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자연사박물관 올해의 야생동물 사진작가상 대상 수상
포옹, Sergey Gorshkov/영국 자연사박물관
시베리아 호랑이가 마치 포옹을 하듯 나무를 붙잡고 있다. 암컷 시베리아 호랑이는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체취를 나무에 남겨 영역 표시를 하는 것이다.
영국 국립자연사박물관은 13일(현지 시각) 러시아 사진작가 세르게이 고르쉬코프가 촬영한 시베리아 호랑이 사진 ‘포옹’을 올해의 야생동물 사진작가(Wildlife Photographer of the Year)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발표는 영국 왕세손 윌리엄의 부인인 케임브리지 공작 부인 캐서린이 했다.
이번 대상 사진은 무인카메라가 촬영했다. 고르쉬코프는 러시아 극동지방의 숲에 무인 카메라를 설치하고 동물이 다가오면 셔터를 누르게 했다. 이번 사진전의 심사위원장인 로즈 키트먼-콕스는 이날 BBC 방송 인터뷰에서 “빛이나 색, 재질이 마치 유화와 같았다”며 “호랑이가 숲의 한 부분이 돼 꼬리가 나무의 뿌리와 섞여버렸다”고 밝혔다.
시베리아 호랑이는 현재 수백 마리 밖에 남지 않은 멸종위기 종이다. 먹이가 부족해지면서 호랑이는 먼 곳까지 이동해야 한다. 이번 사진은 무인 카메라를 설치한지 10개월 만에 건진 장면이다.
여우와 눈 마주친 청소년 사진작가
핀란드 리나 헤이키넨의 찍은 ‘기러기를 잡은 여우’는 청소년부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사진에서 여우는 흰뺨기러기를 문 채 바위 틈에 웅크리고 있다. 다른 형제가 먹이를 빼앗지 못하도록 몸을 숨긴 것이다.
기러기를 잡은 여우, Liina Heikkinen/영국 자연사박물관
키드먼-콕스 심사위원장은 “심사위원들은 젊은 자연사학자가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점에 기뻤다”며 “구성이 매우 뛰어난데, 사진 속 여우가 카메라를 응시하는 것으로 보아 리나는 바닥에 엎드렸을 것”이라고 밝혔다.
덴마크의 모겐 트롤이 코주부 원숭이를 찍은 ‘포즈’는 동물 초상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인도네시아 보느네오의 보호구역에 사는 코주부원숭이는 나이가 들수록 코가 커진다. 원숭이는 이 코로 큰 소리를 내 집단 속에서 자신의 지위를 알린다.
포즈, Mogens Trolle/영국 자연사박물관
올해의 야생동물 사진전에는 동물 사진만 있는 게 아니다. 이탈리아의 루치아노 가우덴지오가 찍은 ‘에트나의 불의 강’은 지구 환경 부문 수상작으로 뽑혔다. 에트나 화산에서 용암이 흘러나오는 모습을 포착했다. 가우덴지오는 악취와 열을 견디며 용암에 가까이 가서 촬영했다. 그는 “용암이 흘러나오는 모습이 마치 거대한 공룡의 거칠고 주름진 피부에 상처가 벌어진 것처럼 보였다”고 밝혔다.
에트나의 불의 강, Luciano Gaudenzio/영국 자연사박물관
스페인 제이미 쿠레브라스의 ‘균형 있는 삶’은 양서류 파충류 행동 부문상을 받았다. 거미를 낚아 챈 유리개구리를 찍은 사진이다. 작가는 에콰도르의 자연보호구역의 급류 속에서 이 사진을 찍기 위해 한 손은 우산과 플레시를 들고 다른 손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고 밝혔다.
무척추동물 행동 부문상을 받은 ‘두 기생벌 이야기’는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에서 기생벌인 나나니벌(왼쪽)과 청벌을 포착했다. 수중 부문 수상작인 ‘황금기’는 필리핀 바다 속으로 들어가 지느러미오징어를 찍은 사진이다. 아직 몸길이가 6~7cm에 불과한 어린 개체이다. 어린 오징어의 노란색이 인생의 황금기를 연상케 한다.
두 마리 기생벌 이야기, Frank Deschandol/WPY2020
서커스 북극곰의 안타까운 모습도
‘엄마가 뛰라고 할 때’라는 재미있는 제목을 가진 사진은 포유류 행동 부문상 수상작이다. 중국의 산유안 리가 티베트 고원지대에 사는 팔라스 고양이의 새끼들을 찍은 사진이다.
엄마가 뛰라고 할 때, Shanyuan Li/영국 자연사박물관
스페인의 호세 루이스 루이즈 지메네스가 찍은 ‘뿔논병아리 볏의 일출’의 조류 행동 부문 수상작이다. 막 사냥을 하고 물 위로 올라온 뿔논병아리 어미의 볏이 물에 젖어 마치 일출의 햇살처럼 보인다. 어미가 온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챈 새끼는 바로 입을 벌려 먹이를 달라고 보채고 있다.
인도의 리판 비스와스는 이번 사진전에서 야생동물 사진작가 포트폴리오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는 개미 사진 연작으로 수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대표작인 ‘마지막 한 입(The Last Bite)’는 베짜기개미가 길앞잡이 딱정벌레의 뒷다리를 문 모습을 포착했다. 개미는 다른 작은 먹이를 사냥하러 나섰다가 딱정벌레 공격을 받았다. 이 개미는 동료가 도망갈 수 있게 딱정벌레의 뒷다리를 끝까지 물고 있다.
마지막 한 입, Ripan Biswas/WPY2020
이번 사진전에는 안타까운 모습도 다수 출품 됐다. 야생동물 보도사진 부문상을 받은 ‘쇼 비즈니스’는 북극곰이 서커스에 나선 모습을 포착했다. 인간이 자연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타타르스탄 카잔에서 공연한 러시아 서커스단에 소속된 북극곰. 크리스틴 루체의 작품이다./영국 자연사박물관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ywlee@chosun.com] 입력 202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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