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결합하는 '외골격 로봇'
2011년 일본의 한 정보통신연구소 연구진은 뇌의 특정 부분을 반복적으로 활성화하는 방법으로 시각 학습과 동일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밝혔다. 당시 이 연구는 영화 속 상상을 구현할 실마리로 기대를 모았다.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가 두뇌에 무술 관련 정보를 내려받고 순식간에 무술 고수가 된 것처럼, 배우지 않아도 뇌 자극을 통해 특정 능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구상이었다. 이는 10년이 지나도록 현실화되지 않아 연구진 공언이 지나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신 다른 방법으로 신체 활동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최근 잇따르면서 영화 같은 현실이 멀지 않았다는 기대가 나온다.
◇ ‘입는 로봇’에 AI 접목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연구진은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사람이 직접 착용하고 걷는 실험을 거치지 않고도 외골격(外骨格·exoskeleton) 로봇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곤충처럼 몸을 지탱하는 골격이 몸 바깥에 있다는 뜻을 담은 ‘외골격 로봇’은 사람 몸에 장착해 움직임을 강화하는 장치다. ‘입는 로봇(wearable robot)’으로 불리며 노약자 보행 보조, 군인의 전투 능력 강화 용도로 개발되고 있다.
이번 연구의 성과는 ‘입는 로봇’이 시뮬레이션으로 동작을 학습해 보행 능력을 단기간에 갖췄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사용자가 직접 착용하고 움직여 동작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분석해 ‘입는 로봇’ 제어에 적용하는 방식이어서 개발 기간이 오래 걸렸다. 또 사용자가 바뀌면 대대적인 보정 작업도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진은 모션 캡처(동작 인식) 기술로 확보한 신체 활동 데이터로 ‘입는 로봇’을 학습시켰다. 사람이 착용하고 작동하는 방식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수백만 번에 달하는 가상 학습으로 동작을 익힌 것이다. AI가 접목된 ‘입는 로봇’은 사용자의 움직임을 재빠르게 감지하고 그에 맞는 최적의 동작을 구현했다. 연구진은 이번 로봇을 착용한 이들의 에너지 효율이 일반인보다 걷기는 24%, 계단 오르기는 15% 높았다고 밝혔다. 달리기의 경우도 ‘입는 로봇’ 착용자의 에너지 효율이 13% 높아 더 오래 달릴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진은 “하체뿐 아니라 더 다양한 신체 부위에도 이번 원리를 적용해 ‘입는 로봇’을 개발할 수 있다”며 “개인 맞춤형 동작 보조 로봇이 보편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누구나 메시처럼 축구 잘하게 될까
일각에서는 AI가 ‘입는 로봇’과 결합하면 영화 매트릭스처럼 배우지 않고도 무술과 운동 등을 능숙하게 하는 시대가 온다고 전망한다.
AI가 가상 학습으로 인간의 정밀한 동작까지 익힐 수 있게 되면서 현실화를 눈앞에 뒀다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 4월 구글 딥마인드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상 학습으로 일어서는 방법부터 드리블, 슈팅, 수비까지 배운 로봇이 실제 경기에서도 손색없이 축구 기술을 구현했다. 딥러닝과 강화 학습을 결합한 ‘심층 강화 학습’으로 로봇이 시행착오를 통해 개선점을 배워가면서 축구 실력을 갖춘 것이다. 이처럼 시뮬레이션으로 익힌 기술을 실제 동작에 바로 적용하는 것을 ‘제로 샷 트랜스퍼(Zero-Shot Transfer)’라고 한다.
이렇게 심층 강화 학습을 통한 가상 훈련으로 대가(大家)의 동작을 익힌 AI가 ‘입는 로봇’에 적용되면, 누구나 뛰어난 실력을 뽐낼 수 있다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예컨대 AI로 축구에 특화한 ‘입는 로봇’을 입으면 리오넬 메시처럼 현란한 드리블과 슛을 할 수 있다거나, 연주에 특화된 웨어러블 재킷을 입으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나 기타리스트 못지않은 공연이 가능하다는 식이다. 이에는 미달하지만 미국 조지아공대 연구진은 드럼 주자의 팔에 추가로 로봇 팔을 장착해 보다 다채로운 연주를 가능케 한 ‘입는 로봇’을 선보였다. 2021년 캐나다 워털루대 연구진은 자율주행차처럼 장애물을 피해가며 스스로 걸어갈 수 있는 AI 기반의 ‘입는 로봇’을 개발했다. 사용자가 일일이 수동으로 조작할 필요가 없도록 자율 보행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정교한 수술이 가능하도록 하는 의료용 웨어러블 로봇도 개발되고 있다.
곽수근 기자 송복규 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4.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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