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에 출연한 박해수, 이정재, 정호연. [사진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봤어?”
추석 연휴의 승자는 단연 ‘오징어 게임’이었다. 마땅한 화제작이 없었던 극장가나 지난해의 ‘나훈아 신드롬’ 같은 대박을 내지 못한 TV 예능의 빈자리를 ‘오징어 게임’이 차지했다.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단톡방에서는 ‘오징어 게임’의 시청 후기가 줄을 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도전하는 이야기. 변변한 직장도 없고 간혹 생기는 돈은 경마로 날려버리는 성기훈(이정재),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수재에 여의도 투자회사에 다니며 성공한 줄 알았지만 잘못된 투자로 빚더미에 앉은 조상우(박해수)를 비롯해 탈북 브로커에게 돈을 사기당한 강새벽(정호연), 조직 보스의 돈을 도박으로 날려 먹은 장덕수(허성태) 등 다양한 인생 군상을 통해 극한에 처한 인간의 내면을 응시한 작품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비롯해 낯익은 여러 추억의 게임이 탈락은 곧 죽음인 치열한 생존 게임의 방식으로 등장한다.
17일 공개 이후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반응이 터졌다. 원제를 그대로 영어로 옮긴 ‘스퀴드 게임(Squid Game)’이라는 제목으로 유통된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미국의 톱 10 콘텐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한국 드라마로는 처음이다. 기존 최고 성적을 낸 ‘스위트홈’(3위)을 넘어선 인기다.
‘오징어 게임’은 현재 83개 국가에서 방영 중인데, OTT 콘텐트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 집계에 따르면 21일 현재 미국 외에도 홍콩, 대만, 인도네시아, 태국, 자메이카, 쿠웨이트 등 22개국에서 1위에 올랐다. 일본, 러시아, 호주,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에서는 2위에 올랐다. 21일 현재 전 세계 넷플릭스 시리즈 인기 순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작품의 만족도를 신선도로 평가하는 미국 로튼토마토닷컴에서도 최고 점수인 신선도 100%를 받는 등 좋은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이 드라마는 456억원의 상금을 놓고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을 그렸다. [사진 넷플릭스]
유명 인사들의 인증샷도 이어지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배우 이병헌 등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관련 게시글을 올린 데 이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 선수 제시 린가드도 ‘오징어 게임’을 시청 중인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기행으로 화제를 몰고 다니는 허경영 국가혁명당 명예대표는 ‘오징어 게임’을 패러디해 대선 공약을 알리기도 했다. 그는 이 드라마 포스터를 활용해 ‘게임의 룰은 간단합니다. 허경영 득표율 50% 이상 당선 시 18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1억원+매월 150만원 지급’이라고 적었다.
‘오징어 게임’은 독특한 설정 외에도 현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인기의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지만 게임 관리자들은 ‘평등’을 강조한다. “바깥세상에서 불평등과 차별에 시달려온 사람들이기에, 평등하게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것”이란 주장이다. 그러나 이들을 지켜보고 통제하는 분홍 옷의 ‘가면인들’ 사이에도 명확한 계급이 존재하고, 그 위에는 게임을 설계한 자들이 별도의 위계로 존재했다. 이들의 ‘평등’은 ‘고착된 계층 안에서의 평등’일 뿐이다. ‘오징어 게임’은 ‘을들의 싸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극 중 “우리끼리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라는 기훈의 절규는 절박한 ‘을’들에겐 들리지 않는다.
다만 이런 폭발적인 반응과는 별도로 시청자들의 반응은 호불호가 엇갈린다. “목숨 건 생존 경쟁의 현실과 다를 게 없다”며 공감하는 반응 한편으로는 “지루하고 억지스럽다”는 반응도 있다. 또 황동혁 감독이 “2009년에 쓴 대본이고, ‘신이 말하는 대로’는 2011년 공개된 작품이라 뭘 보고 베꼈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고 제작발표회에서 이미 밝혔지만, 여전히 일본 영화 ‘신이 말하는 대로’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의 유명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와의 유사성을 지적하는 반응도 있다. 1996년부터 연재 중인 ‘도박묵시록 카이지’는 미래에 대한 희망없이 살아가는 주인공 카이지가 사기로 지게 된 막대한 빚을 해결하기 위해 거액을 주는 게임에 참여하는 내용이다. 주인공의 처지에 대한 설정부터 배를 타고 고립된 공간에서 게임이 벌어진다는 점, 거액을 주지만 게임에 패배할 경우 참혹한 대가를 치른다는 점 등이 유사한 요소로 꼽히고 있다.
‘오징어 게임’에 대해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빚이 주요 동기로 나오지만 탈북자의 고충, 폭력 피해자 등 여러 사연을 담았다”며 “‘누군가를 제거해야 내가 살아남는’ 서바이벌 게임을 토대로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약자를 굴려서 자본화하는 구조에 대한 비판적 은유를 날카롭게 드러냈다”고 평했다.
유성운·김정연 기자 pirate@joongang.co.kr 입력 202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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