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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항암제 카티, 몸 안에서 만든다…10년 뒤 256조 시장 전망

해암도 2025. 6. 10. 15:53

[사이언스카페] 

면역 T세포에 암에만 붙는 단백질 유전자 결합
T세포 추출해 몸 밖에서 배양, 시간·비용 증가
미국 바이오 기업들, 몸 안에서 항암 T세포 제조
어디서든 투여 가능, 비용도 10분의 1로 감소

 
T세포(흰색)가 암세포(파란색)을 공격하는 모습의 주사 전자현미경 사진./Steve Gschmeissner/Science Photo Library

한 번 몸에 넣어주면 증식하면서 계속 암세포를 죽인다고 ‘살아있는 약물’ ‘암세포의 연쇄살인마’로 불리는 세포 치료제가 있다. 카티(CAR-T)세포이다. CAR은 키메라 항원 수용체란 뜻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여러 동물의 모습을 가진 동물 키메라처럼, 면역세포인 T세포에 암세포 표면의 항원 단백질을 찾는 유전자까지 결합했다는 뜻이다. 다른 항암제와 달리 정상 조직은 두고 암세포만 공격해 치료 효과가 월등하다.

 

특히 카티 세포 치료제는 약이 없던 혈액암에서 획기적인 치료 효과를 보였다. 2017년 스위스 노바티스의 킴리아(kymriah)에 이어 지난해 영국 오토러스 테라퓨틱스의 오캣질(aucatzyl)까지 7종이 혈액암 치료제로 미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았다. 글로벌 시장 조사기관인 폴라리스 마켓 리서치&컨설팅에 따르면 카티 치료제는 지난해 약 10조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했으며, 올해 15조원을 넘어 2034년까지 256조원이 넘는 시장으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가격이다. 환자의 T세포를 몸 밖에 꺼내고 유전자를 추가하다 보니 전용 시설에서 상당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치료비도 증가한다. 한 번 치료에 50만달러(6억8000만원)가 들어갈 정도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지난달 27일 과학자들이 치료제 가격을 획기적으로 줄일 방법을 개발 중이라고 전했다. 몸 안에서 간단하게 T세포를 암치료에 최적인 형태로 바꾸는 방식이다. 상용화되면 환자가 쉽게 투여할 수 있어 시장이 더 확대될 수 있다. 살아있는 항암제의 대중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암세포 탐지력, 인체 내부서 부여

기존 체외(ex vivo) 방식의 카티 세포 제조는 수 주씩 걸린다. 먼저 환자의 몸에서 T세포를 추출하고 암세포를 찾는 유전자를 전달한다. 이때 독성을 없앤 바이러스에 암세포와 결합하는 CAR 단백질 유전자를 넣고 T세포에 감염시킨다. 이러면 T세포 유전자에 CAR 유전자가 끼어 들어가 표면에 암세포와 결합하는 수용체가 생긴다. 마지막으로 유전자가 변형된 T세포를 증식하고 다시 인체에 주입한다. 그러면 T세포가 알아서 암세포를 찾아 공격한다. 암세포 탐지 능력은 유전자에 각인돼 대대손손 이어진다.

그래픽=정서희
 

최근 과학자들은 이 과정을 모두 인체 내부에서 구현하고 있다. 원리는 체외 방식과 비슷하다. 체내(in vivo) 카티 세포 개발의 관건은 어떻게 T세포에만 정확하게 유전자를 전달하느냐이다. 체외 방식은 T세포만 따로 추출해 유전자를 추가하므로 다른 세포에 영향을 주지 않지만, 몸 안에서 하면 암세포를 찾는 유전자가 엉뚱한 세포로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업체마다 다양한 방법을 개발했다.

 

미국 필라델피아주의 인터리우스 바이오테라퓨틱스(Interius BioTherapeutics)는 면역세포인 T세포와 NK(자연살해)세포 표면의 단백질에만 결합하는 바이러스 벡터(전달체)를 시험하고 있다. 워싱턴주의 우모자 바이오파마(Umoja Biopharma)는 T세포 표면의 3가지 단백질에 동시에 결합하는 바이러스 벡터를 개발했다. 이미 동물실험에서 한 가지 단백질에만 결합하는 바이러스보다 T세포를 찾아내는 데 더 효과적이었다고 회사는 밝혔다.

 

기존 체외 방식의 카티 세포 제조는 아무 병원에서나 할 수 없다. 환자가 업체의 전용 시설을 찾아가 수주간 머물러야 한다. 체내에서 카티 세포를 만들면 따로 유전자 변형이나 세포 배양 시설이 필요 없어 비용이 10분의 1로 줄어든다. 시간도 크게 단축되고, 인체 부담도 덜 하다.

 

기존 체외 방식은 유전자가 변형된 카티 세포를 다시 인체에 주입하기 전에 몸에 있는 T세포를 모두 없앤다. 그래야 나중에 유전자가 변형된 T세포가 자랄 공간이 생긴다. 체내에서 카티 세포를 만들면 그럴 필요가 없다.

암세포(붉은색)을 공격하는 CAR-T세포(파란색)./미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
 

◇mRNA 백신 방식도 동원

인터리우스는 바이러스 벡터 방식으로 만든 체내 카티 세포를 지난해 10월부터 임상시험하고 있다. 지난 2월 국제학회에서 혈액암인 비호지킨 림프종 환자에 대한 임상시험 초기 결과를 발표했다. 회사에 따르면 소량 투여한 2명은 효과가 없었지만, 대량 투여한 한 환자는 6일 후 암에 걸린 세포가 모두 사라졌다.

 

우모자 테라퓨틱스는 혈액암 환자를 대상으로 미국과 중국에서 각각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벨기에 에소바이오텍(EsoBiotec)도 바이러스 벡터를 이용해 몸 안에서 카티 세포를 만들었다. 이 회사는 지난 1월부터 중국에서 다발성 골수종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첫 번째 환자는 치료 한 달 만에 암세포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회사는 밝혔다. 지난 3월 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는 에소바이오텍을 최대 10억달러(1조3579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체내든 체외든 바이러스 벡터로 유전자를 전달한 카티 세포는 모두 유전자 자체가 변형된다. 혹시 돌연변이가 생기면 암세포를 잡지 않고 엉뚱한 세포를 잡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 점에서 치료할 때만 T세포에서 암세포와 결합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방법도 개발됐다. 바로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mRNA 코로나 백신은 코로나바이러스의 돌기 단백질을 만드는 정보인 mRNA를 담고 있다. 몸 안에 들어가면 바이러스의 돌기를 만들어 항체를 유도하는 면역반응을 일으킨다. 마찬가지로 암세포와 결합하는 단백질을 합성하는 mRNA를 T세포에 전달한다. mRNA는 한 번만 해당 단백질을 만들고 분해된다. 말하자면 1회용 카티 세포 제조 방식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캡스턴 테라퓨틱스(Capstan Therapeutics)와 매사추세츠주의 오나 테라퓨틱스(Orna Therapeutics)는 나노입자에 mRNA를 붙여 T세포에 전달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두 회사는 올해나 내년쯤 임상시험에 들어갈 계획이다.

면역 항암제인 CAR-T세포는 2013년 사이언스지가 '올해의 연구 성과'로 선정했다. 회색 구형의 T세포에 암세포와 결합하는 파란색 '키메라 항원 수용체(CAR)' 단백질이 발현된 모습이다./Science
 

◇바이오 학계 스타들 총출동

T세포는 1980년대부터 치료제로 개발됐다. 처음에는 단순히 체외에서 T세포 수를 늘리고 다시 환자에 주입하는 방법을 썼다. 하지만 약효가 오래가지 않았다. 원래 T세포는 나뭇가지 모양의 면역세포인 수지상세포로부터 암세포를 발견했다는 신호를 받아야 작동한다. 세포 수가 늘어도 정찰병의 신호가 없으면 무용지물이었다.

 

1990년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연구진은 몸 밖에 꺼낸 T세포에 수지상세포를 노출시켜 에이즈를 치료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사람마다 수지상세포가 제각각이어서 큰 효과가 없었다. 대안으로 단백질 입자로 만든 수지상세포 모사체로 T세포를 자극하는 방법도 썼다. T세포 증식 효과는 컸지만, 질병을 일으키는 세포를 찾아내는 능력은 약했다.

 

암세포는 면역세포의 공격을 이리저리 잘도 피한다. 원래 건강한 세포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조금만 모양을 바꿔도 면역세포가 정상 세포로 오인해 공격하지 않기 때문이다.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은 2010년대 T세포가 암세포 표면에만 있는 항원 단백질을 찾아 결합하도록 유전자를 바꾸는 방법을 개발했다. 바로 카티 세포다. 사이언스지는 2013년 카티를 ‘올해의 연구 성과(Breakthrough of the year)로 선정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나 이제 카티 세포는 몸 안에서도 만들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상용화되면 시장이 더 커질 수 있다.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체내 카티 개발에 모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캡스턴 테라퓨틱스는 카티 기술의 선구자인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칼 준(Carl June) 교수와 같은 대학에서 mRNA 백신 기술을 개발해 2023년 노벨 의학상을 받은 드류 와이스먼(Drew Weissman) 교수가 세웠다.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아잴리아 테라퓨틱스(Azalea Therapeutics)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인 제니퍼 다우드나(Jennifer Doudna) 교수가 설립했다, 다우드나 교수는 유전자 편집 도구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개발해 2020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아잴리아는 나노입자와 바이러스 벡터로 몸 안에 있는 T세포에 암세포 감지 유전자를 전달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참고 자료

Nature(2025), DOI: https://doi.org/10.1038/d41586-025-01570-6

Science(2022),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bm0594

Science(2018),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ar6711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2013), DOI: https://doi.org/10.1056/NEJMoa1302369

Science(2013), DOI: https://doi.org/10.1126/science.342.6165.1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