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재의 한 번 읽고 잊어버리는 영어
이름이 대체 뭐길래?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한 뒤에도 나는 계속 1년에 두세 차례 미국과 한국에 오갔다. 미국에 살 때는 어머니 돌봐드리러 한국으로 왔다가 미국 집으로 돌아갔고, 작년에 한국으로 이사를 온 뒤부터는 미국으로 출장을 간다. 코로나 초창기에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외국에서 입국한 사람들은 2주간 격리했다.
미국의 격리는 관리가 허술하다 못해 아예 없었다. 그냥 각자의 양심에 맡기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나는 마당 있는 집에 살다 보니 뒷마당에 나가 산책도 하고, 자동차에서 내리지 않고 운전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기분전환도 할 수 있었다.
한국에 와서 아파트에서 2주간 격리를 하는 것은 감옥생활이나 다름없었다. 아파트 창문 밖으로 나의 단골 와인 레스토랑의 간판을 보고 있자면 당장에 달려 나가 한 잔 마시고 싶은데 그 마음을 누르고 14일을 버텨야 했다.
비행기 탑승 전 72시간 이내에 PCR 검사를 받고 음성 확인서를 제출하는 것은 격리보다 더한 골칫거리였다. 여행 떠나려고 하면 그 전에 할 일도 많고 머리가 복잡한데 일부러 시간 내어 병원 가서 검사받고 그다음 날 결과지 받으러 또 가야 하니 말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이 검사를 자비로 받아야 해서 매번 PCR 검사받다 파산하겠다고 투덜거리며 검사를 받았다.
백신이 나오면서부터는 접종 여부를 알리는 QR코드를 다운 받아 음식점 등에 들어갈 때마다 확인해야 했다. 기계에 전화기만 갖다 대면 삑 소리와 함께 나의 모든 신상정보가 쏟아져 나온다고 생각하니 좀 무서웠지만 그래도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으니 좋긴 했다.
아직도 코로나는 분명 우리 곁에 있는데 그래도 상황이 나아지긴 하는 건지 백신접종 QR코드가 사라지더니 격리 14일이 10일 7일 3일로 줄어들다가 아예 없어지고 급기야 음성확인서 제출 의무도 없어졌다. 나는 얼마 전 팬데믹 시작하고 처음 일 이외의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미국 출장을 다녀왔다.
검사나 격리 의무가 없어진 대신 귀국 전에 'Q코드'라는 것을 받았다. 질병관리청 사이트에 들어가 나의 신상정보를 입력하고 백신접종 여부 등에 관한 질문에 답을 하면 되는데 내국인의 경우 이름, 주민등록번호만 입력하면 백신접종 여부는 알아서 기재해주는지 더 이상 묻지 않는다. 등록을 마치면 기재한 이메일로 QR코드가 오는데 입국 시 종이 서류 작성하지 않아도 되고, 종이 서류 작성자들보다 훨씬 짧고 빨리 움직이는 줄에 서서 QR코드를 찍고 입국심사장으로 들어가면 된다.
QR코드의 의미
QR코드는 1994년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자회사에서 처음 만들었다. QR코드가 우리 실생활과 별 상관없던 시절에 막연히 QR코드의 Q가 뭔가 수학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의 약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어에 ‘Q’로 시작하는 단어가 그리 많지 않고 그 중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단어들이 꽤 있다. 지능지수 ‘IQ’는 ‘Intelligence Quotient’의 약자이다. ‘Quotient’는 나눗셈의 몫이다. 가령 6÷3=2에서 6은 나뉘는 수 즉 피제수, 3은 나누는 수 즉 제수 그리고 2가 ‘Quotient’ 즉 몫이다. ‘Q’로 시작하는 단어 중 또 한 가지 ‘Quantum’은 물리학 용어인 양자(量子)이다.
일상에서 QR코드를 사용하는 것이 다반사가 되면서 대체 QR이 무슨 뜻인지 찾아보기에 이르렀다. QR코드의 ‘QR’은 ‘Quick Response(빠른 반응)’라는 허무하기까지 할 정도로 평범한 말이었다. 수학적이고 고차원적인 단어를 기대했다 한 방 맞았다. 질병관리청 사이트이든, 광고 사이트이든 전화기만 갖다 대면 대번에 그 사이트와 접속이 되고, 음식점 출입 시에 전화기를 갖다 대면 예방접종과 관련된 나의 모든 정보가 나오니 이름 한 번 잘 붙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기회에 21세기 인류문명을 이끌어가는 기술과 연관된 단어 몇 가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와이파이 Wi-Fi
우리의 오프라인 인생을 무선으로 사이버세계로 인도해주는 와이파이는 WIFI(혹은 Wi-Fi, Wifi, WiFi, wifi)라고 쓴다. 와이파이 기술이 나오고 나서야 온 집안 구석구석 어디에서나 혹은 카페에 앉아 커피 마시면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 했다. 와이파이 기술은 1990년대 초반부터 연구를 시작했는데 와이파이라는 이름이 처음 사용된 것은 1999년이다. 무선전화 혹은 컴퓨터라고 모두 와이파이의 부채꼴 로고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삼성, 애플, LG, 노키아 등 내로라하는 회사들도 와이파이 개발자들이 모여 만든 그룹의 성능 인증을 받아야만 사용할 수 있다. 이 그룹이 1999년 자신들의 이름을 WIFI Alliance(와이파이 동맹)라고 지으면서 와이파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WIFI는 흔히 ‘Wireless Fidelity(무선 충실도)’의 약자라고 알려져 있는데 일설에 의하면 ‘Wireless Fidelity’라고 이름을 짓고 줄여서 ‘WIFI’라고 한 것이 아니라 ‘WIFI’라고 아무 뜻 없는 단어를 만들어 이름으로 사용하고 그 뒤에 광고를 하면서 ‘Wireless Fidelity’라는 말을 사용했다고도 한다.
블루투스 Bluetooth
와이파이 없이 근거리의 두 기기를 연결해 주는 ‘Bluetooth(블루투스)’는 10세기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통일한 왕 하랄드(Harald)에서 나왔다. 이 왕의 별명이 ‘Bluetooth’였다. 아마도 치과치료가 전무했던 시절 충치가 생겨 치아색이 변했던 모양이다. 1990년대 말 블루투스 기술의 선구자였던 인텔사에서 당시 개발 중이던 수많은 무선인터넷 기술 중에 돋보이고자 특이한 이름을 찾던 중 PC와 Cellular 기술을 연결하려는 자신들의 의중과 노르웨이와 덴마크를 통일한 블루투스 왕의 이미지가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해서 이 기술을 블루투스라 명명 했다.
원래 PAN이라는 이름으로 상표 등록을 하려고 했지만 너무 흔한 이름이라 블루투스로 선회했다. 고대 덴마크어인 룬문자(Runic Alphabet)의 H(ᚼ: Harald의 H)와 B(ᛒ:Bluetooth의 B)를 합쳐서 만든 것이 블루투스의 로고이다.
야후 Yahoo
2010년 구글에 추월당하기 전까지 전 세계 인터넷 검색엔진(Search Engine)의 제왕은 야후(Yahoo)였다. 야후도 재미있는 역사를 지닌 이름이다. 내 세대가 어린 시절 한 번 쯤 동화라고 생각하고 읽었던 책이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의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이다. 나도 초등학교 시절 계몽사 문학전집 속에 있던 <소인국(A Voyage to Lilliput)>편과 <거인국(A Voyage to Brobdingnag)>편을 읽었고, <소인국> 편은 중학교 때 영어 과외 시간에 교재로 사용하기도 했다.
계몽사 문학전집의 《걸리버 여행기》 맨 뒷장 해설에 <말의 나라 후이늠국(A Voyage to the Land of the Houyhnhnms)> 편은 어린이들에게 적절하지 않아 번역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 ‘동화책이 어린이들에게 적절하지 않다니?’라고 의아해 했는데 알고 보니 《걸리버 여행기》는 동화책이 아니라 정치풍자 소설이다. 인간사회가 풍자에 관대하지 못해 풍자를 보호할 안전장치가 없으면 풍자는 그저 우스꽝스럽고 적당히 유치한 이야기가 되고 만다.
<말의 나라 후이늠국> 편은 우리나라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검열에 걸려 아예 번역이 되지 않았다. 대신 <소인국>과 <거인국>이 어린이 문학전집에 들어갔다. 《걸리버 여행기》가 동화로 둔갑한 것이 우리나라뿐이 아니고 본국인 영국에서 이미 19세기부터 <소인국> <거인국>만 떼어 동화처럼 널리 퍼졌다 .
<말의 나라, 후이늠국>에는 이성을 지니고 문명생활을 하는 후이늠(Houyhnhnms)이라는 말들이 산다. 이들은 고매한 인격이 아니라 고매한 마격을 지녀 그 나라에는 거짓말이라는 단어가 없다. 계몽사 문학전집에 조금 맛보기로 실린 번역본에 한 후이늠이 걸리버에게 “왜 거짓말을 하느냐?”라고 따져 물어야 하는데 “왜 너는 않은 말을 하느냐?”라고 밖에 표현을 할 수 없었던 것이 기억난다. 후이늠국에는 또한 인간의 모양을 한 야수(Brute)가 있다. 이 야수 족속의 이름이 야후(Yahoo)이다.
‘Houyhnhnm’과 ‘Yahoo’는 스위프트가 만들어낸 말로 1726년 《걸리버 여행기》가 처음 출간된 날을 이 단어들이 처음 영어에 쓰이기 시작한 날로 본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야후는 쉽게 말해 인간 말종을 상징한다. 그래서 일반명사 ‘yahoo’는 무뚝뚝한 사람, 무례한 사람 혹은 짐승 같은 사람이란 의미가 있다.
여기서 반전은 인터넷 검색엔진 야후는 《걸리버 여행기》에서 따온 말이 아니다. 이 회사의 본 이름은 ‘Yet Another Hierarchically Organized Oracle(또 하나의 계층별로 분류된 정보)’이다. 이 긴 이름의 첫 글자만 붙여놓으니 그것이 원래 있는 단어 ‘YAHOO’가 된 것이다. 이처럼 만들어낸 말의 약자가 이미 존재하는 단어가 되는 것을 ‘Backronym’이라고 한다.
드론 Drone
얼마 전 여행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프로덕션의 부탁으로 미국의 드론(Drone) 관련법을 조사한 적이 있다. 드론은 이미 우리 실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드론 공중촬영 없이 여행다큐멘터리를 찍는 것은 이제 상상할 수도 없다고 한다.
‘Drone’은 고대영어 ‘Drᴂn’에서 나온 말로 꿀벌의 수컷(Male Honeybee)을 가리킨다. 1500년대부터 ‘계속해서 나는 윙윙거리는 소리(A continuous humming sound)’라는 의미가 추가되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무인 비행체라는 의미는 1946년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번식을 위해 여왕벌이 하늘높이 날아오르면 그 뒤를 수벌들이 쫓아 올라가 끝까지 따라붙는 수컷이 여왕벌의 남편이 된다. 수컷들이 날아오르며 내는 날갯짓 소리가 드론이 윙윙거리는 소리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보이스피싱 voice Phishing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 보이스피싱이다. 나의 부모님도 보이스피싱에 속아 덜덜 떨며 자동차 운전하고 은행까지 갔던 적이 있다. 현금인출기 앞에 서서 전화 저편의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이런저런 단추를 누르다 마지막 한 마디를 알아듣지 못해 난감해진 아버지가 은행 경비아저씨를 불러 좀 도와달라고 했다. 경비아저씨가 아버지의 전화를 받아들더니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어버리고 아버지 카드를 ATM에서 꺼내 돌려주면서 보이스피싱을 아슬아슬하게 피해갈 수 있었다.
사람을 속인다는 것 때문에 대부분 보이스 피싱의 피싱이 ‘낚시질하다’라는 의미의 ‘Fishing’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은 ‘Phishing’이라고 쓴다. 실제로 사전에도 ‘Phishing’을 ‘피싱사기’라고 풀이해 놓았다. 1990년대 중반 경부터 해커들을 중심으로 사용하던 말인데 2000년경부터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반전은 ‘Phishing’이라는 단어가 실은 ‘Fishing’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스펠링은 다르지만 발음은 같다.
이름이라는 것이 참 재미있다. 고대영어에서 곤충을 가리키던 말, 10세기에 살았던 왕의 별명 혹은 18세 소설 속 만들어낸 단어가 21세기에 살아나와 초현대 인류문명을 상징하는 기발한 이름이 된다. 그런가 하면 매일 사용하던 평범하기 그지없는 단어 둘을 합쳐 약자로 만드니 팬데믹 시대를 사는 우리 삶의 한 가운데에 있는 기술의 그럴싸한 이름이 되기도 한다.
셰익스피어는 “What’s in a name?(이름이 대체 뭐길래?)”이라고 독백했다. 진짜 대체 뭘까?
이철재 미국 변호사 조선일보 입력 2022.11.20
'생활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220개 넘는 통신요금제 골치…“딱 맞는 것 추천해드려요” (0) | 2022.11.30 |
---|---|
일본인의 청소 본능 (0) | 2022.11.26 |
암으로 일주일만에 숨진 의사 아빠…사후세계는 있어야 한다 (0) | 2022.11.19 |
개를 키운다는 것에 대하여 [한현우의 미세한 풍경] (0) | 2022.11.15 |
"연봉 1억6000만원 안되나? 그러면 '돈'으로 '행복' 살수 있다" (0) | 2022.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