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지인이 하소연했다. 반려견이 소변을 볼 때 물구나무서기를 한다며, 뒤로 넘어질까 봐 불안하기도 하고 때때로 소변이 배에 떨어져 비위생적이라는 불평이었다. 그때 내 반응은 이랬다. “대단한데? 묘기 대행진 같은 데 내보내 봐요!”
그땐 몰랐다. 내 개도 그렇게 될 줄. 요즘 수리는 십중팔구는 물구나무서기로 소변을 본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상식적인 선에서 수컷은 한쪽 다리를 땅에 댄 채 다른 쪽 다리를 치켜들어 소변을 보고, 암컷은 뒷다리를 굽혀 쪼그려 앉아 소변을 본다. 다만 암컷이라도 과시욕이 높은 개는 수컷마냥 한쪽 다리를 들고 일을 본다고는 들었다. 어쨌거나 갓 입양하고서 수리는 쪼그려 앉아 오줌을 눴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한쪽 다리를 치켜들어 나를 놀래키더니, 동거 5년 차인 지금은 소변 횟수의 대다수를 물구나무서기로 장식한다. 거꾸로 소변보기라니.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남사스러워 제지하다가 혹 슬개골 탈구증이 있으니 딛는 쪽 다리가 불편해서 그런가 싶어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다.
수리 뒷다리를 만져 본 수의사는 소변보는 데 지장 있을 만큼 다리 상태가 나쁘지는 않다며, 간혹 소변이 털에 묻는 걸 싫어하는 개들이 물구나무서기로 일을 본다고 했다. 그때 차마 못한 말이 있다. “웬걸요. 물구나무서기로 누는 소변이 배에 더 많이 튀던 걸요!”
정보의 바다에서 ‘동병상련’ 사례를 찾기 시작했다. 수리 같은 개가 흔하지는 않아도 더러 있었고, 심지어 ‘핸드 스탠드 피Hand Stand Pee’라는 전문 용어도 있었다. 때마침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에는 물구나무서기도 모자라 그 상태로 걸어가며 소변을 본다는 ‘깐돌이’가 등장했다. 깐돌이는 물구나무 자세로 14초 동안 3m가량을 걸어가며 수 차례 소변을 봤다. 수리를 댈 것도 아니었다.
동물 행동 심리학자는 깐돌이의 행동을 두고 ‘자기보다 몸집이 큰 강아지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건강에 해롭지 않다면 굳이 저지할 필요가 없다고, 깐돌이는 그런 자세로 오줌을 누며 행복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수리 역시 다리가 아파서 그런 건 아니라니 안심이지만, (지나는 사람들이 괴이한 자세로 소변보는 수리를 보고 놀라거나 웃을 때 부끄러움은 그저 내 몫이지만) 저가 좋아서 그러는 거라면 말릴 방도가 없는 일이다. 다만 열 살 할망견이 되었으니 부디 다치지 않기만 바랄 뿐.
그런데 더 높이, 더 멀리 소변을 발사하며 느낀다는 그 행복감의 실체가 헛웃음을 유발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럴듯하게 포장하면 ‘소통’이지만 솔직히 자신의 몸집을 부풀리려는 ‘과시욕’이나 ‘허세’로, 더 정확히는 ‘위장’과 ‘거짓말’인 셈이다.
이는 몸집이 작을수록 물구나무서기로 오줌을 누는 개가 많다는 데서 더 확실해진다. 소변이 묻는 위치를 최대한 높게 해서 ‘어이, 까불지 마. 나 엄청 크고 센 놈이야’ 하는. 그러면서 스스로 세고 위풍당당하다는 최면에 걸리는 것이다.
역시 소형견인 수리로 추론해 보자. 처음 수리가 내게 왔을 때는 환경도 낯설고 반려인이란 자도 어떤 인물인지 모르니 몸을 사리느라 쪼그려 앉아 ‘정상적’으로 소변을 봤을 테다. 그러다 반려인이 물러 터졌고 이 동네에 눌러 살 듯한 확신이 들자 당당히 한쪽 다리를 치켜들어 영역 표시를 시작했겠고, 마침내는 이 구역에서 짱 먹겠다는 포부를 만방에 고하려 허공에서 소변을 발사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아, 모든 궤가 맞아떨어진다. 맹랑하고 가소로우며, 적이 사랑스럽다.
한편, 모든 사례를 허세로 치부할 수는 없다. 실제로 슬개골이 탈구된 개라면 뒷다리에 통증을 느껴 물구나무를 서는 경우가 더 많다는 거다. 그러니 내 반려견이 소변볼 때 물구나무서기를 시작했다면 당황하거나 나무라지 말고 병원부터 가 보는 게 순서다.
[글과 사진 이경혜(프리랜서, 댕댕이 수리 맘)] 입력 2021.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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