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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나무에서 근사함을 찾듯,
나이 든 자의 얼굴에서 근사함을 찾고 사랑하고 싶다.
그런 걸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늙고 싶다.
늙음의 첫 징후는 ‘듣지 않는 자세’에서 찾을 수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말을 공들여 들을 것이다.
참 귀 얇은 노인이네, 종국엔 이런 말을 듣고 싶다.
귀가 얇은 노인이 남의 말을 듣지 않는 노인보다 훨씬
귀여울 테니까.
모든 국은 어쩐지
괜히 슬프다.
왜 슬프냐 하면
모른다 무조건
슬프다.
냉이국이건 쑥국이건
너무 슬퍼서
고깃국은
발음도 못하겠다.
고깃국은…
봄이다, 고깃국이.
혼자 방에 앉아 이 시를 읊조려볼 때가 있다. 김영승 시인의 〈슬픈 국〉이란 시다. 이 시를 통해 태어난 존재의 근원적 슬픔을 본다. 태어난 이상 무언가를 먹어야 하는, 존재의 갈급한 생의 의지 같은 것. 신생아에게 어미의 젖은 처음 먹는 국이다. 식기나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체온과 체온을 나누며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국이다. 좀 더 자라면 냄비에 끓인 국을 먹게 된다. 콩나물국, 미역국, 아욱국, 배춧국, 고깃국…. 그러니 시인이 국, 하고 발음할 때 슬픔을 느끼는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먹고사는 일의 간단치 않음이 한 그릇의 국에 담겨 있다는 걸 알아보았을 게다.
태어난 건 죽는다. 떠오른 건 가라앉는다. 피어난 건 시든다. 뜨거운 건 식는다. 이토록 자명한 일의 인과를 헤아려보니, 그 처음과 끝에 ‘노화’가 있음을 알겠다. 그러니 저 시를 이렇게 바꿔 읽을 수도 있을까. 사는 일은 어쩐지 괜히 슬프다고. 너무 슬퍼서 늙는 일은 발음도 못 하겠다고. 슬픔이 기다란 지네라면 노화는 지네의 몸에 달린 숨가쁜 다리들. 어디로 향해 가는지도 모른 채 가고, 갈 뿐인 다리들이다. 나는 언제나 늙는 일이 죽음보다 더 맹렬하고 야멸차다고 생각했다.
다 쓴 초처럼 녹아내리는 일
할머니가 갱지처럼 늙어가던 나날. 할머니를 만나러 갈 땐 버스를 타고 전동차를 타고 기차를 타고 그래도 남은 거리는 걸으며 도착 시간을 최대한 늦췄다. 할머니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올 땐 택시와 버스를 번갈아 타며 도망치듯 빨리 왔다. 비행기가 있었다면 탔을지도 모른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걸까? 내 속도는 비열했다. 철이 없어 ‘죽음의 수하’로서 삶에 복무하는 ‘늙음’을 제대로 마주하기 어려워했던 시절이다.
할머니는 돌아가신 할아버지 얘기를 자주 꺼냈다. 할아버지는 지병 없이 노화로 죽음을 맞이했는데 나중에 할머니 역시 그렇게 돌아가셨다. 나는 할아버지를 통해 ‘늙어 죽은 사람’을 처음 봤다. 생각보다 드물고 거룩한 일이다. 큰 병 없이 연로해져, 집에서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는 일. 할아버지는 다 쓴 초처럼 녹아 흘러내리듯, 조금씩 꺼졌다. 목숨이 꺼진다는 표현은 진짜다. 할아버지는 희미해지다 꺼지는 빛처럼 사라졌다. 90년간 멈춘 적 없는 심장이 느려지는 게 보이는 듯했다. 어쩌다 바짓단 위로 종아리가 드러나면 내 손목보다 가늘어 뵈는 할아버지의 정강이뼈가 보였다. 손으로 쓸어보면 수분이 빠져나간 살가죽이 종이처럼 밀렸다. 살이 뼈를 감싼 형태가 아니라 뼈가 살가죽을 얇게 걸치고 있는 형국이었다.
내가 푸른 스웨터를 사 들고 간 날, 할아버지는 스웨터를 한쪽 어깨에 걸친 채 잠이 들었다. 새 옷을 입다 말고 잠이 든 게다. 할아버지는 밥을 한술 뜨다가도, 무언가를 얘기하다가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가도 자꾸 잠에 빠졌다. 할머니는 이제 가봐야 한다는 나를 붙잡으며 중국 요리를 시켜주었다. 요리를 어떻게 했는지 탕수육은 씹을 수 없을 만큼 딱딱했고, 나는 슬픔의 뼈처럼 단단한 튀긴 고기를 먹는 척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할머니 집에서 도망치듯 나올 때마다 눈빛이 걸렸다. 내 뒤통수에 달라붙은 할머니의 간절한 눈빛. 아가, 지금 가면 또 볼 수 있을까.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목소리. 나는 금세 또 오겠다고, 할머니를 안심시키고 돌아서 나왔다. 아파트를 빠져나온 뒤 위를 올려다보면 자그마한 몸집의 할머니가 복도 창틀에 기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다음 해 봄,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스무 살에도 늙을 수 있다
죽음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할머니의 늙어가는 모습이었다. 죽음은 직방이지만 노화는 우회적이고 점층적이다. 노화는 반복이다. 속절없음이다. 노화는 오랜 시간 한 사람 곁을 배회한다. 떠나는 듯 보이다 더 확고히 돌아온다. 돌아와 머문다. 노화의 주특기는 협박이다. 주기적으로 채무 독촉장을 보내는 빚쟁이처럼 끈질기다. 갚아야 할 게 무엇인지 모르는 채 시달리는 일. 노화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 언제나 복판에 서 있는 기분을 준다.
스무 살에도 늙을 수 있다. 백발의 할머니처럼 늙을 수 있다. 더 이상 인생에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기분, 다 살아버린 기분, 조금도 힘을 낼 수 없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늙는 일은 사람을 주저앉게 하고 힘을 빼앗는다. 늙어버린 자에겐 근력이 없다.
무언가를 하고 싶게 만드는 힘도, 다른 생활을 상상하게 하는 힘도 없어진다. 물론 나이를 지긋하게 먹은 뒤에도 늙음을 크게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 런 이라 할지라도 어느 새벽 욕실 거울에서 마주한 민낯, 그 낯선 얼굴까지 모른다 할 순 없을 게다. 그렇지 않은가? 어느 날 문득, 얼굴은 낯설게 늙어 있다.
나쁜 건 늙은 사람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세상의 눈이다. 존재하는데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하는 일, 당신은 이제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낙인찍는 일.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오래된 사람이 있을 뿐이다. 오래된 사람은 오래 산 사람이다. 여름과 가을, 봄과 겨울을 더 많이 겪은 사람이다. 당신은 왜 늙으셨나요, 이렇게 질문할 순 없다. 늙음에는 이유가 없거나 너무 많다. 대신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당신은 어떻게 살아왔나요? 이 질문엔 예의와 관심, 존중이 깃들어 있다. 인터넷 검색이 보편화되기 전, 사는 일이 힘겨울 때 사람들은 연장자를 찾았다. 그들의 경험과 생각을 듣고 싶어 했다. 이제 아무도 삶의 지혜를 노인에게 구하지 않는다. 책에서도 아니다. 작고 네모난 디지털 세상을 두드리며, 묻지 않고 검색한다.
공들여 듣는다는 것
장차 아무도 찾지 않는 노인이 되면 어쩌나 걱정이 들 때가 있다. 늙는 일을 두려워하게 될까 봐 두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때 아그네스 바르다의 말을 떠올린다.
“저는 사물들의 형태를 감상하는 것을 좋아해요. 저 자신의 형태를 포함해서요. 주름, 힘줄, 정맥, 아름다운 모습들이죠. 나무를 바라보는 것과 같아요. 오래된 나무를 보면 그 모양새가, 형태가 대단하잖아요. 그리고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말하죠. 정말 근사한 올리브나무네. 그럼 이렇게도 말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정말 근사한 손이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오래된 나무에서 근사함을 찾듯, 나이 든 자의 얼굴에서 근사함을 찾고 사랑하고 싶다. 그런 걸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늙고 싶다. 늙음의 첫 징후는 ‘듣지 않는 자세’에서 찾을 수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말을 공들여 들을 것이다. 참 귀 얇은 노인이네, 종국엔 이런 말을 듣고 싶다. 귀가 얇은 노인이 남의 말을 듣지 않는 노인보다 훨씬 귀여울 테니까.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젊은이들의 말과 행동에 관심을 기울이겠다.
그들과 비슷해져야 한다는 게 아니다. 그럴 수도 없지 않은가. 젊은이들의 생각을 듣고 그들의 입장을 인정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얘기다. 친구들과 자주 이런 약속을 한다.
“우리 서로 남의 말을 안 듣는 것 같으면 꼭 말해주자.”
어느 날 꼰대가 되더라도 스스로 꼰대인 걸 알고, 얼굴을 붉힐 줄 아는 꼰대가 되고 싶다.
타인의 고통을 알 수 없다는 말은 타인의 고통을 ‘그처럼’은 알 수 없다는 말일 게다. 아무래도 당장은 늙은 사람의 마음을 ‘늙은 사람처럼’은 알 수 없을 테지만 그래도…. ‘그래도’ 다음에 올 말을 찾기 위해 애쓰고 싶다. 늙어가는 누군가에게서 오래된 나무의 근사함을 찾듯이.
글쓴이 박연준은 파주에 살며 이 시대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젊은 시인 중 한 명이다.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밤, 비, 뱀》, 산문집 《소란》 《쓰는 기분》, 장편 소설 《여름과 루비》 등을 썼다.
톱클래스 2022년 12월호 박연준 시인 조선일보 2022,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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