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대기업 거쳐 木手에 안착
기술이 몸에 익는 것 중요하지만 원리부터 깨치는 것도 방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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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삼층장’.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이 남자가 이룬 쾌거는 좋은 예시가 될 것 같다. 운동권에서 직장인을 거쳐 돌연 목수가 된 남자. "사람과 세상이 싫어져 나무만 파다가" 목공(木工) 실력을 인정받았다. 제38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서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한 소목장 양석중(49)씨 얘기다. 평생 한 우물만 파도 쉽지 않은 이 상을 '13년 차 늦깎이 목수'가 받았다.
"혼자 작업하다 '공인 자격증'을 받은 것 같아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양씨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小木匠) 박명배 보유자의 제자로 지난 6월 이수자가 됐다. 전승공예대전에만 6번 도전했다는 그는 2008년, 2010년 특선에 이어 올해 대통령상을 거머쥐었다.
양씨가 출품한 '삼층장'은 느티나무로 짠 두 벌짜리 삼층 옷장. 호암미술관이 소장한 조선시대 삼층장을 참고로 했다. 겉문짝 표면에는 느티나무의 목리(나뭇결)를 살려 나비 문양을 배치하고, 문 손잡이에는 당초문을 새겼다. 속문짝에는 '수복(壽福)' 자를 수놓은 비단을 댔다. 심사위원으로부터 "정교한 비례미, 짜임 기법이 섬세해 전통공예의 멋스러움과 가치를 잘 보여준다"는 평을 받았다. 특이하게도 옻칠 대신 유칠(기름칠)을 택했다. "옻칠도 목리를 잘 살리지만 나뭇결을 최대한 잘 드러내고 싶어서"란 설명이다. 전통적이면서도 날렵한 선이 시간을 넘은 '모던함'을 느끼게 한다.
양씨는 소위 '운동권 출신'이다. 서울대 재학 중인 1989년 '노동자대학'을 만들었고, 졸업 후엔 대우자동차의 파격적인 정책이었던 '운동권 특채'로 입사했다. 기업에 들어가서도 '반골 기질'은 그대로여서 사무직 노조를 만들고, 2001년 대우차가 미국 GM에 인수됐을 때는 '정리해고'를 반대하다 좌절되자 사표를 냈다. 구체적인 얘기를 물을수록 그는 답을 피했다. "같이 운동했던 이들에게 미안해서"라는 짧은 답을 할 뿐이다.
"회사를 나오고 나니, 세상살이 다 싫어집디다. 내 손에 만져지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돌, 쇠, 나무…. 특히 나무가 좋아서, 나무로 만드는 일이면 뭐든 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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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석중씨는 “상금 탔으니 제일 먼저 대학 동기들에게 턱을 내야 한다”고 했다. 소목을 배우며 공과금도 못 낼 정도로 힘들었던 시절, 선뜻 돈을 빌려줬던 친구들이다. /이명원 기자
처음엔 한옥 짓는 업체에서 일당 4만원 받고 서까래를 깎았다. 그러다 2003년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에서 소목반 과정을 들으면서 박명배 선생을 만났다. "원리를 가르치는 분이라 좋았습니다. 나름 대학물 먹은 놈이라, 무조건 깎으라고 하는 것보다 어디에 쓰고, 어떤 원리로 되는지 알려주니 좋더군요." 2년 코스를 끝내고, 2년을 더 기다려 박 선생의 문하에 들어갔다.
과거 얘기엔 한껏 경직됐던 그가 나무에 대해 말할 때는 '아빠 미소'를 보이며 말수가 많아진다. "완성된 작품을 볼 땐, 아기 목욕을 시키고 뽀얘진 걸 바라보는 느낌"이라고 했다. "나무는 쉽게 안 돼요. 오랫동안 말리고 대패질해서 평평한 무늬를 만들어 놓으면 다음 날 다시 돌아가 있어요. 매일 계속 작업해야 무늬를 얻어요." 이번에도 나비 문양을 위해 석 달 동안 매일 대패질을 했다.
양씨는 "장인에 대한 선입견도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혀 다른 일 하다가 온 게 장점이 될 수도 있어요. 30~40년씩 하던 분들은 '몸에 익으면 자연스레 원리를 깨친다'고 하지만, 원리를 먼저 깨치고 몸에 익히는 것도 하나의 길이라는 거죠." 양씨의 '삼층장'을 포함해 수상작 280점은 9일부터 28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전시된다.
[匠人 도전, 시작은 이렇게]
양석중씨는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에서 '인생 2막'을 열었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운영하는 전통 공예 단기 강좌 코스다. 소목, 침선, 옥공예, 소반, 쪽염색 등 14개 종목 60개 반이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대한민국 명장 등 각 분야 최고 장인이 이론과 실기를 강의한다. 해마다 연초(1~3월)에 신청. (02)3011-1702
국립민속박물관은 매듭 만들기, 한복 만들기 등 민속공예교실을 15주 과정으로 열고 있다. 취미로 배우는 이들이 주로 수강한다. 매년 3월, 8월에 신청 접수. (02)3704-3145~6
허윤희 기자 조선 : 2013.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