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과학자가 선수라면 나는 해설가!
궤 도
과학 커뮤니케이터. 유튜브 과학 채널 〈안될과학〉의 진행자. 연세대학교 및 동대학원,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천문우주학을 공부하고, 청와대 과학기술 분야 정책자문위원과 서울예술대학교 겸임교수를 지냈다. 〈KBS 뉴스특보〉에서 대한민국 발사체 누리호 발사 생중계 해설을 맡았으며, 이후 과학 관련 프로그램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이말년 작가의 유튜브 채널 〈침착맨〉에서 진행한 2021년 침투부어워즈 대상 및 3관왕을 수상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교훈을 남기고 2022 카타르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열한 명의 선수가 그라운드를 누비는 90분 동안 관중의 눈은 그들을 좇지만 귀는 중계진을 향해 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저 90분을 위해 선수들이 지난 4년 동안 어떤 준비를 했는지, 불과 몇 초 만에 골문을 흔드는 저 골을 위해 어떤 세트플레이가 있었는지. 심지어 현장에 있더라도 해설을 듣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2D로 펼쳐진 한 번의 경기는 해설위원의 사전지식과 전문성에 따라 시공을 초월하는 3D로도, 평생에 남을 명경기라는 4D로도 확장된다.
궤도가 바라는 바도 그렇다. 스마트폰, 반도체, 누리호… 이렇게 단어로 기억되고 단편적으로 소비되는 이야기들이 실제로 어떤 함의를 지니고 있는지, 과학이 일상을 그리고 인류를 어떻게 바꾸어가고 있는지 알리고 싶다. 현장에서 뛰고 있는 선수, 그러니까 과학자들은 숨이 가쁘게 뛰느라 자신의 연구와 업적을 이야기할 겨를도 기회도 없다. 우리는 그들이 평생에 걸쳐 일군 열매를 먹으면서도 이게 어떤 경작 과정을 거쳐 맺힌 것인지 알지 못한다. 궤도는 말한다. 그들의 수고와 헌신을 알고 나면, 세상의 궤도도 다르게 보일 거라고.
어떤 집단이나 분야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혁신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묵묵히 연구만 합니다.
인류의 위기마다 돌파구를 마련한 게 과학이에요.
우리가 누리고 있는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환경은 너무 열악합니다.
예산도 인력도 부족한데 개인의 건강을 갈아 넣어요.
사명감으로 하기엔 한계가 있어요.
게다가 이들은 연구하기에 너무 바쁘니까 개선이 어려워요.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들을 지지하는 조력자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선수 출신 해설위원이 할 수 있는 중계가 다른 것처럼, 과학도가 해주는 이야기는 더 생생합니다.
“어릴 때는 천체물리학으로 노벨상을 타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웃음). 중·고등학생 때는 제가 천재라고 생각할 뻔도 했는데 천체물리학을 전공하고 수많은 천재들을 만나면서 그 생각이 깨졌죠. 인류를 진보시킬 만한 공식이나 메커니즘을 찾아내서 무언가를 달성하면 꿈을 이룬 건 줄 알았는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나로호를 발사했는데 큰 관심이 없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엄청난 기술이 집약된 로켓 발사인데 그 의미를 모르는 채 지나가는 것 같아서요. 지금은 누군가가 피땀 흘려 만든 결과물을 대중이 알게끔 하는 게 제 꿈입니다.”
그래서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길을 걷게 됐군요.
“중요한 건 과학자예요. 선수가 없으면 경기가 없죠. 지금 과학계는 아쉬운 게, 이들의 노력과 열정과 열망, 또 이 경기를 위한 희생을 대중이 잘 모른다는 거예요. 접할 기회가 없으니까요. 축구를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캐스터나 해설이 있다면 이 한 번의 슛을 쏘기 위해 선수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죠. 선수의 인생을 보는 거예요. 공감이 되면서 굉장한 감동을 얻게 됩니다. 몰입과 응원, 지지가 나오죠. 그러면 선수의 몸값이 오르고 산업이 커져요. 여론이 움직이고 대중이 반응하면 정책에도 힘이 실리고요.”
과학자의 목소리를 실제로 듣기는 쉽지 않죠. 이해하기 어려울 거란 선입견도 있고요.
“제가 연구소에도 있었고 학계에도 몸담아보며 과학자들을 많이 만나왔어요. 어떤 집단이나 분야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혁신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묵묵히 연구만 합니다. 인류의 위기마다 돌파구를 마련한 게 과학이에요. 우리가 누리고 있는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환경은 너무 열악합니다. 예산도 인력도 부족한데 개인의 건강을 갈아 넣어요. 사명감으로 하기엔 한계가 있어요. 게다가 이들은 연구하기에 너무 바쁘니까 개선이 어려워요.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들을 지지하는 조력자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미국에서 만난 한 할머니가 미국이 우주산업에 이렇게 많은 돈을 쓰는 걸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내 세금은 그런 데 쓰라고 주는 것”이라고 대답했다고요.
“우주산업은 미국이 해야 한다는 자부심이 있는 거죠. 그분은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런 인식이 있었던 거예요. 인식이 태도를 바꾸는 겁니다.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에 대한 공감대가 있어요. 우리는 그렇지 않죠. 우리가 우리 것의 가치를 충분히 알지 못한 면이 있지 않을까요.”
실제로 미국은 얼마 전 달 탐사선인 ‘아르테미스’를 발사하기도 했죠.
“아폴로 17호가 달에 착륙한 지 50년 만에 진행된 일이에요. 이들은 달에 정착할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 중입니다. 한국은 지난 6월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발사에 성공했고 8월에는 달 탐사선 다누리를 쏘아 올렸어요. 이게 얼마나 적은 인력으로 해낸 건지 알면 깜짝 놀라요. 미국이나 러시아는 2만 명의 인력을 투입했어요. 일본도 3000명 정도 되죠. 우리는 고작 650명이에요. 아르테미스의 경우 우주복 두 벌을 만드는 데 1조 4000억 원을 썼어요.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2조 원을 썼고요.”
쐈으니까 됐고, 성공했으니까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군요.
“항공우주산업 종사자들의 처우를 생각하면 기적이 일어난 거예요. 국민 모두가 찬사하는 성취를 만들어낸 건 현장의 연구자들인데 이들은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어요.”
그런 현장의 이야기는 들을 기회가 없네요. 성공이냐 실패냐에 대해서만 듣고요.
“누리호 1차 발사만 봐도 당시 궤도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돈만 썼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하지만 그때의 경험이 있었기에 실제 유인 탐사를 할 때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게 된 거예요. 그 모든 걸음이 성공의 일부죠.”
과학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네요.
“과학에 대해 무지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요. 모두가 당연히 알고 있는 걸 가정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과학의 원리를 알면 세상을 보는 해상도가 높아져요. 저해상도 TV로 볼 때와 UHD로 볼 때 시원함이 다르거든요.”
과학자들은 먼 곳을 응시하는 사람들이에요.
지금, 여기보다 먼 곳을 보고 있죠.
예전부터 과학자들은 식량난을 미리 걱정했어요.
그래서 지금 먹을 게 부족하지 않아요.
코로나가 생기기 이전부터 바이러스에 대한 경각심이 있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빨리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었어요.
어떤 기술이 결정적인 순간에 등장한 것 같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거예요.
예를 들자면요.
“어렸을 때 우리가 물 묻은 손으로 콘센트를 만지만 안 된다고 배우잖아요. 왜 그런 줄 아세요? 우리 몸이 바이오 로봇이라서 그래요. 우리 몸을 움직이는 것도 전기거든요. 몸에도 전기가 흘러요. 그런데 콘센트에 흐르는 전압이 우리 뇌보다 높은데 그 전기가 몸에 흘러 들어오면 뇌가 반응을 못 하는 거예요. 그걸 손에 잡은 채로 떼지 못하는 거죠.”
아, 그냥 안전 문제인 줄 알았는데, 과학 문제였군요.
“저는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엄청 많았어요. 안 되면 왜 안 되는 건지 궁금했고요. 궁금한 게 너무 많았고 그때마다 질문을 해서 많이 혼났어요. 그래서 ‘내가 공부해서 찾아낸다, 내가 이거 밝혀낸다’가 된 것 같아요. 근데 다 못 밝혀내겠더라고요(웃음). 너무 어려운 질문이 많은데 다행인 건 똑똑한 사람도 많다는 거예요. 내가 밝혀내지 못하면 밝혀낼 사람을 도와주자고 마음먹었어요. 건축가가 되고 싶었는데 이미 훌륭한 건축가가 많아요. 그럼 그가 설계를 하면 됩니다. 그 집을 짓는 데 기여하고 싶어 저 는 모래를 나르는 사람이 된 겁니다. 내가 집을 짓는 사람이라는 게 의미가 있는 거고요.”
실제로 모래를 나르는 것처럼 고단할 때는 없어요?
“10~15분짜리 영상을 만드는 데 아홉 시간을 써요. 한 시간짜리 방송을 위해서 2주를 준비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부족할까 싶어 고민이에요. 과학을 대중에 알리고 싶어 방송을 하지만, 실제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봤을 때도 오류가 없었으면 좋겠거든요.”
유튜브 〈안될과학〉의 구독자가 67만 명입니다. 양자역학을 설명한 영상은 조회수 368만 회를 기록했고요.
“방송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어요. 거대한 과학의 바다에서 모래를 나르는 심정일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행복하죠. 특히 ‘드디어 양자역학이 이해가 된다’ ‘학창 시절에 이렇게 설명해주는 선생님이 있었더라면’이라는 반응을 들을 때 더 그렇습니다.”
그러고 보면 어릴 때 과학자가 꿈이었던 사람들도 꽤 있었던 거 같은데, 언제부터 이렇게 과학과 멀어졌을까요.
“과학이 시험의 일부가 되면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피카츄도 그것에 대해 시험을 본다고 하면 띠부띠부씰도 보기 싫잖아요. 어떤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도구가 된 뒤부터 과학에 대한 흥미를 잃은 것 같아요.”
그런데도 흥미를 잃지 않았네요.
“과학자들은 먼 곳을 응시하는 사람들이에요. 지금, 여기보다 먼 곳을 보고 있죠. 예전부터 과학자들은 식량난을 미리 걱정했어요. 그래서 지금 먹을 게 부족하지 않아요. 코로나가 생기기 이전부터 바이러스에 대한 경각심이 있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빨리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었어요. 어떤 기술이 결정적인 순간에 등장한 것 같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원래 과학자들이 그렇게 태어나요.먼 곳을 응시하면서. 눈앞에 관심이 없어요. 북극에 가본 적이 없어도 북극곰을 생각하고 있죠.”
알츠하이머 그러니까 치매를 과학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란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알츠하이머를 예방하기 위해 노년기까지 치매 없이 건강했던 수녀 일곱 명의 뇌를 연구했는데, 그들 중 가장 우수했던 수녀가 실제로는 알츠하이머 말기까지 진행된 상태였죠. 뇌를 기증했던 수녀들 대부분이 그랬어요. 그런데 어떻게 증상이 발현되지 않았을까요.”
그러니까요.
“뇌에는 기억을 저장하는 시냅스라는 부분이 있는데 시냅스가 복잡할수록 기억이 단단합니다. 수녀들의 시냅스는 무척 복잡한 연결을 만들고 있었어요. 끊임없이 공부하고 생각한 게 뇌를 지킨 거죠. 기억을 하나의 시냅스에만 저장하지 않고 새로운 시냅스를 계속 연결했기 때문에 알츠하이머로 일부 연결이 끊어져도 다른 시냅스가 그 자리를 채워준 겁니다.”
그럼 일반인들이 치매를 예방하려면.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경험, 새로운 경로 찾기를 계속하는 게 좋겠죠. 새로운 시냅스가 계속 만들어질 테니까요.”
실은 모든 게 과학과 맞닿아 있네요. 식량도, 바이러스도, 환경도, 또 노화도요.
“과학을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요. 과학은 전문가의 영역이고 전문가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물론 그런 순간도 있어요. 그건 학회에서 그렇죠. 연구 결과를 정밀하게 말해야 할 때 그렇고요. 사회에서 대중에게는 허용의 폭이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과학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요. 이때 부족하다면 전문가가 도와야죠.”
선수보다 유명한 캐스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심을 잃을까 걱정될 때는 없나요?
“초심을 지키자는 표현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유명해지기 전과 비교한다면 초심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죠. 그전에는 지금의 상황을 몰랐으니까 더 미숙한 점도 많았을 거예요. 지금은 초심 이상의 사람이 되어야죠. 지금도 초심으로 하고 있다면 부끄러운 마음으로 더 해야 합니다. 더 노력하고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합니다.”
〈안될과학〉 콘텐츠에 사력을 다하는 이유군요.
“제가 궤도로 활동하는 이유도 그래서예요. 저에게 관심이 쏟아진다면 저만 소비되고 끝나요. 우리는 플랫폼일 뿐이고 과학기술 자체가 유명해지길 바라요.”
미래 과학도에게 전하고픈 메시지는요.
“언젠가 ‘〈안될과학〉을 보고 자란 누군가가 노벨상을 받는 걸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웃음). 과학자를 꿈꾸는 누군가가 있다면 멀리 보길 바라요. 지금은 인공지능이 이슈다 보니 컴퓨터, 전산만 뜨고 나머지는 미달이에요. 인공지능은 모든 산업과 연결됩니다. 어떻게 접목할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메타버스도 마찬가지예요. 인프라가 무궁해요.”
스스로 과학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요.
“우리 모두가 과학자가 되지 않더라도, 과학적 사고를 가진 이들이 되길 바라요. 과학적 사고란 인과관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에요. 그러다 보면 상식적이 되고 화목해질 거라 생각해요. 현상을 인과관계로 보면 명확해져요. 초기 조건을 보고, 그걸 바꿔야 변하니까요.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이유를 몰라서 억울하진 않죠.”
오늘의 모래성을 쌓는 개미들에게는 먼 바다를 응시하는 개미가 별종으로 보인다. 그는 당장의 모래성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궤도는 말한다. 그들 덕분에 몇 개월 후 모래성을 쓸어버릴 거대한 쓰나미를 미리 알 수 있다고. 그들은 쓰나미의 기미를 발견할 뿐 아니라, 어떻게 막을지도 고민한다고.
지구 온도가 2도 오르면 절반이 넘는 생물체가 멸종하고, 소행성이 충돌한다면 지구의 안위도 보장할 수 없다. 내가 통장의 잔고를 고민할 동안 누군가 지구의 잔고를 생각한다는 건 어찌 보면 고마운 일이다. 그러니 인류에게 과학이 필요한 순간은 지금 그리고 언제나다.
http://topclass.chosun.com/ 2023년 01월호 글 유슬기 기자 / 사진 서경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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