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상식

콱 깨물어주고 싶은 이 짐승, 동물계 최악의 변태라는데

해암도 2023. 12. 20. 05:19

[수요동물원] 

바다에서 일평생 보내는 족제비 해달
귀엽고 유순한 이미지로 만화캐릭터로도 인기
번식철 수컷의 엽기적 만행에 비명횡사 속출
어린 물범과 가마우지에게까지 달려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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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의 힘은 위대하면서도 무섭습니다. 한낱 짐승의 생김새에서 사람에게 어필만한 포인트를 잡아내 인격과 세계관을 부여해 사람들을 사로잡습니다. 병균을 옮기는 더러운 쥐가 미키 마우스가 됐고, 북경오리요리 재료는 도널드 덕이 됐어요. 미국 못지 않은 캐릭터 왕국인 일본도 캐릭터화 테크닉도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수십년전까지만 하더라도 통용되던 ‘도둑고양이’라는 명칭이 슬며시 사라지고 ‘길고양이’라는 이름으로 순화될 정도로 고양이에 대한 보편적 인식이 개선된데는 한국의 학교앞 문방구를 점령했던 고양이 캐릭터 ‘헬로 키티’의 공이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족제비 무리중 유일하게 바다에서 일생 대부분을 보내는 해달. / Douglas Croft. NOAA
 

이런 흐름 속에 낯선 동물들이 별안간 친숙한 캐릭터가 됐어요. 그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가 30대 이상에겐 추억의 캐릭터로 기억될 아기해달 보노보노가 있어요. 파란 색 털옷을 입고 가리비 껍질을 들고 있는 귀여운 캐릭터, 보노보노 말입니다. 인간들이 창조한 세계에서는 족제빗과의 해양 맹수 해달(보노보노)과 전혀 서식지를 공유하지 않는 너구리(너부리), 너구리의 한 입 식사거리인 다람쥐(뽀로리)가 다함께 룰루랄라 손잡고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귀여움으로 한 시절을 풍미했던 보노보노로 유명한 동물 해달에 대해서 이번주는 이야기할까 합니다.

해달이 게를 잡은뒤 다리를 부러뜨려 먹기 전의 모습. /Jenni Peters. NOAA
 

이빨로 고기 씹어먹는 짐승들의 그룹 ‘식육류’는 네 개의 큰 본류 파벌과 하나의 아류로 나뉠 수 있습니다. 사자·호랑이·표범 등이 으르렁대는 고양이파, 늑대가 울부짖고 여우가 캐캥대는 개파, 북극곰과 불곰부터 판다까지 아우른 곰파, 그리고 족제비파입니다. 나머지 아류는 드넓은 바다로 나아간 기각류(물범·물개·바다코끼리 등)들이죠. 이 중 덩치나 파워면에서 딸리는 듯 해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미미한 게 족제비파죠. 그러나 이는 편견일 뿐, 가장 다양한 모습으로 지구촌 곳곳에서 번성하고 있습니다.

M자 형태를 보이는 해달의 서식지 분포도. /NOAA
 

대재앙이 불어닥쳐 개·고양이·곰·기각류들이 절멸한다고 해도 아마 족제비들은 변화된 환경에 기가막히게 적응하면서 대대손손 번성할 것입니다. 오늘도 이들은 서울 도심 복판의 시장통(족제비), 미국의 주택가(스컹크), 산속(담비·오소리), 강과 호수(수달), 눈밭(울버린), 사바나(벌꿀오소리)를 누비고 있을 겁니다. 뭍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기각류와 고래들이 “내가 이구역의 포유동물 대장”이라며 으름장을 놓는 바다까지 나아갔어요. 오늘도 북태평양 어딘가에서 미역과 다시마 줄기에 몸을 칭칭 감도 둥둥 뜨면서 게 다리를 쩌걱 쩌걱 분지르고 있을 놈들, 바로 해달입니다.

해달이 수면에 누운채로 털을 다듬고 있다. /National Parks Service
 

테디베어 곰인형을 연상시키는 동글동글한 해달의 모습은 매력적이에요. 족제비류 전반에 흐르는 살기를 찾기 힘들죠. 바다에 터잡은 해달의 생태는 여타 족제비류, 특히 가까운 친척뻘인 수달과 적지 않은 차이를 보냅니다. 세계지도에서 해달의 서식지를 따라 선을 그어보면 엠(M)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 동북쪽부터 시작해 캄차카반도와 사할린, 그리고 베링해협을 지나서 알래스카, 다시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와 미국 워싱턴·오리건·캘리포니아, 그리고 멕시코 바하 칼리포르니아주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해달을 ‘우리나라 동물’로 다루는 나라는 고작 다섯개 나라 정도인 거죠.

성게를 사냥한 해달이 막 먹을 참이다. /National Science Foundation
 

19세기까지만 해도 두툼하고 따뜻한 모피를 얻으려는 수요 때문에 수난을 겪었지만 지금은 ‘세계에 유일의 바다 족제비’라는 생태적 가치가 부각되면서 국제적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앙증맞은 외모도 인류의 보편적 보호본능을 자극했을 겁니다. 해달은 새끼를 낳을 때 정도만 뭍을 찾을 뿐, 삶은 대부분 바다에서 이뤄집니다. 해달의 사냥은 족제비류중 가장 정적이고 고요합니다. 주 식사메뉴는 성게와 조개, 게 등 수산물. 대개 족제비류는 먹어치울 본래 목적 이상으로 살상을 즐기는 잔혹함으로 악명높은데요. 다른 족제비류가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로 사냥감의 숨통을 끊는 반면, 해달들이 하는 것이라곤 바다에 둥둥 누워서 탄탄한 복근을 테이블 삼아 식사하는 것이죠.

 
 
해달이 수면에 누워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Monterey Bay National Marine Santuary
 

단단한 껍데기의 조개는 돌로 쾅쾅 내리찧어 껍데기를 부수고 속을 헤집어먹습니다. 게의 경우는 열개의 다리를 하나 하나 뚝뚝 분지르면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한 다음에 본격적으로 껍데기속 싱싱한 속살을 음미하죠. 다시마 등 튼튼한 해조류도 해달의 삶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먹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둥둥 떠있는 다시마 줄기는 고단한 하루 일과를 끝내고 피곤을 풀어주는 편안한 침대입니다. 천적 범고래에게 쫓길 때 긴급한 피난처 역할을 하죠. 족제비류 특유의 약삭빠르고, 잔혹하고, 치밀해보이는 모습을 찾기 힘들어요. 바다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안빈낙도하는 천진난만하면서도 시공을 초월한 캐릭터같죠.

해달이 무리지어 바닷가에 둥둥 떠 있다. /Jefferson Public Radio
 

하지만 세상엔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고, 어딘가에서는 뜻하지 않는 반전이 도사리고 있기 마련입니다. 사랑스러운 바다동물 해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이들의 생태를 근접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해달의 숨은 본성이 드러나고 있어요. 온라인 과학매체인 IFL 사이언스는 동물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기이한 습성을 다룬 2013년 기사에서 해달을 소개하면서 이 짐승의 수컷을 ‘동물계 최악의 변태(biggest sicko of animal kingdom)’라고 했어요. 도대체 어떤 습성을 보였길래 이렇게 험한 타이틀을 갖다붙인 걸까요?

해달 암수가 짝짓기를 하기 직전 다른 해달이 이를 응시하고 있다. /John Moncrieff Photography Facebook 캡처
 

일생 대부분을 바다에서 보내는 족속 답게 번식 역시 수중에서 이뤄집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수컷 해달에 의해 비명횡사하는 희생자가 속출합니다. 이 희생자 중에 암컷 해달만 있는게 아니에요. 캐나다 서부 해안부터 캘리포이나 연안가지 골고루 수집된 목격담에 따르면 번식기 수컷 해달에 살해당한 희생자 상당수가 점박이 물범의 어린 새끼들이었어요. 목격자들은 물범 새끼가 해달에게 잡혀 죽는 과정, 그리고 죽은 다음에 해달 수컷이 취한 기괴한 행동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습니다. 엽기적으로 훼손된 사체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합니다.

번식철 수달 한쌍이 수중에 있는 장면이 잡혔다. /John Moncrieff Photography Facebook 캡처
 

사체를 한동안 놓지 않는 놈이 있는 가하면, 다른 놈은 흥미를 잃은 듯 사체를 툭 흘려보내더니 태연하게 털을 가다듬고 있더랍니다. 특유의 사랑스러운 귀여운 해달 미소를 지으면서요. 캐나다 매체 밴쿠버 선이 2014년에 해달 수컷 만행 목격담을 소개합니다. 밴쿠버 부근 누트카섬의 은퇴한 등대지기가 ‘휘스커’라 이름지었던 해달의 섬뜩한 행각을 전해줍니다.

바위위에 쉬고 있는 점박이물범. 이 짐승의 어린 개체가 번식철 수컷 해달에 의해 엽기적으로 살해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NOAA
 

‘휘스커’는 인근 인디언 부족 마을에서 사는 개들을 곯려먹는 걸 즐길 정도로 영악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개 세 마리 중 한 마리의 약을 올려서 바닷가로 달려들도록 유인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등대지기의 눈에 비현실적 광경이 들어왔습니다. 물에 둥둥 떠다니는 개의 사체,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타있는 해달의 기괴한 몸짓이었습니다. 비슷한 목격담이 밴쿠버 부근에서 영업하던 수상택시기사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물개무리와도 곧잘 어울리던 ‘로키’라는 이름의 해달이 뚫어져라 보고 있던 건 물새 가마우지였습니다. 기습한 해달에 이끌려 물속에서 허우적대던 가마우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축 늘어진 채 사체가 돼 물을 둥둥 떠다녔습니다. 정작 해달은 가마우지 고기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앉아서 쉬면서 날갯짓하는 가마우지. 번식철 수컷 수달이 가마우지를 가혹하게 살해했다는 사례가 보고됐다. /National Parks Service
 

그런가하면 알래스카의 해달 서식지에서는 수컷이 암컷을 잔혹하게 괴롭혀 죽음에 이르는 동안 다른 무리의 수컷들은 자기들끼리 몸을 부둥키고 뒹구는 장면까지 목격됐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3년동안 해달 수컷이 엽기적인 방법으로 새끼 물범의 목숨을 빼앗은 차례가 열 아홉 차례가 보고됐습니다. 이쯤되면 왜 이 귀여운 짐승에게 ‘변태’라는 악명이 따라붙었을지 충분히 납득이 될 정도예요. 보이는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해주는 짐승이 바로 해달이 아닐까 합니다.

 

정지섭 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3.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