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나는 저출생·고령화와 싸우는 戰士… 이제 바이오뱅크 시대 열어야”

해암도 2023. 9. 16. 08:44

 난자급속냉동 개발 25년… 차광렬 차병원 연구소장

차광렬 차병원 연구소장은 “난임, 불임 분야에선 차병원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했다. 그러면서도 “이제 안티에이징 연구에 몰두해야 할 때”라며 “바이오뱅크 등 국가 차원의 큰 그림이 필요하다”고 했다. 차 소장이 서 있는 곳은 경기 판교 차바이오컴플렉스의 셀뱅킹센터. 여기서 영하 196도로 난자와 제대혈 등을 얼려 보관한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괴짜다. 여름의 끝자락이지만 여전히 30도를 찍는 날씨인데 검은색 터틀넥 위에 체크 재킷까지 걸치고 나왔다. “스티브 잡스보다 내가 먼저 이렇게 입었어요. 하하.”

 

차병원의 차광렬(70) 연구소장이다. 산부인과 의사이자 차병원그룹 회장이지만 연구소장이라는 직함을 더 좋아한다. 이런 특출난 고집과 생각이 그를 연구로 이끌었다. 지금도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을 연구 미팅에 쓴다는 차 소장을 지난 11일 경기 분당 차바이오컴플렉스에서 만났다.

 

“아직은 이룬 게 없어요. 지금까지는 난자냉동에서 시작해 난임·불임에 힘을 쏟았다면 이제 제 꿈은 안티에이징(항노화) 연구에서 결실을 보는 겁니다. 더 뛰어야죠.”

 

차 소장은 1998년 세계 최초로 유리화난자동결법(난자급속냉동방식)을 개발한 주인공이다. 당시엔 의학적으로 인정받지 못해 서러움도 겪었지만 이듬해 그가 만든 난자은행은 현재 세계 곳곳에서 표준화해 사용하고 있다. 올해로 25년. 2년 반 만에 인터뷰를 자청한 그는 저출생과 고령화라는 우리 사회의 난제 두 가지를 붙잡고 있었다.

 

“지금은 난자은행이 대세지만 거기서 멈춰선 안 됩니다. 앞으로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 제대혈을 비롯해 탯줄 혈액, 젖니, 포경 전 고환세포 등 자기 세포를 모두 보관할 수 있는 시대가 돼야 해요. 이런 것들이 난치병과 노화를 푸는 열쇠가 되고요. 국가가 관리하는 맞춤형 바이오뱅크 설립에 나서야 합니다.”

차광렬 차병원 연구소장은 “지금도 연구가 너무 재밌다”며 “실력자와 토론을 할 때는 지적 만족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진은 경기 분당 차바이오컴플렉스의 차 소장 집무실이다. 여기에는 개인 책상은 없고 회의용 책상만 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갈 길이 멉니다”

난자동결법은 처음 세상에 공개 됐을 때만 해도 임신이 어려운 암 환자 등을 위한 시술이었다.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해 난자를 얼려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녹여 쓰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2010년 들어 미혼 여성들 사이에서 미래의 임신과 출산을 위해 난자를 얼리고 싶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수십 명에 그쳤던 시술 건수는 2021년부터 매년 1000건 이상씩 이뤄지고 있다. 얼린 난자로 출산에 성공한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다. 이론적으론 10년 넘은 냉동난자로도 임신과 출산이 가능하다. “난임·불임 분야에선 세계 최고죠. 미국 하버드보다 낫습니다. 상을 더 많이 받았거든요.” 차병원에서는 한 해 시험관 아기 1만5000명이 태어난다. 난임, 불임 시술로 출생하는 아이의 약 40%를 책임지고 있다.

 

-25년 전 난자냉동 연구는 어떻게 시작했나요.

“1960년대에도 영국에서 첸 박사가 슬로프리징(slow freezing·완만 동결) 방법으로 난자를 얼렸어요. 그런데 성공률이 1% 미만이라 임신 가능성이 낮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빠르게 속도를 확 올렸고 성공한 거죠. 그리고 곧바로 난자은행을 도입했습니다.”

-성공한 뒤 반응은 어땠나요.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BBC 등에선 난리가 났죠. 집으로 전화가 빗발쳤어요. 그런데 학계에선 난자은행이 무슨 의학적 가치가 있느냐는 분위기였죠.”

-현재는 어떤가요.

“2014년 하와이 미국 생식의학회에서 난자은행을 임상에서 인용하고 나서부터 인식이 달라졌죠. 지금은 난자은행을 안 하는 곳이 없어요. 1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사람도 나타났는데 그때는 제가 뭘 몰랐어요. 비즈니스보다 연구가 더 중요했거든요.”

-합계출산율 0.78의 초저출생 시대라 냉동난자가 해결책 중 하나로 거론되는데.

“아직까지도 미혼 여성이 난자를 얼린다는 게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굉장히 부담스럽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 부담을 줄이면 난자은행이 더 활발해질 테고 저출생 문제도 적극 대응이 가능하죠.”

1998년 차 소장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유리화 동결법으로 얼린 난자. /차병원
 

◇인구 절벽 시대, 국가가 나서야

저출생 얘기가 나오자 그의 말이 빨라졌다. “심각성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아이 낳고 키우기가 너무 힘드니까 안 낳는 거예요. 못 낳는 것과는 다르죠. 정부가 유인책을 잘 써야 합니다. 결국 주택과 교육 문제를 해결해줘야 합니다.” 그는 의사지만 저출생 문제는 의학적으로 접근해선 풀 수 없다고 했다.

 

-이대로라면 올해 출산율이 0.6명(세계 평균은 2.4명)을 찍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매우 심각해요. 자, 보세요. 출산율이 0.6, 0.7이면, 한 해 20만명을 낳는다는 소립니다. 일본은 75만명에서 80만명 정도예요.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2.2배 정도 많은데 출산율은 3~4배까지 차이가 난다는 얘기죠. 이러다 정말 큰일 납니다.”

-별다른 해결책이 안 보여요.

“매년 20만명씩 낳으면 70년 동안 1400만명이란 얘기예요. 그렇게 말하면 심각성이 좀 느껴집니까? 정치하는 사람들이 상황을 너무 가볍게 보고 있어요.”

-사실 숫자로는 잘 와닿지 않아요.

“우리는 일선에서 피부로 느껴요. 애를 안 낳으니까 병원 운영이 점점 더 어려워지죠. 산부인과 의사도 안 하려고 하잖아요. 소아과도 그렇고. 아직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의료 수가도 문제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낳겠다는 사람은 낳을 수 있도록 무조건 도와줘야 합니다. 소득에 상관없이요. 독신주의자나 ‘애는 싫다’ 하는 사람 빼면 60~70%는 낳고 싶은데 안 낳는 거예요. 경제적 문제 때문이에요. 그걸 해결해줘야 합니다. 우선은 주택이 문제죠.”

-좀 더 구체적으로.

“저희가 40년간 병원 건물 등을 많이 지었잖아요. 지금 수준으로 평당 600만~700만원이 들어가요. 그런데 서울 강남을 보세요. 평당 억대 얘기도 나오잖아요. 그린벨트 풀어서 민간 건설업체에 주니까, 업체는 헐값에 땅 사서 시가에 팔고 수조원씩 벌었죠. 이게 사회정의에 부합하나요? 국가가 아파트를 지어야죠. 그러면 이명박 대통령이 말했던 ‘반값 아파트’? 그 이하로도 나와요. 평당 1000만원씩에 주겠다고 하면 애 낳을 겁니다.”

-그러고요?

“이제 시험관 아기 임신, 냉동난자 같은 건 정부에서 조금만 더 보조해주면 되는 수준까지 왔어요. 국가가 집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돈 얼마 줘서는 애 안 낳는다는 거죠?

“그렇죠. 집이 없는데 애를 낳겠어요? 지금 대장동 사건도 마찬가지예요. 왜 나라에서 그린벨트 풀어서 싸게 할 수 있는 걸 업자한테 줘서 이 지경을 만들어요.”

-말이 나왔으니 물어볼게요. 차병원이 인근 대장동 특혜 의혹에 휘말렸는데요.

“나랑 아무 관계도 없어요. 진짜 황당해요. 내가 땅을 받았다는데 전 듣도 보도 못한 얘기예요. 저는 정치는 전혀 몰라요. 좋아하지도 않고요. 그런데 다들 소설을 창작해요. 최순실씨도 진짜 모르는데 저랑 친하다고 뉴스에 났잖아요. 단 한 번도 본 적도 없어요. 맹세코.”

차 소장(오른쪽)과 차병원 창립자인 아버지 차경섭(왼쪽) 이사장. 99년 미국에 설립한 차병원 불임센터에서 컬럼비아대 닥터 로보와 함께 찍은 사진. /차병원
 

◇이젠 안티에이징 연구로

차병원은 아버지 고(故) 차경섭 명예이사장이 1960년 차산부인과를 개원하면서 역사가 시작됐다. 차 소장이 1984년 이름을 차병원으로 바꿨고 덩치를 키웠다. 2004년 한국 병원 1호로 미국 LA 병원을 인수한 뒤엔 일본, 호주, 싱가포르 등 7국에서 90여 개 센터를 운영 중이다. “지금 연구하는 건 안티에이징입니다. 만병의 근원은 노화예요. 세포가 늙는 걸 늦추면 모든 게 해결됩니다. 이제 120세까지 사는 세상이잖아요.”

 

-왜 산부인과 의사가 됐나요.

“아버지한테 세뇌당했죠. 초등학생 때부터 목표는 딱 하나였어요. 세브란스 산부인과요. 다른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죠. 할아버지가 목사셨는데, 아버지에게 ‘일본에 싫은 소리 듣지 않으려면 기술자가 되라’는 말에 의사가 되셨다고 그래요. 그런데 저는 애 받는 건 1년밖에 안 했고요. 난임 쪽으로 눈을 돌렸죠.”

-난임 연구는 어떻게 시작했나요.

“레지던트를 하면서 배운 적이 없어요. 당시만 해도 관련 학문이 성숙이 안 돼 있었기 때문이에요. 맨땅에 헤딩하기로 배워간 거죠.”

-앞으로는요?

“암도, 알츠하이머 같은 병도 전부 노화에서 시작합니다. 빈살만 등 세계 재벌들이 몇 조원씩 왜 투자를 하겠어요. 항노화에 투자하는 걸 나쁘게 생각할 일이 아니에요. 다른 나라에 운전대를 뺏기고 난 뒤에는 정말 힘들어집니다.”

-줄기세포 맞으러 일본 간다고 하잖아요.

“우리는 줄기세포 배양·증식 시술이 불법이니까요. 줄기세포는 50억년의 유전적 진화를 거듭한 세포예요. 골수나 헌혈도 다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줄기세포만은 기술이 아닌 약으로 취급합니다. 살아있는데 말이죠.”

-윤리적 문제 때문 아닌가요.

“그러니까 남의 세포에 대한 시술은 막고 자기 세포에 대한 것만 의사에게 재량권을 주면 됩니다. 불법 매매 등을 감안해서 국가에서 확실한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하고요.”

-바이오뱅크는 뭡니까.

“태어날 때부터 갖가지 세포를 보관해두자는 거죠. 앞으로 의료학이 얼마나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겠어요. 미래엔 면역이 가장 중요하게 떠오를 겁니다. 그때 자기 세포가 어떻게 쓰일지 몰라요. 모든 치료가 가능해질 수도 있고요. 실제로 늙은 쥐에게 줄기세포를 주입했더니 생리도 하고 털도 새롭게 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제대혈도 효과가 있고요. 뇌성마비 환자가 걷고 신경이 생겨나는 거죠.”

-노화를 얼마나 늦출 수 있을까요.

“더 젊어지는 때가 곧 옵니다. 제가 연구하는 것도 그것이고요.”

-바이러스 위기도 여전합니다.

“정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요. 기후가 어떻게 될지 모르면 결국 음식을 놓고도 전쟁이 날 수 있어요. 먹을 게 부족해질 수 있잖아요. 그래서 기술을 축적해야 해요. 헬스케어가 미래거든요.”

차병원 차광렬 연구소장은 동료 의사들과 하루 몇 차례씩 연구 미팅을 한다.
 

◇의사 아닌 의과학자로 불렸으면

요즘도 1년에 절반은 해외에 나가 세미나에 참석하거나 새로운 걸 찾는다. 국내에 머물 때면 동료 의사들과 하루 몇 차례씩 연구 미팅을 한다. 과거엔 시간이 아까워 많이 씹지 않아도 쉽게 삼킬 수 있는 짜장면만 먹었다. 외국에서 홀로 우버나 지하철로 다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자기 차를 이용하면 오히려 시간을 더 낭비한다는 것이다. “저는 아직도 연구가 너무 재밌습니다.”

 

-지금도 매일 토론을 한다고요?

“연구는 코먼센스(상식)예요. 실력 없는 사람과 얘기하면 답답한데, 실력 있는 사람과 얘기하면 지적 만족감이 상승하죠.”

-40년이나 경영했는데 쉬고 싶지 않나요?

“지금까지 한 게 없어요. 기반을 다진 것뿐이죠. 이룬 게 없으니 아직도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제가 하는 연구들도 결실을 맺어야 하고요.”

-차병원이 난임·불임 쪽에선 선도하고 있잖아요.

“그러면 뭐 합니까. 세계를 이끌고 가야지. 우리나라 위상이 많이 달라지긴 했어요. 그래도 정부가 좀 더 끌어주면 의료 분야도 IT처럼 세계 톱으로 올라갈 수 있어요. 기회가 몇 년 안 남았습니다.”

-연구소장이란 직함을 고수하는 이유네요.

“우리나라 종합 병원이 얼마나 큽니까. 그런데 너무 커지니까 톱니바퀴가 잘 안 돌아요. 교수나 의사들이 말을 안 듣죠. 나는 아직 맞물리면서 바퀴를 같이 돌려요. 그래서인지 아직은 (내 이야기를) 듣는 척은 해요. 매주 미팅을 20명씩 할 수 있는 동력이 아닐까요.”

-쉽지 않은 일인데요.

“아버지는 80세가 넘어서도 유전자 책을 매일 봤어요. ‘뭐 하려고 그렇게 보냐’고 하면 ‘다 이유가 있다’고 하셨죠. 공부하면서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려고 한 것 같아요. 저는 강제로 사람을 키우는 거니 좀 다르긴 하지만요. 하하.”

-요새도 짜장면 드시나요?

“레지던트 때는 이틀 동안 한 끼 먹기도 힘들었어요. 살기 위해서 짜장면을 먹은 건데 그 습관이 굳어졌어요. 지금은 천천히 먹으려고 노력해요. 나이가 있으니. 성분 따져가면서 먹지는 않지만 기름진 음식은 피하고 소식을 하는 편입니다.”

“의사들이 들으면 욕할 수도 있겠지만 의사, 간호사가 턱없이 부족해요. 더 뽑아야죠. 게다가 다 돈 벌러 가면 연구는 누가 해요?"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욕먹어도 할 말은 한다”

그는 성형외과, 피부과만 좇는 후배 의사들에게도 거침없었다. “의사들이 들으면 욕할 수도 있겠지만 의사, 간호사가 턱없이 부족해요. 더 뽑아야죠. 게다가 다 돈 벌러 가면 연구는 누가 해요. 신약 개발도 현장에 있는 의사들이 해야 합니다.”

 

-의대 광풍 시대인데.

“돈을 많이 버니까 그렇겠죠. 초등 의대반도 있더라고요? 의사 면허 있으면 취직도 되고 80대까지 일할 수 있으니까요.”

-왜 이럴까요.

“의사가 너무 없어요. 일례로 우리 병원도 몇 년 전만 해도 의사 뽑을 때 백업 체크도 다 하고 골라서 뽑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라이선스만 있으면 그냥 뽑아요.”

-차병원에서도 연구하다가 개업하겠다고 나가는 의사들 많죠?

“그렇죠. 돈에 눈이 어두운데 못 말려요. 그런데 정말 잘 생각해봐야 해요. UCLA 외과 교수 출신 패트릭 순시옹을 보세요. 수술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병원을 나와서 암 치료제 개발했잖아요. 지금은 캘리포니아에서 거부(巨富)죠. 의사는 한 방이 없어요. 돈은 과학자가 버는 겁니다. 성형외과 의사가 수천억을 벌겠어요?”

-방법이 있나요.

“저도 의사인데 숫자가 적으면 좋죠. 기득권이니까요. 그래서 정책을 잘 펴야 합니다. 누군가 탁탁 치고 나가서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시위한다고, 큰소리친다고 아무것도 못 하면 진짜 아무것도 못 하는 거예요.”

차 소장은 2015년부터 연봉과 배당을 받지 않고 있다. 전부 연구에 쏟아붓는다. “곧 10년을 채우네요. 저도 생활이 어려워지면 좀 받아야 하는데. 하하. 농담이고요. 계속 연구원들에게 줘야죠. 오로지 연구를 위해서요. 1명당 5000만원씩 수십 명에게 돌아가면 거기서 어떤 시너지가 나올지 모릅니다. 헬스케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병원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못 이룰지도 모르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뛸 겁니다.” 그는 영원한 의과학자로 불리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