각가 김윤신. 올해 2월 작업실에서. 우상조 기자..

1935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그는 원산·만주·부산을 오가며 총탄이 날아다니는 전쟁통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러나 생사의 갈림길을 오갔던 초년의 이야기는 책장을 넘길수록 상대적으로 시시해 보인다. 예술의 길로 접어든 스무살 이후의 이야기가 훨씬 극적이어서다. 홍익대 조각과를 거쳐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유학하고, 가난한 강사 생활을 오래 이어가다 상명여대 교수로 부임했다. 한 줄 이력으로 설명하면 보편적인 코스를 걷는 듯 보이지만 들여다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매 순간 관행을 타파했고, 예측불허의 길을 걸었다.


40대 중반에 겨우 안정적인 교수자리를 얻었나 했는데, 3년만에 휴가 내고 간 아르헨티나에 주저앉았다. 한국에선 그렇게 귀하던 나무가 지천에 널려있는 나라여서다. 그렇게 밤낮 나무를 깎고, 채석장에 가서 돌을 갈며 작업을 한 이방인은 그곳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까지 열게 된다. 김윤신은 평생 결혼하지 않았다. 그가 예술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제자 김란 관장이 40년 넘게 안팎의 살림을 맡아줬다. 그러나 김윤신은 힘이 드는 조각을 하면서도 작품을 만들 땐 조수를 쓰지 않는다.

김윤신의 소원은 "내 일을 하다가 그냥 숨이 끊어지는 것"이다. "내가 살아 있다, 살면 누구나 다 이렇게 할 수 있다, 뭐든지 이겨낼 수 있다, 산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귀중한가, 그걸 보여드리고 싶어요."(265쪽) 삶 자체가 예술이고 감동이다.

이경희 기자      중앙일보      입력 2026.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