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그날 회사가 내 혼을 가져갔다"…삼성 사장으로 산다는 것

해암도 2023. 2. 15. 06:08

[삼성연구] 전·현 사장들의 증언

2018년 김영기 당시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장(사장)이 수원 삼성전자 디지털시티에서 5G 통신장비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 사장 A씨. 그는 매일 오전 5시50분이면 집에서 나와 제네시스 G90에 몸을 싣는다. 삼성전자 사업부장(사장)들은 대부분 삼성디지털시티(수원)나 반도체 생산라인이 있는 화성캠퍼스 등에서 근무한다.

오전 6시30분쯤엔 임원 대부분이 출근해 있다. 그나마도 최근엔 ‘아침 풍경’이 달라진 것이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오전 6시면 대다수 임원이 업무를 시작했다.

이른 아침부터 보고와 미팅의 연속이다. 1분 1초가 급한 A씨는 외부 미팅이 없으면 아침·점심 식사 대부분을 사내식당에서 해결한다. 외부 약속이 없으면 대다수 사장은 오후 8시까지는 사무실에 남아 업무에 몰두한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삼성 사장들은 사업장을 ‘전쟁터’에 빗댔다. 목숨을 건 기술 전쟁에서 승리한 경험이 있는 수장이라야 사장에 오를 수 있었다. 회사는 꾸준히 성과와 능력을 검증하며 ‘승률이 높은’ 장수를 찾았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판 장수들은 더 높게 평가받았다.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S, 삼성전기 등 전자 계열사 사장은 해당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이공계 출신이 대부분이다.

 

삼성전자 전·현직 핵심 경영진은 삼성 사장에 오르는 주요한 조건에 대해 이렇게 입을 모은다. ▶글로벌 톱 수준의 전문성을 입증하고 ▶기술 개발, 시장 개척 성과를 내며 ▶치열한 내부 경쟁을 극복하고 ▶전임과 부하 임직원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2011년부터 8년간 네트워크사업부를 이끌었던 김영기 전 삼성전자 사장(현 고문)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삼성이 기술 인재를 어떻게 발탁하고, 사장급으로 키우는지 보여주는 일화를 소개했다.

 

김 고문이 연구원 신분이던 1998년 유·무선 통합 차세대 통신 서비스인 IMT2000 개발에 참여하던 때다. 그는 퀄컴이 독점하던 이동통신 기지국 칩을 자체 개발하겠다고 회사에 제안했다. 기지국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칩이지만, 인력과 자금을 대규모로 투입해야 해 당시 삼성전자로서는 부담이 상당했다.

 

“그런데도 우여곡절 끝에 프로젝트 승인이 났어요. 아마도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의 신경영 지침 영향이었던 것 같아요. 승인이 난 것도 놀라운데, 어느 정도 개발이 진행된 뒤엔 수천억원 규모의 이동통신 시스템을 계약했어요. 프로젝트가 성공하리라 믿고 ‘퀄컴 칩보다 성능이 떨어지면 전량 무상 교체하겠다’고 약속하며 손실 위험까지 감수한 겁니다. 지금으로 치자면 수조원 규모예요.”

 

김 고문은 당시 상황에 대해 “그때 회사가 제 혼(魂)을 가져갔다”고 표현했다. 회사가 엔지니어의 역량을 믿고, 도전의 발판을 마련해 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는 얘기다. 그때부터 50여 명의 팀원은 밤낮으로 개발에 매달렸고, 결국 칩 개발에 기적적으로 성공했다. 이런 성과는 김 고문이 훗날 사장으로 승진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전문 지식으로 실력 입증이라는 조건은 삼성의 전·현직 사장들이 첫 번째로 꼽은 ‘출세 비결’이다.

 

능력을 입증하는 과정에선 한계를 넘어서는 목표가 부여되거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삼성전자 전·현직 사장들은 “언제나 도전의 연속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기술 개발 과정에서 중요한 고비마다 ‘동시 개발’ 체제를 채택하는 것이 그 예다.

 

전직 삼성전자 부사장 D씨는 “글로벌 초일류 기업에서 운영하던 제도를 삼성이 사실상 국내 처음 도입한 것”이라며 “여러 팀이 동시에 기술 개발에 나서면 가장 돋보이는 리더가 있게 마련인데, 오로지 기술 성과로 성패가 갈렸기 때문에 잡음이 없었다”고 말했다.

 

최은경·이희권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중앙일보     입 2023.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