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텐센트와 미국 아마존, 거대한 인구와 시장을 바탕으로 서비스 확산 추세
“충분히 발달한 과학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
영국 작가 아서 C 클라크의 말처럼 중국의 결제 기술은 이미 마법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지난 4일 오후 중국 선전시 난산구 ‘로손’ 편의점. 음료수를 고른 다음 계산대로 가서 단말기 위 5cm 높이에 손바닥을 올리니 약간의 온기가 느껴지며 ‘결제 완료’ 음성이 들렸다. 결제까지 걸린 시간은 단 2초. 단말기에 달린 카메라가 손바닥의 주름 모양과 정맥을 인식하고, 연동된 결제 앱의 돈을 차감하는 방식이다.
사용을 위해 손바닥을 ‘등록’하는 과정도 단 1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전용 단말기에 손을 올리고 스마트폰을 켜서 ‘동의’ 버튼을 두 번 눌러주면 즉시 손바닥과 결제 앱인 웨이신(중국판 위챗) 페이를 연동할 수 있었다. 이 손바닥 결제 시스템은 중국 시가총액 1위인 기술 공룡 텐센트(시총 560조원)가 개발한 ‘팜페이먼트’다. 손바닥 결제는 미국 아마존이 2020년 먼저 선보이며 선두를 달렸지만, 지난해 5월부터 텐센트가 기술 도시 선전을 기반으로 지하철·체육관·수퍼마켓 등에 도입하며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다.
◇미·중의 ‘손바닥’ 경쟁
세계 결제 시장에서 미국과 중국이 ‘손바닥’을 둘러싼 주도권 경쟁에 나서며 흐름이 바뀌고 있다. 과거에도 한국(롯데카드)·일본(후지쓰)을 비롯해 각국에서 손바닥 결제가 시도됐지만, 중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IT 공룡인 텐센트와 아마존이 시장 확장에 나서면서 생체 인식 결제의 시대가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 기업들은 거대한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확보해 기술 완성도가 높고, 충성 고객 16억명(텐센트 13억명·아마존 3억명)을 등에 업었다는 우위가 있다. 영국 구드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세계 생체 인식 시장 규모는 2026년 5조7650억달러(약 7700조원)에 달하고 이용자는 30억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중국 텐센트는 지난 5일 자사 손바닥 결제의 ‘세계 진출’을 선언했다. 이날 오전 중국 선전시에서 열린 ‘텐센트 글로벌 디지털 에코시스템 서밋(DES)’에서 포슈 영 텐센트 클라우드 인터내셔널 수석 부사장은 “텐센트의 손바닥 인증 설루션이 인도네시아 최대 통신사인 텔콤셀과 손잡고 세계적으로 시범 운영된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무대에 오른 다우손 퉁 텐센트 수석 부사장은 “성장의 기회는 글로벌 시장 개척에 있다”고 했다. 알리바바그룹의 알리페이도 지난해 3월 손바닥 인증 특허를 신청했다. 중국의 양대 모바일 간편 결제 서비스인 위챗페이(텐센트)·알리페이(알리바바)는 지금껏 아시아 주요 기업들과의 협력을 통해 영토를 확장해 왔는데, 앞으로는 손바닥 결제 영역에서 이 같은 전략이 도입된다는 뜻이다.
미국 아마존도 공격적으로 시장 확장에 나서고 있다. 아마존은 지난 3월 “아마존 원 앱을 이용해 누구나 손바닥 결제 서비스에 가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아마존 원의 전용 단말기가 있는 오프라인 매장을 찾아가야 손바닥 등록이 가능했는데, 이제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곧장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 아마존은 2020년 손바닥 결제를 선보인 이후 자사의 유기농 식료품 매장인 ‘홀푸드마켓’과 무인 자동 결제 편의점인 ‘아마존 고’, 스타벅스, 야구장 등에 보급해 왔다.
손바닥을 둘러싼 경쟁에서 미국과 중국은 저마다 강점이 달라 누가 승자가 될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아마존은 손바닥 결제의 선두 주자인 데다 미국이 연대하는 선진국들에 빠르게 침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비해 텐센트는 웨이신·위챗페이가 보유한 13억 사용자를 통해 빠른 서비스 확산이 가능하다는 게 장점이다. 에릭 리 텐센트 클라우드 AI 부총괄은 “중국에서는 다른 나라들이 경험하지 못한 도전을 해결하며 기술을 발전시킨다”면서 “중국 남부 광둥은 덥고 동북 지역은 춥고, 수많은 사람의 피부색과 손 모양, 땀 나는 정도가 다른데 이런 변수들을 고려한 손바닥 인식 기술을 만들었다”고 했다.
◇손바닥의 장점은 정확도
지문, 홍채, 얼굴로 이어져 온 생체 인식 결제의 계보가 손바닥으로 향하는 것은 정확도가 높기 때문이다. 제라르 메디오니 아마존 부사장은 지난해 9월 “손바닥 인식이 얼굴 인식보다 1000배, 홍채 인식보다는 100배 더 정확하다”고 했다. 아마존에 따르면, 손바닥을 등록한 수십만 명이 총 800만번 인식시키는 동안 단 한 건의 오류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얼굴 인식은 쌍둥이를 구별하지 못하고, 지문 인식은 지문이 닳으면 이용하기 어렵지만, 손바닥은 반창고를 붙이고 있어도 인식이 가능하다. 동의 없이 이뤄질 수 있는 ‘안면 인식’과 달리 손을 뻗는 ‘의사 표현’이 필수고, 홍채 인식보다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게다가 휴대폰이나 워치 등 기기를 꺼내지 않아도 되고, 결제할 때마다 소요되는 10초 가량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 4일 방문한 텐센트 본사에서는 1층 입구에서 입장하는 직원들이 사원 카드 대신 손바닥을 내밀고 있었고, 사내 카페 계산대 앞에 선 직원들은 모바일 결제 앱보다 손바닥 결제를 선호했다. 편리한 손바닥 생체 인식 방식은 결제 수단을 넘어 오프라인에서 신분을 확인하는 ‘인증’ 분야로 사용처를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는 예상도 나온다. 병원 진료나 술·담배 구매, 공항 출입을 할 때마다 손을 뻗거나 흔들기만 하면 되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생체 데이터 안보 우려도
하지만 생체 정보 제공에 대한 거부감과 데이터 안보 우려는 넘어야 할 높은 벽이다. 신용카드는 재발급받을 수 있지만, 생체 정보는 대체 불가라고 생각되니 섣불리 내주기 어렵다. 손바닥으로 모든 것을 결제하고 인증하는 세상에서 오류가 생기거나 개인의 권한이 제한된다면 꼼짝 없이 무기력한 상태에 놓일 것이란 공포도 있다. 또 암호화해 보관·전송한다고 주장하는 생체 정보의 유출 가능성도 여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아마존은 다만 “회사 서버에 저장되는 것은 손바닥 이미지 자체가 아니라 이미지를 암호화한 일종의 전자 서명이고, 카드를 재발급하듯 유출된 서명을 없애고 새 서명으로 교체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또 손바닥 인식 기기에 ‘활성 감지’ 센서를 장착해 실제 손바닥과 복제품을 구별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아마존은 “1000개가 넘는 실리콘 손바닥으로 아마존 원 기기를 시험해 봤지만, 한 번도 인증된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다만 신용카드나 각종 ‘페이’로 편의성이 높아진 결제 시장에서 수요가 크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실제로 롯데카드는 일본 후지쓰와 손잡고 2017년 ‘핸드페이’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현재 한 곳에서만 결제 가능한 상황이다. 국내에서 도입된 각종 안면 인식 결제도 아직은 확산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베이징의 한 기술 기업 투자자는 “손바닥 결제는 올해가 원년”이라면서 “미국의 국제 영향력과 중국의 ‘인해전술’이 합쳐지면 손바닥 결제가 빠르게 확산하며 결제 시장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조선일보 입력 2024.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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