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상식

색약환자는 ‘알록달록한 세상’을 전혀 볼 수 없을까?

해암도 2023. 2. 16. 08:33

색약의 원인과 증상

색 인지 담당하는 원뿔세포에 장애
기능 저하는 색약-기능 못하면 색맹… X염색체로 전달돼 남성에게 더 많아
색약인, 신호등 구분은 할 수 있지만, 조종사 등 일부 직업 선택에 제약

 

색의 구분 이상 여부를 알기 위해 정밀 색각 검사를 받고 있는 모습. 김안과병원 제공

 

“넌 모르잖아, 알록달록한 세상.”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학교폭력 피해자 문동은(송혜교)이 색약을 앓고 있는 가해자 전재준(박성훈)에게 한 말이다. 이 말은 사실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색약도 어느 정도 색을 구분하는 게 가능하다.

양희경 분당서울대병원 안과 교수와 김대희 김안과병원 안과 전문의의 도움으로 특정 색의 구분이 어려운 색약에 대해 알아봤다.

 

●약하면 색약, 심하면 색맹

 

색약인이 보는 색 예시. 가장 일반적인 색약인 ‘적록색약’은 적색과 녹색의 구분에 어려움을 느낀다.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우리 눈에서 필름 역할을 하는 망막에는 적색, 녹색, 청색을 관장하는 3종류의 원뿔세포가 있다. 원뿔세포는 들어오는 빛의 파장에 따라 반응이 활성화되는데 이 정도에 따라 다양한 색을 인지한다. TV 화면을 확대해 보면 적색 녹색 청색이 다양하게 합쳐져 색을 표현하는 것과 비슷하다.

색약은 3종류의 원뿔세포가 모두 존재하지만, 그중 하나의 기능이 저하된 경우다. 보통 특정 색만 구분이 어렵다. 특히 적색 또는 녹색을 잘 가려내지 못하는 적록색약이 가장 흔하다. 반면 색맹은 한 종류의 원뿔세포가 기능을 거의 못 한다. 색약보다 정도가 심해 아예 채도와 명도가 다른 세상을 보게 된다.

 

색약, 색맹은 대개 유전으로 타고나는 경우가 많다. 후천적인 원인으로는 당뇨병으로 인한 망막혈관 질환, 노화에 의한 황반변성, 녹내장, 시신경 질환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경우에는 대개 시력 저하나 신경학적 증상을 동반한다.

 

●아빠가 색약이면 딸은 색약 될 가능성 절반
 

드라마에서 전재준의 딸로 암시되는 하예솔(오지율)은 색약으로 등장한다. 아빠가 색약이면 딸도 반드시 색약일까. 색약 유전자는 부모로부터 받은 성염색체인 X염색체를 통해 전달된다.

XX 염색체를 지닌 딸은 부모로부터 각각 받은 두 X염색체 모두 이상이 있어야 색약이 나타난다. 즉, 하예솔은 엄마와 아빠 모두로부터 색약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이다. 엄마가 색약이 아닌 것은 두 X염색체 가운데 하나만 색약 유전자라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 XY 염색체를 지닌 아들은 엄마로부터 X염색체, 아빠로부터 Y염색체를 받는다. 엄마에게 받은 하나뿐인 X염색체에 색약 유전자가 있으면 무조건 증상이 나타난다. 색약이 여자보다 남자에게 흔한 이유다.

 

●색약인이 일상에서 겪는 불편
 

색의 이름을 처음 배우는 아이들은 색을 혼동하거나 특정 색의 물건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 미술 전공을 원하는 경우 입학 제한은 없으나 역시 정해진 색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을 보는 렌즈가 독특하기 때문에 유명한 인상파 화가 중에는 색약인 경우도 드물지 않다.

 



예전에 비해 완화된 편이지만 일부 직업은 제한을 두기도 한다. 항공기 조종사는 정상, 경찰관은 정상 또는 약한 색약만 지원할 수 있다. 소방관은 색맹과 심한 적색약만 제외하면 지원 자격이 된다.

드라마에서 전재준과 하예솔은 신호등의 빨간색과 초록색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이는 흔한 색약에 대한 오해다. 양 교수는 “실제로 색약의 경우 색을 구분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면서 “색맹이어도 적색과 녹색 신호를 채도와 명도 차이로 구분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다만 적색이 노란색에 가깝게, 녹색이 회색에 가깝게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신호등의 삼색을 구분할 수 있으면 누구나 운전면허 취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색약도 치료가 가능할까. 드라마에서 전재준은 항상 빨간 렌즈를 착용한다. 김 전문의는 “콘택트렌즈나 보정 안경은 구분이 어려운 색의 선명함을 높여 색의 구분을 돕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반인처럼 보이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직은 뚜렷한 치료 방법이 없는 셈이다. 하지만 후천적 이상으로 오는 경우엔 원인 질환을 치료하면 경과에 따라 호전될 수 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입력 2023-02-16
우연재 인턴기자·고려대 의대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