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대충 찍어도 전문가급’...AI와 결합한 스마트폰 눈 꿈꾼다

해암도 2022. 12. 31. 17:15

[젊은 두뇌가 뛴다]②

변익주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박사
부친에게 간 이식 수술… 의료공학 꿈 키워
삼성전자서 모바일 와이파이·플래그십 카메라 상품기획

 

 
 

한국계 최초로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린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는 1983년생이다. 나이를 따지는 한국 사회에서 1980년대생은 아직 젊은 실무진 축에 속하지만, 과학계에선 위상이 남다르다.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중반까지는 연구자의 역량과 아이디어가 빛나는 시기로 불린다.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노벨상 과학 부문 수상자들이 자신의 핵심 연구를 처음 시작한 평균 연령이 37.9세로 나타났다. 조선비즈는 한국의 기초 과학과 공학을 이끌 차세대 리더들을 독자들께 소개하는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한다. 젊은 과학자들은 한국공학한림원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추천을 받아 선정했다. ‘제2의 허준이’를 넘어서 한국의 첫 노벨상 과학 부문 수상자, 그리고 한국 산업의 미래를 이끌어갈 핵심 인재가 이들에게서 나오기를 기대한다. [편집자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11월 세계 경제를 떠받치는 56개 주요 품목의 2021년도 시장 점유율을 조사한 결과를 공개했다. 이 조사에서 한국은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4위를 차지했다. 한국이 56개 주요 품목 중 1위를 차지한 제품은 스마트폰과 D램,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낸드플래시 반도체, 초박형TV 등 5개 품목으로 나타났다. 1년 전만 해도 한국은 7개 품목에서 1위였다. 하지만 대형 액정패널과 조선 분야의 1위 자리를 중국 회사에 내주고 말았다.

 

올해 1위를 차지 제품 모두는 삼성전자(55,300원 ▼ 1,300 -2.3%)가 만드는 품목이다. 공급망이 다변화되고 글로벌 생산 체제가 완성된 지금은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표현은 다소 진부해 보인다. 한국 경제가 5, 7%씩 고속 성장하던 시절에나 어울리는 말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경제계와 산업계에선 지금처럼 ‘메이드 인 코리아’가 중요한 시기도 없다고 강조한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가속화되는 시기에 ‘메이드 인 코리아’는 한국 경제의 독자 생존과 자립을 상징하는 선언과도 같다.

 

변익주(37) 삼성전자 MX사업부 박사(SP·시니어 프로페셔널)는 ‘메이드 인 코리아’의 꿈을 지키기 위해 자리까지 왔다고 말한다.

 

변 박사는 초등학교 시절이던 2001년 국방부가 차기전투기(FX) 선정에 나섰을 때를 회상했다. 당시 FX기종 선정에는 미국 보잉의 F15, 프랑스 닷소의 라팔, 영국·독일·스페인·이탈리아 4개국 합작품인 유로파이터가 후보로 올라왔다. 변 박사는 FX기종 선정에 나선 해외의 쟁쟁한 항공기업을 보며 국산 전투기를 왜 만들지 못했나하며 자존심이 상했다고 말했다. 언젠가 직접 국산 전투기 개발에 직접 참여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민족사관고를 나와 포스텍에 입학한 것도 같은 이유다.

 

하지만 변 박사는 정작 대학에 입학한 뒤 한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했다. 간경화로 투병 중이던 아버지에게 자신의 간을 기증했다. 그는 병석에서도 ‘메이드 인 코리아’ 기술의 부족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수술을 받고 누워있던 중환자실에 온통 영어가 가득한 외국산 의료기기만 눈에 띄었던 것이다. 국내 대학 병원 중환자실 어디에서도 국산 기술은 보이지 않았다. 대학원에서 정밀기계 공학을 전공하던 변 박사는 꼭 ‘메이드 인 코리아’ 기술을 개발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변 박사는 2014년 일본 도쿄대에서 정밀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기술벤처의 산실 실리콘밸리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글로벌 IT 기업들로부터 입사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큰 고민 없이 삼성전자행을 택했다. 삼성전자가 헬스케어에 뛰어든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변 박사는 “메이드 인 코리아를 생각하는 사람이 외국 회사를 가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5년간 헬스케어팀에서 기초를 다지면서 최연소 헬스케어 파트장을 맡기도 했다.

변 박사는 삼성전자의 핵심 사업인 스마트폰 개발쪽으로 자리를 옮겨 스마트폰 기술의 정수인 ‘플래그십 카메라’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공학한림원에서 차세대 공학 리더로 주목한 변 박사를 이달 20일 경기 성남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변익주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박사.

-연봉이나 처우가 훨씬 좋은 글로벌 기업의 입사 제안을 뿌리치고 국내 기업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포스텍 시절 은사님께 진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그러자 은사님이 ‘너 자신을 깊게 들여다봐라’는 대답을 들었어요. 내가 왜 사는지, 무엇을 했을 때 가장 행복한지. 그런 고민을 해보니 제 연구로 많은 사람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럴려면 사람들이 많이 쓰는 디바이스를 개발하는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삼성전자가 그런 곳이었다. 메이드 인 코리아에 보탬이 되려면 당연히 국내 기업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삼성전자에 입사한지 10여년이 흘렀다. 처음 꿈이 잘 이뤄졌는지 궁금하다.

“2014년에 삼성전자에 입사해 이제 곧 10년이 된다. 삼성전자에 근무하면서 만족도는 굉장히 높은 편이다. 공학도로서 만족도가 높은 건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엣지’ 기술을 빠르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디바이스를 파는 회사인 동시에 기술적으로 개방된 회사다. 경쟁사와 달리 다른 국가, 다른 회사와의 협업에 열려 있기 때문에 세계에서 개발되는 모든 최신 기술이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 모인다.

카메라와 관련해서는 내가 그 엣지 기술을 삼성전자에서도 가장 빨리 접하는 편이다. 삼성전자의 힘이기도 하지만, 내가 맡은 책임감도 그만큼 크다. 이 기술을 어떻게 해야 소비자들이 만족하고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지낸다.”

 

-삼성전자가 일본에 출시한 ‘5G 모바일 와이파이’를 직접 기획해서 만든 걸로 안다.

“회사에서 상품 기획을 배워보라고 기회를 줬다. 상품기획을 담당하게 되면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방식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 기획한 상품은 포켓 와이파이인데, 일본 유학 시절 경험을 살렸다. 일본은 유선랜을 신청하면 설치까지 한 달에서 두 달은 걸린다. 비용도 비싸다.

일본에서 유학할 때 나도 3G 모바일 와이파이를 이용했다. 이런 경험을 살려서 5G 모바일 와이파이를 일본에서 출시했다. 5세대(5G) 이동통신은 무선 통신이 처음으로 유선과 동급이거나 더 빠른 속도를 보여준 기술이다. 무선 인터넷으로도 유선만큼의 속도를 제공할 수 있었고, 유선 인터넷 인프라 구축이 원활하지 않던 일본을 그 무대로 삼았다.”

 

-최근에는 플래그십 카메라 기획을 맡고 있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삼성전자 스마트폰 가운데 갤럭시의 중저가 모델 카메라를 담당하다가 2022년부터 플래그십 카메라 기획을 맡게 됐다.

 
 

어린 시절 우주랑 천체를 좋아해 천체망원경으로 별과 성운을 봤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광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여러모로 적성에 잘 맞아 스마트폰 카메라 관련 상품을 기획하게 됐다.

사실 스마트폰에서 가장 체감하기 쉬운 기술이 카메라다. 그만큼 기술 경쟁력이 드러나는 영역이다 보니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엄청난 노력을 투입해 카메라 기술을 향상시키고 있다. 카메라 센서는 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에서 나노미터(㎚·10억분의 1m) 크기의 제품이다. 일본에서 정밀 공학을 공부했는데 일본이 이 분야에서 앞서 있다.”

 

-공학자로서 꿈꾸고 있는 목표가 있나.

“지금 담당하고 있는 플래그십 카메라를 발전시켜 보고 싶다. 카메라는 스마트폰에서 매우 중요한 기술이고, 복잡한 공학적 사고와 지식들이 필요하다. 목표하는 카메라는 일반인들이 대충 찍어도 사진작가가 찍은 것처럼 작품 사진이 나올 수 있는 카메라다. 전문가들처럼 신경 써서 하나하나 파라미터를 설정하지 않아도 되는 성능을 갖춰야 한다.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 주변 상황을 인식하고 최적화된 사진과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사실 내 전공인 정밀 공학과는 정확히 맞진 않지만, 트레이닝 과정을 통해 극복하려 한다. 새로운 지식을 적용하기 위해 사고하는 게 공학 박사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학창 시절 수학·과학 경시대회에 참가한 변익주 박사의 모습.

-어릴 때부터 과학을 좋아했나. 민사고 조기졸업에 포스텍까지 흔히 말하는 과학영재다.

“어릴 때는 동네 어린이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때 도서관에 있는 과학 관련 책, 특히 과학 만화책은 다 읽었다. 한 권을 백 번씩 읽기도 했다. 과학 만화책이라고 하면 무시하기 쉬운데 지금 봐도 복잡한 과학 개념이나 이론들, 어른들도 잘 모르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많다. 민사고 때는 물리 경시반에 있었다. 물리 경시반에선 학교 대표도 되지 못했다. 그런데 정작 배우지도 않은 지구과학 경시대회에서 강원도 1등을 한 적이 있다.

지구과학 수업은 듣지 않았지만 어릴 때 과학 만화책에서 본 내용을 바탕으로 문제를 풀었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초등학생 때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학원을 못 다녔다. 아버지가 공대에서 석사까지 했는데, 직접 수학 공부를 가르쳐주셨다. 아버지에게 배운 수학 공부가 나중에 큰 버팀목이 됐다.”

 

-아버지의 수학 교육에 특별한 비법이 있었나.

“일반적인 계산 문제를 풀지 않았다. 수학 원리를 생활에 응용한 문제들을 풀었다. 하루에 단 한 문제만 풀 때도 있었다. 시간이 얼마가 걸려도 좋으니 응용 문제를 제대로 풀게 시키셨다. 내가 궁금한 게 있으면 그게 무엇이든 부모님이 대답을 해주신 것도 좋았다. 작은 메모지를 두고 내가 궁금한 게 생기면 언제든 질문을 적었다. 나중에 아버지가 질문을 확인하시면 답을 적어두셨다. 꼭 수학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루는 토끼 울음소리가 궁금하다고 적기도 했다. 별의별 질문을 다 적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항상 진지하게 답을 적어주셨다.”

박성수 선진그룹 회장은 변 박사의 멘토다. 전경련이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청년 공학자를 이어주는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처음 연을 맺고 십수 년이 지나도록 꾸준히 인연을 지켜오고 있다. 맨손으로 시작해 중견기업을 일궈낸 박 회장의 영향 덕분에 변 박사가 긴 시간 흔들리지 않고 공학자의 삶을 지켜올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공대의 위기를 이야기한다. 공대가 의대를 가기 위한 정거장처럼 됐다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

“내 동기들도 의사가 된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의사과학자와 의사공학자 이야기를 많이 한다. 정말 많은 사람을 살리려면 공학을 배운 의사가 많아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의사공학자가 되라고 방향을 정해준다고 그렇게 될 일이 아니다. 공학자, 공학도가 사회에서 인정받고 대우 받으면 자연스럽게 공학의 길을 택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

한국의 공학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 공학자들이 지금 받고 있는 대우도 괜찮은 편이다. 산업이 더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공학자에 대한 대우도 연결됐으면 좋겠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우리 가족과 후손이 더 풍족하게 살 수 있게 하려면 공학의 역할이 중요하다. 공학의 힘과 가능성을 믿는다.”

 

-공학자로서 공학만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기계공학은 단순히 기계를 배우는 게 아니라 고체와 액체, 기체 같은 물질의 상호작용을 배우는 학문이다. 우리 몸이나 세상 모든 게 다 기계공학이다. 우리 몸을 예로 들면 피는 액체, 혈관은 고체다. 그렇다면 우리 몸도 기계공학의 영역이다. 기계공학자의 입장에선 세상의 근간이 되는 학문이 기계공학인 셈이다. 모든 것의 기초이기 때문에 그만큼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무한대에 가깝다. 과학을 요리로 치면 재료라고 할 수 있다. 공학자는 요리사다. 좋은 재료도 중요하지만 같은 재료라도 만드는 요리사에 따라 다른 요리가 나온다. 우리나라에 더 많은, 더 좋은 요리사가 나오기를 바란다.”

 

-한국 공학계에 바라는 점이 있을까.

“최근에는 삼성전자처럼 큰 회사가 아니어도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사업화한 스타트업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좋은 사회현상이다. 리스크를 생각하기보다 도전을 많이 하고, 정부나 사회도 실패를 용인해주면 좋겠다. 오히려 실패한 사람을 우대해주는 제도도 마련돼야 한다. 그러면 한국이 계속 잘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후배인 지금의 공학도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을까.

“그동안 나도 국가와 주변에서 많은 지원을 받았다. 내가 받은 도움을 사회에 환원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제 막 자라나는 공학도들이 있는데, 선배로서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 공학자로서 연구나 개발만 하는 것보다는,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줄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변익주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박사는

2003년 제1회 대통령과학장학생

2006년 한국공학한림원 차세대공학리더상

2008년 포스텍(포항공대) 기계공학과 학사

2010년 포스텍 기계공학과 석사

2010~2014년 일본 도쿄대 공학부 박사

2011년 재일한국과학기술인협회 회원

2012년 일본 도쿄대 우수 GMSI 연구조교상

2013년 일본 도쿄대 한인학생회장

2014~2019년 삼성전자 헬스케어 연구개발팀

2015년 일본 도쿄대 공학계 연구과장상

2019~현재 삼성전자 상품기획팀

2020년 삼성전자 혁신상(5G CPE)

2022년 삼성전자 혁신상(플래그십 카메라)

한국공학한림원 차세대공학리더 YHES 시니어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