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메랄드빛 바다 위에 수백 개의 섬이 통통거리며 얹혀 있다. 달아공원에서 맞는 일몰은 한 폭의 수묵화와 다름없다. 경남 통영의 가을은 이렇게 아름답다. 한려수도 국립공원 안에 둥지를 튼 통영 ES리조트는 요즘 절정을 맞고 있다.
빨간색 베레모를 쓰고 나타난 이종용(71·사진) ES리조트 사장은 “휴양촌을 보듬는 ‘촌장(村長)’”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리조트를 찾은 내장객들과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옛날 영화 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니 촌장이 맞다”고 스스로 맞장구를 친다.
리조트 업계에서 이 사장은 ‘이단아’ 혹은 ‘괴짜’로 불린다. 회사를 경영하는 스타일이나 철학이 워낙 남달라서다. 그런데 ‘성적표’가 탁월하다. 1995년 개장한 ES는 현재 통영과 충북 제천, 네팔 데우랠리에서 리조트를 운영 중이다. 이 회사는 올해 창사 이래 최대인 운영 매출 100억원을 기대한다. 철저히 회원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내장객은 한 해 27만~30만 명으로 제자리걸음이지만 실적은 탄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종용식(式) 리조트 경영’은 무엇이 달랐을까? 결론부터 말해 그는 기존의 리조트 경영 방식과는 철저히 거꾸로 사업을 일궈왔다. 경북 칠곡 태생으로 섬유업체를 경영하던 이 사장은 1976년 제천시 수산면 능강계곡에 콘도미니엄 부지 46만여㎡를 사들였다. 제조업 다음은 ‘휴양 사업’이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에서였다. 당시 매입 가격은 3.3㎡당 30~50원. 나중에 충주호가 생겨 이 일대를 그림 같은 풍광으로 바꾸어 놓으면서 가치가 하늘 높이 뛰었다.
이곳에 별장형 콘도를 짓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유럽으로 ‘유학’을 떠난다. “기회가 될 때마다 미술가·관광 전문가들과 함께 지중해로, 알프스로 여행을 다녔습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작은 집’이 정답이라는 결론을 얻었지요. 직접 나무 그네를 만들고 숲길을 닦았습니다. 이렇게 열아홉 번의 가을을 보내 탄생한 것이 ES능강리조트지요.”
자연의 풍요로움이 흐르고(Environment Sound), 삶에 활력을 준다는(Energy Source) 뜻에서 ‘ES’라고 이름 지었다. ES는 놀고 즐기는 기존의 콘도 개념을 확 바꿔놓았다. 아름드리 소나무를 오롯이 보존하기 위해 숙소의 지붕을 통과하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마당에는 닭과 오리·사슴이 뛰어다닌다. 주말이면 50~60년대 할리우드 영화가 상영된다. 리조트를 콘크리트 건조물 대신 철저히 자연의 ‘일부’로 조성한 것이다. 최근 프리미엄을 표방한 리조트 조성이 업계의 대세인 것을 감안하면 이 사장은 20년쯤 흐름을 앞서간 셈이다.

통영리조트는 한려수도 국립공원 개발을 구상 중이던 김혁규 당시 경남지사가 2001년 이 사장에게 자문을 요청해 만들어졌다. 이곳의 106개 객실 중엔 ‘똑같이 생긴 방’이 하나도 없다. 이 사장이 모두 설계·감독했다. “통영은 곡선의 도시입니다. 길도 구불구불, 섬도 살랑살랑 휘어져 있지요. 자연에 직선이 없는 것처럼 휴식을 위해 온 손님들에게 곡선의 아름다움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방을 오밀조밀, 아기자기하게 꾸몄습니다.”
사업 방식도 달랐다. 대부분의 콘도 업체는 부지를 먼저 구한 다음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회원권을 분양한다. 하지만 이 사장은 먼저 건물을 짓고 나서 회원권을 분양했다.
ES는 무엇보다 운영이 독특하다. 능강이든, 통영이든 ‘자연 속 휴양촌’이라는 컨셉트에 따라 영업장을 관리한다. 그래서 객실에는 시계가 없고 무선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 자연 속에서 여유를 즐기려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아야 하고, 인터넷도 따로 필요하지 않다는 게 이 사장의 지론이다. 식당 주방에서 착용하는 위생복을 빼고는 직원들은 유니폼을 입지 않는다. 이 사장은 “가족 같은 편안함을 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한 번은 수영장에서 조금 야한 수영복을 입고 다니는 여자 손님을 쫓아낸 적도 있어요. 밤늦게까지 고성방가를 한다면 추방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독재’일 수 있겠지만 ‘유흥’이 아니라 ‘휴식’이라는 ES의 철학을 지키는 겁니다.”
ES는 무엇보다 회원 관리가 엄격하다. 이곳을 찾은 내장객은 최근 5년간 한 해 평균 27만여 명이었다. 이 사장은 “회원들에게 쾌적한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어떨 때는 일부러 방을 비우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측에서 투숙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또 비슷한 요구가 와도 거절할 겁니다. 회원제라고 하면 회원 중심으로 경영을 해야지요. ES는 주중 객실 가동률이 연평균으로 따지면 30% 안팎입니다. 업계에서 가장 낮을 겁니다. 하지만 만족도는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위기를 극복한 스토리는 이종용식 ‘거꾸로 경영’의 결정판이다. IMF 사태 당시 ES도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최악의 국난(國難) 속에서 ES는 회원을 모집하는 데 급제동이 걸렸고, 30억원대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속을 끓이고 있는 와중에 1998년 4월 지인이 “그러면 신문에 광고를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면 광고를 냈는데 내용이 전혀 예상 밖이었다. ‘특급 세일’ ‘가격 파괴’ 등이 마케팅의 대세였던 시절에 그는 방향타를 거꾸로 잡았다. 기존보다 분양가를 10% 올리고, 회원도 만 45세 이상으로 제한한 것이다. 명품 리조트로 제대로 인정받고 싶다는 심정으로 ‘마지막 베팅’을 한 것. 기적같이 다음 날부터 계약을 하자는 문의가 빗발쳤다. 빚을 모두 갚은 것은 물론 10억원대의 여유 자금까지 생겼다. 결국 지금은 ‘신의 한 수’가 된 셈이다.
현재 ES리조트는 이 사장의 아내인 박정념(65) 회장이 경영에 참가하고 있다. 남편보다 직위가 더 높은 것이다. 박 회장은 2010년 송년회에서 부회장으로 ‘깜짝 데뷔’한 뒤 2011년 회장으로 승진했다. 이 사장은 “여자의 손길이 절대적으로 필요해 구원투수로 요청한 것”이라며 “이게 바로 ‘이종용 스타일’”이라며 껄껄 웃었다.
통영=이상재 기자 중앙 2013.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