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시간에 구축 가능한 ‘모듈형 수직농장’이 무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 ‘최고혁신상’ 수상도
첨단기술 시대에 돌입했다고 농업의 위상이 낮아질 리 만무하다. 오히려 그 반대다. 기후 변화와 물 부족, 급속한 도시화로 인한 경작지 감소, 인구 고령화 등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식량 수급에 차질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세계 인구가 2050년이면 90억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지만 기후 변화와 산업화 등 영향으로 곡물을 생산할 수 있는 경작지는 계속 줄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2050년까지 70%의 식량 증산이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유력한 해결책은 인공지능(AI)과 드론,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기술을 결합해 단위 면적당 생산성을 개선하는 것이다. ‘애그테크(AgTech∙Agricultural Technology)’로 불리는 최첨단 농업 기술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혜연 엔씽 창업자 겸 대표. /엔씽 제공
농업(agricultur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인 애그테크는 첨단기술을 농업에 적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상품의 품질을 끌어올리는 산업이다. 재배부터 수확, 가공, 유통 등 농식품이 생산되는 과정 전반이 애그테크의 영역이다.
농식품 투자 플랫폼인 애그펀더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세계 애그테크 등 농식품 관련 스타트업 투자 규모는 310억 달러(약 37조5600억원)로 집계됐다. 전년(230억 달러) 대비 34.8% 급증한 것.
수직농장은 애그테크산업에서 가장 잠재력이 높은 분야로 꼽힌다. 드넓은 대지 대신 수직으로 실내 농장을 만든 뒤 빛과 온도, 습도 등을 인공적으로 조절해 농작물을 키운다. 기후와 계절에 영향을 받지 않고, 단위면적당 생산성이 높은 데다 병충해에도 강하다.
애그테크 스타트업 엔씽은 수직농장 기술을 선도하는 국내 기업 중 한 곳이다. 엔씽의 기술력은 이미 해외에서도 인정받았다.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인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의 2020년 행사에서 엔씽은 2020년 스마트시티 부문 ‘최고혁신상(Best Innovation Awards)’을 수상했고 지난해에는 지속가능성, 에코 디자인 및 스마트 에너지 부문 ‘CES 혁신상(CES Innovation Awards)’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엔씽이 개발한 수직 농장 큐브(CUBE)는 40피트(약 12.192m) 길이의 컨테이너 안에서 상추와 양상추 같은 레터스류를 1년에 최대 13번 수확이 가능하다. LED(유기발광다이오드)로 광합성을 하고, IoT(사물인터넷) 통합 자동화 기술을 통해 온도, 습도 등을 조절한다. 흙도 햇빛도 필요 없고 날씨와 상관없이 작물에 맞는 환경을 유지할 수 있으니 사막 한가운데서도, 극지에서도 대규모 농장 운영이 가능하다.
실제로 엔씽은 지난해 5월 아랍에미리트(UAE) 사리야그룹과 300만 달러(약 35억원) 규모의 수직농장 구축 계약을 맺었다. 빠른 시간에 여러 개를 이어 붙이고 쌓을 수 있는 길이 12m짜리 모듈형 농장을 앞세워 서구의 선발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생산량이 아직 적다 보니 왕족 일가와 고급 레스토랑에서 소비되기 바쁘다. 현재 대규모의 농장 수출 계약이 추진 중이다. 고급 식자재를 파는 마트에서 수입 상추가 우리나라보다 몇 배나 비싼 가격에 팔리는 UAE에서 ‘자국산 신선 채소’는 획기적인 상품일 수밖에 없다.
일론 머스크의 구상대로 언젠가 인류가 화성에 정착하게 되면 그곳에서 가장 먼저 수직농장을 운영하는 것이 꿈이라는 김혜연(38) 엔씽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를 서면으로 인터뷰 했다.
‘엔씽(N.THING)’이라는 사명(社名)의 뜻이 궁금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from nothing to the number of things)’라는 의미를 함축해 담은 이름이다. 농업에 정보통신 기술을 결합해 언제 어디서나 깨끗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경험할 수 있는 혁신적 글로벌 푸드 밸류체인을 만들어가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었고, 그런 의미를 살릴 수 있는 이름을 고민했다.”
애그테크를 사업 아이템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창업을 꿈꾸던 학생이었고, 어떤 분야에서 창업을 하던 ‘먹거리 부족’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농업은 인류에 필수불가결한 산업인 데다, 여전히 시장성이 높은 만큼 IoT 기술을 접목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좋은 먹거리의 혜택을 누리게 될 것으로 봤다. 2010년 외삼촌이 경영하는 농자재 업체서 근무하며 우즈베키스탄 파견을 나가 농장을 체험한 것도 농업의 중요성에 눈을 뜬 계기가 됐다.”
대학을 중퇴한 이유는.
“정확히 말하면 출석일수 문제로 제적을 당했다. 재학시절 일찍이 창업을 하다 보니 휴학이 잦아져 그렇게 됐다. 군 제대 후 첫 창업에 도전했지만 실패를 맛봤고, 복학 후 엔씽을 창업했다. 캠퍼스 창업 지원 프로그램 덕분에 사무 공간도 사용할 수 있고 제법 모습을 갖췄는데, 당시 참여했던 구글의 스타트업 지원프로그램에 선발되면서 엔씽 경영에 더 몰입하게 됐다.”
김 대표는 한양대 전자통신공학과 재학 중이던 2014년 엔씽을 창업했다.
엔씽 수직농법 솔루션의 경쟁력에 대해 설명 부탁한다.
“엔씽이 보유한 솔루션인 엔씽 큐브(CUBE)는 모듈형 컨테이너 방식을 사용하는 수직농장으로 토양 없는 수경재배 방식을 사용한다. 자체 운영 시스템(CUBE OS)을 통해 내부 환경과 생육조건 통제가 가능해, 고객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품질의 작물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 이 점이 CES 2020 최고혁신상을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나아가 탈 중앙화 된 농업 솔루션을 통해 기후나 위치 조건에 영향을 받지 않고 고객이 원하는 지역과 환경에서 균일하게 고품질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점도 각광을 받고 있다.”
물과 전기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환경 영향에 대해서도 민감할 수밖에 없을 것같다.
“대부분의 수직농장은 기존 농법에 비해 수자원을 혁신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엔씽 큐브의 경우 전통 농법에 비해 물 사용을 98% 정도 절감한다. 수직농장에 사용하는 에너지원이 모두 전기 에너지로 변경됐다는 것도 의미가 크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던 자동차 산업에 전기차가 등장한 것과 비견할 만한 변화이다. 자동차 산업과 마찬가지로 농업도 지구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UAE의 아부다비를 비롯한 중동 지역에서 수직농법 솔루션을 적용하는 데 어려웠던 점은.
“수경재배인 만큼 성장하는 작물이 균일한 영양분을 제공받아야 하기 때문에 균일한 수질을 유지하거나 수온이 빨리 오르지 않도록 제어하는 부분이 (한국과 달리) 어려웠다. 아부다비의 경우 다행히 현지 파트너 기업인 스마트 에이커스(Smart Acres)와 상호 신뢰가 두터웠던 덕분에 세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고, 엔씽의 한국 전문인력을 통해 서울에서도 실시간 기술 지원을 하는 등 특별히 공을 들여 신속하게 해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중동 국가들이 자국내 작물 생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었나.
“과거에는 작물을 주로 수입하던 중동 국가들이 자국내 생산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인 대유행)이 촉발한 변화 중 하나다. 팬데믹으로 인적·물적 이동에 제약이 커지면서 지속 가능하면서 안정적인 먹거리 공급 시스템 구축의 중요성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UAE 아부다비의 엔씽 큐브(CUBE)에서 현지 작업자들이 큐브OS로 농장환경을 점검하고 있다. /엔씽 제공
중동 진출을 꿈꾸는 후배 스타트업에 조언 부탁한다.
“사실 중동 현지에 대한 시장 조사를 철저히 한 편은 아니었다. 우리가 개발하고 있던 기술과 솔루션이 마침 중동에서 찾고 있던 것과 딱 맞아떨어진 경우다. 현지에서 분명 원하는 것이 있다. 자사의 제품·서비스가 이에 부합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진출하라고 하고 싶다. 좋은 사업 파트너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스타트업 특성상 리소스가 부족해 현지 사업을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 해내기는 어렵다. 경험 많은 국내 대기업 종합상사 등과 협력하는 것도 좋고, 장기적으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현지 파트너를 찾는 것도 좋다.
협상이 지연되거나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어떤 방식으로 풀어갔나.
“실무자를 붙잡고 설득을 이어 나가기보다 결정권자에게 직접 성과를 보여줬다. 우리 솔루션의 최대 장점이 POC(proof of concept·개념 증명)가 쉽다는 점이다. 보통 스마트팜 솔루션은 초기 비용만 수십억원이 들어가는데, 우리는 7000만원 상당의 컨테이너 농장 1동만 설치하면 시범 운영이 가능하다. ‘처음부터 100동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일단 1동만 해보자’, 이렇게 어필하니 바로 진행이 됐다. 농장에서 신선하고 아삭한 채소를 수확할 수 있는 모습을 보고 현지 결정권자들이 굉장히 만족했다. ‘바로 다음 단계로 가자’라고 하더니 진행이 굉장히 빨라졌다.”
이용성 국제부장 danlee@chosunbiz.com 기사입력 2022.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