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1년만 더 살아보자. 네가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뭐든지 해줄게.”
6년 전 22살의 나이에 병원 침대에 누워있던 장지혜(28)씨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10시간 동안 12개의 수혈팩을 사용한 대수술을 받고 두 달 동안 다리에 추를 달고 누워있은 뒤였다. 매일 ‘등이 불타는 것 같은 아픔’이 계속되고 다시 걸을 수 없다는 생각에 “그만 살아도 되겠다”라고 말하는 딸에게 그런 엄마의 다짐이 들렸다.
장지혜 회계사가 23일 오전 서울 용산역 인근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 20220123
현재 장씨는 스스로를 ‘휠체어 탄 회계사’로 부르는 5년차 회계사다. 세무 시즌에는 비장애인도 버겁다는 대형회계법인에서 점심시간에 마사지를 받아가며 씩씩하게 일하고 있다. 최근 장애인식 개선 콘텐트를 주로 다루는 ‘위라클’이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화제가 된 그를 23일 만났다.
“일단 부딪혀보자”
2015년 서울대생이던 장씨의 일상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고”를 당하면서 뒤바뀌었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사고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며 양해를 구했다. 당시 공인회계사 2차 시험을 6개월 정도 앞둔 시기였다. 첫 번째 2차 시험에서 5과목 중 1과목만 유예 상태여서 합격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지만, 일상생활이 어려운 장씨는 꿈을 접어야 할 처지였다.
그에게 2차 시험 접수 마감일을 하루 앞두고 ‘응시를 안 할 거냐’고 묻는 금융감독원의 전화가 왔다. 장씨는 “시험 안 보겠다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스스로 ‘일단 부딪혀보자’는 마음을 처음으로 갖게 된 날이라고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재활을 마치고 병실에 돌아와 시험공부를 하는 수험 생활이 한 달간 이어졌다. 마지막 일주일은 진통제를 맞으면서 준비를 한 끝에 합격했다.
장지혜씨가 재활치료를 위해 입원했던 당시 찍은 사진. 2015년 말 사고를 당한 장씨는 6개월간 병원에 입원하며 재활치료를 했다. 장씨 제공
“야, 들어” 한 마디에 날아 오르다
회계사 시험에 붙은 이후 사고 8개월 만에 장씨는 다시 대학 교정으로 향했다. 엄마도 “혼자 복학은 못 한다. 엄마가 2년 정도 있으면 은퇴하니 그때 같이 복학하자”고 했지만, 장씨는 결심을 강행했다.
장지혜씨의 2018년 서울대학교 졸업식 당시 사진. 장씨 제공
복학 첫날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 됐다. 휠체어를 타고 처음으로 대학 친구들과 만나 점심을 먹으러 식당 앞에 갔다. 처음 마주친 식당 계단 앞에서 친구들은 “야, 들어”라고 말했고, 휠체어가 계단 위로 날듯이 올라가는 경험을 했다. 장씨는 “그 한마디가 ‘예전과 다른 나도 구성원으로 함께 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해줬다”고 말했다.
‘샤이 코리아걸’ 별명에 어학연수
‘국제조세’ 전문가를 꿈꿨던 장씨는 2017년 미국 어학연수를 떠났다. 한 회계법인의 공모전에서 대표로 뽑혀 외국 대회에 갔다가 영어 울렁증으로 ‘샤이 코리아걸’이란 별명이 붙은 이후였다. 장씨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비장애인 헬스장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어떻게 왔냐’고 묻지 않고 ‘이런 식으로 운동하라’는 시선을 처음으로 느꼈다”고 했다.
그때 시작한 운동이 이어져 지난해 ‘바디프로필’을 찍었다. 유산소 운동이 어려운 장애인에겐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지난해 장씨가 바디프로필에 도전하며 찍은 사진. 유산소운동이 어려운 장씨에겐 더 힘든 도전이었다고 한다. 장씨 제공
장지혜씨가 2021년 20대를 기념하기 위해 도전한 바디프로필. 6개월간 7kg를 감량했다고 한다. 장씨 제공
“100번 이상 넘어졌는데, 생각보다 아프지 않더라”
장씨는 “장애를 갖게 된 후에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나는 좋은 환경 속에 운이 좋은 경우다”고 했다. 이어 “장애인을 대하는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는 많은 게 필요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돕고 싶다”고 했다. 그가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강사라는 부업을 가진 이유다.
‘늘 도전하는 게 두렵지는 않으냐’는 질문에 장씨는 “100번 이상을 넘어졌다. 생각보다 아프지 않더라”고 웃으며 답했다. 언젠가 장애학생을 도와주는 재단을 만들 계획도 밝혔다. “장애학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멘토의 존재’다. 서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넘어진 장애학생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돕고 싶다”면서다.
장지혜 회계사가 23일 오전 서울 용산역 인근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 20220123
★톡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석경민 suk.gyeongmin@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22.01.24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文 정권처럼 꼬리 낮추면 中에 계속 짓밟혀...美·中 사이 ‘이념적 방황’ 끝내야” (0) | 2022.02.02 |
---|---|
중동의 사막을 채소밭으로 바꾸는 韓 대학 중퇴생 CEO (0) | 2022.02.01 |
"호흡기 떼면 죽어" 이어령이 30년전 몰래 밀어넣은 안건은 (0) | 2022.01.23 |
‘어머니’ 그린 뒤 쓰러진 거장… 죽어서야 고국 품에 안겼다 (0) | 2022.01.23 |
“北엔 미소만, 中엔 저자세… 지금 우리가 그렇게 한가한 때인가” (0) | 2022.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