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상식

“열아홉 살에 당뇨병 진단… 지금껏 건강 유지한 건 ‘두 가지’ 덕분”

해암도 2023. 12. 12. 06:03

[밀당365]

 

[밀당 인터뷰]‘모범 당뇨인’ 유진우씨

 
학업에 정진해야 하는 10대나, 사회 활동이 활발한 20~30대에 당뇨병이 발병하면 환자는 더 큰 절망을 느낍니다. 평생 관리해야 하는 만성질환인데다가,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합병증 위험이 중·장년 당뇨병 환자들에 비해 더 큽니다. 오늘은 이런 모든 여러 어려움을 이겨내고 17년째 합병증 없이 당뇨병을 잘 관리하고 있는 젊은 당뇨병 환자 한 분을 소개합니다. 유진우(36·대전시 동구)씨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밀당365 가족 여러분 모두가 희망을 갖고 혈당을 관리해가시면 좋겠습니다!

 

 
유진우씨./사진=신지호 기자
 
 
‘모범 당뇨인’을 소개합니다

밀당365가 유진우씨를 처음 만난 건 지난 달 14일, 청와대에서 개최된 세계 당뇨병의 날 기념식 때입니다. 이 행사에서 유씨는 대한당뇨병학회의 ‘모범 당뇨인’으로 선정됐습니다. 대한당뇨병학회 원규장 이사장은 “학회는 2018년도부터 혈당 관리를 잘 해 다른 당뇨병 환자들에게 귀감이 되는 모범 당뇨인을 선정해오고 있다”며 “유진우씨는 10대 시절에 당뇨병을 진단받고도 위축되지 않고, 기본에 충실한 혈당 관리법을 잘 지켜오고 있기에 모범 당뇨인으로 선정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유씨와의 인터뷰를 진행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기본’에 충실한 혈당 관리가 인상 깊었습니다. 유진우씨가 당뇨병을 진단 받은 건 2006년, 그가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일 때입니다. 대학 입시 준비에 한창이던 그는 하루에 네 시간 미만으로 잠자면서 나머지 시간은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반장과 부반장을 지냈을 정도로 학교생활에 열심이었습니다. 공부를 위해 밥 먹는 시간을 줄이느라 매점에서 빵을 사서 끼니를 때웠습니다. 피곤할 때는 물 대신 자양강장제를 마시며 버텼습니다.
 
그러던 중 고3 9월, 구역감과 극심한 피로감을 이기지 못하고 조퇴 후 집에서 잠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3일이 지났고, 중환자실이었다고 합니다. 급성 당뇨병성 케톤산증이었습니다. 당뇨병성 케톤산증은 체내 인슐린이 부족해져 혈당이 오르고 혈액이 산성화돼 오심, 구토, 의식 저하 등이 나타나며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르는 질환입니다. 유씨처럼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스트레스 호르몬이 급격히 증가하는 경우 생길 수 있으며, 자신이 당뇨병인 사실을 모르다가 이 질환으로 병원에 내원해 당뇨병을 진단받기도 합니다. 유진우씨도 이때 처음으로 1형 당뇨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세계 당뇨병의 날 기념식에서 모범 당뇨인을 시상하는 원규장 이사장(왼쪽)과 유진우(오른쪽)씨./사진=대한당뇨병학회 제공​
 
 
진단 후 180도 달라진 인생

당뇨병 진단 이후, 유씨는 인슐린 치료와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생활패턴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초기에 혈당이 잘 조절되지 않아, 맞는 치료법을 찾느라 시간을 많이 들였습니다. 자연스레 공부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막판 스퍼트를 내지 못해 11월 대학수학능력시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갑작스런 당뇨병 진단 탓에 계획했던 것들이 틀어지는 것 같아 좌절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집이 아닌 곳에서 인슐린을 투약하거나 혈당을 잴 때 느껴지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었습니다.
 
다행히 유씨 곁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유씨가 친구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인슐린 주사를 안전하게 맞을 수 있게 배려해줬고, 어머니는 대체 당을 활용해 건강한 당뇨식을 준비했습니다. 아버지는 함께 운동하며 유씨가 지치지 않도록 이끌어줬습니다. 덕분에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장래희망이었던 이공계 교사의 꿈은 접었지만,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학교의 수학과에 지원해 대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기본’에 충실하기로

대학생 4학년 때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 인턴 활동을 지낸 것을 계기로 연구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공공정책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연구원을 그만두고 내년 합격을 목표로 행정고시 공부를 하는 중입니다. 공부에 집중하다보니 끼니를 거르거나 불규칙한 생활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당뇨병 진단 이후 쭉 당화혈색소를 6.5% 미만으로 유지했는데, 공부를 다시 시작하며 당화혈색소가 11.4%으로 올랐습니다. 저혈당도 잦아졌습니다. ‘이렇게 하다가는 또 중환자실 신세를 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혈당을 잘 관리하기 위해, 유진우씨는 ‘혈당 수치’와 ‘의사’ 이 두 가지만 보고 믿었습니다. 혈당이 현재 건강 상태를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지표라고 여겨 혈당 변화 폭을 줄이는 데 집중했습니다. 평소와 다른 혈당 변화가 나타나면 곧바로 병원으로 갔습니다. 주치의와 함께 원인을 파악했습니다. 주치의가 학회지, 논문 등을 토대로 유씨에게 잘 맞는 운동이나 식사 관리법을 제안하면, 유씨는 그것을 그대로 실생활에 적용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가장 효과적인 혈당 관리 방법을 찾았습니다. 주치의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다 보니, 부정확하거나 불필요한 정보에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7월부터는 연속혈당측정기를 착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연속혈당측정기를 사용하니 자신에게 맞는 식사법을 찾는 게 수월했습니다. 아침에는 생 채소(비트, 사과, 당근)를 먹고, 점심과 저녁에는 비교적 자유롭게 먹되 물엿이 들어간 식품이나 잡채는 멀리합니다. 물엿이 든 식품이나 잡채를 먹은 후 혈당이 크게 오른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게 된 덕분입니다. 하루에 혈당이 최고점을 찍는 시간대도 파악했습니다. 혈당 피크가 올 시간이 되면 미리 실내 자전거를 타는 등 몸을 움직여서 혈당 변화폭을 조절합니다.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나 압박감이 심할 때는 반려견과 산책하며 마음을 다스립니다. 마침내 당화혈색소가 다시 6.5%대로 낮아졌고, 지금까지 합병증 없이 혈당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유진우씨>

-10대 때부터 지금까지, 당뇨병 환자로 살면서 겪었던 어려움은?
“인슐린 주사를 맞을 때 주위의 눈치를 봐야한다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아직까지 당뇨병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남아 있어서 외출해서는 화장실에서 인슐린 주사를 맞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몇몇 친한 친구들은 알고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지인들은 제가 당뇨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더 인슐린을 숨어서 주사하곤 했는데, 이런 문제로 대학생 때 MT를 한 번도 못가 본 게 지금 너무 후회가 됩니다. 집 밖에서도 인슐린 주사를 투약하는 모든 과정이 편리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당뇨병은 누구나 걸릴 수 있고, 당뇨 환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보다 많은 이들이 알고 이해하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사회적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당뇨병 환자들의 의료 사각지대가 하루빨리 개선됐으면 합니다. 필요한 상황에서 인슐린 투약이나 혈당 측정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 탓에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아직까지 사회에 팽배한 당뇨병에 대한 오해 때문에 환자들이 자신의 투병 사실을 숨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잘못된 정보에 노출되는 일도 많고요. 이런 이유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는데, 제가 경험해보니 스트레스는 혈당에 아주 나쁜 영향을 끼칩니다. 당뇨병에 대한 정보를 일반인들도 많이 숙지하고, 당뇨병 환자의 진료 문턱이 낮은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면 좋겠습니다.”
 
-당뇨병 관리 중 힘든 순간은?
“예상치 못한 혈당 변화가 가장 당혹스럽고 힘듭니다. 그중에서도 간간이 발생하는 저혈당 문제가 굉장히 신경 쓰이고 걱정됩니다. 혈당은 현재의 몸 상태를 가장 잘 나타내는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거나 피로를 느끼면 바로 변화가 나타나더라고요. 한 번은 공부 흐름이 끊기는 게 싫어서 식사를 걸렀더니 저혈당이 너무 심하게 와 혈당이 측정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갖고 있던 포도당 사탕을 전부 먹었는데도 혈당이 오르지 않아 크게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연속혈당측정기 착용입니다. 혈당을 틈틈이 확인할 수 있고, 그만큼 빠르게 대처할 수 있어서 아주 편리합니다. 1형 당뇨병 환자는 연속혈당측정기 구입 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만큼, 해당하는 환자라면 적극 활용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행정고시에 관심을 가진 게 당뇨병 때문이라고요?
“제가 당뇨병 환자이다 보니 만성질환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주기적으로 병원에 갈 때마다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사람을 종종 봤고, 저보다 어린 당뇨병 환자들을 많이 알게 됐습니다. 당뇨병은 점차 그 환자 수가 늘고 있는 질환입니다. 많은 당뇨병 환자를 위한 공공정책을 마련하고 싶다는 생각에 행정고시를 준비하게 됐습니다. 당뇨병 환자뿐 아니라 원래 건강한 사람들은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고민하고 만들고 싶습니다. 내년 합격을 목표로 열심히 노력 중입니다.”
 
-왜 본인이 ‘모범 당뇨인’으로 뽑혔다고 생각하시나요?
“기본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기본이란 나의 건강 상태를 잘 아는 주치의를 믿는 것과, 내 혈당 수치 외의 다른 요소들에는 휘둘리지 않는 것입니다. 혈당이 잘 안 잡힐 때는 주치의 선생님인 대전한국병원 이상호 원장님을 찾아가 조언을 구합니다. 그 분이 조언해주는 것은 꼭 실천해보고, 그게 제 몸에 맞는지 혈당을 재서 확인합니다. 해답은 늘 기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이들이 아닌 의사의 말을 듣고, 내 혈당을 확실히 변화시켜준 것을 파악하고 익히기. 이것이 바로 제가 모범 당뇨인으로 선정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젊은 당뇨병 환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당뇨병에 대한 잘못된 정보에 휘둘리지 말아야 합니다. 궁금한 점이 있을 때는 주치의에게 질문하는 게 가장 정확하고 빠릅니다. 요즘에는 유튜브 등 여러 매체에서 의사나 약사의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채널이 많은데요. 주치의 선생님과 함께 확인해보니 업데이트된 최신 연구를 기반으로 한 게 아니라 옛날 이론으로 설명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기반으로 혈당을 관리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밀당365‧대한당뇨병학회처럼 팩트 체크를 거친 정보를 게재하는 매체를 활용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평소에 스트레스를 잘 해소하려는 노력도 중요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아예 안 받을 수는 없겠죠. 본인만의 기분 전환 방법을 찾으세요. 건강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면 저처럼 젊은 당뇨인들의 혈당 관리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최지우 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3.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