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년차 이상 주부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원칙이 있다. ‘비싼 옷은 절대 수선하지 말라’는 것이다. 바지통을 늘렸더니 호주머니가 엉덩이 쪽에 가 있고, 외투 길이를 줄이고 보니 끝자락이 울어 결국 큰맘 먹고 샀던 옷을 버리는 불상사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옷 망치면 물어줄 테니 다 가져와보라”는 사람이 있다.
모든 수선작업을 손으로 정성껏 마감해 ‘명품 수선소’로 통하는 서울 청담동 한길사의 황인찬 대표가 직접 수선한 재킷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성룡 기자]

미싱으로 대충 박아버릴 봉제선도 ‘한 땀 한 땀’ 손으로 뜨는 장인 정신이 비결이다. 일반 수선소는 면바지 기장을 2분 만에 줄이지만, 한길사는 밑단 마감까지 손으로 직접 떠 작업하기 때문에 40분이 걸린다. ‘손으로 하면 엉성해져서 미싱을 쓰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황 대표는 “그건 손놀림이 미숙한 사람들 얘기고, 원래 이렇게 해야 더 오래가고 겉에서도 실 자국이 표가 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시간은 오래 걸려도 이 꼼꼼한 손기술 덕에 두 달에 한 번꼴로 수선할 옷을 싸들고 찾아오는 ‘정기 고객’만 3만 명이 넘는다. 그중엔 이름을 대면 알 만한 기업 총수나 유명 배우들도 있다.
이쯤 되면 수선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진다. 그래서 한길사 입구엔 수선료 안내표가 붙어 있다. ‘재킷 소매 4만원, 셔츠 어깨 2만5000원, 바지통 3만원’ 등 일반 수선소의 3배 정도 가격이다. 그런데 여느 가격표와 달리 가격 옆에 각 작업당 걸리는 시간이 쓰여 있는 게 눈에 띈다. 한 작업당 평균 2시간 반에서 3시간 정도다. 수선 가격이 싸지는 않아도, 공들이는 시간에 비하면 비싸지도 않다고 은근히 보여주는 셈이다.
황 대표는 늘 정장 차림으로 일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원래 맞춤양복을 만들던 ‘테일러’ 출신이고, ‘작업복’은 직접 맞춰 입은 양복이다. 1980년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남자가 무슨 바느질이냐”는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서울 소공동 롯데 1번지에 있는 양복점의 봉제 막내로 들어갔다. 시내에서 비싸고 목이 좋다는 가게 자리는 모두 양복점과 양화점이 차지하던 시절이었다. 한국맞춤양복협회장을 지낸 장인 김성동씨가 그의 스승이 됐다. 하루 14시간씩 일하며 주어진 잡무를 마쳐야만 어깨너머로 양복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황 대표가 양복 재킷 어깨 부분을 미싱으로 박는 대신 손으로 주름을 넣어 마감하고 있다. 이렇게 꿰매면 착용 시 어깨를 움직이기 훨씬 편하다(사진 왼쪽). 고급 양복점처럼 꾸민 한길사 매장(오른쪽).
20년간의 도제 생활 후 90년대 후반 서울 삼성동에 첫 양복점 ‘해리스’를 열었지만, 당시 기성복의 세에 밀려 맞춤양복의 시대는 저물어가던 중이었다. “내 손기술을 알아주는 곳은 어쩌면 양복점이 아닌 고급 의류 수선소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2000년 서울 청담동에 터를 잡은 지 5년 된 한길사를 인수했다. 일본 아카사카에 수선소을 낸다며 맡아주지 않겠느냐는 같은 테일러 출신 친구의 제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일반 수선소는 영세하다. 비좁은 공간에 들어서면 실과 옷감이 어지럽게 널려 있기 마련이다. 수선료를 1만원 받으면 수선사와 주인이 5:5로 나누는 ‘도급제’로 운영되는 탓에 개별 수선사들은 일감을 빨리 해치우기 위해 조급해진다. 13년 전 황 대표가 인수한 한길사도 마찬가지였다. 재킷 하나를 만들어도 완성도에 목매는 양복업계에 20년간 몸담았던 그에겐 문화 충격이었다.
수선소로선 드물게 ‘월급제’와 ‘전문분야’를 도입했다. “소득은 보장한다. 열 벌 수선할 시간에 일곱 벌만 해도 좋으니 제일 잘하는 걸 확실하게 하라”는 얘기였다. 지금 한길사엔 황 대표 외에도 총 16명의 수선전문가가 있다. 재킷·바지·니트·모피·가죽·청바지 등을 각각 나눠 맡는다. 황 대표 스스로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역할이다. 하루에도 손님들이 30~60명씩 찾아오는데, 모든 손님의 피팅(수선 전 어디를 어떻게 손볼지 계획하는 단계)은 그가 맡는다. 물론 까다로운 수선은 직접 한다.
“옷은 밸런스가 가장 중요하다. 무턱대고 이곳저곳 잘라내 원래 옷이 가지고 있던 맵시를 잃으면 그건 죽은 옷이다.”
수선업에 대해 황 대표가 가지고 있는 철학이다. 그래서 손님들에게도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잘라 말하는 편이다. 지난해 말엔 이런 일도 있었다. 한 중년 남성이 수백만원짜리 옷 몇 벌을 맡겼는데, 전부 사이즈가 너무 컸다. 시키는 대로 수선이나 해 달라는 걸 한사코 “딱 맞게 입으셔야 맵시가 산다. 한 벌만 맡겨보라”고 해 정성껏 품과 통을 맞춘 옷을 건넸다. 며칠 뒤, 그 손님은 비슷한 가격대 옷 300여 벌을 한꺼번에 들고 한길사를 다시 찾아왔다. 황 대표는 “부인·딸이며 회사 직원들이 모두 멋있다고 난리가 나서 있는 옷들을 다 고쳐 달라고 들고 왔다고 하더라”며 “올해 초까지 몇 개월에 걸쳐 공들여 고쳐 드렸다”고 설명했다. 그때 받은 수선비만 3000만원도 넘는다고 한다.
황 대표는 아직도 맞춤양복점 해리스를 한길사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수선소의 명성을 듣고 찾아왔다가 덩달아 양복도 맞추는 손님들이 점점 늘며 최근 매출이 반반이 됐다. 혹 생업 때문에 수선소 일을 시작했다고 후회하지는 않을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10년 넘게 수선소 일을 하면서 평생 두 번 못 볼 훌륭한 옷들이 들어오면 깜짝 놀라요. 어떻게 바느질을 했나, 디자인을 했나 밤새 들여다보면서 연구하죠. 같이 양복 만들었던 친구들과 술을 한잔하면 다들 그래요. ‘너 진짜 실력 늘었다’고. 이 일을 하게 된 건 제 복이에요. 끊임없이 새로운 옷들을 보면서 계속 배울 수 있는 게 행운입니다.”
글=조혜경 기자 중앙 2013.10.07
서울 청담동 명품골목 가운데에 위치한 ‘한길사’를 운영하는 황인찬(52) 대표다. 단순한 호기가 아니다. 3일 오전 이곳을 직접 찾아보니 수선대에 명품 양복 재킷부터 모피, 가죽 의류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남들은 실수하면 돈 물어줄까 봐 맡아달라 해도 손사래를 친다는 옷들이다. 인터넷 중고의류 사이트에선 ‘이 바지는 아실 만한 분들은 다 아시는 한길사에서 수선했다. 다른 명품 옷보다 5만원 더 받겠다’ 같은 게시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미싱으로 대충 박아버릴 봉제선도 ‘한 땀 한 땀’ 손으로 뜨는 장인 정신이 비결이다. 일반 수선소는 면바지 기장을 2분 만에 줄이지만, 한길사는 밑단 마감까지 손으로 직접 떠 작업하기 때문에 40분이 걸린다. ‘손으로 하면 엉성해져서 미싱을 쓰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황 대표는 “그건 손놀림이 미숙한 사람들 얘기고, 원래 이렇게 해야 더 오래가고 겉에서도 실 자국이 표가 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시간은 오래 걸려도 이 꼼꼼한 손기술 덕에 두 달에 한 번꼴로 수선할 옷을 싸들고 찾아오는 ‘정기 고객’만 3만 명이 넘는다. 그중엔 이름을 대면 알 만한 기업 총수나 유명 배우들도 있다.
이쯤 되면 수선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진다. 그래서 한길사 입구엔 수선료 안내표가 붙어 있다. ‘재킷 소매 4만원, 셔츠 어깨 2만5000원, 바지통 3만원’ 등 일반 수선소의 3배 정도 가격이다. 그런데 여느 가격표와 달리 가격 옆에 각 작업당 걸리는 시간이 쓰여 있는 게 눈에 띈다. 한 작업당 평균 2시간 반에서 3시간 정도다. 수선 가격이 싸지는 않아도, 공들이는 시간에 비하면 비싸지도 않다고 은근히 보여주는 셈이다.
황 대표는 늘 정장 차림으로 일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원래 맞춤양복을 만들던 ‘테일러’ 출신이고, ‘작업복’은 직접 맞춰 입은 양복이다. 1980년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남자가 무슨 바느질이냐”는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서울 소공동 롯데 1번지에 있는 양복점의 봉제 막내로 들어갔다. 시내에서 비싸고 목이 좋다는 가게 자리는 모두 양복점과 양화점이 차지하던 시절이었다. 한국맞춤양복협회장을 지낸 장인 김성동씨가 그의 스승이 됐다. 하루 14시간씩 일하며 주어진 잡무를 마쳐야만 어깨너머로 양복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20년간의 도제 생활 후 90년대 후반 서울 삼성동에 첫 양복점 ‘해리스’를 열었지만, 당시 기성복의 세에 밀려 맞춤양복의 시대는 저물어가던 중이었다. “내 손기술을 알아주는 곳은 어쩌면 양복점이 아닌 고급 의류 수선소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2000년 서울 청담동에 터를 잡은 지 5년 된 한길사를 인수했다. 일본 아카사카에 수선소을 낸다며 맡아주지 않겠느냐는 같은 테일러 출신 친구의 제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일반 수선소는 영세하다. 비좁은 공간에 들어서면 실과 옷감이 어지럽게 널려 있기 마련이다. 수선료를 1만원 받으면 수선사와 주인이 5:5로 나누는 ‘도급제’로 운영되는 탓에 개별 수선사들은 일감을 빨리 해치우기 위해 조급해진다. 13년 전 황 대표가 인수한 한길사도 마찬가지였다. 재킷 하나를 만들어도 완성도에 목매는 양복업계에 20년간 몸담았던 그에겐 문화 충격이었다.
수선소로선 드물게 ‘월급제’와 ‘전문분야’를 도입했다. “소득은 보장한다. 열 벌 수선할 시간에 일곱 벌만 해도 좋으니 제일 잘하는 걸 확실하게 하라”는 얘기였다. 지금 한길사엔 황 대표 외에도 총 16명의 수선전문가가 있다. 재킷·바지·니트·모피·가죽·청바지 등을 각각 나눠 맡는다. 황 대표 스스로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역할이다. 하루에도 손님들이 30~60명씩 찾아오는데, 모든 손님의 피팅(수선 전 어디를 어떻게 손볼지 계획하는 단계)은 그가 맡는다. 물론 까다로운 수선은 직접 한다.
복잡한 수선실은 매장 벽 뒤로 감췄다. 한길사에 들어서면 화사한 바로크풍 가구와 고급 원단들이 고급 맞춤양복점에 들어선 느낌을 준다. 인근 백화점의 키톤·에르메스·마르니 같은 명품 의류 브랜드 28개 매장의 수선 역시 이곳에서 맡는다. 한 벌에 적게는 수백, 많게는 수천만원씩 하는 옷들이지만 “실수하면 물어주겠다”는 황 대표의 자신감에 믿고 맡긴다는 것이다.

수선업에 대해 황 대표가 가지고 있는 철학이다. 그래서 손님들에게도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잘라 말하는 편이다. 지난해 말엔 이런 일도 있었다. 한 중년 남성이 수백만원짜리 옷 몇 벌을 맡겼는데, 전부 사이즈가 너무 컸다. 시키는 대로 수선이나 해 달라는 걸 한사코 “딱 맞게 입으셔야 맵시가 산다. 한 벌만 맡겨보라”고 해 정성껏 품과 통을 맞춘 옷을 건넸다. 며칠 뒤, 그 손님은 비슷한 가격대 옷 300여 벌을 한꺼번에 들고 한길사를 다시 찾아왔다. 황 대표는 “부인·딸이며 회사 직원들이 모두 멋있다고 난리가 나서 있는 옷들을 다 고쳐 달라고 들고 왔다고 하더라”며 “올해 초까지 몇 개월에 걸쳐 공들여 고쳐 드렸다”고 설명했다. 그때 받은 수선비만 3000만원도 넘는다고 한다.
황 대표는 아직도 맞춤양복점 해리스를 한길사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수선소의 명성을 듣고 찾아왔다가 덩달아 양복도 맞추는 손님들이 점점 늘며 최근 매출이 반반이 됐다. 혹 생업 때문에 수선소 일을 시작했다고 후회하지는 않을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10년 넘게 수선소 일을 하면서 평생 두 번 못 볼 훌륭한 옷들이 들어오면 깜짝 놀라요. 어떻게 바느질을 했나, 디자인을 했나 밤새 들여다보면서 연구하죠. 같이 양복 만들었던 친구들과 술을 한잔하면 다들 그래요. ‘너 진짜 실력 늘었다’고. 이 일을 하게 된 건 제 복이에요. 끊임없이 새로운 옷들을 보면서 계속 배울 수 있는 게 행운입니다.”