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저장성의 항구도시 닝보에 들어선 닝보역사박물관은 건물 자체가 하나의 산처럼 설계됐다. 오래된 벽돌, 기와, 석재, 도자기 조각 수백만 장을 쌓아 올린 이 건물은 건물 자체가 역사성을 품고 있다. 아트북스 제공
‘건축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2012년 중국인 최초로 수상한 왕수(王澍ㆍ57). 그의 건축은 중국의 대자연을 빼 닮았다. 오래된 벽돌 기와에다 대나무 모양의 콘크리트 벽을 빼곡하게 쌓아 산세를 이뤄내는 닝보역사박물관이 그렇고, 굽이치는 강물과 구불구불한 산길을 연상시키는 지붕과 창들이 이어지는 중국미술대 샹산캠퍼스가 대표적이다.
중국 전통 산수화에서 영감을 받은 그의 건축은 모던한 서양 건축 일색이던 세계 건축계의 판도를 단박에 뒤집었다. 프리츠커상을 제정한 미국 하얏트 재단의 토마스 프리츠커 회장은 “중국 도시화 과정에서 건축이 전통을 고수할지 미래지향적이어야 하는지 논쟁이 있다"고 소개한 뒤 "그런데 왕수의 작업은 지역의 고유성에 기반하면서도 세계적 보편성을 추구함으로써 이 같은 논쟁을 초월해버렸다”고 평가했다.
최근 자신의 건축 철학을 담은 ‘집을 짓다’(아트북스 발행)가 한국에 번역 소개된 일을 계기로 왕수 건축가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남송 이당의 '만학송풍도'. 자연의 형태와 관계를 중시하는 왕수는 중국 전통 산수화의 구조에서 작품의 영감을 받는다. 아트북스 제공
중국 전통 산수화를 닮은 닝보역사박물관의 진입로 풍경. 아트북스 제공
동ㆍ서양,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왕수 건축의 출발점은 중국 전통 건축인 ‘원림(園林)’이다. 중국 문인들이 집에 가꾸던 뜰을 원림이라 부르는데, 서양 사람들이 집을 짓고 나서 조경을 한다면, 중국 문인들은 집을 짓기 전에 원림부터 만들었다. 자연과의 조화를 우선적으로 고려했다는 얘기다. 왕수는 “집 짓기가 작은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라면 원림은 그 세계를 만들 때 인간이 가져야 할 태도를 말한다”며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 자연의 일부로, 자연과 대화를 나누겠다는 인간의 주관이 관념적으로 드러나는 원림이야말로 내가 지향하는 건축이다”라고 설명했다.
물결치듯 비정형의 창들과 계단이 이어지는 중국미술대학 샹산캠퍼스. 아트북스 제공
대표작인 샹산캠퍼스를 지을 때도 그랬다. 근대적인 캠퍼스 배치보다 건축과 산수의 관계를 먼저 봤다. 캠퍼스 부지는 해발 50m 되는 작은 샹산(象山)을 중심으로 산, 작은 강줄기, 호수의 제방, 작은 구역으로 분할된 농토 등으로 둘러 쌓여 있었다. 왕수는 “건축물보다 더욱 중요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이해가 이미 구현돼 있었다”라며 “이러한 상태가 캠퍼스의 분위기와 공법을 결정했고, 산에 비하자면 건축물은 부차적"이라 말했다.
그는 서로 다른 80여종의 오래된 벽돌과 기와, 석재, 도자기 조각 700만개를 혼합해 벽을 쌓아 올렸다. 찰랑이는 물결을 닮은 지붕과 함께 굽이치는 계단을 연결해 샹산과의 조화를 꾀했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깊게 움직이는 건 건축이 아니라 건축물을 통과해 산의 변화를 바라보는 일이다”고 했다.
왕수는 물리적인 공간을 뜻하는 건축은 거부한다. 그는 “건축이라는 말은 그저 집짓기인 일을 너무 중요하게 취급해 의미를 과하게 부여하고, 생활 속 기본적 감각과 경험을 상실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대신 ‘영조(營造)’란 말을 썼다. 단순히 집짓기 하나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도시건설, 수리사업, 가구제작, 취미 삼아 소소한 물건을 만드는 생활 등 잡다한 모든 것을 다 포함시키는 개념이다. 그는 영조를 중국 전통 산수화에 비유해 설명했다. “산수화의 세계에서 집은 언제나 한 귀퉁이에 숨어 있다. 결코 주체적인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 족자를 포함, 산수화가 만들어낸 전체 그림의 범위가 모두 영조 활동이다.”
한국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축으로 안동의 병산서원을 꼽았다. 그의 최근작에도 서원의 구조를 반영했다고 귀띔했다. 그는 “산과 서원 사이에는 호수와 같은 강물이 반짝이는 햇볕과 산들바람 속에서 찰랑대고 있었다”라며 “이런 감각이 존재하는 것은 그 서원이 그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다”라고 평했다.
중국인 최초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왕수는 건축물은 자연의 형태에서 부차적인 요소일 뿐이라고 일갈한다. 아트북스 제공
자연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그의 건축 철학은 중국을 비롯한 전세계적인 도시의 고밀도화 경향과는 정반대다. 그는 “오늘날 중국의 도시 주택은 주민들을 모두 모종의 이민자로 만들고 공동체를 와해시켰다”고 진단하며 “도시 문제는 공동체와 인근 지역 사회와의 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로 사람들이 공동체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 만큼 앞으로는 분열되고 격리된 건축이 아닌 인간이 자연에 가까이 다가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북서쪽 변방인 우루무치 출신인 왕수는 난징공대에서 건축을 전공한 순수한 중국국내파 건축가다. 해외에서 교육을 받은 적도 작품활동을 한 적도 없다. 대학 2학년 때 “나를 가르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선언했고, 이후 중국 근대 건축계를 비판한 논문을 써 석사 학위도 받지 못했다. 1997년부터 아내와 함께 항저우에서 ‘아마추어 건축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닝보박물관, 중국 미술대학교 샹산캠퍼스, 상하이세계박람회 닝보 텅터우전시관 등이 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입력 20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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