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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당 잼으로 백만장자, 24세 CEO 프레이저 도허티 - 영국

해암도 2013. 10. 13. 07:42

 

“주택·육아 부담없는 청년기가 창업 모험 적기”

10대 창업에 성공한 수퍼잼 대표 프레이저 도허티는 “창업은 즐거운 모험”이라며 “젊은 시절이야말로 그 모험을 즐기기에 최적이다. 우선 작은 규모로 시작하면 된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2004년 2월 비가 쏟아지던 토요일 오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골목길. 15세 소년 한 명이 집집마다 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가 든 비닐봉지 안엔 오렌지 마말레이드 병이 수십 개 들어 있었다. 자신이 직접 만든 잼을 들고 이웃집들을 돌며 판매하려는 것이었다. 열 집 중 한 집가량이 잼을 샀다. 오렌지·설탕 등 재료에 들어간 비용은 총 2파운드(약 3400원). 하지만 잼을 판 뒤 들어온 돈은 4파운드였다. 용기를 얻은 소년은 잼 사업가로 나서기로 결심한다. 지난해 연간 매출 100만 파운드(약 17억1200만원)를 올린 영국의 무가당 천연과일잼 브랜드 ‘수퍼잼’의 시작이다.

그 소년 프레이저 도허티(24)는 그 뒤 9년 만에 유럽 전역과 한국·미국·일본 등지의 2000여 매장에 잼을 공급하는 청년 재벌이 됐다. 20개 넘는 ‘젊은 기업가상’을 탄 그는 명문 이튼스쿨에서 강연을 하며 CNN·BBC에 스타 기업가로 소개됐다.

영국 왕실의 인정을 받은 굴지의 유기농 전문 마트 ‘웨이트로즈’에 납품하는 최연소 기업인으로도 기록됐다. 찰스 왕세자는 그를 만나 “모범 청년”이라며 격려했고, 고든 브라운 전 총리도 재임 시절 그를 관저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했다.

서울 방문 때 호텔 대신 게스트하우스 묵어
도허티는 11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백만장자라는 표현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연간 매출액 100만 파운드의 가치는 내가 아닌 회사가 가진 것이다. 난 물건을 소유하는 데 흥미를 못 느낀다. 집도 차도 없다. 소형 아파트에 월세로 살고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에서도 호텔 대신 홍익대 인근 게스트하우스에 거처를 정했다. 한정식집에 초대됐어도 별실에서 서빙되는 코스요리 대신 홀에서 냉면을 먹었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자”는 그의 경영 철학에 따라 수퍼잼은 독거노인을 위한 자선 다과회 ‘수퍼잼 티파티’를 열어 왔다. 영국 전역에서 1년에 100회 넘게 열리는 이 행사엔 매회 500명 넘는 노인이 초대된다. 영국 내 자살자의 70%가 70세 이상 할머니들이고 크리스마스를 홀로 보내는 노인이 100만 명이 넘는다는 통계에 놀란 그가 직접 기획한 행사다.

 

“티파티에 초대받은 할아버지가 ‘오랜만에 사람 대접을 받았다’고 말할 땐 울 뻔했다”고 한다. 그는 11일 오전 서울 용산 SK행복나눔재단에서 저소득층 요리사 지망생들을 초청해 홍시·단호박·배 등 우리 식재료로 잼을 만드는 행사를 열었다. “내가 해냈으니 여러분도 할 수 있다”는 도허티의 말에 참석자들은 고무된 표정이었다. 요리사 지망생 강우정(22)씨는 “나이도 비슷한 도허티가 스스로의 노력으로 꿈을 이룬 모습을 보니 용기가 생긴다”고 말했다.


도허티는 이 행사에서 불 조절과 원액 농도 측정법 등 자신만의 노하우를 이들에게 알려줬다. 학교를 조기 졸업한 뒤 집에 틀어박혀 수백 번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찾아낸 비법이라고 한다.

1. SK행복나눔재단의 요리사 꿈나무들과 함께 한국 제철 식재료로 잼을 만들어보는 도허티. 2. 도허티가 여는 독거노인 초청 무료 다과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위해 창업

자수성가했다지만 부모의 도움을 받은 건 전혀 없었을까. 도허티는 “도움받은 게 있다. 엔지니어인 아버지는 부자가 아니어서 금전적 도움은 주지 못했지만 내게 인생 최고의 충고를 해주었다.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깨닫고 그 일을 하며 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 지망생이었다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엔지니어가 된 아버지가 정리해고되는 걸 본 도허티는 어렸을 때부터 “해고로부터 자유로운 일자리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 사업가의 꿈을 꾸게 된 배경이다. 신문과 베이컨을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는 할머니와 함께 잼을 만들면서 “유레카!”란 느낌이 왔다고 한다. 할머니의 레시피를 바탕으로 몇 달간 부엌에서 씨름한 끝에 자신만의 잼을 만들어냈다.

잼은 동네 시장에서 인기를 끌며 매주 1000병이 팔려나가는 히트를 친다. 대형마트 입점을 다음 목표로 삼고 차별화 포인트를 연구했다. ‘잼=설탕 덩어리’라는 인식 때문에 잼 소비가 내리막길인 점에 착안해 ‘무가당 100% 천연과일잼’에 도전했다. 결국 청포도즙을 7시간가량 졸여 만든 농축액으로 단맛을 내는 데 성공했다.

18세 때인 2007년 웨이트로즈 최연소 납품업체 사장이 된 그는 “잼이 입점한 첫날 매장에 나갔다. 줄을 서서 수퍼잼을 사들이는 고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날 하루 웨이트로즈에서 팔려나간 수퍼잼은 1500병에 달했다. 뛸 듯이 기뻤다”고 회고했다. 사기가 충천해진 도허티는 어린이용으로 씨를 제거한 잼부터 다기(茶器)류까지 여러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수퍼잼을 이용해 만들 수 있는 요리법을 담은 책도 2010년 출간했다. 2만5000권이 팔렸다고 한다. 그의 자전 에세이 ?수퍼잼 스토리?도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 번역 출간됐다.

청년 창업이 한국에서도 화두라는 말에 도허티는 “청년 창업이 위험하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청년기는 주택 마련이나 육아 부담이 없어 모험을 시작할 적기”라며 “우선 작은 규모로 시작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얻은 금전적 자유에 감사하지만 내 삶의 목적은 부자가 아니라 세상에 긍정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평만 한다고 불공평한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세상을 바꾸는 건 기업활동을 통해 작은 변화라도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혹시 정치인을 꿈꾸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내 꿈은 예나 지금이나 미래나 똑같다. 세계 최고의 잼을 만드는 것”이라 일축했다. 
 
                                        중앙선데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입력 2013.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